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는 1948년 12월18일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부산고와 부산대 의대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와 인제대학교 대학원에서 각각 의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인턴과 전주예수병원 신경외과전공의 과정을 수료한 뒤 봉생신경외과병원장으로 취임했다. 종합병원 김원묵기념 봉생병원장을 맡았고 동래봉생병원 의료원장을 역임했다.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 중동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6대부터 19대 총선까지 같은 지역구 후보로 나와 내리 당선됐다. 제19대 국회 후반기 의장 선거에서 당시 새누리당 주류였던 황우여 의원을 제치고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당적을 보유할 수 없어 곧바로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 가족관계 부인 김남희씨와 사이에 정연학씨, 정연화씨, 정연석씨 아들 셋을 두었다. 정연석씨는 봉생병원의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 학력 1961년 부산중앙초등학교, 1964년 부산중학교, 1967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3년 부산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연세대학교에서 의학 석사학위를, 1995년 인제대학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대학원 의학석사 학위 논문으로 ‘터키안 병소에 대한 현미외과 수술의 경접협동접근법의 임상적 연구’를 썼다. 인제대 대학원 의학박사 학위 논문으로 ‘직업적 유기용제 폭로로 인한 신경내분비계 영향’을 썼다. 2002년 한국해양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공주대학교에서 교육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전남대 명예법학박사를 받았다. ◆ 경력 1973년 연세대학교 졸업 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합기도를 배우다가 얻은 허리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인턴수련 중 증세가 악화돼 급성 ‘파열성 디스크’로 수술을 받았다. 디스크 수술 경력으로 군 복무가 면제됐다. 1978년 연세대학교에서 의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유학 3년 만인 1981년 귀국해 봉생신경외과병원장으로 취임했다. 1985년 봉생 신경외과를 종합병원으로 키웠고 1990년 종합병원인 동래봉생병원을 새로 열었다. 병원 CEO로 활동하며 주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고 부산 중동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신한국당은 1997년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2000년 16대 총선부터 2012년 19대 총선까지 부산 중동구에서 출마해 모두 당선되며 5선 의원이 됐다. 16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수석부총무, 한나라당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국정감사 상황실장 등을 맡으면서 의정활동을 했다. 17대 국회에서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을 맡던 시절 신용카드 수수료 및 유류세 인하, 재래시장 지원정책 등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을 처리했다. 2009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 재직했을 때 당내에서 영리의료법인 도입론이 제기되자 서민 중산층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 경선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겸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직능정책본부장, 한나라당 시도별 선거대책위원회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18대 국회에서는 2009년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위원장을 맡아 유치를 성공시켰다.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 낸 그의 노력이 유치성공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받았다. 2010년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 준비에도 관여해 2015광주하계U대회 성공개최를 위해 적극 앞장섰다. 2010년 6월부터 2012년 5월까지 18대 후반기 국회 부의장으로 선출돼 일했다. 그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살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사퇴하자 잠시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맡은 것이었다. 2011년 5월부터 7월까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제 19대 총선 때 부산 중국 동구에서 5년 연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이 지역에서 최대로 많이 당선된 의원이 됐다. 2012년 7월 19대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친박계 주류인 강창희 새누리당 의원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2014년 5월 열린 후반기 국회의장에 재도전해 당시 강력한 경쟁자였던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제치고 선출됐다. 2002년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당적을 보유할 수 없어 곧바로 새누리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 사건/사고 2002년 10월2일 열린 김석수 전 국무총리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김 전 총리의 장남 병역면제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 정의화는 “김 전 총리 장남은 대뇌 및 소뇌 위축증과 두통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며 “그러나 이는 객관적 증거 없이 본인의 주장만 받아들인 부분이기 때문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총리는 “병원으로부터 중추신경퇴행성 판정을 받아 적법한 절차를 통해 면제를 받은 것”이라며 “다만 논란을 일으켜 국민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정의화는 2004년 5월9일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해 4월 열린 17대 총선을 앞두고 고교 동문 산악회가 주관한 산행에 참석해 사전선거운동을 벌였다는 것이 혐의 내용이었다. 1심에서 벌금 100만원 미만을 선고받았던 그는 2005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선고유예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11년 국회부의장으로 한미 FTA 비준안을 처리하는 도중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정의화를 향해 최루탄을 던지고 최루가루를 뿌렸다. 그러나 끝까지 FTA 비준안을 처리하고 14개 부수법안을 통과시켰다. 정의화는 트위터에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남겼다. 2012년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에서 구멍이 발견되자 타살가능성을 제기했다. 자신의 트위터에 “돌벼개 베고 천리길 돌아 상해임시정부 찾았던 일본군탈출병, 장준하 선생의 주검을 보면서 고인의 죽음을 슬퍼한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국민 한 사람도 억울한 죽음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선생의 두개골이 신경외과 전문의인 내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타살이라고!”라는 글을 남겼다. 2014년 국회의장으로서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여야가 대립양상을 보이며 150일 넘도록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국회를 정상화했다. 정의화는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려는 것을 막고 의장직권으로 본회의를 연기해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에 참석할 때까지 기다려 여야가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를 개최했다. 정의화는 2015년 주요 쟁점법안 처리에 대한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유지해 청와대와 갈등이 생겼다. 19대 국회가 5개월 남은 2016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이에 대해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달라”고 밝혀 주목받았다. 2016년 2월5일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인 “원샷법‘을 우여곡절끝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첨예하게 맞섰으나 국민의당이 찬성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눈살을 찌푸리하게 하는 다툼이 있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의원도 아닌 분이, 비대위원장인가, 그런 분이 299명, 300명의 국회의원이 합의한 안을 뒤집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큰소리로 항의했다. 정의화는 “지금 이 순간까지 국민에게 추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서 정말 참담한 심정입니다”라면서 본회의를 이어갔다. 2016년 2월23일 현 국가 상황이 ‘국가비상사태’로서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할 수 있는 요건에 충족된다고 판단해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다. 정의화는 “IS 등 국제적 테러 발생과 최근 북한의 도발적 행태를 볼 때에 국민안위와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테러방지법 처리에는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첫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강행했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정의화가 청와대의 사주와 압박에 못이겨 초법적인 직권상정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테러방지법의 경우 직권상정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정의화가 19대 국회를 파탄내는 최악의 조치를 해 답답하고 유감스럽다고 비난했다. 필리버스터에서 김제남 정의당 의원 역시 정의화가 직권상정 요건으로 제시한 ‘국가 비상사태’의 법률자문이 국회의 공식채널을 통한 것이 아니라며 이를 철수하라고 주장했다. 국회 의사일정 등과 관련한 국회의 공식 법률자문 채널은 국회 행정법무담당관실이다. 그런데 김 의원에 따르면 행정법무담당실 관계자는 최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관련 건은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은 “국회의장이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되어 관련 법안을 직권상정하게 된 법률자문을 국회의 공식 채널이 아닌 일부에서 제기되는 국정원장의 보고나 비공식채널을 통한 자문결과로 직권상장을 했다면 명백한 직권남용이자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라며 “만약 사실이라면 정의화 국회의장은 의장직에서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선 국민의당 최고위원도 현재 상황은 국회법 제85조에서 정한 직권상정의 요건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정의화 의장이 직권상정의 이유로 제시한 ‘테러위험 직면’ 주장 역시 근거가 되지 못한다”면서 “법제처는 국가비상사태 또는 위해는 이미 발생되어야 하며 발생가능성만 있는 경우는 제외된다고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이 절대 권력을 지니게 되고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장악해 영구집권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2월23일 여야 대표와 합의한 선거구 획정기준을 선거구 획정위원회로 송부했다. 정의화는 선거구획정위원회에 25일 12시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해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 상훈 1985년 6월 국제로타리클럽에서 수여하는 ‘초아의 봉사상’을 받았다. 2008년 여수엑스포 유치 공로로 명예여수시민이, 영호남 교류증진 공로로 명예광주시민이 됐다. 2010년 제7회 ‘자랑스러운 부산대인’에 선정됐다. 2012년 제18대 국회의원 공약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과 2014년 대한민국 법률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 세종시 특별위원장을 맡아 행정수도 이전에 힘쓴 공로로 명예세종시민이 됐다. 2014년 2월 대한민국법률소비자연맹의 주최로 열린 ‘제6회 법률대상 시상식’에서 입법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2015년 11월 ‘전국 청소년 선플 SNS 기자단’이 선정하는 ‘2015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 시상식‘에서 선플 실천 국회의원으로 뽑혔다. 선플 의원으로 선정된 국회의원들은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위원님, 항상 수고하십니다” 등의 표현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11월 ‘제 25회 세계스카우트 아시아태평양 총회 국제의 밤’ 행사에서 아태지역 최고 공로장을 받았다. 그는 세계스카우트의원 연맹 총재와 국회스카우트의원연맹 회장을 맡아 스카우트운동을 통한 문화교류에 애쓴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5년 12월 제17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백봉신사상은 국내 언론사 정치부 기자가 선정하는 상이다. 기자들은 신사의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직성, 정치적 리더십, 의회 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사회와 국민에 대한 헌신 등을 주요 덕목으로 꼽는다. ◆ 어록 “내일(26일) 오전 중으로 다 끝나가기를 기도하고 있다.” “지금처럼 이런 식으로 (필리버스터를) 해서는 조금 육체적으로 낭비적이라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선진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는 좋은 경험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2016/02/25 점심식사 후 국회로 들어오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선거도 치러야 하는데 저렇게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계속하면 큰 일.” (2016/02/24 국회에서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만나서) “늦었지만 여아가 선거구 획정기준에 합의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26일 본 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획정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안을 조속히 국회에 제출해주길 바란다.” (2016/02/23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기준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오늘 아침에는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2015/02/19 국회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야간의 선거구 획정 협상이) 23일을 넘기면 4.13 국회의원총선거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 “선거를 4월13일에 해야하는데 (선거법 개정이) 23일을 넘기면 연기가 안 될 것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23일까지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양당이 조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2015/02/19 자신의 국회 집무실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를 만나서) “(직권상정을) 하고 싶어도 법으로 못하게 돼있는 것을 억지로 하면 안 되지 않나. 화합이 정치의 으뜸이다.” (2016/01/05 출근길에 청와대와 갈등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19대 마지막 국회의 12월 임시회가 이번 주에 끝나지만 민생을 살릴 주요 법안은 처리하지 못하고, 선거구는 부재한 상황이다. 끝없는 정쟁을 반복하는 것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의장으로서 비참하고 참담하다.” (2016/01/04 대한민국 국회 시무식에서) “법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 기풍을 올바르게 해서 저절로 정상적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공공 아닌 언론까지 다 포함하면 우리 사회는 분명히 경찰국가, 검찰국가가 될 것이다.” (2015/03/24 지역 중견언론임 모임에 참석해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에 대해) “우리는 일본에 반드시 갚아 줄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반인륜적 방식이 아닌 가장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아름다운 복수를 통해 할머니들의 한을 승화시키고 할머니들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 (2015/01/13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초청한 오찬에서) “저는 친박도 아니고 비박도 아니다. 저는 친대한민국이다” (2014/05/23 새누리당 국회의장단 선거 후보자 정견발표에서) “우리 사회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탐욕이 이번에 전관예우와 같은 고위직의 부패로 드러났다.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 있지만 스스로 용퇴해 박근혜 정부가 순항하도록 도와야 한다.” (2013/02/27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황교안 법무부장관 내정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 다수결과 과반수 의결인데 이 대원칙이 무너진다” (2012/04/30 국회선진화법에 반대하며) “제가 1948년 제헌헌법과 같은 해에 태어난 건국둥이 국회의원 그리고 포은 정몽주 선생의 20대 손이다. 지난 18년 간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포은 조(組)의 충효사상을 마음에 새기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의정활동에 임해왔습니다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2014/02/17 ‘제6회 대한민국 법률대상 시상식’에서 입법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반복되고 있는 국회 폭력은 전부 또는 전무라는 식의 권력구조 폐단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상생정치로 바꾸기 위해서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바꿔야 한다. 꼭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봤을 때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2011/01/05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개헌을 주장하며) “틀니를 해서라도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왜 병무 신체검사 기준에 치아저작기능 규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2010/10/11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가수 MC몽이 고의발치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논란이 일자) “영호남의 화합, 그리고 전국의 균형발전은 이 정의화가 정치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통일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 통일의 전제조건이 바로 동서화합과 전국 균형발전이고, 이를 달성하는 게 내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다.” (2009/02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위원장을 맡고 나서) “개인적 사생활에 대한 정치쟁점화를 중단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 사생활과 관련된 단지 흥미 위주의 이런 논란은 비생산적이고 또 다른 갈등과 대립을 초래할 수 있으며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2005/04/24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 논란이 일자) “단순한 경제적 논리에서 벗어나 국가균형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호남고속철도를 조기착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남고속철도는 권역별 교통인프라를 균형있게 확충해 각 지역을 고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2004/12/11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착수를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에서) ◆ 평가 친이계로 분류되지만 계파색이 약한 온건파로 화합과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측이지만 친박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대 국회 하반기 의장으로 여야 원내대표들과 호흡을 맞춰 국회를 무리없이 이끌어 가고 있다. 특히 12년 만에 법정기한 내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다. 2004년부터 한나라당 지역화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당내 호남 창구 역할을 도맡아 해 왔다. 이 때문에 영남 출신 국회의원인데도 영호남 화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지역감정 해소와 균등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평가받는다.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위원장으로 2009년 5월에 광주의 성공적 유치를 이뤄냈으며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 낸 그의 노력이 유치성공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받았다. 개헌주의자이고 대통령-청와대에도 할 말을 해왔다고 평가받는다. ‘뚝심의 중재자’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역대 의장들 가운데 중립적 중재자로서 역할을 가장 충실히 했다고 평가받는다. 특정인에 정치적 빚을 지지 않았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모두의 투표로 뽑혔기 때문에 의회 자체의 역할을 강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쟁점법안 통과를 위해 정의화의 직권상정을 요구했지만 그는 “쟁점법안의 직권상정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불가능하다”라는 입장을 지켰다. 19대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으로 과반 정당 단독의 의사진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야 협상은 선거구 획정 등 사안마다 벽에 부딪히고 있다. 2016년 1월 쟁점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청와대를 향해 “삼권분립을 의심할 수 있는 얘기는 피하는게 좋다”고 대립했다. 새누리당이 ‘우회부의’한 선진화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도 공식 거부했다. 그는 “국회의장이 무소속인 이유는 여와 야를 넘어 불편부당하게 행동해 상생의 정치, 합의의 정치를 이끌라는 것”이라는 뚝심을 고수했다. 새누리당은 정의화의 소신행보를 두고 지나치다고 평가했다. 종전의 회의 진행자나 관리자형 국회의장과 달리 각종 현안에 타협안을 제공하며 중재정치를 잘 펼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2014년 11월부터 2015년 2월 초까지 약 3개월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평균 3.8일에 한번 꼴로 여야 지도부 중 한 명을 만나 쟁점현안 협상을 중재했다. 지도부 외에도 특정 법안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야당 의원이 있으면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 설득했다. 여야 모두 현안 해결에 이렇게 깊이 개입한 국회의장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타협이 없는 박 대통령과 비교해 여야 조율사로 비치면서 존재감도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의회주의자로서 원칙을 고수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라고도 불린다.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에도 국회 법안 통과 등 뚜렷한 결과가 없다면 정의화의 입지는 약화된다. 이에 2016년 1월 26일 국회선진화법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했다. 현행법에서는 재적의원 60% 이상의 요구가 있어야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고 상임위에서 표결까지 심사기간도 최소 330일이 걸린다. 그러나 정의화의 안은 신속처리안건 지정요건을 재적의원 과반수로 낮추고 소요기간도 75일로 단축하도록 한 것이다. ◆ 기타 고등학교 때 취미로 사진을 시작해 한국일보 국제사진살롱전에서 입선했다. 대학시절 학보사 사진기사로 일하며 개인 사진전을 열기도 하는 등 사진에 조예가 깊다. 2010년부터 남해안권 발전과 영호남 화합을 위해 여수, 순천, 광양, 남해, 하동, 사천을 하나로 묶는 ‘섬진강시’를 만들 것을 주장해 왔다. 2014년 현직 국회의장 최초로 국내 언론사 정치부 기자가 선정하는 백봉신사상에 수상자로 뽑혔으나 시상자인 국회의장이 수상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수상을 고사했다. 2001년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영국인 긴급환자를 응급처치해 항공사로부터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다. 2005년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승객이 호흡곤란과 발작증세를 보이자 응급처치를 했다. 국회에서도 응급처치를 한 적이 있다. 2000년 권익현 한나라당 상임고문, 2004년 김용갑 한나라당 상임고문이 쓰러지자 응급처치를 시행했다. 2009년 세종시 간담회에서도 70대 노인이 발작을 일으켜 쓰러지자 응급처치를 했다. 존경하는 사람으로 체 게바라를 꼽는다. 자신의 영문이름 Chung Euy Hwa의 이니셜이 체(CHE)이고 비분강개파이자 정의파인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다. 저서로 <나누는 사랑과 흐르는 정>, <건강한 사회 어디 없나요>, <쉼없는 항해 그리고 새로운 꿈>, <제2의 도시를 거부한다>, <이름값정치> 등이 있다. 대학생활 동안 사진예술 연구회,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철학적인 토론을 많이 했다. '당시의 정치·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것들, 부조리들을 고치기 위해서는 실력을 쌓고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아래 열심히 의학공부를 하고 틈틈이 교양서적을 읽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