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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원 SKC 회장. |
◆ 생애
최신원은 1952년 3월20일 경기도 수원에서 선경그룹(현 SK그룹) 창업자 최종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의 사촌 동생이다.
경희대 경영학과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선경인더스트리에 입사했다. 선경 전무와 부사장, SK유통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SKC 회장과 SK텔레시스 회장에 올랐다.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한국상표디자인협회(KOTA) 회장을 맡고 있다.
회사경영이 어려워지면서 SKC의 등기임원과 대표이사에서 사퇴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봉사와 기부 등 대외활동에 주력하다 SK그룹의 뿌리와도 같은 SK네트웍스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19년만에 SK네트웍스 경영에 복귀하게 됐다.
최신원은 SK네트웍스 주식 115만2450주(지분율 0.46%)를 보유해 개인 최대주주다.
◆ 가족관계
최종건 SK그룹 창업주는 1953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기도 수원시 평동에서 선경직물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작은 아버지인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은 1962년 10여 년 동안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해 경영에 참여했다. 직원 수 200여 명 남짓했던 선경직물은 나일론 생산을 계기로 섬유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선경은 아세테이트 원사공장과 폴리에스터 원사공장(현 SK케미칼)을 건설하고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는 등 섬유에서 정유, 정보통신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최종건 창업주가 1973년 마흔 여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동생 최종현 전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다. 1998년 최종현 전 회장 사망 후엔 그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SK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최 창업주는 24살 때 집안 소개를 통해 노순애씨와 결혼했고 슬하에 3남 4녀를 뒀다. 최신원의 어머니인 노순애씨는 조용히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현모양처형 여성이었다. 노순애씨는 2016년 1월 8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최신원의 형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일찍부터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긴 후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가 50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집안의 둘째인 최신원은 형의 사망 이후 사실상 집안의 맏형 노릇을 하며 가족을 챙겨왔다. 동생은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다.
SK가는 여느 재벌가와 달리 연애결혼을 반대하는 집안이 아니었다. 중매결혼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만큼 평범한 집안부터 학계와 관계, 재계에 이르기는 다채로운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형인 최윤원씨는 김이건 전 조달청장의 사위였다. 첫째 여동생인 최정원씨는 고학래 전 사상계 고문의 아들인 고광천씨와 결혼했다. 둘째 여동생 최혜원씨는 기업은행 이사 등을 지낸 금융인인 고 박주의씨의 아들 박장석씨와 결혼했다. 박장석씨는 SKC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다가 2015년 3월에 물러나 상근고문직을 맡고 있다.
막내 여동생 최예정씨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삼남에게 시집을 갔다. 남동생 최창원 부회장은 변호사 집안인 최유경씨와 혼인했다.
최신원의 부인은 백종성 전 제일원양 대표의 딸 백해영씨다. 슬하에 최유진씨, 최영진씨, 최성환씨 등 1남 2녀를 두었다. 외아들 최성환씨는 중국 명문 푸단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에서 MBA(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성환씨는 SKC 전략기획실 차장을 거쳐 2014년 상무로 승진해 SKC기업문화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맏딸 최유진씨는 디자인 전공으로 미국 유학 중 만난 금융회사 샐러리맨 구본철씨와 2006년 결혼했다. 둘째 딸 최영진씨는 미국 유학 중이며 2014년 장기제 전 동부하이텍 부회장의 아들 장용진씨와 결혼했다.
◆ 학력
수원 신풍초등학교를 나왔다.
1970년 서울 배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경희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고려대 대학원 경영학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건국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경희대학교에서 철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경력
1981년 선경인더스트리에 대리로 입사했다.
1984년부터 뉴욕사무소에서 근무하다 1987년 이사로 승진했다.
1994년 경영기획실 전무이사를 거쳐 1996년 선경의 부사장에 올랐다.
1997년부터 1999년 SK유통 부회장을 지낸 뒤 2000년 SKC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SKC의 주력사업은 비디오테이프 등 미디어사업이었으나 외환위기와 맞물려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최신원은 CD사업에서 철수하고 비디오테이프사업을 분사시키는 등 수익성이 떨어진 사업을 정리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대신 화학사업과 필름 부문을 확대했다.
2004년 2월 최종건 창업주의 유지를 받들어 사재를 출연해 ‘재단법인 선경최종건장학재단’을 설립했다.
2007년에는 디스플레이 소재사업을 분사해 미국 롬&하스와 제휴 합작한 SKC하스를 설립했다. 같은 해 말 반도체 실리콘 소재 등을 생산하는 솔믹스를 인수해 파인세라믹 사업에 진출하는 등 IT소재 부품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했다.
SKC는 2005년 SKC America Inc.를 흡수합병하며 실질적인 SKC의 미국법인을 구축했다. 이후 2010년 시스템하우스와 2011년 EVA 생산라인에 이어 2014년 PET 생산 라인 4호기를 증설했다.
최신원은 사회 공헌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200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듬해 미국 포브스 지 아시아판(Forbes Asia)에 ‘기부영웅’으로 선정됐다.
이밖에도 2011년부터 브라질소사이어티(KOBRAS) 회장을 맡고 있고 2012년부터는 주한 브라질 명예영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2년 세계공동모금회(UWW: United Way Worldwide) 세계리더십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최신원은 아직까지 유일한 아시아 국가의 위원이다. 세계리더십위원회 위원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공동모금회에 1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고액기부자여야 한다.
2012년부터 아너소사이어티 대표도 맡고 있다.
2013년부터 사단법인 한국상표디자인협회 회장과 9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산하 태평양포럼 국제이사회 이사로 추대돼 활동하고 있다.
2014년부터 경희대 경희미래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2014년 9월 세계공동모금회의 산하조직 세계리더십위원회를 서울에서 열었다. 세계리더십위원회가 아시아에서 개최한 것은 1887년 UVW가 설립된 이후 처음이었다.
2015년 3월부터 제22대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제12대 경기도상공회의소연합회 회장, 제22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사건/사고
SK그룹 계열사 주식을 사들여 꾸준히 지분을 늘려 주목을 받았다.
2013년 초부터 SK네트웍스 등 SK그룹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결과 36만6288주에 불과하던 지분이 2014년 현재 2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SKC는 1.7%에서 1.8%로, SK케미칼은 0%에서 0.06%로 지분율을 늘렸다.
2014년 4월에도 SK네트웍스 자사주 3850주를 장내 매수했다. 그 결과 SK네트웍스 주식수는 100만7850주로 늘어났고 지분율도 0.40%에서 0.41%로 상승했다.
경영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지분율이 미미한만큼 맏형으로서 회사에 대한 애정 차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11년 휴대전화 제조사업 실패로 SK텔레시스가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2014년 4월 SK텔레시스에 100억 원(액면가 500원 기준) 상당의 자사주 2천만 주(21.98%)를 무상으로 증여했다. 이로써 최신원의 SK텔레시스 지분율은 17.29%(1천573만7천255주)로 줄었다.
SK텔레시스는 2012년 290억 원과 지난해 27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최신원이 무상으로 증여한 지분가치는 2013년 계열사로부터 받은 연봉 52억여 원의 2배에 이르는 액수다. 당시 대기업 총수가 지분율을 낮추면서까지 회사에 주식을 무상 증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최신원은 2012년에도 경영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모든 직원에게 주식 120만 주(6억 원 상당)를 무상으로 나눠 준 적이 있다.
2015년에도 SK와 SK네트웍스의 주식을 사들였다. 주변에서는 그의 꾸준한 지분 매입이 SK그룹의 계열분리를 위한 수순이 아니냐고 의심했지만 최신원 측과 SK그룹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했다. 최신원은 2012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과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SK네트웍스의 주식이 모두 사라진 뼈아픈 경험을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SK네트웍스 주식 매입 이유에 대해 밝힌 적이 있다.
2015년 3월 SKC 대표이사 임기가 끝나면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둘째 딸 결혼식에서 받은 축의금 모두를 기부해 주목을 받았다. 축의금은 경기사회복지모금회와 기아대책에 각각 나눠 기부됐다.
200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을지로 최신원’이라고 적힌 거액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이후 이 여섯글자가 써있는 기부금 봉투는 5년 동안 전달됐고 모금회는 수소문 끝에 봉투의 주인이 최신원이라고 알게됐다.
2000년 SKC 회장직을 맡은 이후에도 SK네트웍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최종건 창업주의 유훈이 깃든 기업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최근 수년 동안 네트웍스 지분을 꾸준히 사들인 것도 SK네트웍스 기업가치를 높이고 오너들이 책임경영을 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는 2016년 3월 SK네트웍스 사내이사로 17년 만에 복귀하게 됐다. 그는 수년 동안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SK네트웍스 대표를 맡아 제2의 재건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신원이 구원투수로 투입돼 SK네트웍스의 실적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상훈
2005년 전국무역학자대회에서 한국무역학회로부터 ‘2005 무역인 대상’을 받았다.
2008년 제42회 납세자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경영 혁신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와 장학 사업 등 사회 공헌 활동에 기여한 공로다.
2008년 수원상공회의소로부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100주년 감사패를 받았다.
2009년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 아시아판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 12개국의 48인 '기부영웅'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2013년 국군장병 위문 등 안보 지원활동을 펼친 공로로 국방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2015년 9월 브라질 정부로부터 브라질과 한국의 경제, 문화, 교육 등의 교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히우브랑코’ 훈장을 수여받았다. 브라질 정부의 히우브랑꾸 훈장을 받은 국내 인사는 앞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3명이다.
2016년 ‘2016 자랑스러운 경희인상’을 받았다. 한국-브라질 간 경제, 문화, 교육 교류 활성화에 기여하고 사회공헌활동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해 모교와 총동문회에 모범이 됐기 때문이다.
◆ 어록
“최근 한,중,일 3개 국가의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또한 미국과는 한미 안보협의회의 공동설명을 발표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한,미,중,일,영 리더들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하는 데 있어 좋은 밑거름이 되길 바라며 미래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훌륭한 리더로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2015/11/09 ‘SIS 동북아 영 리더 안보 포럼’에서)
“차질없이 증설라인이 잘 가동될 수 있었던 것은 임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안전과 품질을 지속적으로 확인했기 때문.” “필름, 태양광, 화학사업을 모두 갖고 있는 회사가 미주시장에 많지 않을 것. 각 사업별 경쟁력 강화와 시너지 창출에 힘써달라.” (2014/09/30 미국 SKC Inc. 조지아 공장의 PET 증설라인 준공식에 참여해)
“박지성의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이 많은 국민들은 물론 청소년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 나눔 국가대표로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변화를 만들어 가는데 동참해주신데 감사드린다.” (2014/07/22 박지성 선수로부터 기부금을 전달받으며)
“제품 생산 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고 두 번째가 품질이며 세 번째가 가격이다.”(2014/04/15, 미국 커밍턴주 SKC Inc. PET 증설 라인 건설 현장을 방문해 현지 직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기업인으로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기부 및 사회봉사를 통해 공동체 발전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한편으론 세계화 시대에 좀 더 큰 틀에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2014/02/25,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태평양포럼(Pacific Forum CSIS) 이사회 및 국제포럼 참석 인사말에서)
“아버님은 새 사업을 만들어내는 데 능력을 갖고 계셨고 작은아버님은 지성과 감성을 겸비하여 세심하게 사업을 살피는 능력을 잘 발휘하셨다. 형제경영을 통해 그룹의 발전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 형제들도 이러한 전통과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시련을 극복해나갈 것이다.” (2013/11/14, 서울 워커힐호텔 ‘고(故) 최종건 SK 창업회장 40주기 추모식’ 유족 대표 추모사에서)
“나눔은 이제 일상이고 습관이 됐다.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는 가가 더 중요하다는 선친의 철학과 가르침을 따른 것일 뿐.” “서로 기분 좋게 이야기나 나누면 좋은거지. 뭘 틀에 박힌 인터뷰를 하려고 하냐. 다들 잘 살려고만 하는데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정작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 (2015/12/2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 평가
달변가는 아니지만 과묵한 편도 아니다. 권위적이기보다는 소탈하고 친근한 인상을 지녔다는 평가다.
면바지에 점퍼를 입고 직원들과 바비큐 파티를 갖는 등 현장에서의 소통 능력과 친화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재벌가 2세 경영인으로는 드물게 군복무를 해병대에서 마쳤다. 강인한 정신력과 정면 승부 근성을 키웠다고 한다.
기업 경영 외에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기부자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을 비롯하여 국제 및 지역을 망라한 여러 사회단체에 소속돼 있다.
기부금 전달에 그치지 않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복지 단체 행사에 직접 나서는 등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에 앞장서 왔다.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가나 금호가 만큼 외부에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계열 분리 문제로 인한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2008년 최태원과 최재원 형제에게 SK네트웍스와 워커힐호텔의 경영권을 요구해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기업가 정신의 기본을 ‘나눔과 기부의 실천’으로 꼽는다. 수십 년 전부터 기업 경영 못지않게 기부와 봉사에 힘써왔다. 덕분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혔다. 현장을 직접 찾아 봉사와 기부를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SK그룹의 근간인 수원의 경제 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 기타
최신원의 지론은 ‘솔선수범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더욱 밝은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영원한 해병'을 자처하는 해병대 예찬론자이다. 재벌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해병대에서 복무했다. 어렸을 때 내성적인 성격을 지녀 아버지가 그런 성격을 고치고자 해병대 입대를 권유했다고 한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회사의 임직원들은 반드시 해병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1998년 이래 2014년까지 일곱 번째 훈련에 참여했다.
젊은 시절 왜소한 체격에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탓에 해병대 복무를 통해 극기심을 길렀다고 한다. 해병대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외아들 최성환씨도 해병대에서 복무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해병대 극기 훈련을 받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루 네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고 금연 전도사로 나섰다. 아버지가 폐암, 형이 후두암, 작은 아버지도 폐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가족력과 무관치 않다고 한다. 금연하지 않으면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직원들에게 공언할 정도로 금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983년 선경 시절 전자담당 부장으로 미국지사에 근무할 때부터 CES를 참관해왔다.
재계에서도 알아주는 미술품 애호가이다. SKC 회장 집무실은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고 한다. 고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비롯해 각종 고가구와 장식품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