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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세종시·계룡대와 백제 사비성, 금강이 만든 복된 땅들 (4)

[풍수지리와 경제] 세종시·계룡대와 백제 사비성, 금강이 만든 복된 땅들 (4)

금강과 갑천의 합류 지점에서 7킬로미터 정도 하류로 가면 금강이 약 250도 휘돌아 흐르는 곳이 있습니다. 이 물굽이 안에 세종시 부강 일반 산업단지와 부용 농공단지가 있습니다. 여기 두 단지처럼 대강의 물굽이 안에 조성된 공업단지는 몇 개 안됩니다. 이곳은 큰 재물이 들어오는 명당이니 복된 터에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우리나라엔 강물이 크게 휘도는 물굽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물굽이 안쪽 땅은 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 대규모 생산 시설을 갖춘 공장들이 입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곳에는 부가가치가 높고 대규모 제조 시설이 필요 없는 IT 산업, 문화 컨텐츠 산업, 생명공학 산업, 첨단 기술 산업 등의 기업들을 유치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많은 기업들이 입주하여 막대한 부를 창출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한 물굽이들의 복된 정기를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국가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격조 높은 고품격의 문화와 첨단 과학 기술 산업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리라 봅니다. 물굽이 안쪽에 있는 터들은 물이 가깝기 때문에 재복을 빨리 받습니다. 빠르면 1~2년 안에 많은 재물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기대 이상 의외의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횡재라 할 만큼

[풍수지리와 경제] 청주 노산리와 대전 둔산, 금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3)

[풍수지리와 경제] 청주 노산리와 대전 둔산, 금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3)

지난 회에도 말씀드렸듯이 고당리 하류의 금강은 대청호의 댐 제방까지 수많은 물굽이를 만들며 굽이쳐 흐르지만, 이 물굽이 안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 만큼 넓은 터전이 없습니다. 이곳 금강변의 마을들은 모두 강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청댐 제방을 지나 하류로 3킬로미터쯤 내려가면 금강이 180도 가까이 휘돌아 흐릅니다. 휘어도는 그 물굽이 안쪽은 충북 청주시 현도면 노산리입니다. 여기도 매우 훌륭한 명당 복지입니다. 이곳은 터가 꽤 넓습니다. 마을과 마을 앞 들판의 넓이가 40여만 평에 이릅니다. 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2분의 1 정도 됩니다. 이곳은 대전시와 청주시의 경계 지역인데 금강 북쪽은 청주시 현도면이고, 남쪽은 대전시 신탄진입니다. 노산마을의 주산은 반원형으로 곡선을 그리며 길게 뻗어 있는데, 주산의 산줄기에 작고 아담한 봉우리들이 연달아 솟아올랐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크고 작은 꽃송이들을 꿰어놓은 화환과 같습니다. 금강 건너편의 안산들도 금강을 따라 반원형으로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노산리 중심 마을 뒤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주산과 안산의 산줄기가 거의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보여서 커다란 화환과 같습니다. 노산리에는 여러 마을이 있는데 모두 산기슭에

[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고당리와 옥천 장수리, 금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2)

[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고당리와 옥천 장수리, 금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2)

충남 금산군 천내리에서 봉황천과 합류하여 몸집이 불어난 금강은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에서 영동천과 합류하여 몸집이 더욱 불어납니다. 그리고 곧 이어 심천면 심천리에서 초강천과 만납니다. 초강천은 속리산 남쪽 봉황산에서 추풍령을 지나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서쪽 기슭의 물을 모두 모아 흐르는 금강의 지천으로 꽤 큰 냇물입니다. 초강천과 초강천의 지류인 석천은 곳곳에 물과 산이 어우러진 경승지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월류봉과 반야사 계곡이 있습니다. 석천의 상류지역은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동면 모서면 모동면 일대입니다. 여기는 동·남·북 삼면은 백두대간에, 서쪽은 속리산에서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에 둘러싸인 분지입니다. 예전에는 내륙 깊은 곳에 있고, 교통도 불편한 곳이라 전쟁의 참화를 격지 않은 곳입니다. 또, 수재와 가뭄도 크게 겪지 않은 복지입니다. 게다가 석천 상류 유역엔 꽤 넓은 들이 있어 농사 지을 땅이 많아 이곳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훨씬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이곳의 산들은 매우 유순하고 온화하게 생겼습니다. 거의 모

[풍수지리와 경제] 무주 내도리·금산 천내리, 금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1)

[풍수지리와 경제] 무주 내도리·금산 천내리, 금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1)

지난 회에서는 낙동강 강가와 지류에 있는 명당 복지(복된 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회부터는 금강과 금강의 지류에 있는 명당 복지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금강은 우리 남한에서 낙동강 한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이며 유역 면적도 세 번째로 넓습니다. 강의 길이는 401킬로미터이며, 전라북도 장수군 수분리의 뜬봉샘에서 발원해 서해로 흘러듭니다. 하류 지역인 충남 논산에 이르기까지는 유역에 넓은 평야가 없어 산과 산 사이 혹은 좁은 들판을 지나므로 휘돌아 흐르는 물굽이가 많은 강입니다. 또, 이 물굽이 곳곳에 복된 기운이 크게 모인 명당 복지들이 많습니다. 앞서 살펴본 낙동강 본류와 지류에 있는 명당 복지들 중엔 명문가의 세거지가 많습니다. 여러 명문가들이 명당 복지의 기운으로 수백 년씩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낙동강 본류와 지류에 많은 고택 마을들이 산재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고택 마을 대부분이 영남지방에 있으며, 영남 지방 중에서도 낙동강 본류와 큰 지류에 많이 있습니다. 금강에는 강물이 감돌아 흐르는 물굽이가 많고, 그 물굽이 곳곳에 빼어난 명당 복지가 많이 만들어졌지만 거기엔 고택 마을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명당 복지들의 빼어난 정기가 아직 활짝 피어나지

[풍수지리와 경제] 영주 무섬마을·봉화 닭실마을, 낙동강이 만든 복된 땅(2)

[풍수지리와 경제] 영주 무섬마을·봉화 닭실마을, 낙동강이 만든 복된 땅(2)

낙동강은 상주를 지나 계속 남하하며 위천, 감천, 한천 등과 합류하여 몸집이 커집니다. 그리고, 금오산 아래 금오벌을 은은히 감싸고 흐릅니다. 금오벌에는 전에도 말씀드린 대로 금오산 자락의 수려한 산봉우리들과 낙동강 물굽이가 어우러져 아주 큰 재복의 기운이 있습니다. 구미 국가산단은 여기에 자리 잡아 그 동안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구미를 지난 낙동강이 다시 한 번 크게 휘돌아 흐르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와 상곡리, 호촌리, 평리리 일대입니다. 낙동강에 둘러싸인 유역 면적이 7제곱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이는 구미 국가 산단 1단지 면적과 비슷힙니다. 곽촌리에서는 멀리 낙동정맥에서 발원한 금호강이 합류하여 낙동강의 기상이 더욱 장해집니다. 이곳의 주산은 매우 온화하고 부드럽게 생겼으며 남북으로 길게 뻗었습니다. 주산의 주맥 아래엔 연꽃처럼 생긴 봉우리들도 여러 개 있습니다. 연꽃이 강가에 피어난 형상이니 여기도 연화부수형의 명당입니다. 또, 낙동강 건너 앞쪽에는 크고 작은 노적봉들이 여럿 보입니다. 낙동강이 꼭 끌어안듯 감싸주고 연화부수형에다 노적봉이 곳곳에 솟았으니 매우 큰 재복을 불러올 기운이 서린 명당 복지입니다.

[풍수지리와 경제] 예천 삼강마을과 하풍리, 낙동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1)

[풍수지리와 경제] 예천 삼강마을과 하풍리, 낙동강이 만든 명당과 복된 땅 (1)

하회 마을에서 물길 따라 70리쯤 아래로 내려가면,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란 마을이 있습니다. 세 개의 강물이 만나는 곳이라 삼강이란 이름을 얻은 마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냇물이라고 널리 알려진 내성천과 금천, 그리고 낙동강이 여기 삼강리에서 합류합니다. 삼강리에는 삼강주막이란 명소가 있습니다. 삼강주막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전통 주막입니다. 삼강주막 건물은 지금도 잘 보존돼 있고, 20여 년 전까지 많은 사람이 애용한 쉼터였다고 합니다. 삼강마을의 주산은 거대한 노적처럼 생겼습니다. 마을의 동남쪽에 우뚝 솟았는데, 그 형상이 매우 단정하고 후덕해 보입니다. 주산이 커다란 노적과 같으니 큰 부를 이룰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또, 삼강마을 터는 하회마을과 같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 연화부수형의 명당입니다. 넓은 꽃잎처럼 생긴 삼강마을을 낙동강이 반원형으로 감돌아 흐릅니다. 마을의 면적은 하회마을의 삼분의 이 정도 됩니다. 터는 하회에 비해 좁으나, 낙동강 강물의 기운은 하회보다 훨씬 큽니다. 내성천과 금천이 바로 앞에서 합류하기 때문입니다. 삼강마을의 청룡은 용당산인데 높고 힘차게 솟아 있으며, 낙동강 하류쪽에서

[풍수지리와 경제] 하회마을 정기, 애민사상과 공동체정신으로 피어나다 (4)

[풍수지리와 경제] 하회마을 정기, 애민사상과 공동체정신으로 피어나다 (4)

지난 회에 말씀드렸듯이, 류성룡 선생은 전란의 와중에 영의정이 되어, 부국강병과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해 매우 개혁적인 정책들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작미법과 속오군제, 신분제를 넘어 서얼 출신이나 양민들을 등용하는 제도, 노비들도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면 면천시켜 주는 정책 등이었습니다. 이들 정책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작미법은 지방의 특산물을 세금으로 납부하던 공납의 폐해를 없애고자 만든 법입니다. 당시 각 지방 관아는 공납으로 거둔 특산물을 한양으로 운송하여 특산물의 품질을 검사받아야 했습니다. 이때 세금 징수 기관의 관리들이 온갖 트집을 잡아 불합격 시키고는, 자신들과 결탁한 상인들에게 비싼 값으로 특산물을 사서 납품하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관리들과 상인들이 막대한 이득을 얻었고, 지방의 백성들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 처음엔 각 지역의 특산물을 납부하게 했던 공납 제도가 세월이 흐르면서 아주 불합리하게 변질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생산했으나, 당시는 생산하지 않는 물품을 납부하게 하거나, 한번도 생산한 적이 없는 물품들을 납부하게 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각 지방

[풍수지리와 경제] 안동 하회마을 정기 입은 유성룡, 임진왜란을 대비하다 (3)

[풍수지리와 경제] 안동 하회마을 정기 입은 유성룡, 임진왜란을 대비하다 (3)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하회마을 터는 낙동강이 휘감고 흘러 아주 큰 재복을 불러오는 복지입니다. 또, 산세가 매우 수려해 인품이 고매하고 지혜로우며 덕망이 높은 인물들이 나올 명당입니다. 훌륭한 목민관과 관료, 재상이 나와 백성들과 나라에 복을 가져다 줄 상서로운 터이지요. 하회마을의 연화부수형 명당에 서린 복덕의 기운이 매우 커서 여기서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널리 나라와 백성들에게도 그 이로움이 미치는 것입니다. 하회가 낳은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서애 유성룡 선생입니다. 선생은 1542년 경북 의성군의 사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출가한 여성이 아기를 잉태하면 친정에 가서 출산하던 당시의 풍습에 따라 선생의 모친께서 출산일이 다가오자 친정집으로 가서 선생을 낳았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선생의 출생지가 사촌마을이라 해서 선생이 사촌마을의 정기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사촌마을에는 이 마을에서 정승 셋이 태어난다는 예언이 전해오고 있어 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은 하회마을에서 잉태하여 태아 시절 대부분을 여기서 지내다가 외가에 가서 태어났습니다. 사촌마을의 정기도 많이 받았지만, 하회마을의 정기를 크게 받아 태어났던 것입니다. 또, 출생 후엔 곧 고향집으로 돌아와 하회에

[풍수지리와 경제] 임진왜란 예견 유운룡과 명재상 유성룡 형제 낳은 땅, 하회마을 (2)

[풍수지리와 경제] 임진왜란 예견 유운룡과 명재상 유성룡 형제 낳은 땅, 하회마을 (2)

조선조 초기 류종혜 선생이 하회마을에 입향한 뒤, 선생의 자손들은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 않으며 유복하게 지냈고, 하회의 류씨 가문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번창했습니다. 하회 마을에 먼저 들어와 살던 허씨와 안씨 가문의 가세는 반대로 서서히 위축되었습니다. 두 가문 사람들은 대부분 하회를 떠났고 200여 년 뒤에는 몇 가구만 남았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하회 마을은 연화부수형의 명당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류씨 가문은 연화부수형의 연꽃 부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허씨와 안씨 가문은 꽃이 아닌 곳에 자리 잡고 살았었습니다. 식물들이 꽃을 피우려면 많은 영양분과 에너지를 꽃봉오리로 보내야 합니다. 그만큼 다른 부위들은 적은 영양분과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류씨 가문이 연꽃 부위에 자리 잡으면서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연꽃이 봉오리를 맺고 활짝 피어감에 따라 다른 부위의 기운은 점점 쇠약해졌고, 여기에 살던 이들도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연꽃이 활짝 피어나 류씨 가문이 크게 번창한 뒤엔 허씨, 안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연화부수형의 명당은 가까이에 좋은 물이 있고 물 건너에 산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물

[풍수지리와 경제] 3년간 많은 사람 구제한 공덕으로 얻은 복된 땅, 하회마을 (1)

[풍수지리와 경제] 3년간 많은 사람 구제한 공덕으로 얻은 복된 땅, 하회마을 (1)

임청각에서 낙동강 물길을 따라 80여 리쯤 하류로 내려오면 낙동강이 아주 크게 태극형으로 휘돌아 흐르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에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낙동강은 유역에 넓은 평야들이 얼마 없어 상류에서 하류까지 대부분 산과 산 사이로 흐릅니다. 그래서 일직선으로 곧게 흐르기 어렵고 이리저리 휘돌아 굽이쳐 흐르는 곳이 많습니다. 개울물이든 강물이든 물이 휘돌아 감싸주는 안쪽엔 좋은 기운이 모입니다. 이런 곳엔 또 많은 재물이 들어옵니다. 물이 휘돌아 감싸주는 데다 주변을 둘러싼 산들까지 수려하면 훌륭한 명당 복지가 됩니다. 하회마을은 강물의 수세와 산의 산세가 모두 수려하니 보기 드문 명당입니다. 또 터가 매우 넓어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함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데라서 더욱 훌륭합니다. 하회마을 상류 지역의 낙동강 유역에도 강물이 휘돌아 감싸주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회마을처럼 산세가 좋고 터전이 넓은 데는 없습니다. 하회마을은 사람이 거주하고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22만여 평에 이릅니다. 옛날의 풍수가들은 하회마을을 영남지방 4대 길지로 꼽았습니다. 옛 풍수가들이 꼽은 영남 4대 길지는 안동의 하회마을과 앞섬마을, 봉화의 닭실마을과 경주의 양동마을입니다.

[풍수지리와 경제] 덕으로 신망 얻은 임청각 사람들,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4)

[풍수지리와 경제] 덕으로 신망 얻은 임청각 사람들,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4)

이상룡 선생 이회영 선생 일가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해 왔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자금이 바닥났습니다. 광대한 땅을 구입하고, 농지를 개간하고, 학교를 운영하고, 일제에 대항하여 무력항쟁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느라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독립 전쟁을 위한 무기 구입이었습니다. 많은 동포들이 성금을 보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이상룡 선생은 아들 준형에게 고국으로 가서 마지막 남은 재산, 안동 고성 이씨의 종택인 임청각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 오도록 합니다. 이준형 선생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귀국하여 문중 일가들을 만나 그 뜻을 전했습니다. 이에 문중 일가들은 종택을 남의 손에 넘길 수는 없다며 이를 만류하고 대신 성금을 모아줬습니다. 이상룡 선생은 동포들과 문중의 성금으로 동지들을 러시아로 보내 무기를 구입했습니다. 1911년부터 서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상룡 선생은 1925년에 잠시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수반인 국무령 직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1919년 처음 수립 당시 상해임시정부는 내각제 형태의 정부였습니다. 또, 정부 수반은 총리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그런데,

[풍수지리와 경제] 400년 역사 고성 이씨 종택 임청각,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붓다(3)

[풍수지리와 경제] 400년 역사 고성 이씨 종택 임청각,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붓다(3)

임청각 터의 동쪽 서쪽 북쪽은 가까운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은 넓게 트여 있어 멀리 떨어진 산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20여 리 밖에 솟아 오른 산들까지 시원하게 잘 보입니다. 이렇게 시야가 넓고 먼 산들이 보이는 명당에서 피어난 정기는 빨리 사라지지 않고 오래 유지됩니다. 그 정기가 불러오는 복덕 또한 오래 갑니다. 시야가 협소한 명당터의 정기는 빨리 쇠하는데, 협소하면 협소할수록 더 빨리 사그라듭니다. 임청각 사람들은 여기에 터를 잡은 뒤 400여 년 동안 특별한 복을 누렸습니다. 400년이나 복덕을 누린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한 자리에서 이처럼 긴 세월 큰 재복으로 풍족하게 살면서 많은 덕을 베풀어 대대로 널리 존경 받기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명당이라 해도 그 터의 기운이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성하면 언젠가 쇠하기 마련입니다. 그 터의 빼어난 정기가 쇠하면, 복은 적게 들어오고, 화가 많이 미칩니다. 부호들은 재산을 잃고, 세도가들은 권세를 잃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귀권세를 잃을 때는 흉한 일들을 당하고 많은 시련을 겪습니다. 인명이 상하거나 아주 불미스런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덕을 많이 쌓

[풍수지리와 경제] 덕으로 신망얻은 고성 이씨와 400년 역사 종택 임청각(2)

[풍수지리와 경제] 덕으로 신망얻은 고성 이씨와 400년 역사 종택 임청각(2)

지난번 글에서는 임청각의 주산과 청룡 백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회엔 안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청각 바로 앞에는 낙동강이 흐릅니다. 임청각 중심부와 낙동강 사이의 거리는 60여 미터 밖에 안됩니다. 강 건너편에는 단정하면서도 부드럽게 생긴 산봉우리가 솟아있는데, 이 산이 안산이며 임청각과 안산 사이의 거리는 산 아래 부분이 300여 미터쯤 되고, 정상 부위는 500여 미터쯤 됩니다. 임청각의 안산은 고운 눈썹처럼 생긴 아미문성입니다. 안산이 아미문성인 터에서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 인품이 온화면서도 고매한 사람, 또 의로운 사람들이 나옵니다. 훌륭한 여성들도 많이 배출됩니다. 임청각의 안산은 아미문성이면서 매우 중후하게 생겼습니다. 너부죽한 창고사와 아미문성이 합쳐진 것 같은 형상입니다. 길게 쌓아 놓은 곡식 더미, 노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창고사와 노적봉은 큰 재물을 불러오니 임청각 터는 대부호가 나올 자리입니다. 바로 앞에 낙동강이 흐르는 데다 반변천까지 앞에서 흘러와 낙동강과 합류하니 아주 큰 재물이 모이게 됩니다. 안산의 오른쪽으로는 안동시 남쪽에 솟아오른 수많은 산줄기와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줄기들은 부드러운 물결처럼

[풍수지리와 경제] 덕으로 신망얻은 고성 이씨와 400년 역사 종택 임청각 (1)

[풍수지리와 경제] 덕으로 신망얻은 고성 이씨와 400년 역사 종택 임청각 (1)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압록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강이며 남한에서는 가장 긴 강입니다. 낙동강의 긴 여정은 강원도 태백시에서 시작됩니다.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수많은 산줄기에서 흘러내리는 크고 작은 지류들과 합쳐져 경상도를 동서로 가르며 남행하여 남해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 거리는 525km이며 두만강보다 4km 더 깁니다. 우리나라엔 산이 많습니다. 우리 국토의 약 7할이 산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강들은 산과 산 사이를 지나가느라 굽이굽이 휘어져 흐릅니다. 또, 아름답고 수려한 산봉우리들과 강물이 어우러져 만든 명당복지들이 많습니다. 낙동강과 낙동강의 지류들이 흐르는 곳에도 그렇습니다. 낙동강과 지류들이 만든 명당복지 중에는 명문가들이 터를 잡고 오랫동안 대대로 살아온 곳들이 있습니다. 봉화의 닭실마을, 영주의 무섬마을, 안동의 하회마을과 내앞마을, 임청각 등이 그런 곳입니다. 이들처럼 유명하진 않아도 여러 가문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복지들도 많습니다. 안동시 법흥동에 자리한 임청각은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으로 조선조 중종 때인 1519년에 이명 선생이 지었습니다. 그 역사

[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제일 명가 강릉 선교장, 독립운동에 재산 쏟은 가문(3)

[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제일 명가 강릉 선교장, 독립운동에 재산 쏟은 가문(3)

선교장이 만석군의 부를 일군 첫걸음은 염전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염전이 있던 곳은 지금의 견소동 일대였다고 합니다. 견소동은 남대천 하구의 바닷가 마을입니다. 동해 바다와 남대천에 둘러싸인 기다란 반도형의 땅에 자리 잡은 마을로 끝자락에 강릉항이 있습니다. 삼면이 큰물에 둘러싸인 곳이라 때를 만나면 많은 재화가 모일 곳입니다. 그런 곳이기에 과거엔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던 소금 생산이 여기서 이뤄졌으며 지금은 이곳에 항만이 조성된 것입니다. 견소동의 동쪽 끝 부분, 항만의 윗쪽에는 죽도봉이라는 작고 예쁜 동산이 솟아 있습니다. 항만 주차장에서 보면, 죽도봉의 형상은 둥그런 구슬 세 개를 모아 놓은 모습입니다. 죽도봉 서쪽에서는 크고 둥근 한 개의 구슬처럼 보입니다. 동그란 봉우리 하나가 홀로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다른 산들과 산줄기로 이어지지 않고 평탄한 땅 위에 혼자 솟아오른 독봉입니다. 서쪽에서 보는 죽도봉처럼 홀로 작고 동그랗게 솟아오른 동산을 풍수학에선 옥인이라 부릅니다. 옥으로 만든 도장이란 뜻입니다. 옥인은 아주 작은 산이지만 매우 큰 역량을 발휘합니다. 어느 터의 정면 앞쪽에 옥인이 있으면, 뛰어난 지혜와

[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제일 명가 강릉 선교장, 소작인 배려한 만석꾼 (2)

[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제일 명가 강릉 선교장, 소작인 배려한 만석꾼 (2)

얼마 전 강릉에 큰 산불이 나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선교장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처음 화재가 발생하여 동해 바닷가까지 번져가 아름답던 소나무 숲과 많은 주택과 숙박시설들이 불탔습니다. 목숨을 잃은 분까지 계셨으니 참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선교장과 경포대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옛날에는 경포호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서 선교장 앞도 호수였다고 합니다. 하여 배들을 연결해서 만든 다리를 통해 선교장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선교'란 '배다리'란 뜻입니다. 선교장은 초창기부터 경포호에 서린 큰 물산의 기운을 받아 계속 번창했습니다. 소금을 생산하여 얻은 수익으로 많은 땅을 샀고, 또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토를 크게 늘렸습니다. 그리고 개량된 벼농사 경작법인 이앙법을 활용하여 생산량도 많아졌습니다. 재산이 계속 급속도로 불어나 3대 장주 이후 선생 대에 이르러서는 만석꾼이 되었습니다. 강릉으로 이사한 지 불과 2대 후에 영동 제일의 대부호가 되었으니 선교장터는 불같이 빠르게 발복하는 속발지지의 명

[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제일 명가 강릉 선교장, 기러기 내려앉은 형국 (1)

[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제일 명가 강릉 선교장, 기러기 내려앉은 형국 (1)

강릉의 명승지인 경포호 근처에 선교장이란 명소가 있습니다. 선교장은 18세기 초엽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 선생이 처음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뒤로 후손들이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세거해온 고옥입니다. 선교장의 규모는 매우 방대하여 4000평이 넘는 대지에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대장원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규모도 방대하고 조선시대 전통한옥의 빼어난 기품을 잘 보여주는 건물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1967년 국가에서 선교장을 국가 민속문화재 5호로 지정했습니다. 선교장은 민간 가옥으로서는 최초로 국가 민속문화재가 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한국방송공사가 선교장을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내번 선생은 1693년 충주에서 효령대군의 10대손인 아버지 이주화 선생과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이주화 선생은 권씨 부인과 혼인하기 전에 두 부인과 사별하였고, 세 번째 권씨 부인을 맞았는데, 전처들과 사이에는 아들 넷을 두었습니다. 이내번 선생은 부친에겐 5남이고 모친에겐 장남이었습니다. 권씨 부인의 친정은 강릉이었습니다. 이율곡과 신사임당이 태어난 강릉의

[풍수지리와 경제] 현몽으로 점지 받은 명당, 충북 보은 우당 고택 (2)

[풍수지리와 경제] 현몽으로 점지 받은 명당, 충북 보은 우당 고택 (2)

우당 고택이 있는 장안면 개안리 서쪽 마을은 장안면 장안리입니다. 장안리의 옛 이름은 장내입니다. 장안리 개안리 일대는 1893년에 동학교도들이 모여 1864년에 처형당한 최제우 선생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나라에 탄원하는 집회를 열었던 아주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 집회는 지금 보은 집회라 불립니다. 최제우 선생이 순교한 뒤, 2대 교주 최시형 선생을 비롯한 동학 지도부는 혹독한 탄압을 받으며 도피 생활을 했습니다. 또,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중에도 전도에 힘썼습니다. 이에 동학의 교세는 날로 커져 남한 지역 전체에 많은 교도가 생기고 황해도 평안도에도 입도하는 이들이 점점 늘었습니다. 이렇게 교세가 커지자, 교단 전체에 중요한 소식을 빨리 전하고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지도부는 1885년 남한 지역의 중앙에 위치한 장안면 장안리에 대도소를 두고 이곳을 본부로 삼았습니다. 장안리 대도소는 1893년까지 본부 역할을 했습니다. 1893년 보은 집회 이후엔 감시 탄압을 피해 최시형 선생이 은거하던 인근의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에 임시 대도소를 두고 이곳으로 본부를 옮겼습니다. 최시형 선생은 한곡리 대도소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지원했습니다.

[풍수지리와 경제] 현몽으로 점지 받은 명당, 충북 보은 우당 고택 (1)

[풍수지리와 경제] 현몽으로 점지 받은 명당, 충북 보은 우당 고택 (1)

구한말 전남 고흥에 우당 선영홍(1862-1924)이라는 갑부가 살았습니다. 고흥의 거금도에서 살았는데 육지에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으며, 해산물 교역으로도 큰 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고흥의 최고 갑부였다고 합니다. 선생은 소작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잘 헤아려 소작료를 다른 지주들보다 훨씬 적게 받았습니다. 그 덕에 선생의 소작인들은 보릿고개 춘궁기에도 굶는 이가 없었습니다. 또, 대흥사라는 기숙학교를 세워 숙식을 제공하며 가난한 집안의 인재들이 공부할 수 있게 도움을 줬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일에 늘 발 벗고 나섰습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선생의 도움을 받았고 그들이 뜻을 모아 1922년에 선생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선생에겐 아주 특별한 소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소망은 자손들이 유복하게 지내며, 또 남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면서, 대대로 오래 오래 살아갈 명당을 구하여 거기에 터를 잡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구례 운조루나 경주 최부자댁 같은 가문이 자리할 명당을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선생은 유명한 풍수가를 초빙하여 그의 자문을 받으며 특별한 명당 길지를 구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런데 널리 잘 알려진 명당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명문 세가들이 차지하여 뜻을 이루

[풍수지리와 경제]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2)

[풍수지리와 경제]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2)

유이주 선생이 직접 설계한 운조루에는 다른 가옥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건물과 공간이 있습니다. 옛날 부잣집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고, 아녀자들은 안채에서만 기거했습니다. 사랑채는 남자들과 남자 손님들을 위한 건물이었습니다. 양반 부잣댁 아녀자들은 바깥 활동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녀자들이 해야 할 바깥일은 노비들이 했고, 양반 여성들은 거의 집안에서 지냈습니다. 그것도 구중심처 깊숙한 안채에서 지냈으니 갇혀 사는 것처럼 답답했을 것입니다. 유이주 선생은 이런 아녀자들의 심정을 헤아려 운조루의 설계를 아주 특별하게 했습니다. 운조루에는 남자들의 사랑채와 함께 아녀자들의 사랑채도 따로 지었습니다. 동쪽에는 아녀자들의 사랑채를, 서쪽에는 남자들의 사랑채를 배치했습니다. 아녀자들의 사랑채가 있으니 아녀자들의 활동 공간이 그만큼 넓어졌습니다. 또 운조루의 안채에는 특별한 다락방이 있습니다. 2층 방의 창문을 열면 운조루 바깥 풍경이 환히 눈에 들어옵니다. 운조루 앞에 펼쳐진 드넓은 들판과 크고 작은 산들이 보입니다. 바깥출입이 어려운 아녀자들이 집안에서도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던 것입니다. 이 하나 만으로

[풍수지리와 경제]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1)

[풍수지리와 경제]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1)

경상도에 부자 명가 경주의 최부자댁이 있다면, 전라도엔 구례의 운조루 유씨 가문이 있습니다. 유부자댁은 최부자댁처럼 이백 년 가까이 대대로 유복하게 지내며, 많은 선행으로 덕망이 높았습니다. 유부자댁인 운조루는 고택 명소가 되어 해마다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데 지금도 유씨 가문 종손이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운조루(雲鳥樓)는 원래 사랑채 당호였는데 지금은 유부자댁 전체를 가리킵니다. 호남지방에는 예로부터 호남 3대 길지로 널리 알려진 양택명당(집터 명당) 세 곳이 있습니다. 담양의 만물시생지, 구례의 금환낙지, 정읍의 평사낙안이 유명한 3대 양택명당입니다. 운조루는 금환낙지에 자리잡았다고 알려진 문화 유씨 가문의 고택입니다. 운조루 터를 호남지방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양택 명당이라고 극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운조루를 세운 이는 낙안군수와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 선생입니다. 선생의 고향은 대구입니다. 선생은 본래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는데, 풍수학에도 조예가 깊어 관직에서 물러나면 좋은 길지를 찾아 가솔들과 함께 은거할 뜻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자손들이 세상의 거친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오래 오래 평화로이 유복하게 살 수 있는 복지를 구하려고 애

[풍수지리와 경제] 부자의 품격, 경주 최부자댁 집터와 그 사람들 이야기3

[풍수지리와 경제] 부자의 품격, 경주 최부자댁 집터와 그 사람들 이야기3

내남면 이조리에서 만석군 거부가 된 최부자댁은 이제 재산을 더 이상 늘리지 않았습니다. 이후론 만석의 재산을 운용하여 해마다 얻는 수익의 삼분의 이는 빈민들과 과객들을 돕는 데 썼습니다. 경주 교동으로 이거한 뒤에도 100년 이상 오랜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조리의 최부자댁 집터는 사방에 노적처럼 생긴 산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좌 우 앞 세 방향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하며 집터를 감싸고 흘러 아주 큰 재물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동의 최부자댁 집터는 이조리 만큼 큰 재물을 얻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최부자댁은 이조리에 있을 때부터 재산을 더 이상 늘리지 않고 남는 재물을 모두 어려운 이들을 위해 써왔으니 이런 최부자댁한테는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교동 최부자댁 앞에는 남천이 흐릅니다. 또 계림에서 흘러오는 실개천이 반월성과 향교 사이를 지나 남천과 합류하여 향교와 최부자댁을 휘감아 흐릅니다. 이 실개천과 남천의 기운이 재물을 불러오는데 그 기세가 이조리의 형산강과 이조천보다는 많이 약합니다. 그래도 만석군 재산을 지키며 거기서 얻는 수익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기엔 부족함이 없는 기운입니다. 만약 최부자댁이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쓴 재물로 재산을 더

[풍수지리와 경제] 부자의 품격, 경주 최부자댁 집터와 그 사람들 이야기2

[풍수지리와 경제] 부자의 품격, 경주 최부자댁 집터와 그 사람들 이야기2

만석군 거부가 된 경주 최부자댁에는 자손들이 대대로 지켜온 가훈이 있었습니다. 그 가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2. 재산을 만석에서 더 이상 늘리지 말고 그 이상 되는 것은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4.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5.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6. 며느리들은 처음 시집온 뒤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훌륭한 가훈을 갖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최부자댁 자손들은 이 가훈을 충실하게 따르고 실천했습니다. 대대로 진사를 배출했지만, 가훈에 따라 더 이상의 권력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또, 재산을 더 크게 늘리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부귀 권세는 마약과 같아서 자꾸 더 많이 가지려는 유혹에 빠지게 만듭니다. 최부자댁 사람들은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선조의 유훈을 잘 지켰습니다. 최부자댁은 늘어가는 부의 혜택을 많은 사람들과 지혜롭게 나누고자 애썼습니다. 먼저 소작인들에게 받는 소작료를 파격적으로 줄였습니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대지주들은 마름이라는 중간 관리인들을 두고 소작인들을 관리했는데, 마름들에게 들어가는 경비 부담은 소작인들이 져야했습니다.

[풍수지리와 경제] 부자의 품격, 경주 최부자댁 집터와 그 사람들 이야기1

[풍수지리와 경제] 부자의 품격, 경주 최부자댁 집터와 그 사람들 이야기1

`권세는 십 년 가기 어렵고, 부자는 3대 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엔 부귀 권세를 바라는 이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더 큰 부와 권력을 얻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니 오래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역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재벌들이 3대를 못 가 몰락했습니다. 당대에 몰락한 재벌도 많습니다. 그런데 무려 10대 넘게 300년 이상 아주 큰 부를 대대로 유지해온 가문이 있습니다. 경주의 만석꾼 집안 최부자댁이 그랬습니다. 최부자댁의 역사는 조선조 중엽 최치원 선생의 17대손인 최진립 장군부터 28대손인 최준 선생까지 이어졌습니다. 조선시대 만석꾼 부자는 곳곳에 많이 있었지만, 10대가 넘게 유지된 부호는 없었습니다. 최부자댁 집터의 기운이 아주 빼어나고 또 사람들의 정신과 생활 자세가 특별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물론 집터도 좋았지만, 최부자댁은 집터의 기운 하나로 막대한 재산을 오래 지켰던 게 아닙니다. 최부자댁은 재산을 늘리

[풍수지리와 경제] 삼성 금성 효성 창업주 배출 지수초등학교의 산천지기

[풍수지리와 경제] 삼성 금성 효성 창업주 배출 지수초등학교의 산천지기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서도 엘지와 지에스 그룹의 뿌리인 승산마을의 풍수 특성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허만정 선생 부자가 주도하여 세웠으며,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 조홍제 회장이 동문수학했고, 뒤이어 많은 기업인을 배출한 지수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승산마을은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명당입니다. 닭은 부화를 위해 알을 품을 때 많은 알을 품습니다. 보통 15개 이상 품고 거의 모두 부화하여 병아리가 나옵니다. 또, 어린 새끼들을 잘 보살펴 병아리들의 생존률은 아주 높습니다. 대부분 성계로 성장합니다.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마을에 살거나, 그런 명당에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이 번성합니다. 뛰어난 인물도 많이 나옵니다. 또 병아리들이 오손도손 사이좋게 지내며 함께 자라듯이 마을 사람들이나 자손들이 서로 크게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냅니다.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명당에는 알처럼 동그랗게 생긴 봉우리가 앞에 있습니다. 닭이 품고 있는 알입니

[풍수지리와 경제] LG와 GS의 아름다운 동행 낳은 화목한 산천 정기

[풍수지리와 경제] LG와 GS의 아름다운 동행 낳은 화목한 산천 정기

경남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 마을 앞에는 지리산에서 발원한 남강이 흐릅니다. 이 남강에 솥바위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솥바위는 한자로 정암인데 정암리라는 마을 이름도 이 솥바위 때문에 지어진 것입니다. 예전에 솥바위 옆에는 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는데 나루의 이름은 정암진이었습니다. 정암진은 임진왜란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께서 남강 북쪽으로 진격하려던 왜군과 싸워 크게 승리하신 곳입니다. 훗날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정암루라는 누각도 세워졌습니다. 솥바위는 커다란 가마솥처럼 생겼는데 밑바닥에는 가마솥의 발 같은 형상의 바위 줄기가 세 개 있다고 합니다. 조선조 후기 어느 이인이 남강에 솟아오른 솥바위를 보고 이런 예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솥바위에 발이 세 개 있는 것처럼 앞으로 솥바위에서 삼십리 안쪽에 있는 세 마을에서 대부호가 나와 많은 백성을 먹여 살릴 것이다.` 이 예언대로 솥바위 북쪽 의령 중교리에선 이병철 회장이 태어나 삼성을 세웠고 동남쪽 함안 동촌리에선 조홍제 회장이 태어나

[풍수지리와 경제] 이병철 회장 조부의 효심이 얻은 명당, 삼성가와 풍수

[풍수지리와 경제] 이병철 회장 조부의 효심이 얻은 명당, 삼성가와 풍수

우리나라의 기업인 중에는 풍수지리를 학술로 인정하고 풍수이론을 믿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기업인 중 가장 유명한 이가 삼성과 CJ, 신세계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입니다. 이 회장이 풍수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조부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이 회장의 조부는 자신의 부친이 작고하자 부친을 좋은 곳에 모시고자 십년간 방방곡곡으로 명당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마을에서 가까운 산사의 스님을 만나 그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 스님은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명사였고, 조부의 정성에 감동하여 특별한 명당을 알려주며 거기에 부친을 모시라 권했습니다. 스님은 또 이곳은 금두꺼비가 엎드리고 있는 형상, 금섬복지형의 명당이며 여기에 묘를 쓰면,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가 나오리라 예언했습니다. 조부는 스님이 권한 대로 그곳에 부친을 모셨습니다. 어린 시절 이 회장은 조부

[풍수지리와 경제] 울산 국가산업단지와 현대중공업 성공 이끈 '땅의 기운'

[풍수지리와 경제] 울산 국가산업단지와 현대중공업 성공 이끈 '땅의 기운'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였습니다. 1961년 1차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경제발전에 매진하여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경제강국일 뿐 아니라, 문화강국이 되어 우리 문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60년 사이에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 중 하나로 발전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경제와 문화가 함께 발전한 것은 더욱 특별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애써 노력한다고 똑같이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는 크게 성공하고, 누구는 작게 성공하며, 애만 쓰고 실패할수도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헌신적인 노력에 더하여, 우리나라 산천의 특별한 에너지가 도움을 줘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봅니다. 국가 산업단지는 국가 기간산업과 첨단 과학기술산업을 육성하고자 국가에서 조성한 산업단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엔 1257개의 산업단지가 있습니다. 그 중 국가산업단지는 47개입니다. 울산 국가산업단지는 국가에서 최초로 지정하고, 또 최초로 조성한

[풍수지리와 경제] 배산임수와 장풍득수, 그리고 삼성그룹 태평로 사옥

[풍수지리와 경제] 배산임수와 장풍득수, 그리고 삼성그룹 태평로 사옥

풍수지리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바람과 물과 땅의 이치입니다. 삶터의 기운에 미치는 산의 영향이 지대한데, 산수지리라 하지 않고, 풍수지리라 합니다. 산은 바람의 흐름에 영향을 줍니다. 바람을 막기도하고, 가두기도 하며, 또는, 바람의 흐름을 거세게 만들고, 평온하게도 만듭니다. 그리고 이 바람이 삶터의 기운, 에너지에 영향을 주기에 바람을 중시합니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은 땅의 기운을 흩어지게 만듭니다. 산은 거센 바람을 막아줍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터는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잘 모이니 사림이 살기 좋은 곳입니다. 풍수지리를 공부하지 않은 분들도 많이 아는 풍수지리 용어가 있습니다. 배산임수란 말입니다. 이 말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있다는 뜻이며, 풍수학에선 배산임수의 터가 좋은 삶터라고 봅니다. 뒤에 산이 있으면,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줍니다.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오니, 전후좌우 사방에 산들이 솟아올라 빈틈이 없어야 터의 기운이 온전하게 유지됩니다. 산과 산이 떨어져 있으면, 산 사이의 빈틈으로 바람이 몰아쳐 터의 기운을 흩어지게 하며, 나쁜 기운

[풍수지리와 경제] 윤석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미신인가 과학인가

[풍수지리와 경제] 윤석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미신인가 과학인가

지난 3월,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발표하며,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선인의 이 말과 집무실 이전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논란 중, 집무실 이전의 이유와 관련된 논란에서 아주 많이 거론된 말들이 청와대터, 미신, 무속, 풍수지리, 전임 대통령들의 운명 등이었습니다. 누구는 청와대 터가 흉해서 여러 전임 대통령들의 말로가 불행했다 주장하고, 누구는 청와대 터가 좋아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풍수지리 이론을 들어 집무실 이전에 대해 찬반 의사를 표했고, 어떤 이들은 터의 길흉을 밝히는 풍수지리를 미신이나 무속과 똑같이 취급했습니다. 풍수지리는 산천의 기운, 땅의 에너지가 사람살이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미신도 아니고, 또 무속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체계적인 이론으로 이뤄진 학문입니다. 물질로 이뤄진 모든 존재는 에너지(기)를 지니고 있으며, 에너지의 생성과 흐름에 어떤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살고 일하는 삶터 주변의 대지, 산, 물 또한 고유의 에너지가 있으며, 삶

이행명 명인제약 회장 Who Is?

이행명 명인제약 회장

중추신경계(CNS) 분야 대표 중견제약사 창업주, 글로벌 신약 기업 지향 [2026년]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Who Is?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오너 3세로 소통 중시, 신약 미국진출 안착 과제 안아 [2026년]

황병우 iM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Who Is?

황병우 iM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iM뱅크 시중은행 전환 이끌어, '하이브리드 금융그룹' 앞세워 전국구 도약 추진 [2026년]

김범석 우아한형제들 대표이사 Who Is?

김범석 우아한형제들 대표이사

우버 출신 온디맨드 전문가, 지배구조 변화 연착륙과 세무조사 등 이슈돌파 과제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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