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은 1952년 9월 17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앙여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1981년 소설 <바람과 박제>로 문학사상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 한국일보, 미주 중앙일보 등에서 언론인으로 일했다. 귀국한 뒤 방송위원회 기획국 국장, 방송위원회 사무총장 서리와 기조실장을 지낸 뒤 소설가로 활동했다. 1987년 화개장터에 대한 신문기사로 조영남과 함께 '화개장터'를 작사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소설가 활동 외에 방송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인 ‘김한길과 사람들’을 진행하는 등 방송활동을 했다. 제15대 총선에 전국구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취임했으나 이듬해인 2007년 탈당하고 민주당을 창당해 대표로 취임했다. 2008년 1월 대선 패배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가 실패한 데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4월 열린 제19대 총선에 출마하여 서울 광진구 갑에서 당선됐다. 2012년 6월 실시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전체 8명의 후보 중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하여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2013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 2014년 3월 안철수와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며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하지만 같은해 열린 7.30 재보궐 선거에 패배한 책임을 지고 안철수 공동대표와 함께 대표직을 사퇴했다.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이다가 2016년 2월 국민의당에 들어가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 가족관계 당산 김철 전 사회민주당 당수와 어머니 윤초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철 전 당수는 통일사회당과 사회당, 사회민주당 대표를 거치며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배우 최명길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장남 김무진씨와 차남 김어진씨를 두고 있다. ◆ 학력 1968년 대광중학교와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 경력 1982년 한국일보 미주지사 기자, 1985년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지사 지사장으로 활동했다. 한국에 돌아와 1988년 방송위원회 기획국 국장을 지냈다. 1996년 국회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공보팀장을 맡았다. 1998년 국회 재경경제위원회 위원, 1999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냈다. 2000년 제7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활동했다. 이어 2007년 중도통합민주당 대표가 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오른 뒤 2013년 민주당 대표로 임명됐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2016년 2월 국민의당에 들어가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의원 7.30 재보궐 선거를 앞둔 2014년 7월22일 선거관리위원회에 재산신고를 허위 축소 신고한 혐의로 당시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를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 명의로 수원지검에 고발했다. 그러나 수원지검 공안부는 2015년 1월28일 김용남 의원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했다. 김한길은 부친인 김철 전 사회민주당 당수(1925~1994)의 재심 무죄판결에 따라 국가배상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 김유랑 판사는 2014년 8월25일 김 전 대표 등 유가족 3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98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새해를 여는 즈음에 새 희망을 향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보수의 탈을 쓴 수구세력에게 기필코 승리해야 하고 애오라지 계파이익에 집착하는 패권정치의 틀 속에 주저앉아 뻔한 패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2016/01/03 더불어민주당 탈당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위기인 줄 모르는 게 심각한 위기다. 문 대표는 오로지 친노의 좌장으로 버티면서 끝까지 가볼 것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야권을 대표하는 주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결단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2015/05/11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아버지는 한반도의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지만 군사독재시대는 그 꿈을 이루기에 암울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꿈인 평화통일, 경제민주화, 복지국가가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2014/11/20 선친인 ‘당산 김철선생기념사업회’ 20주기 심포지엄에 참석해, 사퇴 넉 달만에 첫 공식석상에서)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져 죄송하다.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 (2014/07/31 7.30 재보궐 선거 참패 책임지고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와 함께 사의표명)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어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이야말로 참사 이전의 대한민국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첫걸음.” (2014/07/24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며) “치유하고 갈등을 통합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을 향해 싸우겠다고 한다. 내년 지방선거는 박근혜 대통령 불통의 중간심판이 될 것이다. 선거에 왕도는 없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민심을 얻는 자가 승리한다.” (2013/12/24 ‘2014년 지방선거 전망과 과제토론회’에 참석해) “후보간 음해와 흑색선전, 인신공격은 아무에게도 도움 되지 않을 것이다. 경선 초반의 (이해찬) 대세론은 여지 없이 무너졌다. 대의원들은 공정하면서도 대선 승리를 가져올 능력을 지닌 당대표를 원하고 있다.” (2012/06/03 민주통합당 당 대표선거를 일주일 남기고 기자간담회에서) “만약 서울시장 선거가 있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기 때문에 (야권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선수가 출마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한 원칙이다. 나도 그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2011/08/25 기자들과 오찬간담회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하며) “대선참패 이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매우 아프다. 나를 버려서 우리가 살아나는데 도움이 된다면 우선 나부터 기득권을 버려야 하겠기에 총선 불출마를 결심했다. 거창하게 말하기 민망하지만 다시는 정치에 돌아올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2008/01/06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