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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고이즈미 손잡고 '도쿄' 진격 나선 까닭
'원전 대 탈원전' 구도로 아베 총리 1강체제 흔들기
주은아 기자 orchidjoo@businesspost.co.kr | 입력 : 2014-01-16 17:50:53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연합해 도쿄도지사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 주인공은 호소카와 전 총리이고 감독은 고이즈미 전 총리이다. 전 총리 두 사람의 연합도 뜻밖이고, 도쿄도지사를 무대를 삼은 것도 심상치 않다. '탈원전'을 키워드로 두 전 총리가 손을 잡고 아베 총리 '1강구도'에 맞서는 구도인데, 그 최종 종착지가 도쿄도지사 선거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호소카와 전 총리가 14일 도쿄도지사 보궐선거 출마의 뜻을 밝혔다. 그의 곁에 있던 사람은 고이즈미 전 총리였다. 두 사람을 묶은 키워드는 '탈원전'이었다. 전무후무한 연합에 결코 동요하지 않을 것같던 아베 정권과 자민당이 흔들리고 있다.

   
▲ 지난 14일 도쿄 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좌)와 그를 지지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우).

본래 자민당 출신인 호소카와 전 총리는 일본신당을 창당해 1993년 자민당의 55년 장기집권을 깨뜨리고 비자민당 출신으로는 처음 총리직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94년 운송업체 사가와큐빈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이 문제가 되어 낙마한 뒤, 1998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15년 동안 도예가로 '조용히' 살아 왔다. 그런 그가 아베 정권의 중간평가로 여겨지고 있는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 고이즈미 전 총리 "직접 출마하라" 호소카와 전 총리 설득

마이니치 신문은 15일자 분석기사를 통해 15년 동안 야인으로 살던 호소카와 전 총리의 출마선언 과정을 파헤쳤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지난해 9월부터 원전 정책에 정통한 관계자와 계속 의견을 나누면서 탈핵을 쟁점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때마침 이노세 나오키 전 도쿄도지사가 물러났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탈원전을 내세우는 후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선거운동에 동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이른바 '1강체제'에 맞설 인물을 몰색하던 야당 의원들이 호소카와 전 총리를 찾았다. 민주당과 일본유신회 등 야당에는 호소카와 전 총리가 일본신당을 결성하던 당시 행동을 같이했던 의원들이 포진해 있다. 야당에서는 아베 총리의 '대항마'가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일본신당 출신인 마도카 요리코 전 참의원이 지난해 말 호소카와 전 총리를 찾아 "직접 도지사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와 함께 연립 내각을 짰던 다나카 슈세이 전 경제기획청 장관도 지난해 말 한 강연에서 "탈원전을 위해 도지사 선거에 (호소카와 전 총리를) 반드시 출마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호소카와 전 총리는 주저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총리직을 맡았던 것도 20년 전의 일이다. 불안이 있다'며 망설였다"고 호소카와 전 총리의 측근들은 전했다. 

◆ 고이즈미, 아베 총리에 배신감 느껴

이때 고이즈미 전 총리가 나섰다. 호소카와 전 총리를 접촉해 "직접 도지사 선거에 나가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6년 퇴임 이후 정치적 행보를 거의 하지 않다가, 지난해부터 탈원전을 내세우며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호소카와 전 총리는 마침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마이니치 신문은 보도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호소카와 전 총리를 설득한 것은 아베 총리에 대한 배신감이 작용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시절 우체국 민영화 등 공기업 개혁을 추진했는데, 후계자로 지목한 아베 총리는 우체국 민영화를 사실상 백지화했다. 또 아베 총리는 지난해 11월 탈원전 운동을 벌이는 고이즈미 전 총리를 겨냥해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를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만들어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민주당은 이번 도지사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고 호소카와 전 총리를 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유신회 내부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호소카와 전 총리 지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전정책을 놓고 호소카와 전 총리 연합세력 대 아베 총리의 전면 대결구도가 펼쳐진 것이다.

◆ 잔물결 하나 일지않던 자민당에 파문

아베 정권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퇴임 당시 후계자로 아베 현 총리를 지목하며 아베 총리를 '키워주었던' 고이즈미 전 총리가 호소카와 전 총리와 함께 아베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는 점이 자민당 의원들에게는 큰 충격이다. 외국 순방중인 아베 총리는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원전 문제도 중요하지만, 도정에 필요한 여러 분야를 균형있게 논의해야 한다"며 직접 견제발언을 던졌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원전정책은 원전이 설립되는 지자체 및 국가가 전체적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이지, 도쿄도만이 결정할 수 있는 정책과제가 아니다"며 "(호소카와 전 총리는)사가와큐빈으로부터의 돈 문제로 총리직을 사임했는데, 도민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며 호소카와 전 총리를 공격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보수 성향으로 아베 정권에 우호적인 산케이신문조차도 "도쿄도지사 선거라고 해도 지방선거인데, '정치와 돈'의 문제를 두고 관방장관이 상대후보를 흔들려고 드는 것은 이례적이다"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의 등장에 자민당이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내각부 정무관은 16일 자민당이 추천한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를 놓고 “자민당이 가장 어려울 때 ‘자민당의 역사적 사명은 끝났다’며 나갔던 사람인데, 응원할 대의가 없다”고 발언했다. 고이즈미 정무관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로,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을 차기 총리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인물이다. 자민당 일부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번 도지사 선거 이후 아베 1강체제가 무너지고 정치권이 양극화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호소카와-고이즈미 연합의 충격이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는 아베 정권, 잔물결 하나 일지않던 자민당에 파문을 불러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정치력을 발휘하고, 고이즈미-호소카와 연합이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탄력을 받는다면 정계개편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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