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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오 델 모나코가 연기한 오텔로는 연기와 노래 모두 전무후무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
지난 두 주간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휴가철 차량으로 붐볐다.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그리고 해외로 피서를 떠났다. 이제 아쉬움을 한가득 남긴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도 무더운 여름은 지나갈 줄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에어컨과 선풍기 앞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더위와 싸우고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테너가수가 한 사람 있다. 바로 황금의 트럼펫이라는 전대미문의 별명을 가진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1915~1982)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이 사람의 소리를 듣고 나면 마치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은 것만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도 있고 말이다.
마리오 델 모나코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난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다. 흔히 플라치도 도밍고를 드라마틱 테너라고들 하는데 모나코의 성질(聲質)에 비하면 도밍고의 그것은 그냥 어린아이 수준이다. 드라마틱 테너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소리를 가진 테너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당연히 무거운 소리를 가졌다. 그들이 어떻게 저런 소리로 고음을 내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걸 글로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그냥 들어 보시라. 그럼 ‘아 이게 드라마틱 테너구나’ 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디 ‘오텔로’의 타이틀 롤과 ‘아이다’의 라다메스 역, 푸치니 ‘투란도트’의 칼라프 역 등이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드라마틱 테너의 배역이다.
당연히 많은 배역에서 리릭-스핀토 테너와 역할이 겹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테너를 구별하는 기준이 보통 이탈리아 오페라에 맞추어져 있으니 바그너 테너를 지칭하는 헬덴테너(Heldentenor)와 조금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황금의 트럼펫이라는 별명이 궁금하신 분은 그냥 그의 음반을 들어보시면 된다. 그의 고음을 들어 보면 마치 트럼펫처럼 시원하게 내지르는 뻥 뚫린 소리를 경험하실 수 있다. 흔히 말하는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의 일명 쓰리 테너의 소리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발성 자체가 혼란스럽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일단 중저음은 고음에 비하면 비교적 대충 부르는 것 같이 들리기도 한다. 마치 고음을 내기 위해 소리를 다른 곳에다가 저장해 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일단 고음만 나오면 갑자기 극도로 집중된 질감의 청량음료같은 소리가 확 튀어나오니 이런 그의 매력에 한 번 빠져들면 아마 평생을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마치 한 치의 느끼함도 허용하지 않는 상남자 스타일의 노래를 한다고 할까.
델 모나코의 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그의 스승의 이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의 스승은 바로 ‘아르투로 멜료끼’다. 그의 이름을 딴 ‘멜료끼 발성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새로운 발성법을 고안한 사람이다.
보통 기본적 성악발성을 ‘벨칸토 창법’이라고 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그것을 단번에 뒤집는 드라마틱한 소리의 발성이 바로 멜료끼에 의해 고안되었고 그것이 델 모나코에 의해 완벽하게 구현된 것이었다.
그보다 조금 늦게 데뷔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테너 프랑코 코렐리도 멜료끼 발성을 연구했을 정도로 그 당시 모나코의 소리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벨칸토 창법의 근간을 흔들면서 심지어 목에 무리를 줄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를 기피하는 성악가들도 많지만 델 모나코에게 아주 잘 맞는 발성법이었다.
그의 소리가 얼마나 엄청난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원형극장에서 공연되는 야외오페라로 유명한 베로나의 신문 가판대 주인의 이야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요즘 테너들이 야외오페라에서 마이크를 써서 노래하기 때문에 다 가짜다. 그리고 예전 마이크를 쓰지 않던 시절에 원형극장 안에서 노래했던 테너들 중 유일하게 극장 밖 자신의 신문 가판대까지 그 목소리가 울렸던 테너가 단 한 명 있다. 그게 바로 마리오 델 모나코다.
델 모나코의 대표적 레퍼토리로는 오텔로와 팔리아치, 까발레리아 루스띠까나, 그리고 투란도트와 안드레아 쉐니에 등이다. 베르디 중기 이후의 오페라와, 베리즈모 오페라들에 집중된다.
특히 그의 오텔로는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아까 잠깐 언급했던 최고의 테너 코렐리가 감히 델 모나코와 비교되기 싫다며 오텔로 공연과 녹음을 거부했으랴. 결국 코렐리는 말년에 소프라노와 함께 오텔로의 1막 마지막 이중창밖에 부르지 않았다. 성악 팬들에게 참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만큼 델 모나코의 오텔로는 매우 뛰어나다. 진짜 오텔로가 저랬을 것 같은, 아니 저래야만 할 것 같은 연기와 노래를 보여준다. 카라얀이 지휘한 오페라 녹음으로 만날 수 있고, 조금 더 발품을 판다면 일본에서 바리톤 티토 곱비와 공연한 흑백 영상물로도 그의 오텔로를 경험할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델 모나코가 출현하면서 오페라가 세계적으로 융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그와 디 스테파노, 코렐리가 가졌던 라이벌 모드는 클래식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 등 8군데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도 노래를 못하게 될까 두려워 병원에 실려가기 전 High C 음을 내지르고 쓰러졌다는 거짓말같은 소문이 있을 정도로 노래에 대한 그의 애착은 대단했다.
이런 불세출의 명테너의 소리를 영상과 음반으로나마 감상할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남은 여름, 델 모나코의 시원한 소리와 압도적 성량을 들으며 잠시마나 무더위에서 벗어나보는 것은 어떨까.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