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 기자 bamco@businesspost.co.kr2026-06-09 15: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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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미국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전 세계적 에너지 위기로 에너지 집약적인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 대한민국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제조업계에 거대한 생존의 과제를 던지고 있다. 산업 생태계의 명확한 `녹색 대전환(K-GX)`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엄중한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 바로 제조업 생존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공동으로 6월25일 ‘전환 없이 수출 없다, 대전환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찾다’라는 슬로건 아래 2026 기후경쟁력포럼을 연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이번 포럼을 앞두고 모두 5회에 걸쳐 우리 기업에 실질적 혜택을 줄 `탄소중립산업법`과 철강·시멘트 등 난감축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전환금융`의 역할, 제조업들이 녹색전환으로 가는 과정에 투자자 판단을 돕는 기본 규칙이 되는 지속가능성 공시의 현 주소와 과제를 조명한다.
[비즈니스포스트] 탄소중립 산업을 육성하고 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탄소중립산업법안의 통과가 국회에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연합(EU) 탄소중립산업법(NZIA), 일본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추진법 등 주요국이 재정·금융·세제 지원을 앞세워 탄소중립 산업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 흐름과 비교하면 국내 입법은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2고로에서 한 직원이 용광로에서 쇳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국회에서 철강업처럼 탄소 난감축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탄소중립산업법이 발의됐으나 여러 쟁점으로 인해 계류된 상태에 놓여 있다.
산업계는 탄소중립 전환에 필요한 인센티브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법안에 재정·세제 지원과 인허가 특례, 탄소차액계약제도 등이 폭넓게 담기면서 재정 부담과 부처·지자체 권한 조율 문제가 입법 과정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9일 국회 입법 현황을 종합하면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월25일 대표발의한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기업의 탈탄소 전환 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탄소중립산업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현재 법안은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돼 있고 본격적 심사에는 아직 들어가지도 못했다.
◆ 한국형 IRA 필요성 커졌지만 탄소중립산업법안 국회서 표류
탄소중립산업법안은 앞서 2024년 6월25일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라는 명칭으로 발의된 바 있다. 당시 환경노동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 전체회의 등에 상정됐으나 최종 통과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법안은 탄소중립산업을 육성하고 온실가스 배출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재정·금융·세제 지원, 공공 우선구매, 인허가 신속처리, 규제개선 특례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탄소중립전문기업과 온실가스 배출기업을 지원 대상으로 나눠 보조금, 융자, 이자 차액 보전, 보증 우대, 국세 및 지방세 감면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배출권 가격과 감축비용의 차이를 보전하는 탄소차액계약제도 도입 근거도 담고 있다.
탄소중립산업법안은 주요국의 산업정책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미국은 IRA를 통해 청정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수소 등 분야에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제공해 왔고 EU는 NZIA를 통해 탄소중립 기술 제조역량과 공급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도 GX 추진법을 통해 탄소가격제와 GX 경제이행채 발행 근거를 마련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탄소중립산업법안이 한국판 IRA로 불리는 이유다.
산업계에서도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규제보다 인센티브 중심의 정책이 탄소중립산업법안을 바탕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경협,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14개 경제단체도 지난해 11월11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공동입장문에서 “미국의 관세정책 등 세계 경제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 시급한 가운데 아직 산업 부문의 감축 기술이 충분히 상용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2035년 감축목표를 53~61%까지 상향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런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부는 기업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과감한 전환 투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규제보다는 인센티브 중심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탄소중립산업법안 재정 부담·부처 권한 조율 쟁점, 법안 설계 미비 지적도
이런 중요성에도 탄소중립산업법안 처리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배경에는 재정 부담과 규제 권한 조율 문제가 놓여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법안은 보조금, 융자, 이자 차액 보전, 세제 감면, 탄소차액계약, 기금 활용, 국채 발행 가능성까지 폭넓게 열어두고 있다. 이는 기업의 탈탄소 투자를 앞당기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재정당국 입장에서는 중장기 재정부담과 지원 대상 범위를 신중하게 따지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탄소차액계약은 최대 15년 범위에서 정부와 기업이 저탄소 공정의 목표단가에 대해 시장 가격과 차액을 보전하도록 계약을 맺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의 탈탄소 전환 투자 위험을 정부가 일부 나눠지는 장치라는 점에서 실효성이 기대되지만 장기 재정지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인허가 신속처리와 규제개선 특례도 쟁점으로 꼽힌다. 법안은 탄소중립전문기업이나 온실가스 배출기업이 사업 관련 허가 등의 신속 처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정 기간 안에 허가권자가 처리계획이나 처리결과를 통보하지 않으면 허가 처리가 완료된 것으로 보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지만 허가권을 가진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권한 조정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울러 환경·안전·지역수용성 검토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법안 자체의 세부 설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 싱크탱크 넥스트는 지난 5월 ‘K-GX 전략 입법은 준비되었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탄소중립산업법안과 '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의 전환촉진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그린전환법)'의 영역 분담과 재원 배분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며 “탄소중립산업법안 자체의 세부 설계와 실행 체계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중립산업법안이 지원 중심의 산업정책 관련 법안이라면 그린전환법은 산업 전체의 환경 문제를 개선하려는 기본법 성격을 띤다.
다만 보고서는 탄소중립산업법안과 그린전환법이 지원 대상과 재원에서 중복될 수 있다고 봤다. 두 법안 모두 철강·석유화학 등 배출권 할당대상업체를 지원 대상으로 포섭할 수 있고 기후대응기금을 주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원 대상인 중점산업의 기준이 시행령에 맡겨져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지원 대상과 절차가 법률에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으면 기업의 장기 투자 결정에 불확실성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제 지원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선언적 규정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탄소중립산업법안은 국세와 지방세 감면 근거를 두고 있지만 실제 감면 대상, 공제율, 일몰기한 등은 조세특례제한법과 지방세특례제한법에 달려 있다.
보고서는 탄소차액계약제도 역시 재원 확보 방안과 대상 선정 기준, 운영 원칙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소부장특별법처럼 협력모델, 패키지 지원, 통상위기 대응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로 꼽았다.
◆ 탄소중립산업법안 탄소중립기본법 개정과 연동될 가능성, 지원 대상·재원 조율이 관건
탄소중립산업법안 논의가 지연되는 또 다른 배경으로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지연도 꼽을 수 있다.
탄소중립산업법안은 기본법에 따라 국가비전과 중장기 감축목표 달성을 전제로 산업 지원 방향을 설계하고 있다. 법안 기본원칙에도 국내 산업이 부문별·연도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부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탄소중립산업법안을 발의한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향후 탄소중립산업법안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논의와 맞물려 재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장기 감축경로와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구체화되면 탄소중립산업법안의 지원 대상과 우선순위도 비교적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정당국과 규제 권한을 가진 부처,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중복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탄소중립산업법안은 원안보다 지원 범위나 인허가 특례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넥스트의 고은 부대표는 최근 K-GX 관련 세미나에서 "지금은 K-스틸법, 석유화학 특별법, 녹색전환이 함께 맞물리는 청정 제조업 전환의 결정적 골든타임"이라며 "과거 성장 동력이었던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이 저물고 그에 따라 지역 경제까지 기울어가는 위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고 부대표는 "새로운 청정 제조업을 육성하려면 이를 위한 구체적 실행 경로와 실효성 있는 투자 유인 구조를 마련해 우리 산업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