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프린트      창닫기
기업과산업
[Who Is ?]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세계의 모자왕,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임주연 기자 june@businesspost.co.kr | 입력 : 2017-08-24 08:38:41
   
▲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 생애

백성학은 영안모자 대표이사 회장이다. OBS 경인TV 이사회 의장이며 숭의학원 전 이사장이기도 하다.

영안모자는 자그마한 모자상점이었는데 수출에 집중하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클라크와 자일대우버스, OBS경인TV 등 7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1940년 4월18일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목릉현에서 태어났다. 조부 백운휘씨는 일제의 핍박을 피해 중국으로 이주했다. 

백성학은 함경남도 원산에 내려왔다가 1950년 피난민 대열에 휩쓸려 전쟁고아가 됐고 모자공장에서 일을 배웠다. 전쟁이 끝나고 19세의 나이로 서울 청계천에 영안모자상사를 설립했다.

수출에 힘써 영안모자는 성장을 거듭했고 영안모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여러 건 성사해 덩치를 키웠다. 경영난에 빠졌던 미국 지게차 회사 ‘클라크’와 버스회사 ‘자일대우버스’를 인수했다.

OBS경인TV를 인수해 미디어사업을 시작했고 숭의학원을 인수해 교육사업에도 뛰어들었다.

2019년에 경영권을 내려놓은 뒤 세 아들에게 회사를 맡기고 백학재단을 통한 봉사활동에 집중하려고 한다.  

영안모자가 세계 모자업계 1위기업으로 자리잡으면서 백성학은 ‘세계의 모자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검소함이 몸에 배었다. 부지런하고 치밀하게 회사를 운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 경영활동의 공과

△OBS경인TV 경영정상화 난항
백성학은 2006년 OBS경인TV의 사업권을 따냈는데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따라 폐업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6년 OBS의 30억 원 증자이행 조건을 걸고 ‘조건부 지상파 재승인 허가’를 내줬다. 허가 유효기간은 3년으로 방통위는 OBS가 2017년 12월31일까지 30억 원 증자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법적 절차에 따라 재허가 취소 절차를 진행한다.

OBS는 2107년 8월에 이행실적 보고서를 냈는데 특정 방송광고판매대행사업자를 통한 광고매출구조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인건비 절감 등에만 신경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방통위는 OBS가 광고를 SBS의 지분 40%로 설립된 미디어크리에이트에 위탁해 판매하도록 했다.

OBS는 2017년 4월 PD 등 직원 13명을 추가 정리해고했다. 2008년에 제작부서 PD는 47명, 제작프로그램은 17개였는데 2017년 기준으로 PD는 5명, 제작프로그램은 3개로 줄어들었다. 
 

 

   
▲ 영안모자 실적.

△실적부진 기업 인수 뒤 다시 키워
백성학은 미국 지게차회사 ‘클라크’와 한국 버스회사 ‘자일대우버스’를 인수해 부진한 실적을 다시 끌어올렸다.

영안모자는 2003년 클라크의 모체인 클라크 미국본사 및 한국생산법인을 인수했다. 클라크는 1903년 설립돼 1917년 세계 최초로 지게차를 발명한 기업이다. 2000년 4월 파산해 경매에 부쳐졌는데 한국법인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수차례에 걸쳐 백성학에게 인수를 요청했다고 한다.

백성학은 미국 제조업계 호황을 예감하고 멕시코 공장 등을 정리한 뒤 미국시장에만 집중했고 클라크는 세계 10위권 안에 다시 들어갔다.

영안모자는 2003년에 자일대우버스도 인수했다. 자일대우버스는 1955년 신진공업사로 버스제조업을 시작한 뒤 2002년 대우버스로 변경됐는데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백성학의 인수 결정 뒤 자일대우버스는 세계 80여개 나라를 대상으로 버스를 공급하고 있다. 영안모자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실적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영안모자는 2012년 버스를 판매하는 회사인 ‘자일대우자판’도 인수했고 이 회사를 통해 버스판매를 위한 영업과 렌터카사업을 하고 있다.

백성학은 2004년과 2010년 쌍용차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지만 접전 끝에 각각 중국 상하이자동차와 인도 마힌드라그룹에게 쌍용차를 빼앗겼다. 

△숭의학원 인수
백성학은 1999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어려움을 겪던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으로부터 숭의학원을 인수했다.

숭의학원의 모태는 새뮤얼 A 마펫 선교사가 1903년 평양에 세운 숭의여학교다. 한경직 목사는 마펫 선교사가 세운 자작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신학문을 배웠다. 한 목사는 1999년까지 숭의학원 이사장을 지냈고 백성학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백성학은 숭의학원 이사장 임기를 마친 뒤 아내인 윤순희씨를 숭의학원 이사장에 앉혔다.

△목장 운영
영안모자는 1972년 소와 말을 키우는 원주목장을 운영하기 시작해 포천목장, 금곡목장, 제주 양지목장까지 목장 수를 확대했다. 2010년에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와나링에서도 목장을 세웠다.

△해외사업 확대
백성학은 모자사업에서 1966년 일본에 첫 수출을 시작으로 미국까지 진출했다. 1969년 월마트 바이어가 한국으로 그를 찾아와 월마트 모자의 60%를 맡겼다.

영안모자의 제품을 일본업체가 납품받은 뒤 ‘made in Korea’를 떼고 ‘made in Japan’만 붙여 팔았는데 한 상자를 수정하지 못해 영안모자의 제품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백성학은 1971년 한국에 판매를 중단하고 수출에만 전념하게 됐다. 당시 고유상표를 개발해 15개 나라에 영안 상표를 단 모자를 수출했다. 특히 1973년 백성학은 LA다저스 야구모자를 선보였고 세계의 모자왕으로 등극했다.

1970년대 중반에 모자 뿐 아니라 천과 플라스틱, 원단가공 등의 공장을 세운 뒤 모자의 원가를 낮췄다. 이런 노력을 통해 영안모자는 1978년에 1천만 달러 규모 수출을 달성했다. 

영안모자는 1985년에 코스타리카 공장을 설립하며 모자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생산기지를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영안모자는 현재 캐나다와 미국, 멕시코, 홍콩을 중심으로 판매법인을 운영하고 미국 3개, 멕시코 1개, 중국 1개, 스리랑카 2개, 방글라데시 2개, 베트남 1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5·16군사정변, 위기를 기회로
1961년 5·16군사정변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제복 스타일의 재건복을 입어야 했고 모자시장이 크게 위축되자 영안모자도 매출이 줄어들었다.

백성학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폐업한 모자가게의 재고를 사들이고 고급화전략을 추진했다. 때마침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져 영안모자로 손님이 몰렸다.

백성학은 이때 전국에 대리점 형태의 유통망을 구축했다. 1964년 패션업계 최초로 대중광고를 시작하기도 했다.

△영안모자의 태동
백성학은 10살에 전쟁고아가 됐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 원산에 살고 있었는데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원산만에 갔다가 1·4후퇴 때 피난민 대열에 떠밀려 남하하는 배를 타게 됐다.

이후 미군부대 심부름꾼과 식당 종업원, 병원 청소부, 구두닦이 등 가리지 않고 일하다가 모자공장에까지 가게 됐다. 그는 하루 18시간 이상 근무하며 모자제조기술과 점포 및 공장관리를 배웠다. 

백성학은 일을 배운지 3년째인 19세가 되던 해에 18만 원을 들고 청계천4가 개천가에 영안모자를 세웠다.

미국 백화점 카탈로그를 입수해 다양한 종류의 모자를 만드는 데 열중했다.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는데 그 일행의 복장이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모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영안모자의 매출이 빠르게 늘었다. 
 

   
▲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과 경영진.

◆ 비전과 과제

OBS경인TV의 실적반등이 시급한 과제다.

백성학은 이를 위해 정리해고를 답으로 꼽았지만 현재 노조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OBS는 2017년 말까지 30억 원 증자를 하지 못하면 지상파 허가를 받지 못한다. 

백성학은 2019년 회사 창립 60주년에 80세를 맞이한다. 이때 장남에게 회사를 맡기고 은퇴하기로 했다. 현재 34개인 국외법인을 2019년까지 45개로 확대할 계획을 세워뒀다.

백성학은 세 아들에게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줬다. 그가 은퇴하면 큰 아들 백정수 영안모자 부회장이 계열 전체를, 작은 아들 백병수 자일대우버스 대표가 버스를, 막내아들 백승수 영안모자 사장이 지게차와 모자사업 등을 맡는다.

백성학은 은퇴 뒤에 백학재단을 통해 사회봉사활동에 매진하기로 했다.

백학재단은 2009년 영안모자의 50주년을 기념해 설립됐다. 백학재단은 한국과 에티오피아, 중국, 스리랑카, 코스타리카, 베트남 등 사업장이 있는 국가에 아동 보육시설 등이 있는 백학마을을 세웠다.

◆ 평가

백성학은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검소함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동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은 영안모자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백성학은 평소 검소한 옷차림은 물론 형편없는 가방을 수십 년 동안 들고 다닐 정도로 검소와 겸손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며 “사업 수단과 능력이 뛰어난 가정에 충실한 모범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 이사장은 “백 회장은 전쟁고아로 그 고생을 하면서도 자기를 스스로 가르쳐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쌓은 인물로서 평생 늘 생각하는 것이 ‘생활은 검소하게, 생각은 고상하게’라는 모토로 살아 온 사회적으로 귀중한 인물”이라면서 “하루도 쉬지 않는 부지런함과 늘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는 백 회장은 우리의 큰 기쁨이며 진정한 애국심을 가진 애국자”라고도 말했다.

 
   
▲ 백성학씨는 1959년 서울 청계4가에 모자가게를 차렸다.
백성학은 정리정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업을 할 때에도 꼼꼼하게 세부사항을 직접 챙기며 늘 정확한 데이터를 요구한다고 한다.

사훈은 ‘정리정돈’이고 경영원칙은 ‘정직과 원칙을 지키자. 분식, 비자금, 탈세를 하지 말자’다. 

운전과 골프는 시간낭비라고 본다.

전 계열사를 비상장사로 두고 있다. 상장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인으로 성북동에 있는 교회를 가족과 함께 다닌다. 평생 기도제목은 욕심부리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 사건/사고

△OBS경인TV 노조원에게 욕설한 영상공개
전국언론노동조합 OBS 희망조합지부는 2017년 7월18일 백성학의 모습이 담긴 영상 2개를 공개했다.

첫번째 영상에는 백성학이 2017년 4월6일 조합원들이 '정리해고 철회와 OBS 방송정상화를 위한 투쟁 문화제'를 준비하는 현장에 나타나 말리는 조합원들에게 "새끼"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두번째 영상에는 백성학이 2017년 6월25일 월례회의 참석을 위해 OBS에 들렀다가 조합원 1명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10~12월 쯤 폐업할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백성학은 그동안 실적부진을 근거로 폐업을 말해왔다. 하지만 전국언론노조 OBS지부는 OBS의 경영상태가 건전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2016년 기준으로 OBS의 유동비율은 219.54%, 부채비율은 168.7%다. 영업손실은 5억6천만 원이고 순손실은 8억6800만 원이다.

OBS지부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는데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부당해고 판정이 났다. 이에 따라 OBS경인TV는 2017년 8월1일 해고된 직원들을 '자택 대기발령'으로 복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숭의학원 학교폭력 축소혐의
2017년 4월 숭의초등학교의 3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폭력사건이 일어났다. 숭의학원은 이 사건에 대기업 총수 손자가 연루돼 이를 축소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관련 교장과 교감, 생활부장 등 3명을 해임하고 담임교사에게 정직처분을 내리라고 요구했지만 숭의학원은 이 요구가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숭의학원은 2017년 8월11일 “SBS뉴스가 보도한 것은 진실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며 “서울시교육청의 중징계 요구는 선정적인 허위보도를 근거로 한 과도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SBS뉴스 보도에 따르면 숭의초등학교 교장은 피해자 어머니에게 ‘우리는 교육청이 아니라 이사장이 무섭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학법상 징계는 교육청에서 바로 하는 게 아니라 사학재단에 의뢰해 숭의학원을 통해 이뤄지게 된다. 

숭의학원은 교육청 감사결과에 반박했다. 당시 이사장은 백성학의 아내 윤순희씨였다. 대표이사 회장이자 OBS 경인TV 이사회 의장이다.

△미국스파이 사건
백성학은 2006년 10월에 미국 스파이 의혹을 받게 됐다.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백성학이 정보팀을 운영하며 국가정보를 수집해 미국에 보고해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백성학은 이를 부정했으나 대법원은 그에게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CBS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기사를 통해 백성학이 미국 스파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백성학은 OBS경인TV설립 과정에서 지분을 보유한 CBS가 경영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간첩의혹을 의도적으로 제기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진실이 아니거나 진실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삭제함이 상당하다”며 기사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백성학은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메모를 미국 측에 전달한 적은 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노무현 정권 당시와 관련한 ‘전시작전권 이양 관련’과 ‘차기정권 창출 관련’ 등의 영문 문서가 그의 측근 사무실에서 발견됐다.

△“서울대 총장, 내가 만들었다”
백성학은 2002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그 자리에 앉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성학은 정 전 총장에게 1천만 원을 주기도 했다.

정 전 총장은 2009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처음에 총장선거에 확신이 없었는데 일단 나갔다고 한다. 박용현 두산 회장은 1998년 서울대병원장이 됐고 2002년 서울대 총장선거 당시에도 병원장 자리에 있었다.
 
백성학은 정 전 총장과 친했던 김종인 전 의원의 부탁을 받고 박 회장에게 얘기해 의과대 교수의 표가 정 전 총장에게 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정운찬->김종인->백성학->박용현->의과대 교수로 청탁이 이어진 것이다.

△사회복지시설 ‘빌리 사랑의 집’ 지어
백성학은 11살에 북한의 포격으로 큰 화상을 입고 냇물에 떠내려가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데이비드 비티가 그를 구해주었다. 백성학은 그의 이름을 ‘빌리’로 알고 있었고 전쟁 후 수소문해 그를 찾아서 진짜 이름을 알게 됐다.

백성학은 강원도 홍천에 그의 별칭을 따 사회복지시설을 짓고 빌리의 자자손손까지 장학금을 대줬다. 이 이야기가 미국잡지에 실리면서 백성학은 미국 내 한인모임의 주요인사가 되기도 했다. 
   
▲ 백성학 회장은 1995년 그의 은인 빌리와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 참가했다.

◆ 경력

1959년 2월 영안모자상사를 세웠다.

1984년 5월에 영안모자를 세웠다.

1992년에 한국스카우트연맹 지원재단에 이사를 역임했다.

1996년 7월부터 안중근의사 숭모회 부이사장을 맡았다.

1999년 4월부터 2001년 4월까지 숭의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6년 8월부터 OBS경인TV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 학력

초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피난대열에 휩쓸렸고 이후 학력은 없다. 

◆ 가족관계

아내인 윤순희 숭의학원 이사장과 사이에 백정수 영안모자 부회장과 백병수 자일대우버스 대표, 백승수 영안모자 사장 등 3남1녀를 뒀다. 

◆ 상훈

◆ 기타

◆ 어록

“대한민국에서는 깨끗하지 않으면 못 산다. 내가 돈 벌려고 했으면 준 재벌 됐을 거다. 내가 머리 나빠서 돈 못 버는 게 아니다. 양심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비자금도 만들고 로비도 하고 그러지 않으면 돈 못 번다. 그런데 우리 같은 규모로 그렇게 했다간 죽는다. 그래서 대기업, 중견기업 많이 죽어나갔다. 그런데 비자금 없이 그냥 내 돈 쓰면 깨끗하다. 그게 바로 나의 특이한 노하우다.” (2016/7/15,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어묵장사가 사양길에 접어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어묵으로 세계시장을 뚫어야 한다. 해외로 나가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2017/5/21,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친미라고 불리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큰 도움을 준 나라다. 친미로 누가 따로 덕본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보수건 진보건 다 덕을 봤다. 친미해서 나쁠 게 뭐가 있나?” (2013/5/2,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어려운 격동기였던 지난 1959년 노점으로 시작한 영안모자가 이만큼 성장하게 된 것은 해외 바이어는 물론 영안의 임직원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꼭 하여야 한다는 신념과 ‘친절’이라는 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생 세일즈맨 정신으로 살면 안되는 것도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2009/4/30, '영안모자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내가 앞장서서 정운찬 교수가 서울대 총장이 되도록 뛰었다.” (2009/4/30,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영안모자 창립 50주년' 축하연에서)

“옛 iTV 직원들의 고용승계는 최근 사회문제화된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재입사를 희망하는 직원들은 최대한 고용승계하겠다. 그렇게 될 경우 전체 250명 규모의 새 민방 직원의 80% 정도를 옛 iTV 직원들로 채우게 될 것이다.” (2006/5/1,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선진 기업일수록 노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새 민방의 경우 신입사원을 뽑을 때부터 내가 직접 노조 가입을 권유하겠다. 오너가 마음의 문을 열고 깨끗한 경영을 한다면 노사가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전혀 없다. 1975년 영안모자 노조가 설립될 때만 해도 내가 직접 나서 노조 설립을 유도했었다. 노사간 신뢰를 가지려면 모든 것을 오픈해야 한다. 법인 설립이 확정되면 노조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겠다.” (2006/5/1,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기사프린트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