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는 1963년 10월8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포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골드만삭스에서 2년 정도 근무하다가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하던 당시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공부하던 박태준 전 총리의 넷째 딸 박경아씨와 결혼했다. 골드만삭스로 복귀해 뉴욕 본사, 홍콩지사 등에서 근무한 뒤 살로만스미스바니로 직장을 옮겼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의 40억 달러 외평채 발행 작업에 참여했다. 칼라일그룹에 입사해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사모펀드(PEF)시장에서 주목 받았다. 칼라일그룹을 그만두고 사모펀드 회사인 MBK파트너스를 설립했다. 대우정밀 매각 건을 시작으로 수많은 인수입찰에 참여했고 굵직한 인수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M&A 업계의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불린다. 현재 MBK파트너스의 회장으로 자산규모 100억 달러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그룹을 이끌고 있다. ◆ 가족관계 김병주는 박태준 전 총리의 막내딸 박경아씨와 결혼했으며 2명의 아들이 있다. 차남은 김재민군이다. 김군은 한국 리틀야구대표팀 소속이다. 김군은 2014년 한국 리틀야구대표팀이 29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오를 때 큰 활약을 펼쳤다. 김병주의 동서는 윤영각 전 파인스트리트 회장이다. 윤 회장은 박태준 전 총리의 맏사위다. 윤 회장은 국내 대표 회계컨설팅업체 삼정KPMG를 20년 동안 이끈 후 물러나 2014년 사모펀드 회사인 파인스트리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 학력 미국 하버포드칼리지에서 우등생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우등생에게만 주어진다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았다. ◆ 경력 대학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서 2년 정도 근무했다. 골드만삭스를 그만두고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다시 골드만삭스로 돌아와 뉴욕 본사, 홍콩 지사 등에서 4년 반 정도 근무했다. 1997년 살로만스미스바니로 직장을 옮겨 3년 정도 근무했다. 1998년 외환위기(IMF) 당시 한국 정부의 40억 달러 외평채 발행 작업에 참여했다. 1999년 당시 최고의 사모펀드 운용사던 칼라일그룹에 입사했다. 2000년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사모펀드(PEF)시장에서 주목받았다. 2005년 칼라일그룹에서 독립해 사모펀드회사 MBK파트너스를 설립하고 1조 원 규모의 1호 펀드를 조성했다. MBK파트너스는 김병주와 전직 칼라일그룹 아시아지역 간부들이 합류해 만든 한국, 중국, 일본 합작 펀드다. 2007년 사재를 출연해 MBK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았다. 현재 MBK파트너스의 회장을 맡고 있다. ◆ 사건/사고 2000년 11월 김병주를 앞세운 칼라일그룹은 ‘한미은행’ 지분 36.55%를 4억1230만 달러에 사들였다. 김병주는 이 계약을 성사시키며 국내 기업인수합병(buyout) 시장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5년 3월 한국은행은 외국 투기자본 폐해의 구체적 사례로 칼라일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를 뽑았다. 당시 은행법상 외국인이 금융기관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기 위해서는 외국 금융회사이거나 외국 금융회사의 지주회사여야 하는데 칼라일그룹은 자격이 없었다. 당시 칼라일그룹은 미국계 투자은행 JP모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주주가 JP모건이 되는 조건으로 한미은행을 인수했다. 2005년 7월 MBK파트너스 설립 후 처음으로 뛰어든 인수전인 ‘대우정밀’ 매각 입찰에서 효성그룹이 입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고배를 마셨다. 2006년 6월 MBK파트너스가 한국씨티은행의 자회사인 ‘한미캐피탈’을 인수했다. 씨티은행은 한미캐피탈 주식 535만5603주(지분율 35%)전량과 113억2500만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MBK파트너스에 넘겼다. 2006년 8월 MBK파트너스가 14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대만 최대 케이블TV 업체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CNS)'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같은 해 10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 인수전에는 MBK파트너스 외에 KKR, CVC아시아퍼시픽, 칼라일그룹, TPG뉴브릿지, 맥쿼리은행, 골드만삭스 사모펀드 등 세계적인 사모펀드들이 참여했다. 2008년 3월 국민유선방송투자(KCI)가 ‘씨앤앰’ 인수를 마무리했다. 국민유선방송투자는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MKOF)와 MBK파트너스 주도로 설립된 컨소시엄이다. 국민유선방송투자은 씨앤앰 인수에 2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다. 2009년 5월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을 인수했다. 지분 인수금액은 14억 달러로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이뤄진 기업인수합병(M&A) 계약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2009년 11월 ‘금호렌터카‘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며 우선협상대상자로 KT와 MBK파트너스가 구성한 KT-MBK컨소시엄이 선정됐다. 2010년 3월 KT를 상대로 금호렌터카 인수를 마무리했다. 총 인수 대금은 3000억 원이며 KT와 MBK파트너스가 50대50으로 투자했다. 2012년 5월과 6월에 각각 ‘웅진코웨이’와 '하이마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웅진코웨이 우선협상자에는 GS리테일이 선정됐고 하이마트는 MBK파트너스가 인수 우선협상자에 선정됐으나 실사 후 포기했다. 2012년 7월 웅진그룹이 KTB사모펀드와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웅진코웨이를 1조2천억 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같은해 8월 MBK파트너스는 웅진그룹과 웅진코웨이 지분 30.9%를 전량 매입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 1월 일본 3위 커피프렌차이즈 업체인 ‘고메다(KOMEDA)’ 지분 100%와 경영권에 대한 양수도계약(SPA)을 체결했다. 2013년 1월 ‘네파‘의 지분 53%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대금은 5500억 원이었다. 2013년 5월 ‘ING생명‘ 인수전에 참여해 인수 우선협상자에 선정된 후 같은해 12월 1조8400억 원에 인수했다. 2013년 7월 22억5천만 달러 규모의 3호 펀드 설립을 마무리했다. 2013년 7월 국민연금이 사모투자펀드(PEF) 분야 운용사 3곳으로 MBK파트너스, 유니슨캐피탈, 보고펀드를 선정했다. 2014년 5월 국세청이 MBK파트너스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벌였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2009년에 이어 5년 만에 세무조사를 받는 것"이라며 "정기세무조사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2014년 7월 희망연대노조 씨앤앰 지부가 MBK파트너스가 입주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노조 측은 “씨앤앰의 진짜 사장인 MBK파트너스가 노동자 109명의 부당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11월 씨앤앰 노동자 2명이 광화문 서울신문 옥외광고판 위에서 109명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외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노조 측 관계자 200여 명이 김병주의 집 앞을 찾아가 씨앤앰 사태 해결에 김 회장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했다. 2015년 6월 SK그룹의 계열사인 ‘SK루브리컨츠’를 인수하기로 했다. MBK파트너스는 SK루브리컨츠의 매각 대금으로 2조5천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8월 ‘홈플러스’ 인수전에 참여해 9월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인수대금은 7조2천억 원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 바이아웃(buyout) 거래로 기록됐다. 2015년 9월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에 반대해 홈플러스 노조가 들고 일어났다. 같은 달 김병주는 홈플러스 인수 건으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김병주는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정감사 출석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김병주의 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 의원은 "한 예로 지난 9월6일 김병주 회장의 서울-뉴욕 항공권은 일등석(1200만 원) 이었던 반면 국감증인 출석일인 6일 항공권은 이코노미석(717 달러, 한화 약 75만원)이었다“고 지적했다. ◆ 상훈 2012년 포춘코리아가 선정하는 '2012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인물'에 선정됐다. 2015년 블룸버그(Bloomberg)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가운데 42위에 올랐다. ◆ 어록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도움을 받은 사람이 각자 개인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주변의 누군가에게 자신이 받은 도움을 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MBK장학재단 인사말 가운데) “아시아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답은 시장에서 나와야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망가졌다. 미국에서 자라는 풀을 꺾어 한국에 가져와 심는다고 그 풀이 자라날 순 없다. 싱가폴의 리콴유 총리가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닌 아시아식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아시아에선 아시아식 자본주의가 필요하다.” (2009/06/18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 세계경제포럼에서)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은 세계 10대 경제권에 속하는 지역이며 아시아-태평양지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경쟁이 비교적 적고 기업 가치는 낮게 평가돼 있다.” (2005/03 MBK파트너스를 만들며 언론인터뷰에서) “한미은행 투자는 칼라일그룹의 전 세계 현금 투자액 가운데 가장 큰 액수였다. 한국 경제가 회복할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투자할 수 있었다.” “칼라일그룹은 미국 다음으로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미은행 매각대금을 아시아지역에 그대로 남겨둔 뒤 대부분 한국에 재투자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전히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2004/02/23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의 합병을 발표한 뒤 언론인터뷰에서) “칼라일그룹은 한국 투자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칼라일 그룹의 아시아 본사는 서울에 있다. 칼라일그룹은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이 가장 유망한 투자처라고 생각한다." (2003/10/15 LG와 함께 하나로통신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기자회견장에서) "지금 당장은 충격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01/03/30 한미은행장 교체를 결정한 뒤 언론인터뷰에서) “선진국에서는 이사회 의장도 중요한 자리다.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일을 한다. 독특한 시각인지 모르지만 서양 방식에는 분명 배울 것이 있다. 그렇다고 한국 현실을 무시하고 밀어붙이진 않을 것이다.” (2001/03/15 한미은행장 교체 관련 언론인터뷰 가운데) “합병만이 자산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합병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주주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0년 한미은행 인수 당시 기자 인터뷰에서) ◆ 평가 김병주는 여러 건의 대규모 인수전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둬 기업인수합병(M&A)계의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린다. 1조원 이상의 대형 M&A에 주로 베팅해 ‘규모의 경제’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MBK파트너스가 펼치는 수익성에 치중한 경영 때문에 ‘좋지 않은 손’이라 불리기도 한다. 인수합병을 주로 하는 사모펀드는 보통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데 MBK파트너스도 이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MBK파트너스는 설립 당시 “진짜 아시아계라 말할 수 있는 첫 기업인수합병(buyout) 펀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MBK파트너스가 반 외자정서로 한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에 외국자본 비율이 높아 외국계 사모펀드로 취급받기도 한다. MBK파트너스는 국내법인으로 등록돼 있지만 종종 ‘외국자본 먹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샌디 웨일 전 씨티그룹 공동회장은 2015년 한 인터뷰에서 김병주에 대해 “마이클(김병주)은 마땅히 성공해야할 젊은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가 거느린 회사 수가 많아지면서 기업의 인수합병(Buy)에는 강하나 기업 매각(Out)에는 약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 기타 'MBK'라는 영문의 회사명은 김병주의 영문 이름인 ‘마이클 병주 김(Michael Byungju Kim)’에서 따왔다. 책읽기를 좋아해 어린 시절 문학도를 꿈꿨다고 전해진다. 고급스러운 영어를 구사하여 영어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시절 미국대학 우등생들의 친목 단체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멤버이기도 했다. 박태준 전 총리의 막내딸 박경아씨는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와 결혼했으나 2년 만인 1990년 이혼했다. 박경아씨는 그 뒤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 유학 중에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하던 김병주를 만나 재혼했다. 1994년 골드만삭스 재직시절에 포항제철이 뉴욕거래소에 상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역대 하버드대학교에 기부한 동양인 가운데 최대 금액으로 알려졌다. 하버드대학교는 그 돈으로 김병주의 아버지인 김기영씨 이름을 딴 ‘KYKIM빌딩’을 지었다. 2011년 12월 한국 리틀야구연맹에 3년 동안 기부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영관 한국 리틀야구연맹 회장은 박태준 전 총리의 장례식장을 찾아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막내사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함께 연간 1천만 원씩 3년간 리틀야구연맹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김병주의 차남 김재민군은 2014년 한국 리틀야구대표팀이 29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오를 때 큰 활약을 펼쳤다. 2013년 10월 국회에 따르면 김병주의 월 급여는 9억7200만 원이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116억 원이 넘으며 성과보수는 제외한 금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