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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박원순 서울시장소탈과 성실, 시민의 말에 귀기울여 [2017년]
박경훈 기자  |  khpark@business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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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7  01: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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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
◆ 생애

박원순은 서울시장이다.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협력과 상생을 강조하는 시정을 펼치고 있다. 

박원순은 1956년 3월 26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했으나 긴급조치 명령 9호 위반으로 제적당했다.

1979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고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구지검 검사를 거쳐 1983년 변호사로 개업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1995년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사회운동가로 전업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새로운 시민단체를 창립해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시민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안철수와 단일화에 성공하고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 후보와 경선에서 승리해 무소속으로 범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이 됐다.

2014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야권 후보로 출마해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에 이겨 재선에 성공했다.

박근혜 게이트로 조기대선이 가시화하자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설 뜻을 보였으나 결국  불출마 선언을 하고 서울시정에 주력하고 있다. 

소탈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활동의 공과

△문재인 지지선언
2017년 4월10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만나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 등에 공감하며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문 후보는 서울시와 촛불 시민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하다.

문 후보는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을 선거운동 캠프에 영입한 데 이어 하승창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영입하는 등 ‘박원순맨’을 대거 캠프에 영입했다.

△서울 관광시장 다변화 방침
2017년 3월 사드보복에 따른 중국인 한국 여행금지 조치에 대처하는 데 주력했다. 무슬림 관광객을 위한 할랄 음식점 홍보를 강화하고 일본 여행사와 업무협약을 맺는 등 서울 관광객 다변화에 힘썼다.

△종로 세운상가 재생계획
2017년 3월2일 세운상가 일대를 재생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 창의제조산업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전략기관 입주 공간, 청년 창업사와 제조사 입주 공간, 시민문화공간 등 3단계로 진행하기로 했다.

2016년 1월28일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를 재개발하는 내용의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려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에 가까운 낙후 지역에 고급 상업 및 주거지역이 새로 형성되면서 원래의 거주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게 되는 현상이다.

△알바 등 ‘을’ 경제주권 강화 주력
2017년 2월13일 서울시에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 아르바이트 등 ‘을’의 경제주권을 강화하는 23개 과제를 담아 2017 경제민주화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발표했다.

이랜드의 비정규직 임금 미지급이 이번 경제주권 강화안 마련의 계기가 됐다.

△대선불출마 선언
2017년 1월26일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경선규칙이 확정된 뒤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하면서 나온 불출마 결정인 만큼 정치권은 경선판도와 다른 주자들에게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시장으로서 시정에 집중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서 정권교체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서울역 고가 개조사업
2017년 1월29일 서울역 고가를 4월22일에 개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4년 9월 서울역 고가를 미국의 뉴욕 하이라인파크에 버금가는 도심고가 녹지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발표했다. 2014년 11월24일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집회를 열어 고가를 공원화해서 도로가 끊기게 되면 퇴계로와 중림동 사이의 이동시간이 30분 이상 늘어나게 돼 남대문시장과 중림동이 도심 속의 섬이 된다며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2015년 8월21일 서울역 고가를 5개 빌딩과 보행길로 연결하기 위해 건물 대표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차량길'에서 '사람길'로 재생한다는 '서울역7017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7개 사람길 조성의 첫단추였다. 2015년 12월13일 1970년 산업화시대 서울역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을 잇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서울역 고가를 폐쇄했다.

고가에 공원을 건설하는 계획을 두고 만리재로나 염천로로 우회해야해 교통체증이 심해질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과 공원이 완성되면 남대문시장이 활성화 될 것이라며 찬성하는 의견이 모두 나왔다.

2016년 3월 보수보강공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원화 사업이라는 목적에 맞게 고가 위에는 카페와 도서관, 야외무대, 꽃집 등 20여 개 편의시설 등이 조성돼 공중휴식처 역할을 하도록 만들 계획을 세웠다.

△대선행보
2017년 1월2일 대통령선거 출마의사를 밝혔다.

2017년 1월10일 여론조사에서 4.3%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26.8%)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21.5%), 이재명 성남시장(12%),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6.5%), 안희정 충남도지사(5%)에 이어 6위에 올랐다. 2016년 9월6일 뉴욕 교민들과 간담회에서 대선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대선출마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 노무현 루트
2016년 5월2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전 머물던 안국동 사무실과 혜화동 사저 등을 포함해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장소를 ‘노무현 루트’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일자리 대장정
2015년 10월에 이어 2016년 3월 일자리 대장정 시즌2 시작을 발표했다. 서울 전역에 취업준비 전반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카페 300개를 2020년까지 세우고 강소기업 1천 개를 발굴해 청년 1만 명을 취업시키며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 청년의 권리보호를 위한 물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임대주택 리츠공급
2015년 7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 모델인 ‘서울리츠’를 개발해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리츠방식의 임대주택을 처음 도입했는데 LH공사가 10년간 임대주택으로 공급한 뒤 일반분양으로 전환하는 방식인 데 반해 ‘서울리츠’는 50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으로 공급해 주거안정성을 최대화했다.

△메르스 대처로 지지도 상승
2015년 6월 메르스사태가 발생했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비판하며 서울시가 직접 나설 것을 선언했다. 5월27일 메르스확진환자와 접촉한 의사가 6월4일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첫 메르스환자 접촉시점과 확진시점 사이에 수 천명 이상의 서울시민에게 메르스를 전염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논란을 거듭한 끝에 6월8일 질병관리본부로부터 확진 판정 권한을 이양받아 확진검사에 본격 착수했다. 메르스 대응은 대중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서울시장 재선
2014년 6월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하면서 한국전력공사의 본사 부지를 포함한 강남 일대를 국제 업무교류 명소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에 따라 한전의 부지 매각작업도 탄력을 받았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업무 센터 건립과 동시에 문화와 생활, 컨벤션 기능을 아우르는 랜드마크도 조성하겠다며 10조 원에 매입해갔다. 105층 짜리 현대차 신사옥과 공연장, 전시시설, 컨벤션시설, 호텔, 업무시설 등 6개 건물을 세울 계획 아래 개발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하며 ‘안심특별시 서울’을 표어로 내걸고 ‘재난컨트롤타워 설치’, ‘골든타임목표제’, ‘초등학교 스쿨버스 도입’, ‘상습침수피해 위험지역 해소’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분야 핵심공약으로 ‘서울형 창조경제’를 내밀었다. 구로의 가산과 홍대의 합정, 상압의 수색, 동대문, 개포를 5대 창조경제 거점으로 키우고 코엑스에서 잠실에 이르는 영동권과 도심, 서남권 등 3대 권역을 국제교류 마이스(MICE) 복합거점으로 육성할 것을 약속했다.

△한강 세빛섬 개장
2014년 10월15일 세계 첫 수상컨벤션 시설인 ‘세빛섬’을 개장했다. 2009년 9월 공사를 시작해 2011년 9월 준공된 이 사업은 특혜시비 등의 문제로 전면개장이 미뤄져오다가 최대출자자인 효성과 운영정상화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 박원순 펀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선거에서 선거자금이 부족했던 박원순은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국민참여당 대표 유시민이 경기지사 후보로 나서면서 활용했던 ‘유시민 펀드’를 모방해 '박원순 펀드'를 발행했다.
 
'박원순 펀드’는 모금 하루 만에 목표액인 33억 원을 넘기며 52시간 만에 조기마감되었다. 모금된 펀드는 선거자금으로 쓰고 12월 25일 이전에 원금과 이자(연리 3.58%)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최종 입금액은 38억8500만원이며 입금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5778명이었다. 1인당 평균 67만 원을 낸 셈이며 시간 당 모금액은 6300여 만원이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7년 4월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을 방문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 비전과 과제

복지와 일자리창출 등 민생문제와 불평등 구조타파, 서울역고가사업 등 핵심사업 추진을 2017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 등으로 서울시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 만큼 서울시의 관광객 대변화에도 힘써야 한다. 

박근혜 게이트 국면의 2016-2017 겨울과 봄을 거치며 집단적 정치의사 표명의 장으로 자리매겨진 서울광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도 박원순에게 새롭게 부과된 과제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재도전할지도 주목된다. 박 시장이 3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 평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어떤 사건이든지 한번 맡게 되면 끝을 보는 성실한 성격 때문에 좋은 평판을 얻었다.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 검소하며 소탈한 모습 때문에 포스코가 오히려 의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1년에 7번 열리는 이사회에 참여하는 다른 사외이사들은 차를 타고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했으나 박원순은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해 포스코까지 와서 걸어왔다.

회사는 본사 어느 입구로 올지 몰랐기 때문에 입구마다 박원순의 사진을 돌려 안내를 지시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행색이 너무 초라해 경비원이나 포스코 직원 누구도 그를 이사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의전을 꺼리는 것은 시장이 된 후에도 여전하다고 한다. ‘불합리한 의전 혁신방안’을 만들라고 서울시 공무원들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 박원순을 놓고 시민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뉴타운 출구전략과 용산국제업무지구 등에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2013년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와 방화대교 진입로 붕괴사고 등 악재가 잇따랐지만 수습과정에서 기민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르스 사태 대처도 호평을 받았다. 끊임없는 소통을 중시해 '시민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시장'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반면 새누리당 김성태의원과 뉴데일리로부터 전임시장 오세훈이 하던 전시행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인기위주의 정책들을 내놓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시장 재선에 출마하며 ‘세월호 참사’를 의식해 유세차와 세력동원, 네거티브 등 세 가지를 하지 않는 ‘3무(無) 선거’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와 토론회에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후보의 ‘피부과 1억 원’을 들며 공격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청년정책 5개년 기본계획을 추진하기로 발표하며 저소득 가구 미취업자 가운데 활동의지를 가진 청년 3천 명에게 매달 5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이를 두고 시민들이 낸 세금을 남용해 인심을 쓰는 듯한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이라며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2016년 8월 청년수당 정책을 강행했지만 보건복지부가 직권취소 처분을 내리며 무산됐다.  2017년 다시 추진할 것을 결정했다.

서울광장에 설치된 탄핵 반대 단체의 텐트를 강제철거하겠다고 2017년 3월2일 예고했다. 세월호 텐트는 남기고 탄핵기각 텐트만 강제철거하기로 결정하면서 형평성에 반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뒤 관료적 안정성 위에 끊임없는 혁신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서울형 김영란법’인 ‘박원순법’과 ‘모든문서 갑을 용어 퇴출’ 등 공직사회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또 2020년까지 외부전문가 800명을 신규채용하고 내부적으로는 2926명을 전문가로 양성해 서울시 공무원 전체의 절반 이상을 각 분야 전문가로 육성할 계획을 골자로 하는 ‘민선6기 인사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나 서울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공단, 서울신용보증재단, SH공사, 사회복지재단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광범위하게 자신의 정치적인 인맥을 선임해놨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고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로 적합지 않은 정치적 인맥을 임명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7년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마이너스 5억5천만 원을 신고해 6년째 주요 공직자 가운데 가장 적은 수준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장 재선에 출마하며 후보 등록에서 마이너스 7억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경쟁후보자인 정몽준 전 의원은 2조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2011년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박원순 후보가 포스코와 풀무원 홀딩스의 사외이사를 지내면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참가한 표결 307회 가운데 단 1회를 빼고 모든 안건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고 비난했다. 박 후보가 외부 감시자로서 역할은커녕 도리어 재벌의 거수기 역할만 했던 위선자였다고 평가받아 마땅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원순은 "이사회에 앞서 열린 소위원회 등에서 소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해 최종안에 반영했기 때문에 반대표를 던질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5억3091만원도 "모두 기부했다"고 밝혔다.

1979년 장충식 당시 단국대 총장이 신원보증을 서 줘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데모로 복역한 학생을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는데 이때의 인연으로 장충식 총장은 박원순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투옥된 경력이 있음에도 운좋게 검사로 임용됐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썼고, 6개월 뒤 검찰을 떠났다. 그는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은 데다 폭탄주 등 강압적 조직문화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박원순을 시민운동가의 길로 인도한 것도 조영래 변호사였다. 1990년 12월 조영래 변호사는 임종 직전 “박 변호사,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이제 좀 눈을 돌려봐”라고 박원순에게 조언을 건넸다. 박원순은 다음해 8월 집을 팔아 역사문제연구소에 기부하고 영국유학을 떠났다. 이후 그는 성공한 변호사로서 삶을 버리고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한편 `돈 되는 사건'도 맡아 "돈을 꽤 잘 벌었다"고 한다.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재정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

박원순 저격수 강용석 전 의원과 경기고-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로 수년간 참여연대에서 함께 일했다. 강 의원은 1998~2003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집행위원을 지냈다.

강용석 전 의원과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강 전 의원의 장인 윤재기 전 국회의원과 막역한 사이다. 윤 전 의원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검사 출신으로 ‘아름다운가게’를 후원하는 등 30년 넘게 박원순 시장과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강용석 고소사건 이후 강용석 전 의원은 장인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강용석 전 의원 참여연대 활동을 시작한 것도 장인의 권유 때문이었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조문을 위해 2011년 9월6일 고 이소선 여사의 빈소를 방문하고 있다.<뉴시스>

◆ 사건/사고

△선거중립의무
2017년 3월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촛불 민심, 국민의 염원을 받들기 위해 혁신적인 통합의 마인드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민주당이 정권을 교체하고 민주 정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음을 국민에 자랑스럽게 보여줘야 할 때다”고 올렸다가 30분가량 만에 삭제했다. 선거중립의무와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크스코필드 전시회 축사 사건
2017년 2월24일 서울시청 로비에서 ‘프랭크스코필드’ 특별전시회 축사를 진행하다가 한 남성에게 자해 시위를 받았다. 이 남성은 2015년 한 재개발 정비예정구역에서 직권해제된 뒤 보조금 보조금 액수를 두고 갈등을 벌여왔으며 재개발 담당 관계자를 만나러 이날 시청에 왔다가 박원순을 보자 술김에 돌발행동을 벌인 것으로 추측됐다. 서울시는 이 구역을 2015년 사업이 정체된 재개발 정비예정구역을 직권해제할 때 포함했다.

△국정원 폐지 주장
2017년 1월10일 한 인터넷방송매체 대선주자 초청 인터뷰에서 국정원을 폐지하고 해외정보수집 부서를 새로 만들 것을 주장했다. 이 때 국정원의 사찰과 제압문건 작성 등을 함께 언급했다. 2013년 5월15일 한겨레가 국가정보원의 내부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인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와 대응방향’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여당과 정부기관, 민간단체, 학계를 총동원해 박원순을 ‘제압‘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야 요구와 탄핵 주장
2016년 10월 박근혜게이트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11월 2일 청와대가 박근혜게이트 의혹에 대응해 개각을 발표한 것을 놓고 예비대선주자 가운데 공식적으로 하야 요구를 처음으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하면 대선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내걸기도 했다. 

11월3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언급했다. 11월9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의 하야 요구에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를 적시한 공소장을 발표하자 즉각 탄핵을 결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1월2일 페이스북을 통해 결심이 섰다면서 대선출마를 사실상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개헌저지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논란을 놓고 문재인 전 대표와 충돌했고 이후1월8일 문재인 전 대표도 기득권 청산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 없다며 쓴소리를 했다. 1월10일 대선주자들이 국정 참여 해야한다는 문재인 전 대표를 두고 패권적인 발상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백남기 농민 사건 계기로 물대포 사용 불허
2016년 9월25일 2015년 11월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면서 경찰의 과도한 소방용수 사용을 제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근혜게이트로 광화문에서 대대적인 촛불시위가 일어났지만 물대포 사용을 불허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
2016년 5월28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안전문을 정비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씨가 열차와 스크린 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박원순은 이를 사과하면서 지하철공사의 안전관련 업무의 외주를 근본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스크린도어 정비를 모두 직영전환하기로 했다. 2016년 6월30일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를 2018년까지 레이저센서로 모두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강남구와 대립
2015년 12월 강남구청 공무원들이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서울시를 비방하고 강남구를 지지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게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와 강남구는 2015년 들어서만 제2시민청, 한전부지개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현대차 공공기여금 등 중요 이슈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12월9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행정감사 규정 등에 따라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실질감사를 해 위법성이 확인되면 수사의뢰 등 법적조치를 취할 것을 발표했다. 2016년 10월 서울중앙지검은 강남구청 공무원들에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 서울시는 형사처벌 이외 다른 책임을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송현동 호텔건립 반대
대한항공의 송현동 호텔건립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부지 인근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가 있어서 호텔건립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취하며 민속박물관을 선호한다고 피력해왔다.

대한항공은 서울시 송현동의 옛 미국대사관직원숙소부지를 29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7성급 특급호텔 건립을 추진해왔다.

2015년 8월 새누리당의 ‘경제활성화 4법 일괄 타결 추진 방침’으로 이 개발이 재조명됐지만 송현동 부지는 지구단위계획상 호텔을 지을 수 없는 곳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송현동 호텔 건립은 차은택이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송현동 호텔 건립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예산참여제 추진
2015년 2월22일 서울시 전체공통사업과 자치구 지역사업 2개로 나누고 시민참여도 늘리는 등 대폭 수정했다. 2011년부터 주민이 직접 참여해 예산을 짠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주민참여예산제가 주민참여가 미진하고 자치구가 해야할 사업까지 서울시가 하고 생색을 낸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버 도입 불허
2015년 1월21일 글로벌 차량공유서비스 우버(Uber)에 대해 우버가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어 영업활동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버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승객과 차량을 이어주는 서비스로 일반 택시와 승객을 연결하는 우버택시와 일반인이 자신의 차량으로 운송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버엑스, 프리미엄 리무진 차량을 연결하는 우버블랙 등의 서비스를 포함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는 우버의 서비스가 여객자동차운송사업법을 위반해 불법이라 규정하고 제동에 나섰지만 우버가 ‘우버택시’를 출범시키며 갈등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우버를 불법콜택시 영업을 벌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우버는 결국 한국에서 철수했다.

△지하철 운영 통합
2014년 12월10일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5~8호선을 관리하는 도시철도공사를 2016년 말까지 통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서울메트로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지연됐다. 2016년 11월23일 서울지하철노조와 서울메트로노조, 서울도시철도공사노조는 통합에 찬성했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17년 5월 통합을 앞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3월에 벌인 전수조사에서는 자산 221억 원을 찾아내기도 했다.

△겨울철 도로굴착공사 금지
2014년 11월30일 겨울철 불필요한 도로굴착공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겨울철에 하는 도로굴착공사는 부실시공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연말마다 관행처럼 시행되던 보도블록 공사를 막고 불필요한 도로굴착공사를 없애기로 했다.

△협동조합형 공공주택 조성
2014년 11월23일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인 강서구 가양동의 ‘이음채’ 집들이에 참석했다.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은 뜻이 맞는 입주자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공공주택을 만드는 방식의 주택이다. ‘이음채’는 2014년 8월 완공돼 12월 초 입주가 완료됐다.

△웨딩홀 사장 장부 사건
2014년 3월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의 청부살인으로 피살된 송모씨의 금전출납장부에서 박원순의 이름이 적힌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송씨는 2010년부터 2013년 사이에 부동산용도변경 청탁과 송 씨가 운영하던 웨딩홀 근처 새 웨딩홀 신축을 막아주는 대가로 각각 5억 원과 4천만 원을 김 전 시의원에게 제공했고 김 전 시의원은 송씨의 민원을 해결해주지 못해 압박에 시달리자 친구 팽모씨를 교사해 송씨를 살해했다.

△싱크홀과 제2롯데월드 등 안전문제
서울시 싱크홀과 석촌호수 수위저하 등 안전문제가 일어나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극대화된 국민의 불안감이 커져 제2롯데월드 조기개장을 허가하지 않다가 2014년 10월2일 위험요소가 발견되면 즉각 허가를 취소한다는 조건을 달아 승인했다.

제2롯데월드는 2014년 2월16일 47층 컨테이너박스에서 화재가 나고 4월8일 12층 옥상배관설비 이음부분이 폭발하는 등 안전성을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2014년 12월3일 제2롯데월드에 개장한 대형수족관(아쿠아리움)에서 균열이 발생해 누수가 일어나는 문제가 발생하자 다시 제2롯데월드의 임시사용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며 안전진단을 완료할 때까지 제2롯데월드를 사용 중단시켰다.  안전검사를 거쳐 2005년 8월 재개장했다.

2014년 8월 서울시내에 잇따라 싱크홀 현상이 발생했다. 사전에 막는 것이 중요하다며 철저한 조사를 강조했다.

△병역기피 의혹
2011년 10월 병역기피를 위한 호적 쪼개기 의혹이 제기되었다.

1969년 7월 당시 13살인 박원순은 일제강점기 사할린에서 실종된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됐다. 입양 덕분에 당시 만 17세로 징집편입 대상자였던 박원순의 형이 1967년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부선망 독자 방위복무 혜택'을 봤고, 박원순도 아버지(자신을 입양한 작은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6개월 방위로 군복무를 마친 것이 문제였다.

박원순의 입양 사실에 한나라당은 양부인 작은할아버지의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민법상 근거가 없는 양손 입양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박원순은 “양손 입양이 당시 관행이었으며 박원순 후보의 할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의 대리인으로 입양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아들 병역의혹
강용석 의원이 박원순 아들 박주신씨의 병역의혹도 거론했다. 박씨가 2011년 8월 공군에 입대했으나 '대퇴부 말초신경 손상'을 이유로 나흘 만에 귀가 조치된 것과 관련해 그가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MRI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 2월 22일 세브란스병원이 판독한 결과 군에 제출된 MRI 사진이 박주신씨 본인의 것이라고 밝혀졌다. 이에 강 의원은 박원순과 그 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의원직 사퇴를 발표했다.

△아내 일감 몰아주기 의혹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의 배우자 강난희씨가 세운 인테리어 회사 'P&P디자인'에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원순은 "아름다운 가게가 전국에 130여 개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시작단계에서만 10여 개 정도 부인이 도와줬을 뿐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해명했다.

'P&P디자인'이 실내건축공사업 등록을 하지 않은 무등록회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나라당이 "손위동서를 통한 현대모비스 공사 특혜 의혹보다 더 죄질이 나쁜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지적하자 박원순은 "세무서에 사업체 신고를 해 사업자 등록증을 들고 있으며 시도지사에 등록하는 조항을 몰라 신고하지 않았지만 사업을 영위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국가정보원의 소송
2009년 국가정보원 명예훼손 혐의에서 승소했다. 박원순은 2009년 6월 위클리경향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 임원까지 전부 조사해 시민단체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불법사찰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정보원은 "박 변호사가 허위 사실을 말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2010년 9월 15일 서울중앙지법은 "국가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박원순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는 기본권의 보장 의무를 지는 존재이지, 누리는 주체가 아니다"라며 "국가가 국민의 비판에 소송으로 대응하려 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낙천낙선운동 전개
2000년 1월 12일 박원순이 소속한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 개 시민단체들이 뜻을 모아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를 구성했고 박원순은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낙천•낙선운동을 이끌었다.

총선연대는 후보공천 반대 인사들의 선정기준으로 "병역사항, 재산변동, 부패혐의, 선거법 위반, 헌정질서 파괴와 반인권 행위, 의정활동 성실성, 법안과 정책에 대한 태도, 반의회 반유권자적 행위" 등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선거법 위반’ 판정을 받았다. 당시 선거법 제87조는 선거일 20일 전부터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기간 중 시민단체가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총선연대는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낙천낙선운동을 지속했고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상자 132명 중 72.3%인 102명이 낙선했다. 비록 선거법을 어겼으나 시민참여를 통해 정치개혁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인숙 성고문 사건 변호
1986년 부천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박원순은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피해자 권인숙씨의 변호인단을 맡았고 조영래 변호사가 낭독한 변론요지서에도 작성인으로 연서했다.

이 사건은 공권력의 왜곡과 사법부 및 언론의 부도덕한 모습, 보도지침의 공개 등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대 제명
1975년 5월 22일 구속돼 영등포 구치소에서 4개월 간 복역했다. 긴급조치 9호를 반대하며 할복자살한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의 장례식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이어졌는데 박원순을 비롯해 '돌멩이 몇 개 던진' 60여 명의 학생이 구속됐다. 그는 기소유예로 풀려났지만 이미 대학에서 제명된 후였다.

◆ 경력

1980년 6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2년 6월 사법연수원(제12기) 수료 후 검사직을 지망하여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되었다.

1983년 8월 검사를 그만 두고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6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을 맡았으며, 같은 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의실천법조인회’에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참여했다. ‘권인숙성고문사건’, ‘보도지침사건’, ‘구로동맹파업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등 여러 시국사건 변론에 참여했다. 이후 1988년 결성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도 학술간사로 활동했다.

한국현대사 연구자들과 뜻을 모아 1986년 민간 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했고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1991년 영국 유학길에 올라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선진국들의 사례를 연구했다. 이후 박원순은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1994년 9월 10일 ‘참여연대’를 결성해 2002년까지 사무처장 및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법률지식을 활용한 ‘합법적’ 형태의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맑은사회만들기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 부패정치인 낙천낙선운동,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등을 이끌었다. 특히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를 구성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 운동을 벌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의 입법화에 기여했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반환소송을 승소로 이끌어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참여연대가 확실히 자리잡자 2000년 1% 나눔운동을 위한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궤도에 오르자 2002년 중고 생활용품을 기증받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해 상임이사를 맡았다.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방문교수 자격으로 한국 시민사회를 주제로 강의했다.

2006년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희망제작소’를, 2009년 제3세계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공정무역 커피회사 ‘아름다운 커피’를 각각 세웠다. 2004년부터 5년간 포스코 사외이사로 재직했으며 이외에도 풀무원홀딩스 사외이사, 웅진 비상임이사를 맡았다.

2011년 8월 26일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해 보궐선거가 예정되자 박원순은 출마를 선언했다. 처음 5% 내외의 미미한 지지율로 출발했으나 출마를 고심하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부터 단일화 양보를 받아냈다.

10월 3일 민주당 박영선 의원, 민주노동당 최규엽 의원과 범야권 단일화 후보 선출 경선에서 승리했고 10월 26일 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 5월15일 서울시장 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2014년 6월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개표결과 272만6763표를 얻어 정몽준 후보에 63만 표 앞서며 승리를 거뒀다. 1995년 민선 1기 선거 이후 역대 서울시장 당선자 가운데 최다 득표수였다. 뉴욕타임즈는 2014년 6월6일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이 2017년 대통령선거 유력후보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뜻을 보였다가 더불어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불출마로 다시 방향을 정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사진 오른쪽)이 2017년 4월10일 오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 사진 왼쪽)와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해 서울시가 추진중인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뉴시스> 오른쪽 사진은 사법연수원 시절 문 후보와 박 시장.

◆ 학력

경상남도 창녕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1974년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재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합격했다.

1975년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서울대에서 제적됐다.

1979년 유신체제 종식에 따라 이듬해 각 대학의 제적생 복교조치가 내려졌으나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1985년 2월 졸업했다.

1991년 8월 런던정경대 국제법과정(LSE)에서 1년간 수학해 디플로마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박원순은 경남 창녕의 가난한 농가에서 부친 박길보씨의 2남 5녀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969년 7월 당시 13살인 박원순은 일제강점기 사할린에서 실종된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됐다.

1982년 강난희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박주신) 1녀(박다인)를 두었다. 강씨는 1999년 인테리어회사 ’P&P디자인‘을 설립했다. 한 때 대기업의 일을 수주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으나 지금은 사세가 위축돼 직원 7~8명 수준의 작은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 상훈

시민운동가로서 활동하는 동안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2002년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공익봉사상, 2003년 시민의 신문 올해의 상과 희망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2006년 만해 한용운의 사상과 정신을 기리는 제10회 만해대상 실천부문에서,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에서 각각 수상했다. 2009년 불교인권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불교인권상을 받았다.

학술분야에서 저술활동도 인정받아 2002년 제15회 심산상, 2007년 제21회 단재상을 수상했다.

◆ 기타

1978년 8월부터 8개월간 고향에서 보충역으로 복무해 병역의무를 마쳤다.

◆ 어록

“서울시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혁신도시다. 서울시가 성취하고 실험한 정책들을 로열티 없이 문재인 후보에 주겠다. 사법연수원 동기로 3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지였고 현재의 동지이며 앞으로도 동지일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을 문재인 후보와 함께 걷겠다.”(2017/04/11,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우리 헌정 역사에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불행한 사건이 민주주의 온전한 복원과 새로운 국가 법치주의 기틀이 다시 서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2017/03/31,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 기조연설 전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을 놓고)

“대통령 탄핵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대한민국 시민은 자랑스럽다. 위대한 시민의 완벽한 승리다. 시민 저항권을 보장하는 것이 시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편의를 제공했다.  21세기 민주주의가 도전받는 상황에 대한민국 촛불집회는 세계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국가 재난과 위기를 막는 예방책과 해결법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행동하는 민주주의이며, 연대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광장과 서로를 배려하고 신뢰하는 공동체가 진정한 안보다.”(2017/03/31,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 기조연설에서 촛불집회를 놓고)

“일정부분 사회주의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람을 살게 해주는 정부인가, 알아서 생존하라는 정부인가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너무 각자도생하는 사회다. 정부가 도대체 왜 존재하는지 잊어서는 안된다.” (2017/03/31, 오스트리아 빈에서 빈의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인 ‘칼 마르크스 호프하우스’를 시찰하며)

“이번 대선에 나가면서 '나다운 것'을 잘 못 했던 것 같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훨씬 다른, 조직이나 개인 비전이나 선거 방식이나 다 새로움으로 가득 찬 것을 하겠다. 국민이 너무나 신기해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하려 한다. 그동안 서울시장으로서 너무 '올인'했던 것 같다...  나 자신도 정리할 시간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대선(준비)에 나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실패는 당연하고 예비돼 있었다. 재수는 여러 번 했지만, 삼수는 절대 안 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죽는 게 소원이다. 이미 '시작'을 했는데 끝은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03/23, 기자들과 만나 대선 재도전을 놓고)

“서울시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었다.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었다. 누구보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을 위해 화장실을 적극적으로 개방해 준 여러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촛불집회의 '우렁각시'가 돼 평화로운 집회 문화를 만들어 줬다.”(2017/03/20, 촛불집회에 화장실을 개방한 건물 관리인이나 회사 대표에게)

“정치 격변기에 테러 등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경우가 많은데 우리 촛불집회에는 폭력이나 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 국민은 위대하며 시민명예혁명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국민들의 평화 집회 의지와 역량은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거나 노벨평화상을 받을만하다.”(2017/03/19, 촛불집회의 노벨평화상 수상 지원을 놓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오늘 비로소 광장에 봄이 당도했다. 2017년 3월10일 오늘로 대한민국 이전과 이후는 달라졌다. 성숙한 광장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바꿨다. 우리는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희망찬 민주적 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서울시장으로서, 정치인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감과 함께 광장의 교훈을 겸허하게 새긴다.”(2017/03/10,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드 배치와 관련한 갈등 때문에 중국과의 외교 문제가 심각해졌고, 관광객을 포함한 어려운 문제가 닥쳤다. 나는 이것을 어리석은 외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관계를 기초로 하면서 경제적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중국을 외교적 파탄으로 만든 것은 외교적 실책이고 실패였다...  이번 기회에 관광 시장의 다변화와 MICE(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에 좀 더 우리가 집중해 양적 발전뿐만 아니라 질적 전환도 만들어 내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2017/03/07, 서울시청에서 중국의 한국 여행금지 조치를 놓고 ‘민관합동 대책회의’에서)

“98년 전 오늘 3.1운동의 힘으로 임시정부가 수립했고 마침내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됐다. 여러분은 진정한 독립과 새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모였다. 여러분들 한분한분이 유관순 열사인 셈이다.”(2017/03/01,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1절 맞이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서)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의 관용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 시청광장에서 벌어지는 박사모 등의 집회에서 도가 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살인과 테러를 주창하고 내란을 선동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서울시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광장은 시민의 것이므로 누구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서울시는 평화집회를 절대적으로 보장하고 보호할 것이다. 그러나 불법행위와 무법천지를 용납할 수는 없다.” (2017/02/26, 보수단체의 헌법재판관 원색비난을 놓고 페이스북을 통해)

“그 긴 걸음 속에서 아직도 제 마음 속에 비워내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비워진 마음 속에 시민을, 그 고통의 삶을, 그것을 해결할 방도를, 헝클어진 세상의 매듭을 풀어보겠다는 그 초심을 차곡차곡 쌓아 가겠다. 지리산을 다녀왔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걸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었다. 저 눈보라와 짙은 구름 속에서도 여전히 태양은 빛나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겠다.”(2017/02/01, 대선 불출마 선언을 놓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의 염원과 기대, 그리고 저의 역할 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정권교체 이후 민주개혁세력의 단결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다시 시민 속으로 들어가겠다.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을 안전하고 시민들이 행복한 세계 최고의 글로벌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 ”(2017/01/26,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늦었지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재벌개혁의 대열에 합류한 것을 환영한다. 문재인 전 대표가 내세운 4대 재벌개혁은 재벌 경제력 집중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 빠져있다. 계열분리명령제나 기업분할명령제처럼 재벌이 힘을 오남용해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에 정부가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거나 기업분할을 명령할 수 있는 특단의 제도적 뒷받침 없이 재벌개혁을 얘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또 경영능력이 없는 2,3세로의 불법 세습을 막기 위한 방안을 포함하지 않는다. 재벌의 원청 하청과 재벌·중소상인 사이의 갑을관계 혁파 방안도 미흡히다. 경제적 약자의 단결권을 토대로 한 실질적인 재벌개혁 방안이 빠져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고 구체적인 안을 놓고도 의심이 생긴다.”(2017/01/11,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벌개혁안을 놓고 페이스북에서)

“결심이 섰다! 지금 대한민국이 거듭나려면 '유능한 혁신가'가 필요하다. 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점에 평생을 혁신과 공공의 삶을 살아온 나는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누구보다 가장 잘 만들 수 있다고, 도탄에 빠진 절박한 국민들의 삶을 가장 잘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전환, 대혁신을 기필코 이루겠다.”(2017/01/02, 대선출마를 시사하며 페이스북에서)

"친박도 정권재창출 이야기 하더니 비박신당도 대선 승리 운운하는 것에서 정권연장을 위한 '이념세탁'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혁보수신당이라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2016/12/27,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의 개혁보수신당 창당 선언을 놓고 페이스북에서)

“국민이 이겼다. 국민과 국회의 뜻이 확인된 만큼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즉각 퇴진해야 한다. 헌재는 조속히 심리에 착수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탄핵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내각도 민생안정에 힘쓰되 박근혜 정권의 부활을 꿈꾸는 일체의 시도가 있어서는 안된다.”(2016/11/09,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결과를 놓고)

“탄핵을 즉시 결의해야 한다. 부결시킨 정치인과 그 당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눈치를 보고 있고 야당은 분열에 빠져있다. 거의 환란에 가까운 이 국정위기 앞에서도 자신과 당파의 이해를 재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에 국민은 절망한다. 정치는 술수가 아니라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가는 정치는 반드시 승리한다.”(2016/12/01,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에 대한 국회결의 여부를 놓고)

“촛불민심은 결코 박근혜 대통령 생각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 국민의 힘이 탄핵을 쉽게 만들고 대통령 조기하야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조기하야만이 모든 것을 풀 수 있다.”(2016/11/22,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검찰은 소추는 할 수 없어도 증거인멸과 더 이상의 사법방해를 막기 위해 당장 체포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피의자인 박 대통령이 본인이 임명한 검찰 조사를 믿지 못하고 특검을 받겠다는 것은 시간끌기용 꼼수다. 국민이 검찰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2016/11/20,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야권 비상시국정치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거부한 것을 놓고)

“온 나라가 위기인데 개인이 대선 출마 같은 정치적 이해를 따질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시정을 잘 챙기고 한명의 정치인으로서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겠다.”(2016/11/15, TV조선 뉴스쇼 ‘판’에 출연해 대선출마가능성을 놓고 이야기하며)

“촛불을 든 국민은 묻고 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비선을 통해 '혼용무도(어리석은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한 세력이 임기를 마쳤다고 기록되는 것이 정의인지, 아니면 무도한 세력들이 모두 죗값을 치르고 성난 민심의 요구로 하야했다고 기록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묻고 있다. 정의롭고 공정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총리 한사람 바꾸려고 촛불을 든게 아니다. 비정상에 익숙해져 있는 낡은 사회체계를 근본부터 바꾸고 싶은 것이고 삶을 혁명하고 구체제를 탈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 시작으로 기득권과 특권의 상징이며 새로운 미래로 가는 가장 큰 걸림돌인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고 이야기하고 있다."(2016/11/10, 사회관계망서비스 방송인 ‘원순씨 X파일’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반도 정책의 변화와 경제 무역환경의 변화 등 세계 질서가 급변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으로는 이런 상황에 준비를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조속히 퇴진하는 길만이 국정공백과 외교공백을 최소화하고 혼란의 장기화를 막는 길이다.”(2016/11/09,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놓고)

“박 대통령 수사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고 범죄라고 할 수 있는 게 분명하다면 얼마든지 탄핵이라든지 이런 길이 열려 있다. 일단 국회가 해야 할 일인데 지금 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지 않는가. 심지어는 여당 안에서도 일부는 대통령의 행태에 굉장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번 사건은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몸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엄중한 수사가 있어야 한다. ”(2016/11/03,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들겠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도 정치인도 국민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 오늘 하나의 촛불이 대한민국의 희망을 밝히는 그런 촛불이 되길 바란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차별할 필요가 있는가. 지금 국민이 격앙하고 분노하고 있다.”(2016/11/02,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야한다.”(2016/11/02, 청와대가 박근혜게이트에 대응해 발표한 개각을 놓고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긴급성명을 열면서)

“서울시는 앞으로 옥시 소모품을 쓰지 않겠다.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면 이처럼 부도덕한 기업의 상품은 이 땅에 자리 못 잡게 해야한다. 문제있는 기업이 반드시 징벌돼야 그 사회는 건강해진다.”(2016/04/28,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논란에서 촉발된 옥시 불매운동에 동참하며)

“2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것 하나 명쾌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어느 실종자 어머니의 말에 꾹꾹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더 슬픈 분 앞에서 울지 않으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세월호에는 국민이 있다. 국가란 국민이다.”(2016/04/16, 세월호 팽목항을 찾은 뒤 SNS를 통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는 명백한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탄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다는 처방에는 아쉬움이 있다. 평화라는 것도 큰 민생정책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입주기업들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므로 입주기업의 물건판매를 적극 돕겠다.”(2016/02/12, 북한 장거리미사일 발사 사건을 놓고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도시문제의 열쇠는 청년들에게 있다. 청년들은 마이다스의 손이어서 무슨 문제든 청년들이 나서면 해결 가능하다.”(2016/1/30, 전주에서 열린 청년정책토크에서 청년들과)

“청년이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의 희망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들의 삶이 비루하다면 우리사회의 미래가 비루할 것이라는 전조이며 청년들의 삶에 희망이 없다면 다가올 우리사회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징후다.” “현실의 벽 앞에서 힘겨워하는 청년의 기댈 언덕이 되겠다. 결코 외면하거나 등 돌리지 않겠다. 청년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서울시가 청년의 옆에 서겠다. ”(2015/12/10, 청년정책을 놓고 기자간담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과 민주화운동에 큰 지도자였다.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민주헌정의 기초를 닦으셨던 분이다. 우리 사회의 큰 별이 지셨다. 민주화추진협의회와 양김 단일화에 참여하면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어려운 시절을 견디면서 민주화의 큰 길을 개척했던 지도자라 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다.”(2015/11/22,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방문해서)

“노마드(Nomad, 유목민) 시장으로서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펼쳐나가겠다. 몽골 유목민의 삶을 통해 늘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비전에 도전할 수 있었다. 어느 한 가치와 철학,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는 노마디즘의 핵심은 개방과 공유, 소통과 협력의 힘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서울시는 높은 관료주의의 벽이 시민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었다. 실제 시민의 목소리와 현장의 목소리가 시정에 반영되기 힘든 구조였다. 하지만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몽골의 격언처럼 서울시장에 당선되자마자 시민과 함께 시정을 펼쳐가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2015/09/22, 몽골국립대학교 특별강연에서)

“나라가 없어지면 가난하고 힘든 계층이 먼저 희생되기 마련이다. 모두가 위정자의 잘못이다. 꽃이 미처 피어나 보지도 못하고 그 무지막지한 고초를 겪었다. 그 비극과 참상은 우리모두가 이미 아는 바다. 아름다운 재단을 시작할 때 김군자 할머니께서 가지고 계시던 5천만 원을 장학기금으로 만들어 기부하셨다. 아직 광복이 이분들에게는 오지 않았다.”(2015/08/15, 광복 70주년을 맞아 자신의 SNS에 게재한 글에서)

“메르스사태를 계기로 관광업계 체질과 구조를 모두 바꾸는 기회가 돼야한다. 서울이 관광객없이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을 이번 사태로 확인했다. 관광객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면 스스로의 결의와 노력이 필요하다.”(2015/07/28, 시청에서 열린 ‘서울시-관광업계-경제계 합동 간담회’에서)

“관광객 2천만 서울을 목표로 뛰겠다. 무엇보다 메르스로 인해 발길을 돌린 외국인관광객을 다시 서울로 오게 하는 게 급선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관광여행업계와 숙박업계, 요식업계, 쇼핑업계 등 관광인프라 업계 모두와 손잡고 외국인관광객을 다시 서울로 끌어들이는 데 온 힘을 쏟겠다. 서울의 관광산업이 다시 옛 명성을 되찾고 경제를 살리는 황금알로 거듭나는 관광객 2천만 도시 목표를 위해서라면 관광가이드로 나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2015/07/01, 서울시장 민선 6기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든 정책 수단과 예산을 쏟아부어 민생회복에 앞장서겠다. 향후 서울시정은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다. ”(2015/07/01, 서울시장 민선 6기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의 비극 속에서 시민의 안전을 제일의 화두로 내세우며 출범했던 민선 6기 였다. 나는 시민이 생명과 생활에 대한 걱정없이 꿈과 희망을 키우도록 돕는 일이 서울시가 존재하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우리는 메르스라는 미증유의 질병과 맞닥뜨렸다. 그리고 우리는 메르스가 불러온 불안과 민생고 속에서 민선6기 1년을 맞고 있다...서울시 차원에서의 공공의료 혁신을 과감하게 펼쳐나가겠다.”(2015/07/01, ‘메르스사태’를 놓고 서울시장 민선 6기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방정부와 의회의 관계는 수레의 양 바퀴와 같다. 역할은 다르지만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서울은 균형이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협력과 협동이 무슨 일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며 지방·중앙 정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재정구조 때문에 문제가 많다. 부족한 예산은 중앙정부에 매달려 얻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에도 발품을 팔아가며 의원들을 찾아 조르고 사정했지만 겨우 800억 원을 얻었을 뿐이다. 800억 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남경필 지사가 받아간 돈은 10조 원이 넘었다. 균형을 맞춰줘야한다. 국가경쟁력은 지방 분권에 달려있다. 시민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은 지방정부가 더 잘할 수 있으며 중앙정부는 큰 틀을 만들면 된다.”(2015/02/10,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지방재정 건전화 국제 컨퍼런스에서)

“저는 실용주의자다. 정말로 창조경제가 내 신념이기도 하거니와 제가 심지어는 먼저 얘기했다고까지 말씀드렸다. 대통령이 쓰셨다고 서울시장이 억지로 딴 걸 만들어야 되는가. 어찌됐든 이미 지금 산업화시대의 연장선상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걸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서울시가 모범을 보이면 된다.”(2015/01/08, ‘서울형 창조경제’를 주장한 배경을 놓고 기자간담회에서)

“역사를 엄격히 평가하되 장점은 살리고 한계는 극복해가는 긍정적이고 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영화가 긍정적으로 묘사한 산업화시대에는 시행착오가 물론 많았다. 민주주의의 유보라든지 인권침해라든지 많은 문제가 있었다. 어찌됐든 오늘날 경제성장을 일군 중요한 성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그런 것을 기초로 그 때 단점은 그 이후 민주화로 보완이 된 거니까 그걸 또 계속 증진시켜가고 그걸 기반으로 해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한다.”(2015/01/08, 영화 ‘국제시장’을 놓고 기자간담회에서)

“ 시민들의 삶이 녹록치 않다. 서울시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안될 것 같다. 민간 업계 시민들과 함께 해나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서울시 브랜드도 ‘함께 서울’이다. 민생이 만사라는 말처럼 내년 한 해 민생 잘 챙기고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2014/12/29,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월호 참사가 있기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달라야 된다. 세월호는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참혹한 사건이었다. 여야가 당파적 이해에 휘둘리지 말고 명명백백히 조사해야한다. 왜 유족들의 의견도 충분히 존중되지 않고 국민의 합의에 의한 처리가 안되는건지 이해가 안간다.”(2014/08/08,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놓고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현해)

“다시 사람이 희망, 시민이 시장이다. 서울은 사람제일의 도시인 ‘사람특별시’로 나아간다. ”(2014/07/01,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저는 새정치연합 소속이고 안철수 대표는 내 소속 정당의 대표다. 선거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부분과 안 대표가 치른 전국 선거에 대해 회고했다. 안 대표와는 정치하기 전부터 서로 신뢰가 있었고 나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저는 새정치연합 소속의 지자체장으로서, 안대표는 그 당 대표로서 각자의 역할이 있고 본분이 있다. 서로 얼마든지 협력·상생할 수 있다.”(2014/06/18, ‘안철수와의 회동’을 놓고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기 때는 보궐인 만큼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이제 4년 동안은 1기에서 시작했던 사업을 차근차근 제대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정권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서울시장이란 막중한 책무가 있는데 거기에 집중 않고 다른 생각을 한다면 시장 의무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2014/06/16, 한에 출연해)

“우리는 묶여있고 상대방은 우리를 매와 몽둥이로 때린다. 그걸 고스란히 맞는 느낌이었다. 네거티브 없는 선거가 우리는 네거티브를 안하고 상대방만 하는 상황이 되면 참 어렵다고 느꼈다. 7선 국회의원과 대한민국 한 정당의 대표를 지낸 정몽준 후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지, 대한민국의 정치풍토가 이것밖에 안되는가 하는 생각에 슬프고 참혹했다.”(2014/06/04, 선거캠프 자원봉사자 조회에서 서울시장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마치며)

“본질은 기본과 원칙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사회와 구조에 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을 느낄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뭔가 새로운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온 담화라 의미있게 받아들인다.”(2014/05/19,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놓고 한국프레스센터 중견언론인모임인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TV토론회에서)

"'무한도전'의 차세대 리더 사전투표에 다녀왔다. 시민분들이 인증샷과 누구를 찍었는지를 물으신다. '위기인 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위기다' 누구의 말일까?"(2014/05/17, 서울시장 재선을 위한 유세 가운데 MBC ‘무한도전’의 차세대리더사전투표에 참여한 뒤 트위터에)

“정치가 국민들에게 계속 실망을 주는 건 우리가 지켜야 할 금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2014/05/16,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나 용역, 경비를 교대로 하는 등 이 지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첫 버스를 사람들이 많이 탄다. 그들이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우렁각시처럼 청소 다 해놓는 것. 동시대를 살면서 그분들 삶을 이해하고 고마움을 느끼고 함께 이해하고 감사해야 한다. 홍콩만 가봐도 도심 한 가운데 임대주택이 있다. 그분들이 도시에서 살기 유리하게 만든 것이다. 임대주택이 한국 같은 경우는 경기나 외곽에 있다. 도시운영의 기본상식이 조금 부족한 상황에 있다. 워싱턴만 가봐도 외곽은 부자가 살고 도심에 가난한 사람이 산다. 워싱턴에서 4달을 있었는데 그 당시 클린턴과 힐러리 외에는 백인이 워싱턴에 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도시의 슬럼화라고 볼 수 있지만 도시에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2014/05/16, 첫출근버스를 타고 서울시장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에서)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시민파다. 국가관이 확고하고 국가안보가 시민들의 생존 조건이고 행복의 조건이라고 본다.” “네거티브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이 더 이상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하지 않도록 해야한다.”(2014/05/16,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사람이 안전한 서울, 사람이 따뜻한 서울, 사람이 꿈꾸고 창조하는 서울, 사람과 도시가 함께 숨 쉬는 서울, 반듯하고 품격있는 서울로 나아가겠다” “새로운 서울은 사람과 생명,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서울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발전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성장의 크기만큼 행복의 크기가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로) 표를 달라고 할 염치조차 없는 상황이라 캠프를 작게 꾸리고 요란한 유세차나 대중동원형의 유세는 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방이 네거티브 선거를 해도 저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하지 않겠다."(2014/05/16, 서울시장 재선출마를 선언하며)

"그분들(강용석과 동조세력)이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 상식적 사회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겠다." (2012/02/23, 시청 브리핑실 기자회견장에서 아들 박주신의 ‘MRI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했던 강용석 등에 대해)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한 것입니다.” (2011/10/2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발표한 당선사례에서)

“몇 마디 저한테 물어보고 그 다음에 너무 갑자기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저는 양보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해서 저도 사실 놀랐죠.” “아무리 신뢰관계가 있다 해도 저보다 10배나 더 되는 지지도를 갖고 있던 분이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내 말) 한마디로 양보한다는 게 사실 또 믿기 어려운 그런 일이다.”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공공적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 (2011/09/07,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단일화 양보 다음날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드디어 새로운 서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2011/10/03, 범 야권 단일화 후보 선출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평범한 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모든 진리는 현장에 있다고 믿습니다.” “희망은 희망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는 겁니다.” (2006/11/14,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희망제작소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며)

“국민이 국가의 잘못된 법 제정과 집행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면 국민의 기본권은 계속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2000/4/30, 택지소유상한법 위헌 판결이 나자, 입법기관인 국회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탐욕'이라는 열차에 올라탔으나… 열차에서 내리면서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우선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 (1991년 멘토 조영래 변호사의 죽음을 계기로, 성공한 변호사 생활을 접고 영국유학을 떠난 당시를 회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고 시민운동에 뛰어들 결심을 할 수 있었다."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4개월간 투옥됐던 당시를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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