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프린트      창닫기
[Who Is ?] 이재웅 포털 ‘다음’ 창업자
역발상 즐기는 1세대 벤처신화의 주역
김수정 기자 yeoeuny@businesspost.co.kr | 입력 : 2014-05-19 17:46:13
   
▲ 이재웅 다음 창업자

◆ 생애

이재웅은 1968년 10월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6년 서울 영동고, 1991년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26세의 나이에 ‘포털 국산화’를 기치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다.

1997년 무료 웹메일인 한메일 서비스를 도입했고 1999년 온라인 카페 커뮤니티를 선보였다. 1999년 11월 다음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대표적 벤처1세대 기업인이자 벤처재벌로 발돋움했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쇼핑몰, 다음 금융플라자, 다음다이렉트자동차보험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2007년 대표이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사임했다. 2014년 현재 다음의 최대 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식 평가액은 약 140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디앤샵 경영자문담당 이사를 거쳐 현재는 소셜벤처인큐베이터 업체인 소풍(SOPOONG)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 가족관계

이철형 전 한국종합건설 대표의 1남2녀 가운데 장남이다. 2001년 6월 KBS 9시 뉴스 앵커를 지낸 황현정 전 아나운서와 결혼해 큰 화제를 낳았다.

◆ 학력

1991년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마친 후 1994년 프랑스 파리 제6대 대학원에서 인지과정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 경력

“이순신 장군님, 야후는 다음이 물리치겠습니다.” 1999년 7월 토종 인터넷 포털 다음이 내건 시리즈 광고의 문구다. 당시 국내 포털 사이트를 지배하고 있던 외국계 포털 야후에 도전장을 내밀며 대대적 광고를 시작했다.

이재웅은 프랑스에서 인공지능 로봇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1995년 귀국, 자본금 5천만 원으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다.

1997년 5월 국내 최초의 무료 전자우편 포털사이트 한메일(www.hanmail.net)을 만들고 서비스 2년여 만에 가입자 1백60만 명을 확보했다.

한메일넷은 1999년 포털명을 ‘다음’으로 바꾸고 국산 포털 사이트를 통한 인터넷 대중화에 뛰어들었다. 2년 뒤인 1999년 온라인 카페 서비스인 ‘다음카페’를 선보여 당시로서 생소했던 인터넷 커뮤니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후반 벤처 투자 붐을 타고 1999년 11월 다음 주식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벤처 청년 부호로 등극했다.

2000년 3월 온라인 쇼핑몰 ‘다음쇼핑’(현 디앤샵)을 오픈한 데 이어 독자적 뉴스 서비스인 ‘미디어 다음’, 온라인 자동차보험 ‘다음다이렉트자동차 보험’을 설립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2003년 4월 조사에서 보유주식 평가액이 1천679억 원에 이르며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0년 매거진 《아시아 위크》‘디지털 엘리트’에 선정되고, 같은 해 11월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미래를 이끌 세계 지도자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2003년 제2회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에 선정됐으며 2004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2004년 8월 미국의 인터넷 포털 라이코스 인수합병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같은 해 제주도로 본사를 이전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과감한 행보를 이어갔다.

2005년 이후 후발주자인 ‘네이버’에 포털 선두 자리를 내주고 자회사들의 부실이 커지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2007년 창업한 지 12년 만에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5년 11월 쏘카의 가치는 자본시장에서 3천억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소풍을 통해 제주도에서 카셰어링업체 쏘카 사업 초기비용을 지원했다. 이재웅은 쏘카의 기업가치가 3천억 원으로 크게 띄면서 투자 대비 큰 이득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사건/사고

2006년 8월 일명 ‘바다이야기’ 사건과 관련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대표 등과 함께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사행성 게임비리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재웅 전 대표 등에 대해 출국 금지하고 압수수색을 벌였다.

SBS는 관련하여 디앤샵과 이 전 대표가 비자금을 조성하여 정치권에 억대 금품을 로비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이 전 대표는 주가 폭락과 명예 훼손 등을 이유로 SBS 측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판결에서 승소했다.

2007년 이 대표가 다음커뮤니케이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점을 전후하여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사, KT 등의 인수합병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루머에 그쳤다.

◆ 상훈

아시아 각국의 인터넷 전문가들이 네트워크, 포털업체, 기타 인터넷 기업가 등을 대상으로 심사한 2001년 제1회 아시아인터넷어워즈(The Asian Internet Awards)에서 최고 인터넷 기업가상(The Most Entreprenerial Internet Achievement, MEIA)을 수상했다.

2003년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벤처기업대상에서 인터넷 포털기업을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에 선정됐다.

◆ 어록

"즐거운 실험은 이제 일단락된 것 같다.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고민을 하면서 자신들의 새로운 실험을 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회사 이름은 소멸되지만 그 문화, 그 DNA, 그리고 그 문화와 DNA를 지닌 우리는 소멸되지 않았다." (2015/09 '다음카카오'가 '카카오'로 사명을 변경한 것에 대해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많은 사람이 제주의 자연유산을 좋아하고 짝사랑하고 그것에 대한 환상을 느끼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제주의 미래가치를 너무 조급하게 할인판매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3/10/04,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열린 제3회 글로벌 제주상공인대회 기조강연에서)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 (2012/09/19, 안철수 대선후보 출마선언 기자회견일 올린 SNS에서)

“엔지니어들이 갖고 있는 문제해결 접근방식을 세상사람들 모두가 가진다면 세상은 더 좋아질 것.” (2011/11/25, 서울 신도림 디큐브시티 호텔 개발자 행사 ‘디브온2011’ 대담에서)

◆ 평가

2000년대 대한민국 인터넷 벤처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2007년 다음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 최대주주 지위만 유지한 채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벤처 1세대를 이끈 다수 인사들이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에 비하면 여전히 다음 최대 주주로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회적 벤처 후진 양성을 목적으로 한 소셜 벤처 업체 소풍의 대표로서 뿐 아니라 강연활동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절친한 사이로 정치권 입성 가능성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언론 등 외부 노출을 꺼리는 ‘은둔형’으로 알려졌으나 SNS 등을 통한 사회적 발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2년 1월 트위터를 통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SK그룹 총수 일가 수사와 관련하여 탄원서를 제출한 데 대해 “배임, 횡령, 비자금이 기업가 정신이랑 무슨 상관인가”라며 “전경련은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201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포털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하여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가 증인출석을 요구 받아 새누리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 전대표가 안철수 후보의 오랜 지인이자 지지자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

‘황소고집’이라고 불릴 만큼 고집이 센 편으로 원칙에 대한 신념 또한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닷컴 1세대 기업인답게 업무 면에서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며 권위의식을 보이지 않는다.

다음 재직시절 호칭을 사장님 대신 재웅님으로 부르게 했던 것도 널리 알려진 일화다. 프랑스 유학 시절 교수와 학생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은 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상하를 없애고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기 위해 다음 내에 위원회 제도를 도입한 것도 당시 기업문화 풍토에서 획기적이었다.

일 자체를 즐기는 타입으로 역발상과 변화를 중시한다. 2004년 본사를 제주로 이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지론의 결과다.

다음 대표 시절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자 서비스업체 특성을 고려해 주6일제를 채택하는 대신 전 직원이 자율적으로 매년 36일의 휴가를 자율적으로 쓰게 한 것도 역발상을 즐기는 단면이다.

공대 출신 CEO로서 다소 무뚝뚝하고 직설적 말투로 정확히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인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는 일도 있었다. 부인 황현정은 “무뚝뚝하지만 성실하고 올곧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재웅은 프로포즈 할 때조차 “우리 결혼하자” 한 마디가 전부였다.

2013년 9월 초기기업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를 통해 200억 원대 3호 펀드 ‘페이스메이커 펀드’ 조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월 다음 지분 1%가량을 매각해 지분율이 14.60%에서 13.67%로 줄었다. 업계는 이 전대표가 벤처육성과 투자 등 새 사업을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하고 있다.

◆ 기타

이재웅은 ‘V소사이어티’ 설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이다. V소사이어티는 2000년 대기업 2세 경영인과 유망 벤처 기업가 20여 명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대기업-벤처 법인으로 출범했다. 존재가 알려질 당시 재벌과 벤처 CEO들간의 고급 사교클럽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설립 당시 멤버에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김남구 동원증권 부회장, 김준 경방 대표, 류진 풍산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이종훈 대유 사장, 이흥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11명의 대기업 CEO와 권도균 전 이니시스 사장, 김창수 전 NSF 사장, 박규헌 전 이네트 사장, 박창기 전 팍스넷 사장, 이재웅 전 다음커뮤니케이션즈 사장, 드림위즈 이찬진 대표 등 유명 벤처기업가 9명이 포함됐다.

이후 회원이 64명까지 늘어났지만 2003년 최태원 회장이 분식회계 건으로 구속되면서 결속력이 급속히 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2012년 정치권에 등장할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사프린트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