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이동통신 가입 때 얼굴로 본인 인증, '1984' 경고한 일상 속 생체정보 수집 시대 열렸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이동통신 가입 때 얼굴로 본인 인증, '1984' 경고한 일상 속 생체정보 수집 시대 열렸다
얼굴·지문·목소리 같은 생체 정보를 통한 본인 확인 물꼬가 터졌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경고했던 시대가 비로소 열렸다.아울러 대한민국이 국가 발급 신분증만으로는 일상생활 속 본인 확인 절차를 통과할 수 없는 나라가 됐다. 머지않아 자원 절감,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효율성 등을 이유로 실물 국가 발급 신분증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여권 같은 국가 발급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했다. 신분증에 담긴 사진과 주민등록번호 등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인증했다. 은행 창구나 주민자치단체 민원실(시청·구청·동사무소·면사무소 등) 등에서 업무를 볼 때는 물론, 경찰이 검문을 하거나 투표 때도 국가 발급 신분증을 요구해 본인 확인을 했다.그런데 국가 발급 신분증도 위·변조될 수 있다며 실제 얼굴을 스캔한 정보로 본인 인증을 하는 절차를 추가로 두겠단다. 길은 나면 다져지고 넓어진다. 더욱이 얼굴·지문·목소리같은 생체 정보는 수집·활용 수요가 많다. 활용 가치가 커서다. AI 시대에는 생체정보 활용 가치가 더 커진다.머지않아 동사무소에 가서 일을 보거나 투표 등을 할 때 국가 발급 신분증 제시 요구에 더해 얼굴을 카메라 앞에 들이대거나, 스캐너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스피커에 대고 말을 해보라는 식의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게 일반화할 수도 있다.휴대전화 신규 가입이나 번호 이동 시 얼굴(안면) 인증으로 본인 확인을 받도록 한 게 시작이다. 명의 도용을 통한 휴대전화 불법 개통, 대포폰 유통, 보이스피싱 범죄 등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하지만, 정보인권 측면에서는 드디어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이동통신 3사와 알뜰폰 사업자들은 지난 6일 '다중 본인 확인' 절차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은 휴대전화 신규 가입이나 번호 이동 시 본인 확인을 할 때 국가 발급 신분증만 제시하면 됐으나, 이 날부터는 얼굴 스캔, 모바일 신분증, 당일 발급 주민등록초본 가운데 한 가지로 추가 인증을 받아야 한다. 다만 통신사를 옮기지 않고 단말기만 바꿀 때는 이러지 않아도 된다.갈수록 정교해지는 명의도용 범죄를 막기 위해서란다. 휴대전화가 금융거래와 본인인증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개인정보 유출과 신분증 위·변조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기존 신분증 진위 확인만으로는 부정 개통을 막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대포폰(불법개통 휴대전화)은 2만여 건에 달했고, 보이스피싱 피해액도 1조3천억 원에 이른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은 '명의 도용을 통한 휴대전화 불법 개통을 차단, 대포폰 유통과 보이스피싱 등 민생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조처'라며 '휴대전화가 금융거래와 각종 온라인 서비스의 본인 확인 수단으로 폭넓게 활용되는만큼, 개통 단계에서부터 명의 도용을 차단해 관련 범죄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애초 정부는 휴대전화 신규 가입이나 번호 이동 시 얼굴 스캔 인증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얼굴 정보의 민감성을 지적하며, 대체 인증 수단을 추가로 마련해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하자, 3가지 방식을 마련해 고르게 하는 쪽으로 바꿨다.이 가운데 모바일 신분증은 사전 발급 절차를 거쳐야 하고, 주민등록초본은 당일 발급된 것이어야 한다. 이용자 쪽에서 보면 꽤 번거롭다.결국 현장에서는 미리 발급받거나 서류 준비 절차가 필요없는 얼굴 스캔 인증 방식이 선호될 가능성이 크다. 겉보기로는 이용자가 3가지 방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굴 스캔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정부와 통신사들은 '얼굴 스캔은 촬영 환경이나 인식 실패 등에 따라 인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고, 그에 따라 휴대전화 개통 시간이 지연되고, 줄서기를 해야 하는 등 이용자 불편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걱정해야 할 부분이 이뿐일까. 진짜 걱정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우선 얼굴과 지문 같은 생체 정보는 민감성 측면에서 기존 개인정보와 차원이 다르다. 조지 오웰 소설 1984에서 경고된 '빅 브라더' 등장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이에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등 관련 법에서도 생체정보를 민감정보로 따로 분류해 엄격한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트럼프 행정부와 손잡고 미국의 이란 침공 때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기까지 했던 미국 AI 빅테크 앤트로픽이 불법 이민자 색출 등에 AI를 활용하려는 정부 의도를 확인하고 서둘러 발을 뺀 것도, 자칫 시민들의 정보인권을 짓밟고, 빅 브라더 등장을 도왔다는 오명을 쓰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시민들의 얼굴 정보를 수집해 AI를 학습시키는 순간, 통제가 가능해진다. 이 권한을 쥐면 빅 브라더가 된다. 불법 이민자와 범죄자 색출 등 국가 안보 및 수사 목적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수단을 손에 쥐었으니 솟구치는 욕망을 자제하기 어렵다. 정치적 악용과 시민 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단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그동안 시민 생체정보 수집·활용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실제 경험은 다른 나라 입국 때나 할 수 있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국가기관이 국가 안보와 범죄 수사 등의 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휴대전화 개통 절차에 적용되면서 일상 속 대중화 길이 열렸다.더욱이 이동통신 3사와 알뜰폰 사업자들이 도입한 얼굴 스캔 인증은 법적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10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얼굴 인증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가운데 가장 민감한 정보로 분류되는 시민 얼굴을 스캔해 본인 인증에 활용하는 절차를 법적 근거도 없이 시작한 셈이다.얼굴 정보 남용·유출 우려도 크다. 인증 과정에서 안면 정보가 일시적으로 서버로 전송된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킹 공격 등을 받아 유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암호화해 전송한다고 하지만, 최근 이동통신 3사에서 잇따라 터진 통신망 해킹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암호화 전송이 말뿐일 수도 있다.정부 측은 '지난해 말부터 시범 운영을 거치며 안면 인식 정확도를 개선했고, 얼굴 원본 이미지는 저장하지 않은 채 특징값만 대조한 뒤 즉시 폐기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보안 점검에서도 얼굴 정보 유출 취약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최우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실장이 안면인증시스템 도입 등 휴대전화 부정사용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믿어지지 않는다.2000년대 초반 위치정보 이용 및 보호 등에 관한 법 제정 과정에서 휴대전화 위치 정보 저장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도, 과기정통부는 '절대 저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이 문제로 끝장 토론회까지 열렸는데, 과기정통부 담당자가 참석해 '이동통신 사업자들에게 일일이 확인했는데, 절대 저장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휴대전화는 가까운 기지국을 향해 수시로 전파를 발사한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통신망에 알리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배터리가 닳는 이유다. 이 정보를 축적하면 휴대전화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입자의 사생활 정보로 분류되는 현재 위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셈이다.위치정보법 시행 10여년 뒤, 이동통신 3사가 비밀 서버(컴퓨터)를 설치해 휴대전화 위치 정보를 몰래 축적해온 사실이 한겨레 취재로 드러났다. 통신사들은 정보를 축적하지 않는다고 버텼으나, 한 통신사 직원의 고백으로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이동통신사들은 '고객 서비스를 위해서'라고 말을 바꿨고, 과기정통부는 몰랐다며 어물쩡 넘겼다. 휴대전화 위치 정보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축적되고 있다.이동통신 가입자의 얼굴 정보 역시 과기정통부는 원본을 저장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휴대전화 위치 정보가 과기정통부의 장담에도 이동통신사들이 몰래 축적해온 사례에서 보듯 믿기 어렵다. 이동통신사들은 'AI 비서' 서비스 출시 때도 통화 내용을 따로 저장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회사 서버에 6개월 저장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화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저장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 논란이 일자 거짓말을 한 셈이다.가입자의 위치정보 이상으로 얼굴·지문·목소리 같은 생체정보의 활용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생체정보를 수집해 AI 학습용으로 쓰려는 수요가 많다. 눈속임을 하면서까지 수집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AI 스피커를 출시했을 때도 이용자 목소리 정보를 수집하려고 한다는 뒷말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코로나19 때는 건물 입구마다 설치·운영되는 출입자 얼굴 인증 시스템이 출입자들의 얼굴 정보를 수집하고, 이렇게 수집된 얼굴 정보 데이터가 특정 사이트로 보내지는 게 한겨레 보도로 드러나기도 했다. 얼굴 인식 시스템 납품 업체가 백도어를 심어 화면에 비친 얼굴 정보 데이터를 빼낸다는 의혹이 일었다.더욱이 이동통신 3사는 통신망 보안 투자를 소홀히 하다 해킹을 당해 개인정보를 대량 유출시킨 전력이 있다. 최근 2년 사이 이동통신 3사에서 모두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있었고, 일부 업체에선 반복되기도 했다.결국 시민 정보인권 관점에서 보면, 휴대전화 개통 시 얼굴을 스캔해 본인 인증을 하게 하는 절차는 이렇게 뚝딱 도입될 사안이 아니었다. 국가 발급 신분증의 위·변조와 휴대전화 불법 개통 등의 문제가 있으면 그 자체로 풀어야지, 느닷없이 생체정보 수집·활용 길을 열어제치는 것으로 해결하면 안됐다.더욱이 아직 법적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이 정부의 '정보인권 감수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혹시 '큰 그림'을 갖고 시민들의 최신 얼굴 정보를 수집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어 보인다. 이미 독재 국가 정부는 물론 미국 트럼프 정부까지도 AI를 시민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이동통신 3사도 '불감청이언정 고소원(감히 청하지 못했을 뿐 소원하던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앞서 이들은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며 주민등록번호까지 받아 '본인확인' 서비스 사업에 쓰고 있다. 가입자들의 얼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면, 빅 브라더 지위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벌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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