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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일상의 사소한 무례를 마주할 때 생각할 것들

[당신과 나의 마음] 일상의 사소한 무례를 마주할 때 생각할 것들

진료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예고 없이 마주한 타인의 무례와 그로 인한 불쾌함을 어떻게 다룰지가 종종 화제에 오른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닌,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낯선 사람의 무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예를 들면, 가게나 식당, 시설 등을 이용하다가 갑자기 불친절한 대우를 받는 경우다. 얼마 전에는 카페에서 누군가 직원에게 빨대의 위치를 묻는 모습을 보았다. 빨대는 내 눈에도 찾기 어려운 곳에 있었는데, “저기 있잖아요”라는 직원의 짜증 섞인 대답에는 그것도 못 찾느냐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비스 제공자가 늘 밝은 표정으로 누군가를 반겨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사실 (진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쾌함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서라기보다, 일상적인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핀잔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소한 무례가 때로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보통 이런 장면은 갈등을 예상하고 들어간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서비스를 이용하러 갔다가 돈을 내고 불쾌함까지 구입하는 셈이 되니, 평온했던 일상이 느닷

[당신과 나의 마음] 경지에 도달한 이들의 마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

[당신과 나의 마음] 경지에 도달한 이들의 마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

오랫동안 잘 쓰던 가방의 지퍼가 얼마 전 완전히 고장났다. 어디서 고쳐야 하나 잠깐 생각하다가 귀찮음에 밀려 그대로 방치해두고 지내던 어느 날, 동네의 작은 구둣방 앞을 지나다 갑자기 가방 생각이 나서 문을 열고 물었다. “혹시 가방 지퍼 같은 것도 고쳐주시나요?” “그럼요. 아무 때나 오세요.” “그런데 진짜 완전히 망가졌는데요. 하하.” 그러자 주인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못 고치는 거면 어차피 아무도 못 고치는 거니 편하게 가져오세요.” 또 최근에는 무릎에 염증이 심하게 생겨 물이 찬 적이 있었다. 친구가 일하는 병원에 갔더니 너무나 익숙한 동작으로 안에서부터 밖으로 원을 그리며 무릎을 소독한 뒤, 굵은 주삿바늘을 넣어 안에 차 있던 제법 많은 양의 관절액을 뽑아냈다. 친구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동작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 시술은 아마도 그날 친구가 한 일 가운데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을 만큼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최근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두 프로에게 연달아 작은 경외심을 느꼈다.

[당신과 나의 마음] 나에게는 '인류애 폴더'가 있다

[당신과 나의 마음] 나에게는 '인류애 폴더'가 있다

나의 스마트폰 안에는 ‘인류애’라는 이름의 폴더가 있다. 나는 거기에 때때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마주치는 사진, 소위 말해 ‘짤’을 하나씩 저장한다. 그 사진들의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매일 전화로 단골 밥집에 식사를 주문하던 사람이, 어느 날 좋지 않은 일이 있어 밤새 울다가 평소처럼 주문을 했더니 사장님에게서 장문의 위로 문자와 함께 미숫가루 서비스를 받았다는 이야기. 그 문자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삶은 작은 기쁨으로 큰 아픔을 잊으면서 사는 거지요.” 또는 어떤 수업의 교수님이 언제부턴가 매번 지각하고, 수업을 서둘러 마치고 급하게 사라지는 바람에 학생들이 좋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암 선고를 받은 뒤 항암치료를 받으며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이야기. 물론 어떤 사정이 있다고 해서 지각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는 바깥에서 보이는 태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집안 식구 중 누군가 낮잠을 잘 때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짧은 글도 들어

[당신과 나의 마음] '똥맛 카레'와 '카레맛 똥' 가운데 골라야 한다면

[당신과 나의 마음] '똥맛 카레'와 '카레맛 똥' 가운데 골라야 한다면

인터넷에는 오래된 밸런스 게임이 있다. “똥맛 카레를 먹을 것인가, 카레맛 똥을 먹을 것인가.” 둘 다 고르기 싫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지만, 어쨌든 이 농담에는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똥맛이 나면 카레일 것이고, 카레맛이 나면 똥일 것이라는 전제다. 이 세계에는 똥맛 똥도 없고, 카레맛 카레도 없다. 냄새도 수상하고 맛도 수상한데 알고 보니 정말로 수상한 것인 경우는 아예 선택지에서 빠져 있다. 그런데 사람을 대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거나 함께 일하게 됐을 때,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 이른바 ‘쎄함’을 감지하는 경우가 있다. 상황은 다양할 수 있다. 말투가 묘하게 무례하거나,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이유 없이 내게 까칠해서 괜히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물론 이 느낌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고, 첫인상은 종종 틀리며, 내가 불편하게 느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군

[당신과 나의 마음] 엄마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당신과 나의 마음] 엄마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유튜브에는 특정 인물을 재현하는 수준이 인류학자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말투나 제스처를 단순히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다들 비슷하게 느끼지만 말로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특징까지 부각해낸다. 코미디언 이수지도 그중 하나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최근 ‘딸과 함께 봄을 걷다! 황정자 씨의 따뜻한 외출’이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수지가 직접 엄마 황정자로 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시 귀국한 막내딸과의 봄나들이를 담았다. 딸이 예약해둔 레스토랑 대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 들고, 카페에서는 "안 시켜도 돼, 물이면 돼"를 반복하고, 디저트를 한 입 먹고는 “어우 달다”를 연발한다. 그렇게 하루종일 모녀는 실랑이를 한다. 영상 마지막에 엄마는 말한다. “나는 오늘 우리 딸만 보였어.” 댓글창에는 “우리 엄마인 줄 알았네”가 수없이 달린다. 이 영상이 포착한 장면은 낯설지 않다. 영상에서는 훈훈한 마무리로 끝났지만, 받으려 하지 않고, 받아도 절대로 좋다고 하지 않으면서, 그렇지만 정말로 안 해주면 서운해하

[당신과 나의 마음] 이랑 작가의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에 대하여

[당신과 나의 마음] 이랑 작가의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에 대하여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상 ‘미쳤다’라는 말은 일상에서 좀처럼 쓰지 않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이 정신질환자를 비하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맛있는 걸 먹거나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와, 미쳤다”나, 상대에게 화가 나거나 이해가 안 갈 때의 “미친 거 아니야?”처럼 전혀 다른 맥락의 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직업적 조심스러움을 굳이 내려놓으려 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내가 그 말을 쓰는 경우는 따옴표를 달고, 즉 이른바의 의미로 쓸 때가 거의 유일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개인이 다양한 사회적 억압 속에서 ‘미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가리킬 때다. 역사 속 여성의 특이한 증상이었던 히스테리처럼, 결국 그 시대와 사회의 조건 안에서 달리 말할 방법이 없었던 이들이 자신만의 언어로서 고통을 표현한 경우가 그러하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랑 작가의 신간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바로 그 따옴표 붙은

[당신과 나의 마음] 어그로로부터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법

[당신과 나의 마음] 어그로로부터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법

인터넷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부산 사시는 분들~ 놀러갈만한 곳 좀 알려주세요”라고 정중하게 물으면 원하는 답을 얻기 어렵고, “부산에 볼 게 뭐가 있어ㅋㅋ 바다밖에 더 있나?”라고 써야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명소들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이 정도야 농담이지만, 인터넷상에서 자극적인 주장을 던져서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행위, 이른바 ‘어그로’는 우리를 자주 피로하게 만든다. 이런 행위를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게 좋을까? 어그로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예로는 특정 집단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는 그 특정 집단을 동물에 비유하여 예를 들어보겠다. “캥거루는 정말 이상한 동물이다.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니. 독립심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양육 방식 아닌가? 저렇게 과잉보호를 하니 캥거루라는 종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rd

[당신과 나의 마음] 김 부장님, 좋은 배우자를 두셨군요

[당신과 나의 마음] 김 부장님, 좋은 배우자를 두셨군요

작년 말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가 화제가 된 이후 뒤늦게 원작 소설을 읽었다. 드라마도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원작은 또 다른 방식으로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사건을 몰아치기보다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갔으며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독자를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원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김부장은 퇴사 이후 분양사기를 겪고 반복적 공황 증상을 경험하며 정신과의원을 찾는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리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치료의 필요성을 거부한다.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지만 진짜 문제는 회사 동료 등 타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차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무엇이 자신을 이토록 벼랑 끝으로 몰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 과정은 많은 중년 직장인의 서사와도 닮아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버텨오면서도 정작 자신을 충분히 돌보고 이해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던 많은 이들의 삶 말이다. ‘김부장’에서 눈에 띄는 치유자는 두 명이다.

[당신과 나의 마음] 덜덜 떨며 술빚는 '흑백요리사2' 윤주모처럼

[당신과 나의 마음] 덜덜 떨며 술빚는 '흑백요리사2' 윤주모처럼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2'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원래는 서바이벌류의 방송을 잘 못 보는 편이다. 누군가의 탈락을 전제로 비교와 견제를 극대화하는 구성이 (흥행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다. 흑백요리사에서는 도전자들이 서로를 깎아내리기보다 존중하고, 결코 실패를 조롱하지 않는다. 그 점이 마음을 놓이게 했는지 기쁘게 빠져들었고, 시즌2 역시 즐겁게 따라가고 있다. 제작진의 끊기신공에 탄식하며, ‘결과가 궁금하지만 미리 알고 싶진 않아’ 모드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시즌1에 이어 등장한 다양한 흑수저 요리사 중 특히 눈에 들어온 사람은 술빚는 윤주모(이하 윤주모)님이었다. 화면에 적나라하게 보이는 손떨림에서 윤주모님의 엄청난 긴장이 그대로 전해졌다. ‘덜덜’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느낌이다. ‘호달달’이라는 표현을 붙이고 싶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윤주모님은 요리 내내 호달달 떨면서도 생존 미션을 하나씩 통과해 나간다. 발표나 시험처럼 자신의 역량이 평가받는 상황에서의 불안으로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다. 긴장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므로, 약물치료나 인지행동적인 접근 등으

[당신과 나의 마음] 상처가 왜 눈물 모양 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당신과 나의 마음] 상처가 왜 눈물 모양 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뉴스를 보다 보면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복잡하며, 얼마나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가 특히 그렇다. 누군가의 피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반복되는 광경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피해자의 ‘피해자다움’ 여부로 향하면서 그가 SNS에서 웃고 있는 사진이 심판대에 올라온다. 이어서 사건 직후 가해자 또는 지인과 나눈 대화가 캡처되어 돌아다닌다. “정말 안 좋은 일을 당한 사람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할 수 있나?, “왜 명랑하게 지냈지?”, “왜 가해자와 즐겁게 연락을 했지?” 같은 질문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피해자는 세상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존재할 때만 인정할 수 받을 수 있다는 듯이.&n

[당신과 나의 마음] 상실과 애도를 연습하는 계절, 가을

[당신과 나의 마음] 상실과 애도를 연습하는 계절, 가을

9월이 되어도 한낮에 에어컨을 켜면서 언제쯤 여름옷을 정리해서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이 무색하게, 추운 날씨가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얼떨결에 10월이 갔다. 급하게 코트를 주섬주섬 꺼내어 입으며 길을 걸다보니 발밑에서는 어느 새 낙엽이 뒹굴고 있다. 계절은 연속적이면서도 대단히 비연속적이다. 조금 철지난 표현을 빌면, '깜빡이도 없이' 그렇게 가을이 또 왔다. 아주 어릴 때는 ‘가을을 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가을을 쓸쓸함과 사색의 계절이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글을 볼 때는 그저 진부하고 게으른 표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계절이 사람의 마음에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그 미세한 감정 변화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를 아직 알지 못했다. 사실 ‘가을을 탄다’는 꽤 과학적인 표현이다. 가을에는 햇빛이 줄고 낮이 짧아진다. 그에 따라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하고,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이 증가한다.

[당신과 나의 마음] 한가위에 풍성하지 않으면 어때요

[당신과 나의 마음] 한가위에 풍성하지 않으면 어때요

‘즐거우라고 판을 깔아주는 날이 과연 정말 즐거운 날일까? 혹시 그 반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부터다. 생일, 크리스마스, 추석과 설, 가정의 달, 연애 'n주년' 등등 우리에게는 수많은 기념일이 있다. 사람들은 생일에 “행복한 하루가 되라”며 축하하고, 추석이면 “풍성한 한가위가 되라”고 덕담한다. 그 말에 잘못은 없다. 나 역시 비슷한 덕담을 건넨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념일을 다른 평범한 날보다 더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이유는 다양하다. 가만히 각자의 경험을 되짚어보자. 기념일은 늘 즐겁고 풍요로웠는가? 아니면 기대와 현실의 간극 때문에 허전했는가? 함께할 이가 없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는가? 아니면 연락을 피하고 싶던 누군가에게 억지로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 답답했던 적이 있는가? 이런 경험이 전혀 없다면 정말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강도로 한두 번쯤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라는 데에 조심스럽게 500원을 걸고 싶다. 미국 드라

[당신과 나의 마음] 자책에서 성찰로 나아가기

[당신과 나의 마음] 자책에서 성찰로 나아가기

얼마 전 비 오는 날, 아이가 걷다가 넘어져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긁히는 상처를 입었다. 지금은 다행히 상처가 잘 아물었지만 당시에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했고, 아이 바로 옆에 있던 내가 조금 더 잘 대처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들었다. 릴스나 쇼츠 같은 숏폼 영상에서는 아이가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순간, 양육자가 놀라운 반응 속도로 아이를 구해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였을까. 아이가 다친 상황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나는 왜 쇼츠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대처하지 못했지?” 그때 옆에 있던 배우자의 대답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쇼츠에 나올 만큼 특별한 일인 걸? 그런데도 스스로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건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내가 깨달음을 얻고 감탄하자 배우자는 웃으며 덧붙였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습니다요.” 평소 배우자에게 정신과 의사로서 이런 저런 얘기를

[당신과 나의 마음] 여름을 무사히 보내는 방법

[당신과 나의 마음] 여름을 무사히 보내는 방법

"여름이었다."(문장의 마지막에 "여름이었다."를 붙임으로써 과장된 서사적 장엄함을 만드는 장난스러운 밈(meme)이 존재한다)라는 말로도 쉽게 마음이 달래지지 않는 뜨거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습도는 또 어찌나 높은지 물고기가 눈앞에서 헤엄쳐도 놀라지 않을 것만 같다. 비는 예고 없이 쏟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며 갑자기 그친다.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파워 냉방으로 틀어!"를 외치게 된다. 밖을 걷다보면 느껴지는 건물 외벽 실외기의 열기는 그것대로 후끈하다. ‘지구의 미래는 괜찮은 걸까? 아니 지구가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이 문제지만...’ 이라는 위기감이 들다가도 뜨거운 햇볕에 생각이 정지되면서 일단은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엄 캐리어 선생에게 경의부터 표하고 본다. 덥고 습한 여름에 사람들의 생체 리듬은 당연하게도 요동친다. 특히 수면이 그렇다.

[당신과 나의 마음] 직사광선에서 햇살로 나아가는 방법

[당신과 나의 마음] 직사광선에서 햇살로 나아가는 방법

어릴 적 나는 과자 봉지나 음료수 병, 치약 튜브에 인쇄된 글씨를 읽는 것을 좋아했다. '식품유형: 탄산음료, 소비기한: 밑면 표기일까지, 원재료명: 정제수, 이산화탄소...' 같은 문구들을 천천히 읽어나갈 때면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나에게 ‘직사광선’은 약간은 호환마마같은 존재였다. 거의 모든 제품에는 늘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한 곳에 보관하세요”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직사광선이 대체 뭐길래 모두가 이렇게까지 피하라는 걸까. 당시에는 인터넷도, 인공지능도 없었고, 그렇다고 굳이 사전을 찾거나 어른에게 물어볼 만큼의 호기심까지는 아니었기에 이 궁금함은 마음속에서 한동안 오래 자리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직사광선’이란 햇빛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느낀 황당함과 허탈함,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이란. 우리는 햇빛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너무 강하면 타버리고, 파괴되며, 상해버린다. 오랜 세월이 지나 정신과 의사가 되어 나는 다시 직사광선을 떠올렸다. 양육자의 애착과 관심

[당신과 나의 마음] 문명을 가르친다는 것

[당신과 나의 마음] 문명을 가르친다는 것

두 돌이 아직 한참 안 된 아기를 키우다 보면, 지금의 내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과 말, 알고 있는 지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무엇 하나도 그냥 되는 것이 없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 아이용 숟가락을 사려고 검색하다가 문득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이에게 숟가락질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최전선의 사람이 바로 나와 배우자구나. 우리가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는 결코 이것을 익히지 못하겠구나. 숟가락질은 너무나도 분명한 문명의 영역이었다. 사실 애써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사회적 미소를 지을 줄 알게 되고, 네 발로 기고, 일어서고, 걷게 된다. (나의 아이는 배밀이를 생략했다.) 이것은 자연의 영역이다. 그러나 문명은 인위적이다. 숟가락을 어떻게 쥐고 음식을 어떻게 뜨는지는 ‘알려주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아이는 처음엔 너무나 많은 양의 음식을 떠서 입 안에 넣은 뒤 어쩔 줄 몰라하다가 뱉기도 하고 어떻게든 삼키려 하기도 했다. 그 사실 역시 놀라웠다. 음식을 ‘적당히’ 뜬다는 것조차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었구

[당신과 나의 마음]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시동 걸린 척이라도 해봅시다 

[당신과 나의 마음]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시동 걸린 척이라도 해봅시다 

벌써 3월이다. 맙소사. 2025라는 숫자보다 2024라는 숫자가 아직 더 익숙한데, 어느 새 열두 달 중 두 달이 지나가 버렸다. 이제는 핑계가 없다. 시작해야 한다. ‘내년부터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 내년은 어느 새 올해가 되었고, ‘한국인의 새해는 구정 이후부터지’ 라고 생각했는데 “해피 루나 이어(Happy lunar year)”를 맞이했다. 이제 믿을 구석은 3월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새학기가 시작된다. 1,2월은 연습게임 또는 워밍업이었을 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런데 시동이 걸리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의욕이 좀 있어야 행동을 할텐데, 의욕이 도무지 나지 않고 귀찮기만 하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또 간다. 기분은 점점 더 안 좋아진다. 시간을 계속 낭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의욕은 더 생기지를 않는다. 악순환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시동이 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시동이 계속 걸리지 않는다면 일단 시동 걸린 척이라도 해보

원치 않는 정치 이야기, 대처 요령을 알려 드립니다

원치 않는 정치 이야기, 대처 요령을 알려 드립니다

명절에는 으레 가족들 사이에서 정치 이야기가 오갈 때가 많지만, 이번 설은 특히 더욱 그러했으리라.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험악해졌을지도 모른다. 설은 이미 지나갔지만,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를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 중 원치 않는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알아보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지금 시국에서 이건 정치 얘기가 아니라 명백한 옳고 그름에 대한 얘기야!” 그러나 문제는 반대 입장의 사람도 똑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좀 답답하더라도, 일단은 정치 이야기라고 이름 붙여보자.) 1)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설득하고 싶은가?” 상대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시청한 내용을 진실이라 여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내가 이 대화에 에너지를 얼마나 쏟고 싶은지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상대의 생각을 바꾸고 싶거나,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믿는 진실을 꼭 알려주고 싶다면 대화에 뛰어들어라. 그렇지 않다면 굳이 힘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과 나의 마음] 슬픔·무기력의 시간을 통과하는 법

[당신과 나의 마음] 슬픔·무기력의 시간을 통과하는 법

어느 시대의 어느 누구의 삶이든 역사 아닌 것이 없겠지만, 지금 우리는 특히 더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다. 놀람과 긴장이 있었고, 그 뒤에는 분노가 이어졌다. 분노는 우리 삶에 벌어진 일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서로 생각이 달라도 최소한의 상식은 모두가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는 데서 나오는 감정이기도 했다. 자신이 믿고 있던 기본적인 전제가 깨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분노는 때로 무기력이 되었다. 거기에 이제는 슬픔의 시간이 더해졌다. 감히 어떤 말을 얹을 수 있을까? 슬픔과 무기력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차피 견딜 수 밖에 없는 시간이라면, 너무 많이 파괴되지는 않아야 한다. 하루하루가 더해지면서, 그리고 새로운 충격을 받으면서 지금 많은 이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히 소진되어 있을 수 있다. 마치 번아웃(burnout)과 같은 상태에 처해있을 수 있는 것이다. 번아웃은 정서적 탈진과 냉소주의, 그리고 성취감 저하라는 현상으로 대표된다. 정서적 탈진은 심리적인 여유를 잃고 피로와 부담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하며, 냉소주의

[당신과 나의 마음] 타워 브리지를 보고 싶다면 타워 브리지로 가지 말 것

[당신과 나의 마음] 타워 브리지를 보고 싶다면 타워 브리지로 가지 말 것

혹시 ‘타워 브리지의 역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친구들과 지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황당하게 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이 말에 대해 서둘러 설명하겠다. 이 역설의 기원은 친구들이 오래 전 유럽으로 떠났던 배낭여행이다. 영국 여행 중 친구들은 멋진 타워 브리지 야경을 감상하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버스를 타고 타워브리지 앞에 내렸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혹시 무엇이 문제였는지 짐작이 되는가? 그렇다. 타워 브리지 코앞에서는 타워 브리지를 절대로 한눈에 감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타워 브리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 내렸어야 했다. 그 날 친구들이 얻은 교훈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타워 브리지를 보고 싶다면 타워 브리지로 가지 말 것”. 이 에피소드는 이렇게 우리 사이에서 타워 브리지의 역설로 오랫동안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이 역설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바로 이 타워 브리지의 역설이 가장 잘 적용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특

[당신과 나의 마음] 소설 '채식주의자'와 '82년생 김지영' 속 ‘미친’ 여자, 그리고 정신과 의사 

[당신과 나의 마음] 소설 '채식주의자'와 '82년생 김지영' 속 ‘미친’ 여자, 그리고 정신과 의사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 정말 짜릿한 가짜뉴스라고 1초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직후 현실 인식이 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을 느꼈다. 수상 이후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강 또는 그의 소설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기억의 조각과 에피소드를 나누었다. 이 흐름에 나도 숟가락을 얹지 않을 수 없다. 나는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후 ‘'채식주의자'에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를 위한 변명’ 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소설 속에서 정신과 의사는 자의는 아니지만 확실히 영혜가 겪는 억압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다. 그렇기에 칼럼에서는 정신과 의사로서 해명을 하는 입장에서, 음식을 거부하는 주인공 영혜의 의사에 반해 그가 왜 음식을 강제 주입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적었다. 재미있는 점은, 같은 해 말에 우리나라에 출간된 다른 유명한 소설에서도 정신과 의사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도 정신과 의사는 주인공과 같은 처지의 이들을

[당신과 나의 마음] 충청도 화법과 교토 화법, 그리고 방어기제 

[당신과 나의 마음] 충청도 화법과 교토 화법, 그리고 방어기제 

“기사님, 빨리 좀 가주세요!”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이거 채소값 좀 깎아주세요.” “냅둬유~ 우리집 염소 새끼나 먹이게.” “이 차 연비가 좋나요?” “기름 냄새만 맡아도 굴러가유.” 돌려 말하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충청도 화법’에 대한 농담은 이제는 스테디셀러 수준에 이른 것 같다. 거기다 사람들이 각자 겪은 에피소드를 꾸준히 제보하면서 관련 콘텐츠는 점점 더 풍부해지고 있다. 완곡어법이라는 면에서 충청도 화법과 유사해 함께 자주 언급되는 ‘교토식 화법’도 있다. “따님의 피아노가 많이 늘었던데요.” (피아노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뜻) “차 한잔 하고 가세요.” (빨리 집에 가시라는 뜻)

[당신과 나의 마음] 핑계고의 전도연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마음이론

[당신과 나의 마음] 핑계고의 전도연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마음이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가 쏟아지는 동시에 며칠도 되지 않아 잊혀지는 세상이다. 몇 주전 배우 전도연이 <핑계고>라는 유튜브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진행자인 유재석을 불편해하는 듯한 반응을 시종일관 보여 논란(?)이 되었던 일 역시 어느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여러모로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많아 지면에서 다루어보고 싶다. 뉴스를 보고 나서 문제의 핑계고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전도연이 무례하다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그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을 빨리 지목한 뒤 공격함으로써 고통을 덜고자 한다. 불확실성은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불편한 감정이 전도연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해서 거기에 반드시 공격받아야 할 만한 잘못이나 혐의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여기서는 혐의의 문제를 떠나, 그저 핑계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보

[당신과 나의 마음] '누칼협'을 다시 생각하다, 스스로 물어보는 자율성

[당신과 나의 마음] '누칼협'을 다시 생각하다, 스스로 물어보는 자율성

‘누칼협’이라는 유행어를 들어보았는가? 2년 전쯤 탄생한 유행어인 누칼협은 ‘누가 칼로 협박했나’의 줄임말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에게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해놓고서는 왜 불만이냐’는 의도로 던지는 표현이다. ‘네가 선택했으니 그것으로 인한 모든 결과는 네 책임’이라는 것이다. 누칼협은 자기 직업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호소하는 이에게도, 주식·코인·부동산에 전재산을 올인했다가 하락장이 와서 절망한 이에게도, 배우자를 비난하는 이에게도 날아든다. 누가 칼들고 협박해서 공무원을 하라고, 영끌해서 집을 사라고, 그 사람과 결혼하라고 했느냐며 냉소한다. 많은 이들은 누칼협이 각자 도생이라는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며 개탄한다. 누칼협에 담긴 생각, 즉 내가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따라오는 모든 결과를 군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 폭력적이다.

[당신과 나의 마음] 전성기를 맞이한 우리는, 대체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당신과 나의 마음] 전성기를 맞이한 우리는, 대체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한국에서만 계속 살아온 사람이 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몇 년 새 유행어를 넘어 이미 일상어가 되어버린 &#39;헬조선&#39; 같은 자조적인 표현을 볼 때마다, (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 현실에 공감을 하면서도) 전세계의 보편적 부조리마저 국내산으로 둔갑(?)한 부분도 존재하는 건 아닐지가 궁금했다. 우리나라는 정말, 유독 살기 팍팍한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던 중 미국에서 15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지인 A를 얼마 전 한국에서 만났다. 내가 느끼기에 A는 미국에 대한 우월감에도, 한국에 대한 애국심에도 지나치게 취해있지 않은 데다가, 주기적으로 꾸준히 한국을 방문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국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궁금함은 간단했다. 우리나라가 유독 살기 팍팍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는 징후가 A에게도 관찰될까? 속내를 일단 감추고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를 요약했으며, 글 게재에는 A의 동의를 얻었다.) 나: 1년

[당신과 나의 마음] 고마워요, 시작 버튼을 눌러줘서

[당신과 나의 마음] 고마워요, 시작 버튼을 눌러줘서

일주일에 두어번씩 달리기를 할 때마다 쓰는 앱이 있다. 앱을 켜면 아이린이라는 코치가 음성으로 인터벌 트레이닝을 도와준다. 언제 뛰어야 할지와 걸어야 할지를 알려주고, 인터벌마다 몇 초의 시간이 남았는지도 세심하게 안내해준다. 그밖에도 계속해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준다. “지금 잘 하고 있어요!” “여기서 멈추면 안 돼요. 공든 탑이 무너져서는 절대 안 돼요!” 같은 말들이다. 녹음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늘 같은 말이 나와서 이제는 거의 외울 정도다. 아이린 코치의 도움을 받으며 달렸던 첫날에는 어쩐지 조금은 시니컬한 태도로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 당신이 어떻게 알죠? 그냥 녹음된 목소리잖아요. 빈 말은 사양합니다’라든가 ‘공든 탑이 좀 무너질수도 있지, 왜 이렇게 부담을 주나요’라고 마음속으로 대꾸하면서 응원의 말을 괜시리 맞받아쳤다. 하지만 달리기가 막바지에 달하는 순간 들린 말에 바로 무장해제가 되고 말았다. “고

[당신과 나의 마음] 당신의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과 나의 마음] 당신의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버튼을 누르면 불빛과 함께 동요가 나오는 튤립 모양 장난감이 있다. 국민 장난감으로 불리는 이 물건을 아기에게 틀어주면 열에 아홉은 넋을 잃고 빠져든다. 넋을 잃고 빠져드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한 반복으로 흘러나오는 몇 개의 동요를 함께 음미해본다. ‘멋쟁이 토마토’가 씩씩하게 “나는야, 주스될거야! 나는야, 케찹될거야!” 라고 외친다. 명랑한 멜로디에 이토록 잔인한(?) 가사라니... 적잖게 놀랐지만, 이내 진정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나뭇가지에~ 실처럼~ 말아진 솜사탕! 하얀 눈처럼~ 희고도~ 깨끗한 솜사탕!” 사물을 그냥 있는대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노래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하던 찰나, 다음 가사는 “엄마 손잡고~ 나들이 갈 때~ 먹어본 솜사탕”이다. 이상하게 복잡한 마음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추억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없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모두 다르고, 가족의 모습도 다 다른데. 각자에게 이 노래는 어떻게 들릴지 궁금해진다. 조금은 염려하는 마음을 포함하여.

[당신과 나의 마음] 거짓말의 순기능, 우리 삶의 비타민이자 윤활유

[당신과 나의 마음] 거짓말의 순기능, 우리 삶의 비타민이자 윤활유

만우절을 맞아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그것도 매일 같이.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심리학 교수 제리 제리슨(Jerry Jellison)의 연구에서는 사람이 하루에 평균 200번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8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무엇이 거짓말인지에 대한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한 다른 연구에서조차 사람이 하루에 최소 2-3번은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거짓말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거짓말=나쁜 행위’라고 거의 공식처럼 주입받기 때문이다. 물론 대체로는 나쁘지만, 거짓말에는 분명 좋은 면도 존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매일같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거짓말의 긍정적인 측면은 분명히 덜 조명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거짓말의 순기능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39;하얀

[당신과 나의 마음] 봄은 원래 그런 계절, 조금 슬퍼도 괜찮아

[당신과 나의 마음] 봄은 원래 그런 계절, 조금 슬퍼도 괜찮아

3월이다. 봄이 왔다. 물론 4월 5일 식목일에 내복을 넣고 10월 3일 개천절에 내복을 꺼내면 된다는 ‘꿀팁’이 존재할 정도로 3월의 날씨는 꽤나 쌀쌀하지만, 그래도 3월이 겨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피어나는 봄꽃들, 길을 걷는 이들의 화사한 옷차림, 설레는 표정의 신입생들... 기관지를 괴롭히는 미세먼지 정도를 빼면 대체로 밝고 활기찬 이미지가 연상되기 마련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봄은 그러나 우울증으로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계절이자,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봄철의 높은 자살률은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3월에서 5월까지의 자살률은 1년 중 가장 높으며, 이를 일컫는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21년까지 5년 중 2020년을 제외하고는 3월과 5월에 가장 자살률이 높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결정적으로 증명된 이론은 없으나, 연구를 거친 몇 가지 가설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일조량의 급격한 변화를 꼽는다.

[당신과 나의 마음] 새해 결심 작심삼일이라고? 결심 지킬 두 번째 기회 있다

[당신과 나의 마음] 새해 결심 작심삼일이라고? 결심 지킬 두 번째 기회 있다

혹시 새해 결심이 벌써 흐지부지되고 있는가?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음력 달력이 있지 않은가. 갑진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니 이번만큼은 육십간지에 기대 새해 결심을 지킬 두 번째 기회를 가져보자. 저마다 새해 결심은 다양하다. 영어 공부나 다이어트처럼 매년 전국민의 새해 결심 1, 2위를 다투는 도전에서부터 ‘올해부터는 사람들에게 좀 더 다정해져야지’ 같은 마음가짐과 관련한 다짐에 이르기까지, 잘 다듬어진 결심은 마음속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에 정갈한 글씨로 번호가 매겨져 쓰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꾸준히 실천하는 일은 왜 이리도 어려운가. 마치 첫 단원만 까맣게 때가 탄 수학의 정석 책처럼, 1월 한 달, 아니 2주, 아니 3일을 가지 못하고 우리는 무너진다. 이런 작심삼일은 물론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현상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eiseman)은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새해에 결심한 내용을 얼마나 지키는지에 대해 추적관찰을 했다. 결심할 당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성공을 자신했지만, 1년 후 실제로 목표를 달성한 비율은 12%에 그쳤다. 10명 중 9명은 새해에 계획했던 바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당신과 나의 마음] 집중력 저하와 산만함, 내가 성인 ADHD인 건 아닐까요?

[당신과 나의 마음] 집중력 저하와 산만함, 내가 성인 ADHD인 건 아닐까요?

수없이 쏟아지는 심리관련 컨텐츠에서 최근 많이 언급되는 주제는 성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이다. SNS나 유튜브를 통해 심리에 대한 불확실한 지식이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는 이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타인을 규정 짓기 위해 심리 관련 지식을 사용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차원으로 활용할 때 더 유용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성인 ADHD는 심리와 관련한 다른 컨텐츠에 비해 다행히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데 잘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혹시 자신이 성인 ADHD가 아닌지 궁금해하며 내원한다. 성인 ADHD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주의력 결핍, 충동성, 과잉행동이라는 세 가지 군에 해당하는 증상을 일정 수준 이상 보이면서 삶에서 불편감과 고통을 겪는 질환이다. 일을 잘 미루거나, 순서에 맞춰 체계적으로 일하지 못해 학교나 직장에서 지적을

[당신과 나의 마음] 범죄자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

[당신과 나의 마음] 범죄자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살인과 각종 살인예고들 그리고 한낮 산책로에서의 성폭행 및 살인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벌어진 비극에 우리 마음속에는 슬픔과 불안, 분노가 가득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진 나머지, 신상공개 된 범인이 각각 어떤 사건의 가해자인지 연결시키는 게 때로 헷갈릴 정도였다. 그 중 두 가해자들은 이름까지 비슷해서 같은 사람인데 이름이 잘못 나온 건가 착각도 되었다. 사건 이후 생존했다가 결국 사망한 피해자에 대한 애도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어느 새 사람들은 다른 새로운 뉴스에 눈을 돌리고 있다. 뜨거운 여름에 벌어진 믿기 어려운 사건들은 많은 일이 그렇듯 서서히 기억에서 멀어질 것이다. ‘마음’은 그 단어만으로도 괜히 따뜻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범죄자의 마음이라는 표현은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다. 사실 범죄자의 마음은 대표적인 타자화의 대상, 즉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인 것처럼 따로 떼어 여겨지는 대상이다. 우리는 흔히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거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를 애초에 다른 개체로 분류하고자 한다. 나와 근본이

[당신과 나의 마음] 아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당신과 나의 마음] 아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꿈과 사랑이 있습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너는 참 멋진 아이란다.’ 제주와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교문에 각각 걸려 있던 현수막 문구였다. 무심히 지나치다 우연히 발견한 글귀에 마음이 뭉클했던 건, 20-30년쯤 전의 학교에는 절대로 걸려 있지 않을 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학교는 아이들을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일꾼으로 자라도록 독려했다고 기억한다. ‘나라의 기둥’ 같은 표현은 너무 어린 나머지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전부터 들었던 말이었으며, ‘애국조회’ 시간마다 땡볕에 서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는 늘 현재보다 미래에, 즉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초점을 두었다. ‘어른을 공경하며 착하고 씩씩하게 자라 나라와 민족에 기여하는 큰 사람이 되자!’ 세월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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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본부장 출신 내부 발탁 인사, 2022년 이후 꺾인 수익성 회복 과제로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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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 출신 영업·마케팅 전문가, 신라면 글로벌 확장과 국내 수익성 개선 과제 [2026년]

이대교 LB세미콘 대표이사 Who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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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필 세메스 대표이사 Who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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