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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인정 많은 재계의 대표적 '의리남'
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 | 입력 : 2014-03-04 16:17:55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생애

김승연은 1952년 2월7일 충남 천안에서 김종희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그룹) 창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멘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드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부친 사망으로 젊은 나이에 회장에 취임해 한화그룹의 규모를 수십 배로 키웠다. 현재 한화그룹 회장, 유엔한국협회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가족관계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그룹)을 창업한 김종희가 아버지이고 7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철이 큰아버지이며 제13대 국회위원을 재낸 김종식이 작은아버지다.

아버지 김종희는 어머니 강태연 여사와 사이에서 2남 1녀를 뒀다. 누나 김영혜는 제일화재의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또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이자 제일화재 회장인 이동훈과 결혼했다.

동생 김호연은 전 빙그레 회장이자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호연의 장인은 김구 선생의 둘째 아들 김신으로 교통부장관과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김승연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 내무부 장관을 맡았던 서정화 전 장관의 장녀 서영민과 1982년 결혼해 아들 셋을 뒀다. 장남인 김동관은 하버드대를 졸업 한 뒤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근무중이다. 차남 김동원은 예일대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하고 최근 한화그룹에 입사해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삼남 김동선은 다트머스대학 졸업 후 승마선수로 활동중이다.

◆ 학력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해 다니던 중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4년 멘로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6년 드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서강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경력

29세였던 1981년에 부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회사를 물려받았다. 취임 1년 만에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해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했다. 2년 뒤인 1983년엔 경인에너지 내국화를 단행하면서 매출을 2배 이상 신장시켰다.

1985년 현 한화호텔&리조트의 전신인 정아그룹을 인수했고 이듬해 현 한화갤러리아의 전신인 한양유통을 사들였다. 1986년에는 야구단인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이글스)를 창단하고 1990년 경향신문사를 인수했다.

90년대 해외진출에 역점을 뒀다. 1993년 아테네은행을 인수했고 1996년 헝가리 엥도수에즈 부다페스트은행(현 헝가리 한화은행)을 사들였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맞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1999년부터 홍선기 대전시장의 제안을 받아 대덕테크노밸리사업을 진행했다.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승연은 지역발전을 위한다는 명분 삼아 강행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2009년 11월 5일 준공식을 가지면서 완료됐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해 2010년 한국거래소에 상장시켰다. 같은해 6월 푸르덴셜투자증권과 푸르덴션 자산운용을 인수했다. 이후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의 지분을 인수해 한화솔라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태양광사업에 뛰어들었다.

1982년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에 취임해 1997년까지 15년간 재임했고 2009년부터는 국제복싱발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6년 유엔한국협회 회장으로 선임됐으며 2011년 재선임에 성공했다.

◆ 사건/사고

1993년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7억300여만 원을 선고받았으며 같은 해 동생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과 31차례에 걸쳐 재산분할 관련 소송을 진행했다.

2007년 보복폭행 사건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차남 김동원이 술집 종업원과 몸싸움 후 눈에 부상을 입은 소식을 접한 김승연은 경호원 17명과 함께 종업원을 청계산으로 끌고 가 폭행했다.

2012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았다. 계열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2013년 4월15일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상고심에서 2심을 파기환송됐다. 2014년 2월11일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 상훈

1982년 체육훈장 백마장, 1983년 철탑산업훈장, 1984년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그리스 피닉스 대훈장,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1995년 품질경영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 수상했으며 이듬해 그리스 대훈장, 1998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유공장을 받았다.

2009년에는 아버지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와 함께 한국경영사학회가 수여하는 ‘2009 창업대상’을 받았다. 창업대상은 이전에 김성곤 쌍용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등이 수상했다.

◆ 어록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입니다.” (2005년 창립기념사)

“동란의 초토 위에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기적의 역사를 창조했던 화약인들의 ‘프런티어’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한화인 모두 견지해야 할 일류정신의 표상입니다.” (2006년 신년사)

“글로벌시대에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워야 한다” (2006년 10월 9일 김승연 회장 창립기념사)

“세계 속의 한화를 이끌기 위해선 국적, 학력, 나이와 같은 불필요한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2007년 신년사)

“시대에 역행하는 익숙했던 과거와 단절이야말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2007년 창립기념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명이 동터 오듯이 이제 우리 한화는 새로운 희망을 여는 대한민국과 함께 ‘비극태래’(否極泰來)의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2008년 신년사)

2007년 6월 18일 ‘보복폭행’ 혐의로 열린 첫 공판서 법정 어록
“권투처럼 이렇게…(양 주먹을 휘둘러 보이며) 아구(턱)를 몇 대씩 돌렸습니다.”(몇 대 때렸느냐는 질문에)
“저도 나이가 많은데 아들 또래와 ‘맞짱’을 뜰 수는 없지요.”(피해자 눈 부위만 때렸느냐는 질문에)
“아들에게 네가 빚진 만큼 갚으라고 시켰어요.”(아들을 직접 때린 윤모씨 찾아낸 뒤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 평가

유별난 ‘인정과 의리’로 유명하다. 평소 그룹 경영의 최고가치로 ‘신의’를 꼽아왔다. 화끈한 성격으로 불과 29세의 나이에 회장이 되면서 헤어스타일을 이른바 '올백'으로 바꿨고, 농담 삼아 스스로를 ‘재계의 깡패’로 표현했다.

한화그룹이 배포한 자료에 의하면 김승연 회장은 효심이나 부정애가 남다르다. 2006년 모친 팔순 때는 영상편지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아버지 김종희 창업주와 형제처럼 지낸 리처드 워커 전 주한미국 대사의 환갑잔치를 1982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성대히 치러주고 약속대로 20년 후 팔순잔치까지 챙겨준 일화는 유명하다.

30여년 동안 회장으로 재직하며 한화그룹을 매출 27배, 총자산 115배, 당기순이익 223배 성장시켜 재계로부터 ‘제2의 창업’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90년대 중반 IMF 외환위로 인한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한화 바스프우레탄, 한화에너지, 한화자동차부품 등의 회사를 매각했으며 유화사업 맞교환 등의 창조적 구조조정으로 국내는 물론, 산케이신문, 로이터통신 등에서 ‘구조조정의 마술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 기타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 후 한화그룹은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하겠다고 이듬해 3월 20일 밝혔다. 이는 김승연 회장이 유가족들의 슬픔과 희생을 안타깝게 여기며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라는 지시로 이뤄졌다. 천안함 희생자 46명 중 36명의 유족이 한화에 취업을 희망했으며, 이중 5명이 2010년 입사해 다니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7명이 (주)한화와 한화테크엠에 근무하고 있다.

후원에 어려움을 겪은 예술의 전당의 ‘교향악 축제’를 위해 10년 동안 단독으로 후원했다. 예술의 전당은 한화그룹의 후원 10주년을 맞아 2009년 4월 김승연 회장에게 감사의 뜻으로 종신회원증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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