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는 1964년 9월17일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산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지능연구센터 연구원을 거쳐 연구개발정보센터 선임연구원으로 검색관련 기술을 연구했다. 숭실대학교 정보과학대학 컴퓨터학부 부교수로 재직하며 검색엔진 연구를 계속해 자연어 검색 기술을 인터넷 검색 사이트인 ‘엠파스’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였다. 네이버컴의 투자를 받아 독립법인 ‘서치솔루션’을 설립했다. NHN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서비스책임자(CAO),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치며 NHN 경영 전반을 총괄했다. NHN이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로 기업분할되면서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 가족관계 ◆ 학력 1987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 학사를 졸업했다. 198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산학 석사를 받았고 1993년 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 경력 1993년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지능연구센터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했다. 1994년 과학기술처 산하 연구기관인 연구개발정보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지냈다. 1997년부터 2008년 8월까지 숭실대학교 정보과학대학 컴퓨터학부 부교수로 재직했다. 2000년 네이버컴이 10억 원 투자에 매월 4000만 원의 연구비 지원을 약속해 ‘서치솔루션’이라는 독립법인을 설립했다. 서치솔루션과 네이버컴은 공동연구를 진행해 검색엔진 ‘넥서치’를 개발했다. 2001년 NHN이 주식교환 방식으로 서치솔루션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이준호는 NHN의 대주주가 됐다. 2005년 NHN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입사한 뒤 2007년 CAO, 2009년 COO에 올랐다. 2013년 8월 NHN이 포털중심의 인터넷사업을 하는 네이버와 게임사업을 담당하는 NHN에터테인먼트로 기업분할 되며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14년 벤처기업인 1조 원대 주식갑부 대열에 들어섰다. ◆ 사건/사고 1999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83학번 동기인 엠파스 박석봉 CTO의 요청으로 엠파스에 자연어 검색 기술을 독점 제공했다. 그러나 독점기술 제공에 대한 대가를 두고 의견차이가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에 컴퓨터공학과 3년 후배인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투자를 제안해 엠파스와 관계를 청산하고 독립법인 ‘서치솔루션’을 설립했다. 2001년 NHN이 주식교환 방식으로 서치솔루션을 인수해 NHN 대주주가 됐고 숭실대학교 교수직에 복귀했다. 2005년 NHN CTO 로 입사했을 당시 NHN은 포털사업과 게임사업으로 파벌이 나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네이버의 포털사업이 주도권을 잡으며 게임부문 특수관계인들의 퇴진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포털사업의 핵심인 검색엔진을 맡은 이준호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후 NHN의 사업 행보를 놓고 이해진 의장과 이준호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NHN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2대 주주인 이해진 의장과 3대 주주인 이준호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결국 2013년 8월 NHN은 인터넷사업부문 네이버와 게임사업부문 NHN엔터테인먼트로 기업분할이 진행되었다. 이준호는 NHN엔터테인먼트의 회장을 맡게 되었다. 이해진 의장과 네이버가 NHN엔터테인먼트 주식을 매각한데 이어 이준호가 네이버 지분을 매각해 두 회사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2016년 3월 NHN엔터테인먼트가 특허관리 전문 자회사 K-이노베이션을 통해 카카오에 특허권 침해에 대한 ‘경고장’을 발송했다. 또 미국의 페이스북과 일본의 라인에도 특허침해 의혹을 제기했다. NHN엔터테인먼트가 한솥밥을 같이 먹었던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LINE)과 NHN엔터테인먼트의 전신 한게임을 창업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상대로 경고장을 발송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상훈 ◆ 어록 "구글보다 네이버 검색이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9/09/27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입력된 검색어를 통해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실제 자료들과 비교해 가장 정확도 높은 증거를 뽑아내는 게 검색이론의 핵심입니다” (2000/04/21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이 들으면 쉽게 이해할 말을 컴퓨터가 알아듣게 설계하는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2000/04/21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 평가 이준호는 IT업계에서 정보검색 기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1990년대부터 인터넷 보급률 높아지면서 IT벤처 붐이 불자 검색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찍부터 검색부문의 연구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네이버 검색을 독보적 위치로 올려놓으며 한국을 '구글 검색엔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연구개발정보센터에서 근무하며 정보검색시스템 ‘KRISTAL-Ⅱ’를 개발했다. 국내 검색부문의 연구만으론 부족함을 느껴 미국 코넬대학교 게오르그 셀튼 교수를 찾아가 검색엔진에 관한 연구를 함께했다. 1998년까지 국내외 저명 학회에서 50여 편의 검색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이후 상업적 서비스를 위한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1999년 자연어 검색 기술을 탑재한 지능형 정보검색 시스템을 완성해 엠파스에 독점적으로 제공하게 된다. 당시 국내 포털시장은 야후의 독점 체제로 구축되었는데 엠파스의 문장 검색 기술은 큰 위협으로 작용했다. 이준호가 네이버컴으로부터 지원받아 설립한 서치 솔루션은 통합검색 서비스 기술을 개발해 자체 검색 기술이 없었던 네이버컴에 독점적으로 제공했다. 네이버는 이 기술을 활용해 야후, 다음, 라이코스코리아, 엠파스를 제치고 포털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네이버의 포털사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검색엔진 네이버가 포털사업자로서 이용자가 다른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관문 역할을 해야 하는 데 도리어 체류 시간을 늘리는 전략을 택해 한국 인터넷 생태계 발전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NHN엔터테인먼트 단독대표에 오른 뒤 주력사업인 게임영역보다 사물인터넷과 핀테크 등 게임 외의 영역으로 다각화를 시작해 독창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사업은 축소를 거듭해 게임부문에 큰 관심이 없었던 이준호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기타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정주 NXC 대표, 김범수 카카오 의장,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사장, 이재웅 다음 창업자 등이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동문이다. 2003년 12월10일 숭실대학교에 학교발전기금 10억 원을 기부했다. 공과대학 출신이지만 인문학과 미술에 관심이 많고 IT업계의 대표적인 와인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주중 절반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주말엔 지인들과 함께 라이딩을 즐기는 자전거 마니아다. 2014년 이준호는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네이버 의장보다 2배 이상인 43억71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는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겸 이사회 의장에 오르면서 NHN측으로부터 수령한 퇴직금 21억7000만 원을 포함한 금액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