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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
공격경영 펴는 ‘불도저’형 CEO
오대석 기자 pscientist@businesspost.co.kr | 입력 : 2014-08-28 14:43:49
   
▲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

◆ 생애

정몽혁은 1961년 서울에서 정신영 동아일보 기자와 서울대 음대 출신인 장정자 현대학원 이사장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현대학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비영리법인이다.

아버지인 정신영은 정 회장이 두 살 때인 1962년 독일 유학중 세상을 떠났다. 이후 큰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한 현대 일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1980년 서울 경복고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수리경제학을 전공했다. 1989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32살의 나이로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가 되고 현대석유화학 대표이사도 동시에 맡았다. 그러나 무리한 차입으로 경영이 악화돼 부실경영 책임을 지고 2002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조명기구 제조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 회장, 메티아(옛 아주금속)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9년 12월 현대종합상사가 현대중공업에 인수되면서 현대종합상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 정신영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이다. 어머니 장정자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장 이사장은 극동유화 대표인 장홍선 회장의 누나다.

누나 정일경은 미국 펜실베니아주 블룸버그 대학 회계학과 임광수 교수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사촌 형으로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있다.

이문희 현대SNS 대표와 사이에서 자녀 정현이 정두선 정우선을 두었다.

◆ 학력

1980년 서울 경복고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수리경제학을 전공해 1989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 경력

캘리포니아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1989년 극동 정유 부사장에 올랐다. 원래 일본 유학을 원했으나 그를 아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만류해 일선 경영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현대석유화학 부사장을 거쳐 1993년 현대정유 부사장이 됐다. 1996년 현대석유화학과 현대정유 사장에 취임했다.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주유소 브랜드인 '오일뱅크'를 만들고 1996년 한화에너지(현 SK에너지 인천공장) 인수를 주도하는 등 활발한 경영능력을 보였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1999년 현대석유화학 경영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같은해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UAE의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사로부터 외자유치를 성사시켰다. 2000년 1월 인천정유와 함께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재계서열 13위의 현대정유그룹을 세웠다.

하지만 외자유치 과정에서 현대정유의 최대주주가 된 IPIC는 정 회장의 경영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2000년 정유사 담합사건으로 벌금을 받게 되자 IPIC는 외자유치 때 성실히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2002년 현대정유를 떠났다.

같은해 7월 조명기구 제조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재기를 노렸다.

2005년 정몽혁 회장은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인 메티아(옛 아주금속) 대표이사에 올랐다. 사촌형 정몽구 현대 기아차그룹 회장이 현대가로 다시 불러들인 셈이다.

이후 메티아 대표이사를 맡아오다 2009년 12월 현대종합상사 회장에 선임됐다.

◆ 사건/사고

1999년 현대증권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기소되지 않았다.

검찰은 정 회장 명의 계좌로 54만여 주가 매매됐지만 정 회장이 증권사 직원에게 위임매매해둔 계좌여서 직접 작전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은 1998년 5월부터 같은해 11월까지 현대전자 주식을 고가 매수주문을 내고 매입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띄웠다.

이렇게 매입한 주식량은 현대중공업 주식의 시중 거래량의 23%, 현대상선의 경우 20% 수준에 이르렀고, 이를 위해 2100억여 원이 동원됐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은 "정상적 투자"라고 맞섰으나 검찰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을 주가조작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했다.

◆ 상훈

1994년 국세청장으로부터 납세풍토기여 표창을 받았다.

1994년 충남도지사로부터 국토대청결 운동에 적극 참여한 공로로 환경보호 표창장을 수상했다.

1996년 회사의 경영성과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공로를 인정받아 현대그룹 최고경영자상을 수상했다.

1997년 34회 무역의 날에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1999년 한국산업영상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 어록

“새로운 성장동력은 멀리 있거나 생소한 분야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고 가장 잘 아는 분야에서 찾아야 합니다.”(2012년 경영전략회의 중)

“앞으로는 경영자도 나이와 오너십이 문제가 아니라 경영능력에 따라 냉엄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1998년 인터뷰에서)

“사업이 어려움에 부딪힐수록 트레이딩 분야를 포함한 지금의 강점을 살리고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상사맨의 자세.”(2012년 초 경영전략회의에서)

“회사비전에 대한 강한 확신과 대표이사로서 책임경영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주식을 매입했다.” (2011년 현대상사 주식 매입 당시)

◆ 평가

30대의 젊은 CEO로 현대정유와 현대석유화학 대표가 됐다. 당시 인천정유를 인수하고 ‘오일뱅크’ 브랜드를 발표하면서 활발한 사업추진력을 보여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대종합상사 회장에 취임한 후에도 직접 아프리카 출장을 떠나는 등 공격적 경영으로 실적개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원개발 분야에 특화된 전문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대종합상사 운영에서 보여주는 경영철학은 선택과 집중이다. 트레이딩 분야와 발전사업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분야에 집중해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자사주를 매입해 책임경영의 의지를 보이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 기타

고교시절 국가대표 승마선수를 지낼 만큼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정유 시절 국내에서 생소했던 자동차 레이싱 팀과 아이스하키 팀을 창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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