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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대통령, 헤지펀드와 정면승부
페르난데스 "벌처펀드에 굴복 안해"...국가 디폴트 불구 강경입장 고수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 입력 : 2014-08-01 14:47:49

   
▲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계 헤지펀드의 공세 속에서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 3위 경제대국 아르헨티나가 3113년만에 또 다시 디폴트사태를 맞았다. 아르헨티나는 미국계 헤지펀드들과 채무조정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에 이어 두 번째 디폴트상황에 직면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로 낮춘데 이어 피치도 아르헨티나 외화표시 채권등급을 제한적 디폴트로 낮췄다.

페르난데스 "벌처펀드와 협상 않겠다"

아르헨티나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디폴트는 정확히 국채 디폴트(sovereign default). 국채 디폴트란 채무집행 불이행을 뜻하는데 한 국가가 채권자들에게 갚아야 할 채무를 갚지 못할 때 발생한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에도 총 1천억 달러 규모의 디폴트에 빠진 적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가 미국계 헤지펀드에 갚아야 할 부채규모는 약 15억 달러에 이른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디폴트가 미국계 헤지펀드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는 채무를 상환해 왔다헤지펀드들은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어 그들의 뜻대로 하길 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채무를 놓고 협상을 주도했던 악셀 키실로프 경제장관도 "아르헨티나 정부의 제안은 채권단에 수용되지 않았다"며 "그들은 더욱 많은 것을 원했다"고 반발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채무상환 시한인 지난달 31일 이전에도 헤지펀드 채권단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우리는 돈을 갚으려 하는데 (채권단과 미국법원이) 이를 막고 있다"면서 "벌처펀드 채권단이 아르헨티나를 위험에 빠트린다면 협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벌처펀드란 대머리 독수리 펀드란 뜻인데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독수리의 습성에 비유한 데서 나온 말이다. 부실기업과 부실채권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리는 펀드를 가리킨다.

페르난데스 집권 후 아르헨티나 경제 갈수록 악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2007년과 2011년 대통령 선거에서 잇달아 당선된 페론주의 계열 정의당 소속 여성정치인이다. 54대 대통령이었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부인이기도 하다

변호사 출신으로 일찌감치 정계에 입문해 남편이 대통령 당선되기 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남편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계속 상원으로 활동하는 등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7년 남편의 후임으로 대통령선거에 나서 과반에 가까운 득표율로 승리하면서 세계 최초의 부부대통령이자 이사벨 페론 이후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여성대통령이 됐다.

2010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 10대 여성 지도자 가운데 세 번째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1년 재선에서 53%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돼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페르난데스가 대통령을 맡은 이후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남편인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과 내수소비 증가에 힘입어 고도성장을 이뤘다

페르난데스 집권 후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주력산업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속에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빈곤층도 급격히 늘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지난해 재정적자도 2012년 대비 80%가량 늘었다.

집에 불났는데 보험계약 체결하면 무슨 소용?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침몰하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구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인플레 억제를 명분으로 가격동결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은 물론 수입장벽을 높이면서까지 외화유출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디폴트 위기로 국제시장에서 고립되자 러시아와 중국에도 손을 내밀었다. 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75억 달러의 지원약속을 받아냈으며 11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을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도 아르헨티나의 신용도 추락을 막지 못했다. 알베르토 라모스 골드만삭스 연구원은 "집에 불이 났는데 보험계약을 체결한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은 현재 300억 달러 수준으로 15억 달러의 빚을 갚는 데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2001년 첫 디폴트사태 때 탕감받았던 채무까지 다시 떠안아야 한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미국계 헤지펀드와 맞서는 이유다. 가뜩이나 집권 후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국민들 대다수가 채무상환에 반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르헨티나가 채무를 상환하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대형 헤지펀드 불난 집에 부채질

페르난데스는 지난 브라질 월드컵 때 결승전 관람을 초청받고도 "나는 축구팬이 아니다" 라며 거절해 국민의 원성을 샀다. 그의 이런 태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와 비교돼 국민들을 더욱 실망시켰다. 여기에 디폴트까지 겹쳐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태다.

15억 달러 채무 전액을 한꺼번에 갚으라고 아르헨티나 정부를 압박하는 미국계 헤지펀드사는 NML캐피털 등 2곳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들은 아르헨티나 기업주식을 사들여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31일 보도에 따르면 조지 소로스 패밀리오피스, 써드 포인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 등 거대 헤지펀드들이 아르헨티나 에너지 금융 통신기업 주식을 매입했다.

전문가들은 디폴트선언으로 주식과 채권이 급락하자 미국의 또 다른 헤지펀드들이 이삭줍기에 나섰다고 본다.

미국 헤지펀드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마이클 노보그라츠는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아르헨티나 디폴트사태는 투자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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