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은 196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80년 남대전 고등학교 시절 광주민주화 운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제적당했다. 그는 대입검정고시를 치른 뒤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안희정은 김덕룡 의원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기여했다. 안희정은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 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재선에 성공해 제 37대 충청남도 도지사로 일하고 있다. ◆ 가족관계 안희정의 부모는 충남 논산에서 철물점을 운영했다. 부인 민주원은 안희정과 고려대학교 동기동창으로 20대에 결혼했다. 부인과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 학력 안희정은 1980년 대전 남대전 고등학교에서 제적당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여한 것이 이유였다. 이후 부모님의 권유로 서울 성남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981년 다시 자퇴했다. 안희정은 1982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1983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1995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 경력 안희정은 1983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 지도부로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안희정은 1989년 1월 김덕룡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1990년 3월 민주당 사무총장실 비서가 됐다. 1990년 김영삼 총재의 3당 합당에 반발해 탈당파가 결성한 꼬마 민주당 중앙당 조직국 당직자가 됐다. 안희정은 1992년 국회의원 비서를 그만두고 대학 선배가 시작한 출판사의 영업부장으로 일했다. 그러나 회의를 느끼고 대학에 복학해 12년 만에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안희정은 1994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자치경영연구원)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98년 자치경영연구원 사무국장이 됐다. 안희정은 2001년 10월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 사무국장을 맡았다. 노무현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2002년 5월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비서실 정무팀장이 됐다. 안희정은 2003년 열린우리당 논산 금산 계룡 지구당 창당 준비위원장과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다. 안희정은 2005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7년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일했다. 안희정은 2007년 민주당 충남 논산 계룡 금산 지역위원장이 됐으며 2008년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소장이 됐다. 2008년 총선에서 출마를 준비 했으나 민주당 공심위의 구속전과자 공천불가 조치에 따라 불출마를 선언했다. 2009년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안희정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 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같은해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36대 충청남도 도지사를 역임했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해 제 37대 충청남도 도지사로 일하고 있다. ◆ 사건/사고 안희정은 남대전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5개월 만에 학교를 중퇴했다. 당시 안희정은 반정부 지하신문 편집장과 편지를 주고받은 혐의로 계엄사에 끌려갔다. 안희정은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개월을 복역했다. 안희정은 2003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2002년 대선과정에서 기업들로부터 불법자금 65억여 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4년 만기 출소했다. ◆ 상훈 2014년 10월 제3회 대한민국 지식대상 대통령표창(대상) 2014년 9월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우수상 2011년 자랑스러운 충남인상 ◆ 어록 “정신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장자라는 자부심과 집안을 이어나가는 맏이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다.”(2013/12/17, 도정결산 송년 기자회견) “선거는 이익과 지지를 맞교환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와 주권자가 지역, 사회, 국가의 방향과 가치를 결정하는 공간이다.” (2015/01/05, 동아일보와 인터뷰) “과거의 선도투쟁 방식으로 여름 한철 벽에 붙어있다 파리채에 맞아죽은 파리 시체와 같은 흔적을 남길 수 있을 뿐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다.” (2011/08/05, 기자단과 인터뷰) “노무현 정부의 협상은 잘 됐지만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나빠졌으니 한미FTA에 반대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2011/08/05, 기자단과 인터뷰) “아시아시대를 준비함에 있어 충남의 해양과 항만투자가 얼마나 절실한 투자인지 설득해내는데 민선 6기 도정을 집중해 나가겠다.” (2014/07/01, 37대 충남도지사 취임사) “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만 2년이 됐기 때문에 아직 실망하기에 이르다. 더 힘을 모아줘야 한다. 물론 국민들이 대통령께 책임도 그만큼 무겁게 물어주셔야 한다.” (2015/01/09, ‘소통과 협치,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조찬포럼) ◆ 평가 안희정은 겸손하고 친화력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친노 출신임에도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폭넓은 지지를 얻은 것도 이런 성격이 한몫했다. 안희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한 최측근이자 대통령 당선의 공신으로 꼽힌다. 안희정은 진보 정치인 중에서 다소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안희정은 “야당이 한미FTA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라든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안희정은 재선 전부터 지역의 보수단체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려 노력해 왔다. 안희정은 수차례에 걸쳐 고엽제전우회, 재향군인회, 한국전쟁참전용사회 등 지역 보수단체 인사들과 직접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이런 행보는 안희정이 차기대권주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안희정은 지방자치 전문가로 도지사로서 직무수행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안희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5년 넘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안희정은2014년까지 4년 연속으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공약이행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 기타 안희정은 축구 농구 탁구 등산 골프 복싱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긴다. 또 취미삼아 일과가 끝나면 텃밭에 가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알려졌다. 좌우명은 역지사지다. 저서로 <담금질>(2008, 나남), <247명의 대통령>(2010, 나남),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2013, 위즈덤하우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