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씨가 10월 26일로 세계 오페라무대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조수미씨는 "데뷔 30주년 때 듣고 싶은 평가가 있다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음악가’다"고 말해왔다. ◆ 조수미, 데뷔 30주년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 ‘라 프리마돈나’를 미국에서 27일부터 연다고 25일 밝혔다. 조씨는 27일 오후 7시 애틀란타를 시작으로 30일 휴스턴, 11월 4일 달라스에서 미국 투어 공연을 한다. 공연의 주최를 맡은 유재송 JDDA 파운데이션 회장은 “조수미씨는 서울대 재학 중 이태리로 유학 가서 많은 고생을 하고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 사람”이라며 “ 유학생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 미주 공연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공연 프로그램은 한인들에게 친숙한 오페라곡, 가곡, 그리고 한국민요 등으로 이루어진다. 조씨는 8월과 9월에는 충주, 군산, 서울 예술의 전당, 창원, 안양에서 국내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조수미씨는 1986년 10월 26일 만 23세에 이탈리아 5대 오페라 극장 가운데 하나인 트리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역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동양인 프리마돈나로 관심을 받았다. ◆ 절대음감의 조수미 조수미씨는 1962년 11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조씨의 부모는 "아이가 너무 똑똑해 단명할 운수이니 나쁜 액운을 물리치려면 무언가 두드리게 해야 한다"는 동네 할머니들의 충고에 따라 어린 조씨에게 피아노를 사줬다. 어머니는 딸이 절대음감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음악가의 길로 이끌었다. 선화예중에서 성악의 첫 스승 유병무 교사를 만나 기초를 닦았고 선화예고에서는 이경숙 서울대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1981년 서울대 음대 창설 이래 최고의 점수를 얻어 수석으로 성악과에 입학했으나 사랑에 빠져 학업을 등한시하다가 학생들 가운데 가장 낮은 성적을 받았다. 결국 학교에서 제적되고 1983년 3월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는 5년제인 음악원을 2년 만에 졸업하고 1986년 첫 주연으로 데뷔했다. 1988년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에서 오스카 역으로 플라시도 도밍고 등과 함께 녹음에 함께 참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쌓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 오디션에서 명 지휘자 카라얀은 조수미씨에 대해 "신이 내린 목소리"라며 극찬했다. 그 뒤 미국과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했다. 1993년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준다는 황금 기러기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 1년에 300일 이상 세계 각지에 공연을 다니고 있다.
◆ 각별한 애국심 조씨는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조씨가 유학생활을 하던 1983년엔 동양인 유학생이 거의 없었다. 오페라 배역에서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이 있었다. 금발머리의 유럽형 외모가 필요한데 조씨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캐스팅에 그를 제외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공항에서 여권을 제시하면 한국을 몰라 이것을 설명하느라 비행기가 제때 뜨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수미씨는 "한국이 빨리 커야되겠다”며 “한국에 좋은 일이 있도록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조씨는 한국에서 국제적인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부산아시안게임 홍보대사와 외교부 문화홍보담당 외교사절, 서울시 홍보대사,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홍보대사, 국가이미지 홍보대사, 여수EXPO유치위원회 명예홍보대사, 인천국제공항 홍보대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명선거홍보대사, 인천아시안게임 홍보대사 등을 맡고 있다. 사회활동도 꾸준히 한다. 3년 전부터 시작했던 장애인 어린이를 위한 후원, 반려동물을 위한 일, 유네스코 평화예술인 활동 등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부모의 고향인 경남 창원에 예술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