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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하면 된다는 뚝심의 경영
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 | 입력 : 2014-02-26 15:43:33
   
▲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대표이사 회장

◆ 생애

정몽구는 1938년 3월19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정주영 회장의 차남이다. 1967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자동차 서울사무소장, 1973년 현대건설자료부장 및 이사, 1973년 한국도시개발사장 및 현대정공사장, 1974년 현대자동차서비스 사장, 1981년 현대강관 사장, 1985년 현대산업개발사장, 1986년 인천제철 사장, 1987년~1993년 현대중장비회장, 199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 재직하고 있다.

1982년 4월 형 정몽필이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장남 역할을 하게 됐다. 2000년 3월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승계 다툼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정몽구는 그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고 현대자동차 등 10개사를 이끌고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2007년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정몽구 일가의 재산은 약 22억 달러로 세계 432위를 차지한다.

◆ 가족관계

현대를 창업한 정주영이 아버지다. 사고로 사망한 형 정몽필이 있고 아래로 정몽일, 정몽근, 정몽헌, 정몽윤, 정몽준, 정몽우가 있다. 정몽헌과 정몽우는 사망했다.

부인 이정화와 1962년 결혼하였으며 자녀로 1남 3녀를 두고 있다. 장남 정의선 부회장은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장녀 정지선과 결혼했다. 장녀 정선이 이노션 고문은 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과 결혼했으며, 차녀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은 현대카드 대표이사 정태영과 결혼했다. 삼녀 정윤이 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는 신성재 현대 하이스코 사장과 결혼했다.

사돈 정도원 회장은 경복고 선후배 사이로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학력

1959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 학사 과정을 졸업했다.

1989년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 명예인문학 박사, 2001년 몽골국립대 명예경영학 박사, 2003년 고려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경력

1970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1987년까지 현대자동차서비스, 현대정공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1985년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와 1986년 인천제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996년부터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고 2000년까지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의장을 맡았다. 1999년부터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08년에는 여수엑스포 유치위원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2011년 현대모비스 등기이사로 임명됐다. 199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맡았다.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양궁협회 회장,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아시아양궁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국제양궁협회 부회장도 맡았다.

◆ 사건/사고

1977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한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1978년 7월 당시 한국도시개발공사(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던 그는 처음으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아버지인 정주영 회장과 함께 조사를 받았다. 당시 정주영은 입을 굳게 닫아 처벌을 피했다. 하지만 정몽구는 특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결국 아버지를 대신해 자기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되어 1심 재판 때까지 75일 동안 구금되었다.

2006년 4월 28일 비자금 문제로 인하여 구속수감되었으나, 두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2007년 2월5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여 9월6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함께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강연·신문기고 등의 사회봉사활동을 명령받았다. 2008년 4월 11일 대법원은 집행유예 및 사회봉사명령을 내린 원심을 파기했다.

정몽구는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8,400억 원 가운데, 2007년 7월까지 900억원을 해비치재단에 출연하였고, 2011년 8월 5000억원 사재 출연 계획을 밝힌 현대글로비스 131만주를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에 증여했다.

◆ 상훈

1998년 제25회 상공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1년 올해의 자동차산업공헌상을 받아 미국 자동차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04년 미국 비즈니스위크의 자동차부문 최고의 CEO에 선정됐다. 또한 같은해 몽골정부 북극성훈장을 받았다.
2009년에는 코리아소사이어티 2009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로 선정됐다.
2011 글로벌 최고경영인상도 받았다.

◆ 어록

“명예시민으로서 베이징 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중국 자동차산업 발전뿐만 아니라 중국 경제 발전에도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2003/06/26, 한국인 최초 중국 베이징 명예시민 수상소감에서)

“품질은 제품의 근본적 경쟁력인 동시에 고객의 안전과 감성적 만족에 직결되는 요소이며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다. 품질만큼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 새롭게 다져달라.” (2006/01/02, 현대차그룹 신년사 중)

"우리가 세계 5위보다 낮은 7위가 되든, 8위가 되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고객의 요구에 맞게 고장이 없고 가격이나 기술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 (2011/01/03, 현대자동차그룹 신년사 중)

“백 년 동안 꺼지지 않을 불을 지피니 감회가 새롭다. 제철산업이 기계산업, 경제발전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많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013/09/13,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화입식에서)

“세계 경제가 본격적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업체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기술 융복합에 따른 산업의 변화로 불확실성은 더욱 증대됐다. 올해 자동차 부문이 글로벌 시장에서 786만대를 생산·판매하겠다는 목표를 확정했다” (2014/01/02,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진행한 시무식 신년사에서)

◆ 평가

정주영이 강조했던 ‘하면 된다’와 ‘뚝심 경영’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이 많고 소탈하기로 유명하다. 소탈함과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 주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또 권위적이지 않고 스스럼없이 사람을 대한다.

그의 소탈함에 대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정몽구가  미국 유학시절 때 생활비가 부족해 막노동을 했는데 같이 일하는 노동자가 정몽구가 찬 값비싼 시계를 보고는 '이런 좋은 시계를 차고 있는 네가 왜 이런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또 기본이 충실해야 결과도 좋은 만큼 부품에서 성공해야 자동차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는 1999년부터 모듈의 중요성을 인식해, 현대모비스의 모듈화를 추진했다.

◆ 기타

2007년 현대차 정몽구 재단을 설립했다. 인재양성, 사회복지, 문화예술, 기타사업 등 4가지 카테고리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총 50,000여명의 의료소외층을 직접 찾아가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순회진료 사업을 시작했다.

1985년 양궁협회 2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대한양궁협회 명예회장을 역임하면서 끊임없는 양궁 사랑을 키워왔다. 우리나라 양궁이 세계 최강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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