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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무 LG그룹 회장 |
◆ 생애
구본무는 1945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LG그룹 명예회장인 구자경의 장남이다. 1972년 미국 애슐랜드 대학교를 졸업했다.1979년 LG화학 심사과 부장으로 처음 그룹 일에 뛰어들었고 1989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1995년 LG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래 현재 지주회사 (주)LG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 가족관계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다. 아버지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경남 진양군의 선비집안인 하순봉씨의 3남3녀 중 장녀인 하정임 여사이다. 하 여사는 2008년 1월 9일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래로 동생이 다섯이다. 남동생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겸 KBO 총재와 구본준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이 있다. 여동생은 구훤미와 구미정이 있다.
부인 김영식은 김태동 전 보사부 장관의 딸이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민화 작가다.
원래 구연경, 구연수 두 딸과 함께 구원모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1994년 6월 서울국제학교를 막 졸업했을 무렵 원인이 분명치 않은 사고로 사망했다.
2004년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를 양자로 입적했다. 구광모는 현재 LG전자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후계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 학력
1964년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고 1968년에 미국 애슐랜드 대학교에 입학해서 1972년에 졸업하였다. 이후에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 경력
1975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1979년 LG화학 유지총괄본부 본부장으로 승진했다.1980년 LG전자 기획심사본부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1년 LG전자 이사로 승진했고 1984년 LG전자 일본 동경주재 상무를 거쳐 이듬해 그룹 회장실 전무, 1986년엔 회장실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989년 LG그룹 부회장에 오르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1995년 LG그룹 회장에 올랐고 2003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주)LG가 출범하면서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 사건/사고
1999년 정부 주도로 현대와 반도체 빅딜이 있었다. IMF로 경제가 위기인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길 것을 요구했는데, LG는 막판까지 버티다 수용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전경련이 추천한 미국 컨설팅업체인 ADL사가 빅딜에 필요한 보고서를 내놨는데, LG에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LG는 보고서 공개 직후 현대전자 중심의 빅딜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정부가 불응 시 만기대출금 회수 등 금융제제에 들어갈 것이라며 강하게 압력을 가하자 결국 빅딜을 수용했다. 그 이후 LG는한동안 전경련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2004년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참여연대에 의해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 정몽구 회장과 함께 고발당했다.
2013년 8월 26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함께 경고를 받았다. 이유는 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제출하면서 계열회사를 누락시켰다는 것이었다.
2013년 6월 LG유플러스가 본사가 대리점에 무리한 매출목표 달성을 요구했다며 밀어내기 횡포를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앞서 5월에는 한 대리점주가 본사의 밀어내기 횡포와 더불어 자신의 여동생이 본사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LG생활건강도 더페이스샵 가맹점주들이 본사의 밀어내기가 있었다고 밝히며 갑을 논란을 일으켰다.
◆ 상훈
1993년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6년에는 산학협동상을 받았다.
2009년과 2012년 매경이코노미에서 올해의 CEO로 선정했다.
◆ 어록
“학창시절에 자신의 비전을 세우고, 창의와 승부근성으로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LG가 원하는 인재의 참모습이다.“(2004. 6)
“아무리 경쟁이 치열해도 훌륭한 R&D 성과를 바탕으로 한 기업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2003.10)
“일등 LG는 구호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2003.9)
“깨끗하고 건전한 기업만이 오래도록 존경 받는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2003.1)
"젊음의 특권인 열정과 패기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세계 최고에 도전하라. 이것이 LG가 생각하는 인재의 모습이자 우리나라의 미래를 끌고 갈 원동력이다" (2013.11.07. 'LG 글로벌챌린저' 시상식에서)
◆ 평가
시장의 판 흔드는 '게임 체인저'형 CEO라고 평가된다. 골프와 탐조를 즐긴다.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관리자들과 비공식 모임을 갖는 것을 즐기지만 때론 필요에 따라 단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구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백조'에 비유한다. 겉으로는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활발히 움직인다는 뜻이다.
2003년 지주회사를 출범시킨 뒤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하는 일과 대장을 정하는 일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측근들은 "구 회장이 계열사들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세세한 지시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전하고 있다.
털털한 성격이지만 예인 기질이 있어서 무엇이라도 대충대충 하는 것을 싫어한다.
◆ 기타
재계에서 소문난 야구광으로 LG트윈스 전 구단주다. 동생인 구본준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준 지금도 열정은 식지 않아서 1년에 몇 번은 잠실 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한 때 LG에서 출시되는 핸드폰은 구본무 회장의 지휘로 만들어진다는 의미에서 ‘회장님폰’ 또는 ‘구본무폰’이라고도 불렸다.
한 분야에 '필(feel)'이 꽂히면 매니아 수준이 될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당구 점수가 무려 700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날아가는 모습만 보고 이름을 맞출 수 있는 새가 150마리가 넘는다고 하며 이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저서로 <한국의 새>(2000, LG상록재단)가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절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