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별세했다. 향년 94세.
김 전 총장은 1937년 일본 공군의 중국 난징 폭격을 보고 공군에서 활동하며 조국독립에 이바지하기로 결심했다. 김 전 총장은 1944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중국 공군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미국 공군의 랜돌프 기지에서 정식 비행훈련을 받고 조종사가 됐다. 김 전 총장은 1947년 귀국해 조선국방경비대에 들어갔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군에 입대해 이듬해 공군 창설에 기여했다. 김 전 총장은 1950년 6월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다음날 공군 주요간부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미 공군의 F-51 ‘무스탕’ 전투기를 인수했다. 김 전 총장은 일주일도 안 되는 비행훈련을 받은 다음 F-51을 타고 한국에 돌아와 바로 전투에 참여했다. 김 전 총장은 전쟁 기간 동안 제10전투비행전 대장을 맡았다. 그는 지휘관인데도 여러 차례 직접 출격에 나서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김 전 총장은 1951년 8월 지리산 공비토벌 항공작전과 같은해 10월 한국공군 단독출격작전 등 19차례의 전투 출격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김 전 총장은 1952년 1월에는 유엔군이 500회를 넘는 출격에도 성공하지 못한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을 완수하기도 했다. 김 전 총장은 1960~1962년 제6대 공군참모총장을 올랐다. 김 전 총장은 5.16 쿠데타를 묵인하는 등 박정희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1961년 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역임했고 1962년 예편하고 대만 대사를 맡았다. 그는 대만 대사를 맡으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장제스 총통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김 전 총장은 1971년 귀국해 박 대통령의 권유를 받아 공화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그 뒤 교통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 추천으로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이 된다.
김 전 총장은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살아온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김구 선생의 장남인 김인 씨는 해방 전 독립운동을 하다 사망했기에 둘째인 김 전 총장이 김구 선생의 적통을 이어받았다. 김 전 총장은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김구 선생을 수행하기도 했다. 김 전 총장은 회고록을 통해 “백범 김구의 가족이라는 사실은 때로는 크나큰 자랑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었지만 늘 나와 가족의 어깨 위에 무겁게 드리워진 버거운 숙명”이라고 말했다. 김 전 총장 유족으로는 김진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과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 김휘 전 에이블리 대표, 김미 씨 등 3남1녀가 있고 사위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이고 영결식은 21일 오전 6시30분에 열린다. 안장식은 21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서 공군장으로 엄수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