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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은 1947년 황해도 봉산에서 최기호 고려아연 창업주의 3남으로 태어났다. 경복고와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콜로라도 광산대에서 자원공학 석사학위,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자원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려아연 계열사인 서린상사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고려아연의 부사장과 사장,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고려아연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가족관계 최기호 고려아연 창업주의 6남3녀 가운데 3남이다.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과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형이다.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과 최정운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남동생이다. 부인 이신영씨와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최창근은 정재계 및 언론계와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장녀 최경아씨는 천신일 세중 회장의 장남 천세전 세중 사장과 결혼했다. 차녀 최강민씨는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외아들인 방성훈 스포츠조선 부사장과 결혼했다. 외아들 최민석씨는 노바스코시아뱅크에서 근무중인데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딸 김지수씨와 2015년 결혼했다. 김지수씨는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출신으로 2011년부터 윤세인이라는 예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했다. ◆ 학력 1966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미국 콜로라도 광산대학교에서 자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자원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경력 1984년 고려아연의 계열회사인 서린상사에 입사했다. 1994년 고려아연 부사장을 지냈다. 1996년 고려아연 사장을 맡았다. 2004년 고려아연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9년 고려아연 회장에 올랐다. ◆ 사건/사고 2013년 2월에 공장증축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고용노동부는 3월에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뒤 고려아연에 협력업체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 교육이 미약하다고 지적을 했다. 당시 특별근로감독에서 고려아연은 232건의 지적사항을 받았으며 이는 대부분 기본적인 것이었다. 고려아연은 고용노동부의 지적을 받은 뒤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정기보수 공사를 하던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12월 신규사업에 투자했다가 1년도 되지 않아 사업을 포기했다. 새로운 수익창출을 위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업체인 드림피어에 투자했으나 10개월만에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서린정보기술은 드림피어에 3억7천만 원을 투자해 70%의 지분을 획득하고 영풍그룹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서린정보기술은 고려아연과 같은 영풍그룹의 자회사다. 고려아연이 33.34%, 최 회장이 3.67%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드림피어는 부동산 앱 ‘두껍아 두껍아’를 개발했다. 드림피어가 예측했던 수준의 수익을 거두지 못하자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6월28일 울산 온산읍 고려아연 2공장에서 황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해 협력업체 직원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방당국은 부상자들이 황산 제조공정 배관 보수 준비작업으로 배관을 해체하다가 황산 1천ℓ가량(농도 70%)이 누출되며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고 직후 고려아연은 “하청 근로자들이 작업대상이 아닌, 즉 'V' 표시가 없는 맨홀 뚜껑을 여는 바람에 황산이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사고 다음날 현장감식을 벌인 결과 “사고가 난 배관에는 작업 대상 표시인 ‘V’자가 없었다”고 밝혔다. ‘V’자 표시는 고려아연이 작업해도 안전하다는 점을 작업자에게 알리기 위해 파란색 페인트로 표시하는 기호다. 이에 대해 전국플랜트건설노조는 경찰이 밝힌 것과는 달리 배관 뚜껑에는 희미한 V자 흔적이 있었다며 “고려아연이 사고 책임을 축소·은폐한 정황이 있다”고 반박했다. 고려아연과 노조 간에 진실공방이 벌어지자 경찰은 사고 배관 맨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다. 그 결과 배관에는 ‘V’ 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국과수 실험에서 페인트로 그려진 ‘V’자 표시가 황산에 반응해 지워진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번 사고는 황산을 모두 제거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업을 지시한 원·하청의 안전관리 소홀 책임이 확실한 만큼 엄정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은 사고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은채 근로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들은 책임을 피하려 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15년 11월 근로자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한 후 고려아연은 안전사고 재발 방지 종합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7개월만에 다시 인재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 형식적인 대책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고려아연은 2015년 7월에도 스팀 배관 철거 작업 중 폭발이 발생해 황산연료 일부가 누출되는 등 매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 상훈 1999년 한국노동교육원이 노사관계 정착에 기여한 개인에 수여하는 노사화합 개인공로상을 받았다. 2009년 '제43회 납세자의 날' 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9년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자랑스러운 공대 동문’으로 선정됐다. 2011년 한국경제신문이 주관한 ‘2011 올해의 CEO대상’ 리더쉽경영부문에 선정됐다. ◆ 어록 “직원이 편하면 회사가 편하다. 편한 곳에서 생산물결이 넘실거리지 않을 수 없고 회사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다”(2015/11/06 중앙일보에서) “기업 성과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사회공헌활동과 같은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기업이 궁극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2013/12/26 성금을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하며) “기업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2011/12월 서울매거진과 인터뷰에서) “고려아연의 제련기술은 유럽이나 일본업체들도 완벽하게 따라오지 못하는 기술”(2009/03/23 한국경제 기자와 인터뷰에서) “전자 소재로 쓰이는 인듐과 같은 고부가가치 소재 생산량을 대폭 확대해 새로운 현금창출원로 삼을 계획”(2009/03/23 한국경제 기자와 인터뷰에서) ◆ 평가 오너경영인이지만 전문경영인으로서도 손색없는 경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국내 자원산업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최창근은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 광산대학교에서 자원공학 석사를,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자원경제학 석사학위를 받는 등 자원산업 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특히 친환경 공법인 아연잔재처리기술(TSL)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TSL은 유독물질로 취급되는 아연 잔재를 환경 친화적인 청정슬래그 형태로 만들어 시멘트 원료와 같은 가철재로 판매하는 기술이다. 발로 뛰는 경영을 실천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 콩고 등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의 오지를 마다 않고 전 세계 3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현지 광산업체 경영진과 만나 협상을 벌이거나 새로운 광산 프로젝트를 점검해 왔다. 고려아연이 자원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에서 비철금속 제련산업을 시작한 지 30여년 만에 세계 선진 제련소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은 최창근의 실천 경영에 힘입은 바가 컸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리더로 알려져 있다. 잔잔한 미소와 온화하고 조용한 업무추진 스타일과는 달리 한번 목표가 정해지면 묵묵히 앞장서 솔선수범함으로써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직 구성원이 힘들어 할 때 독촉하거나 채찍을 가하기보다는 믿고 기다리며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해진다. ◆ 기타 취미는 골프와 바둑이다. 바둑은 아마3단의 실력이다. 좌우명은 ‘최선을 다하라’다 빌게이츠를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아연은 3형제가 릴레이식 경영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최기호 창업주는 3형제에게 각각 경제학과 경영학, 금속공학, 자원공학을 전공하도록 했다. 고려아연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공부를 3형제가 나눠 한 것이다. 장남 최창걸 명예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컬럼비아대학원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고려아연 설립 때부터 경영에 참여했으며 2002년까지 고려아연 회장을 역임했다. 2002년 동생 최창영 명예회장에게 회장을 물려주고 고려아연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차남 최창영 명예회장은 서울대 금속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금속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아연에 입사해 기술개발에 주력하다 2002년 고려아연 회장에 올랐다. 2006년 최창근에게 회장자리를 물려주고 고려아연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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