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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 ||
최지성은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1951년 2월2일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1977년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뒤 37년 동안 삼성그룹에서 근무했다.
2006년 삼성전자 보르도TV가 소니를 제치고 세계시장 판매 1위를 차지하게 만든 데 힘입어 2010년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다.
그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흥행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2012년 6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에 선임되면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시대를 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으로서 실질적 2인자다. 다만 전임들에 비해 밖으로 보이는 말은 줄이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타입이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스스로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그림자 역할만 하겠다고 공언했다. 기자들과 거의 만나지 않으며 질문을 받아도 인삿말이나 '할 말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미래전략실은 군림하는 곳이 아니라 지원하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최지성의 리더십은 권력형이라기보다 관리형에 가깝다.
미래전략실장으로 처음 출근하는 날에도 본관 입구가 아닌 주차장에 내려서 걸어갔고 다른 직원들과 동일하게 사원증을 찍고 보안게이트를 통과했다. 미래전략실의 권위주의를 내려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이학수 전 미래전략실장과 비교되기도 한다.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다. 엔지니어가 아닌 영업맨 출신으로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최지성이 처음이다.
그가 삼성전자 재직시절 내놓은 ‘보르도’ TV 시리즈를 통해 삼성전자는 34년 만에 TV 시장 매출 세계1위를 차지했다. 휴대폰시장에서도 ‘애니콜’의 성공으로 삼성이 노키아를 추적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 탄생을 이끌어내 삼성전자를 세계1위 기업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세계시장을 돌아다니며 디지털제품을 판다고 해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삼성전자에서 4대 사업분야로 꼽히는 반도체, 모바일, TV, 디스플레이를 모두 거치며 영업부장부터 사업부장과 대표이사까지 역임한 대표적 '삼성전자맨'이다.
경영자가 된 뒤에도 현장경험을 살려 삼성전자와 계열사의 업무방향과 목표조율에 집중했다. 각 사업부장과 현장 책임자의 권한을 존중하면서 조력자와 코치 역할에 주력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래전략실장이 된 이후에도 전임자들에 비해 보다 세밀한 업무를 지시했다. 그룹 주요 임원의 오전 6시 30분 출근제도를 실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평소에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지시와 피드백으로 조직 내 업무대응 속도를 높였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정확한 일정관리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세계 어디서나 사내 인트라넷으로 업무 메일을 받는다. 어떤 사안이든 낮밤 구분없이 10분 내로 결정을 내려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싫어해 ‘독일병정’과 ‘최틀러’라는 별명이 있다.
삼성가 오너 일가와 친밀한 사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보좌에 충실하며 그가 해외출장을 갔을 경우 삼성 내부를 단속하며 해외 현장업무 보고와 지시를 전달했다. 이건희 회장이 해외 VIP와 만나는 자리에도 항상 배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비서실 근무 당시 인연을 맺었으며 '가정교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대표이사에 오를 때도 황창규 기술총괄 사장, 이상완 LCD총괄 사장과 대표자리를 놓고 경쟁했는데 최지성의 발탁은 이재용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재용 부회장과 가장 커뮤니케이션이 잘 통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뒤 두 사람이 서로 상의하면서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뒤에도 매일같이 삼성서울병원을 찾아 이 회장의 병세를 살피고 그룹 현안을 보고하고 있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을 상속할 경우 최 부회장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주목한다. 삼성그룹에서 최지성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있어 이재용 체제로 전환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지성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삼성그룹 내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졌다. 그룹의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지성 역시 자신에게 쏠리는 세간의 관심을 감안해 친인척들을 비롯한 주변인사들에게 철저한 자기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최지성은 승부사 기질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198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인 소장으로 일할 때 반도체 기술 교재 1000페이지를 통째로 암기해 부임 첫해 100만 달러 규모의 반도체를 팔았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당시 스위스로 가기 위해 알프스를 넘던 중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생명이 위험했던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으로서 실질적 2인자다. 다만 전임들에 비해 밖으로 보이는 말은 줄이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타입이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스스로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그림자 역할만 하겠다고 공언했다. 기자들과 거의 만나지 않으며 질문을 받아도 인삿말이나 '할 말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미래전략실은 군림하는 곳이 아니라 지원하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최지성의 리더십은 권력형이라기보다 관리형에 가깝다.
미래전략실장으로 처음 출근하는 날에도 본관 입구가 아닌 주차장에 내려서 걸어갔고 다른 직원들과 동일하게 사원증을 찍고 보안게이트를 통과했다. 미래전략실의 권위주의를 내려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이학수 전 미래전략실장과 비교되기도 한다.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다. 엔지니어가 아닌 영업맨 출신으로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최지성이 처음이다.
그가 삼성전자 재직시절 내놓은 ‘보르도’ TV 시리즈를 통해 삼성전자는 34년 만에 TV 시장 매출 세계1위를 차지했다. 휴대폰시장에서도 ‘애니콜’의 성공으로 삼성이 노키아를 추적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 탄생을 이끌어내 삼성전자를 세계1위 기업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세계시장을 돌아다니며 디지털제품을 판다고 해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삼성전자에서 4대 사업분야로 꼽히는 반도체, 모바일, TV, 디스플레이를 모두 거치며 영업부장부터 사업부장과 대표이사까지 역임한 대표적 '삼성전자맨'이다.
경영자가 된 뒤에도 현장경험을 살려 삼성전자와 계열사의 업무방향과 목표조율에 집중했다. 각 사업부장과 현장 책임자의 권한을 존중하면서 조력자와 코치 역할에 주력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래전략실장이 된 이후에도 전임자들에 비해 보다 세밀한 업무를 지시했다. 그룹 주요 임원의 오전 6시 30분 출근제도를 실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평소에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지시와 피드백으로 조직 내 업무대응 속도를 높였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정확한 일정관리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세계 어디서나 사내 인트라넷으로 업무 메일을 받는다. 어떤 사안이든 낮밤 구분없이 10분 내로 결정을 내려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싫어해 ‘독일병정’과 ‘최틀러’라는 별명이 있다.
삼성가 오너 일가와 친밀한 사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보좌에 충실하며 그가 해외출장을 갔을 경우 삼성 내부를 단속하며 해외 현장업무 보고와 지시를 전달했다. 이건희 회장이 해외 VIP와 만나는 자리에도 항상 배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비서실 근무 당시 인연을 맺었으며 '가정교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대표이사에 오를 때도 황창규 기술총괄 사장, 이상완 LCD총괄 사장과 대표자리를 놓고 경쟁했는데 최지성의 발탁은 이재용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재용 부회장과 가장 커뮤니케이션이 잘 통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뒤 두 사람이 서로 상의하면서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뒤에도 매일같이 삼성서울병원을 찾아 이 회장의 병세를 살피고 그룹 현안을 보고하고 있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을 상속할 경우 최 부회장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주목한다. 삼성그룹에서 최지성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있어 이재용 체제로 전환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지성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삼성그룹 내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졌다. 그룹의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지성 역시 자신에게 쏠리는 세간의 관심을 감안해 친인척들을 비롯한 주변인사들에게 철저한 자기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최지성은 승부사 기질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198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인 소장으로 일할 때 반도체 기술 교재 1000페이지를 통째로 암기해 부임 첫해 100만 달러 규모의 반도체를 팔았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당시 스위스로 가기 위해 알프스를 넘던 중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생명이 위험했던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 기타
국내 100대기업 전문경영인 중 보유주식 가치가 가장 높다. 삼성전자 주식 6400주를 보유하고 있어 6월24일 현재 주식가치는 83억 원이다.
삼성전자를 세계 TV시장 1위로 올린 '보르도' 시리즈는 그가 좋아하는 보르도 와인에 착안해 이름을 붙였다. 매출 1위를 거둔 뒤 이를 기념해 보르도 와인을 원샷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고와 서울대 출신이나 동문회에 나가지 않는다. 다만 서울고 각 교실에 TV를 기증하는 등 애교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대 재학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 반대투쟁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함께 서울대 상대 운동권에서 활동한 인물은 김문수 의원과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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