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프린트      창닫기
[오늘Who] 기재부 출신 배국환, 현정은의 현대아산 남북경협 선봉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 입력 : 2018-11-13 17:15:31
“예산을 다 쥐고 있어서 굉장히 힘이 세다.”

박병원 전 재정경제부(현재 기획재정부) 차관은 2005년 7월9일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를 위해 한국을 찾은 북측 대표단에게 배국환 당시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을 소개하며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 배국환 현대아산 대표이사 내정자.

2005년 남한의 예산을 쥐고 북한과 경제협력을 논의하던 배국환 전 국장은 13년이 지난 2018년 민간 남북경협의 선봉장인 현대아산의 대표이사로 다시 한 번 북한과 협력을 논의할 준비를 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배국환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을 현대아산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을 놓고 남북경협 성사 이후까지 바라본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배 대표는 기획력과 추진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특히 남북경협과 관련한 다양한 공직 경험과 남다른 소신을 지닌 만큼 앞으로 현대아산의 도약과 새로운 남북경협 시대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료 출신이 공기업 대표나 대기업 임원을 맡을 때는 많지만 대기업 계열사의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사례는 흔치 않다.

하지만 현대아산은 정부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된 남북경협이라는 특수한 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현 회장은 큰 변화를 준비할 때면 종종 관료 출신 가운데 현대아산 대표를 찾았다.

2008년 8월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현대아산의 주요 사업이었던 금강산 관광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을 때 조건식 전 통일부 차관을 영입한 것이 대표적 예다.

현 회장이 현대아산에 관료 출신을 앉힌 것은 조 전 대표 이후 두 번째인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통일부가 아닌 기획재정부 출신을 선임했다.

배 대표는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국장으로 일하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지니고 있지만 예산·재정 전문가로 평가된다.

배 대표가 쓴 ‘생동하는 SOC(사회간접자본)’ ‘한국의 재정 2001’ ‘한국의 재정,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등 책 제목만 봐도 배 대표의 전문 분야를 알 수 있다.

현 회장이 남북경협 성사에 완전히 초점을 맞췄다면 과거처럼 남북관계 전문가인 통일부 출신 인사를 영입했겠지만 재정 전문가를 앉힌 만큼 남북경협 성사 이후를 준비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현 회장에게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경협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숙명적 과제인 동시에 남북관계 경색으로 급격히 줄어든 그룹의 규모 회복을 이끌 원동력이기도 하다.

정부 주도로 남북경협에 힘이 실리는 상황에서 배 대표는 현 회장에게 정부와 연결고리를 굳건히 하는 동시에 사업성 확보까지 기대하도록 하는 최적의 선택일 수 있는 셈이다.

배 대표에게도 현대아산을 이끄는 일은 앞으로 인생을 바꿀 무거운 도전일 수 있다.

배 대표는 10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임명장을 받고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사장에 올랐는데 취임 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현 회장의 꿈을 실현하는 선봉장 역할을 맡기로 했다.
 
▲ 배국환 현대아산 대표이사 내정자(왼쪽)가 10월15일 경기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로부터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이사장 임명장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기도청>

배 대표는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차관에 이어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공직 생활을 마친 뒤 인천시 경제부시장, 가천대학교 초빙교수, 법무법인 율촌 고문 등을 거치며 민간기업 경영과 거리가 먼 활동을 주로 해왔다.

배 대표는 관료 시절 몸담고 있는 공직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등 필요할 때 할 말은 하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2004년 행정자치부 지방재정국장 시절 ‘관료사회는 정말 변하고 있는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행정자치부 직원 토론회에서 소신 있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배 대표는 당시 “고시 출신 젊은이가 관료사회에 들어오면 너나없이 정부미가 되어버리고 관료들은 민간부문 종사자들보다 우수하다고 착각한다. 정부미도 청원 청결미나 이천 임금님표 쌀처럼 차별화할 수 있어야 한다” “관료조직에 기름이 너무 많이 끼어있고 비만으로 각종 질병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승진시스템은 조선시대보다 못하다” 등 공직사회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날렸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

 기사프린트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