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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도 칸텔리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뉴욕 필을 지휘했고,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라 스칼라 음악감독이 된 36세 비행기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한 천재 대중음악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분위기로 가득하다. 바로 40대 중반의 나이에 숨을 거둔 가수 신해철.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21세기에 40대 중반의 나이는 매우 젊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음악이 아닌 다른 행보가 어떠했건 간에 적어도 그의 음악은 최고였다. 대중음악이 아닌 클래식을 하는 필자도 학창 시절 그의 음악을 들으며 환호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신해철이라는 가수를 세상에 등장하게 만든 ‘그대에게’라는 곡은 작곡된 지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 다시 들어도 무척이나 세련됐고 고급스럽다.
또 그가 활동했던 그룹 넥스트의 다른 음악들도 매우 훌륭하다. 전람회라는 신인 그룹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오늘날의 명 싱어송라이터 김동률을 있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들이 꽤 많이 있다.
대표적 음악가가 바로 ‘신이 그의 재능을 탐내어 일찍 데려갔다’는 모차르트다. 또 슈베르트와 멘델스존 등 뛰어난 작곡가들도 30대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엘가 첼로 협주곡 등 최고의 명반을 남긴 재클린 뒤 프레도 병마와 싸우던 중 42세의 나이로 숨졌고, 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테너 프릿츠 분덜리히도 36세에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마에스트로도 36세의 젊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휘자다.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명 지휘자 ‘귀도 칸텔리’다.
카라얀과 첼리비다케와 함게 푸르트벵글러의 뒤를 이은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지휘자이기도 했다. 만약 비극적 사고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제왕 카라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귀도 칸텔리는 1920년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주 노바라에서 태어났다. 밴드 지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적 환경에서 자라났다. 14살에 리사이틀을 열 정도의 천재적 피아니스트였다.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는데, 그의 지휘 선생은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였던 안토니오 보토(Antonio Votto)였다. 그는 졸업 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취임했는데 베르디를 지휘해 큰 성공을 거뒀다.
칸텔리는 2차대전이 발발하여 입대하였고 종전 이후 다시 오페라 지휘자로 복귀했다. 이때 그의 공연을 관람한 토스카니니가 ‘그의 연주는 마치 내가 이 연주를 지휘한 것 같았다’라고 극찬하여 칸텔리는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 지휘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토스카니니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칸텔리는 NBC 심포니와 객원 지휘자로 계약하였고, 토스카니니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미국으로 건너가자마자 보스턴,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주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마침내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뉴욕 필의 포디움 위에 오르게 되었다. 1950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통해 영국에 데뷔한 그는 세계적 음반사 EMI(당시 HMV)와 계약하여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5년간 최고의 음반들을 녹음하게 된다.
그는 1956년 처음으로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를 지휘하여 데뷔했다. 이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마침 자국의 신예 지휘자를 미국에 빼앗기는 것이 못마땅했던 라 스칼라에서 그를 곧바로 음악감독으로 임명했다. 그 때 그의 나이 36세였다.
그러나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지 일주일 만에 귀도 칸텔리는 비극적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칸텔리는 뉴욕 필과 공연하기 위해 아내와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로마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파리를 거쳐 뉴욕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이륙에 실패해 추락했다. 그의 스승 토스카니니는 이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칸텔리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현재 들어볼 수 있는 그의 음반들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녹음들과 NBC 심포니의 방송용 음반, 그리고 뉴욕 필하모닉와 함께한 라이브 음반이다. 아주 예전 녹음이기 때문에 음질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천재 지휘자의 완벽주의적 치밀함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또한 이탈리아인 특유의 기질인지는 몰라도 매우 열정적이며 생동감이 넘친다.
차이코프스키 후기 교향곡과 브람스 교향곡, 베토벤 교향곡 음반 등이 유명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교향곡 전집은 녹음하지 못했으며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녹음된 양도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이탈리아 지휘자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작곡가들의 곡들에서 뛰어난 음악성과 해석력을 보여주었다. 시대별로 봐도 모차르트부터 드뷔시까지 매우 방대한 레파토리를 가졌었기 때문에 그의 때 이른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클래식이건 대중음악이건 장르의 구분 없이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음악가들의 죽음을 접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특히 언제나 당당했던 천재 신해철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그런지 더더욱 충격적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