
- 300억, 1조, 20조, 노태우 비자금이 쌓았고 최태원이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돈의 무게는
- 최태원SK그룹 회장이 이혼소송의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경영권 불안에서 벗어났지만 SK 지배력에 '부정한 자금'이 자리잡고 있다는 '주홍글씨'를 새기게 됐다.이번 판결은 단순히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재산분할 논의를 넘어서 국민에게 최대 수조 원의 사회적 부채를 지고 있다는 굴레를 드러내게 됐다.대법원은 '최 회장의 재산 일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제공한 300억 원에서 불어난 자산'이라고 보고 원심의 재산분할 청구 부분을 파기·환송했다.노 관장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불법을 원인으로 하는 이익은 법적 보호대상이 될 수 없어 재산분할 대상에서도 제외돼야 한다는 2심과 전혀 다른 판단을 한 것이다.결과적으로노 전 대통령이 뇌물로 조성한 비자금 일부가 SK로 흘러들어가면서 국가의 추징을 피해왔다는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최태원 회장 이혼소송으로 드러난 사회적 부채,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에 그치지 않는다최 회장이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규모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약 300억 원에서 그치지 않는다.1심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의 SK 주식 17.90%(2조761억 원)와 친인척에게 증여한 주식(1조1116억 원) 등을 제외한 공동재산을 2142억1223만 원 수준으로 봤다. 노 관장 기여분은 40%인 약 665억 원으로 추산됐다.2심 재판부는 SK 주식과 친인척 증여 주식, 동거인 지출(약 219억 원) 등을 포함한 공동재산을 4조115억 원 수준으로 판단했다.이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재산 형성에 일부 기여했다는 점을 반영한 결과다.분할대상 공동재산의 증가분은 3조7972억 원 이상으로, 이번에 포함된 최 회장의 SK 주식 가치만 따져도 2조761억 원에 달한다.노 관장의 기여분으로 추산되는 금액은 35%인 1조3808억 원으로 1심보다 1조3143억 원만큼 늘어났다.2심 재판부는 재산분할 규모가 대폭 커진 근거로 'SK그룹의 가치나 경영활동에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한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명예회장의 경영활동에 도움을 줬다'고 판단했다.2심의 논리로 따지면 노 전 대통령 비자금 기여분이 최태원 재산에서 1조 원가량은 되는 셈이다.그러나 최태원 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SK그룹의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그 무게는 더 늘어난다.SK그룹은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기준 자산은 362조9618억 원에 이른다.최 회장은 SK 지분 17.90%(1297만5472 주)를 들고 SK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최 회장의 SK 지분은 21일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3조 원가량 된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기여분 1조 원가량을 최태원 회장의 SK 보유 지분으로 환산하면 최 회장의 SK 지분 중 줄잡아 30%에 이른다. 곧 SK 전체 지분 중 6%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불린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이를 SK그룹 전체의 자산에 대입하면 거의 20조 원가량에 이른다.물론 산술적 계산이겠지만 국민 정서적으로 최태원 회장이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돈의 크기는 이렇게도 무겁다고 할 수 있다.◆ 국회도 '노태우 비자금' 환수 방법 논의하고 있는데 최태원의 응답은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통령 시절 대기업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은 혐의다.추징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2205억 원,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89억 원 수준이었다.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며 완납 불가능을 주장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일부 차명계좌와 은닉재산을 인정하며 최소한의 법적 책임을 이행했다.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은 24%인 553억 원만 환수된 상태다.노 전 대통령 추징금은 2013년 모두 납부됐지만 당시 업계에서는 비자금 규모가 검찰이 추징액보다 클 것이라는 시각이 더욱 설득력 있었다.이번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그런 시각의 일부가 확인된 것이나 마찬가지다.국회와 시민사회에서는 사회적 환수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에서는 불법재산을 피의자 사망이나 공소시효 만료와 관계없이 몰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이를 뼈대로 한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안'과 '헌법상 독립몰수 제도'가 국회에서 발의돼 있다.관련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됐지만 실질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현실화된다면 부정축재 자금이 기업 지배력으로 이어진 구조에도 제도적 개입이 가능해진다.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헌정질서 파괴나 중대 부패범죄의 경우, 불법 재산의 환수만큼은 공소시효나 제3자 이전 여부와 무관하게 가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해온 최태원, 진정성을 보여야 하는 이유최태원 회장이 그동안 기업의 이익을 앞세우는 재벌 회장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점을 놓고 볼 때 국회 등 외부의 압력보다 먼저 움직일 수는 없을까?최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왔고 사회적 가치를 기업 평가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자는 화두를 재계에 지속적으로 던져왔다.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사회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과 재무성과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경영, 경영 판단을 형벌이 아닌 경제적 책임으로 부과하는 방식 등을 의제로 제시하기도 했다.최 회장은 수감 중인 2014년 사회적 기업과 출소자 자활사업체에 SK의 전신인 SKC&C 주식 일부를 기부했다. 또 2018년에는 SK그룹 성장에 기여한 친족들에게 보답 차원으로 SK 주식 4.68%(당시 1조 원가량)을,최종현 학술원 등에 SK 주식 20만 주를 증여했다.이를 놓고 최 회장은 부를 나눌 줄 아는 재벌 오너라는 말이 나왔고 현재 재계에 구축한 위상의 원천 중 하나로 자리잡은 것도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 최 회장이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에서 드러난 '불편한 진실'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은 지켜보고 있다. 안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