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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인정과 의리, 성공적 구조조정 [2017년]
조은아 기자  |  euna@business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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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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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생애

김승연은 한화그룹 회장이다. 활발한 인수합병을 주도하면서 그룹의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1952년 2월7일 충남 천안에서 김종희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멘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드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친의 사망으로 젊은 나이에 한화그룹 회장에 취임해 한화그룹의 규모를 빠르게 키웠다. 대한생명보험(한화생명) 대표이사 회장과 한화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면서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 한화L&C,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엠, 한화이글스 등 7개 회사의 대표이사에서 모두 물러났으나 그룹 회장직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 가족관계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아버지고 7선을 지낸 김종철 전 국회의원이 큰아버지다.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식씨가 작은아버지다.

김종희 창업주와 어머니 강태영씨 사이에서 2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누나 김영혜씨는 제일화재 이사회 의장을 지냈고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이자 제일화재 회장인 이동훈씨와 결혼했다.

동생은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회장의 장인은 김구 선생의 둘째 아들 김신씨로 교통부장관과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김승연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내무부 장관을 지낸 서정화 전 장관의 장녀 서영민씨와 1982년 결혼해 아들 셋을 뒀다.

장남은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다. 김 전무는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2010년 한화에 차장으로 입사했다. 2011년 한화솔라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5년 1월 한화큐셀 상무로 승진했다. 태양광사업에서 성과를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12월 전무로 승진했다.

차남은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다. 김 상무는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한화생명 내 금융사업부문에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한화생명 전사혁신실에 몸담고 있으며 핀테크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남은 김동선 한화건설 팀장이다. 김 팀장은 미국 다트머스대학을 졸업하고 승마선수로 활동하면서 한화건설 해외영업팀에서 일하고 있다. 2015년 12월 서울 여의도 63빌딩 안에 연 갤러리아면세점63 개장식에 깜짝 등장하는 등 면세점 관련 일을 배우고 있다.

◆ 학력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다가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4년 멘로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6년 드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경력

29세였던 1981년에 부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회사를 물려받았다. 취임 1년 만에 한양화학(한화케미칼)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해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했다. 2년 뒤인 1983년에는 미국 정유회사인 유니언오일과 1969년 합자형식으로 인천에 세운 경인에너지 지분을 넘겨받았다. 그 뒤 회사 이름을 한화에너지로 바꿨다.

1985년 현 한화호텔&리조트의 전신인 정아그룹을 인수했고 이듬해 현 한화갤러리아의 전신인 한양유통을 사들였다. 1986년에는 야구단인 빙그레 이글스(한화이글스)를 창단하고 1990년 경향신문사를 인수했다.

1990년대에는 해외진출에 힘썼다. 1993년 아테네은행을 인수했고 1996년 헝가리 엥도수에즈 부다페스트은행(헝가리 한화은행)을 사들였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맞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1999년부터 홍선기 당시 대전시장의 제안을 받아 대덕테크노밸리사업을 진행했다.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승연은 지역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강행했다. 공사는 2001년 시작돼 2009년 11월 준공됐다.

2002년 대한생명보험(한화생명)을 인수해 2010년 한국거래소에 상장시켰다. 같은 해 6월 푸르덴셜투자증권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을 인수했다. 그 뒤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의 지분을 인수해 한화솔라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태양광사업에 뛰어들었다.

1982년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에 취임해 1997년까지 15년 동안 재임했고 2009년부터는 국제복싱발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2년 대한생명보험 대표이사 회장, 2005년 한화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2006년 유엔한국협회 회장으로 선임됐으며 2011년 재선임에 성공했다.

2014년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면서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 한화L&C,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엠, 한화이글스 등 7개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으나 그룹회장은 유지했다.

2014년 12월 사회봉사시간을 모두 이수한 뒤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당시 공판 때 건강이 쇠약해진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팀장의 승마 경기장을 찾아 건강한 모습을 보이며 경영에 복귀할 만큼 건강이 회복됐다는 점을 보여줬다.

경영에 복귀한 뒤 삼성그룹의 화학과 방산 계열사를 인수하고 이라크 개발사업을 추가로 수주하는 성과를 냈다. 또 세계 1위 태양광 셀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2015년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입찰경쟁에 뛰어들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015년 11월 여의도 63빌딩을 면세점 부지로 내세워 6개의 유통대기업들과 입찰경쟁을 벌여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했다.

◆ 사건/사고

김승연은 동생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과 3년6개월 동안 31차례에 걸친 재판을 통해 재산분쟁을 벌였다.

김종희 창업주가 1981년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두 아들의 지분 분할에 대한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아 분가 과정에서 1992년 분쟁이 터졌다.

김호연 전 회장은 주요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소송을 제기했다. 김호연 전 회장은 김승연이 본인과 의논하지 않고 임의로 상속재산을 처분했다며 유산의 40%를 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승연은 “1981년 당사자 간의 합의 등 민법상의 합법절차를 밟아 상속재산이 분배됐고 10년 시효가 끝나 상속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승연과 김호연 전 회장은 1995년 할머니 장례식 때 만나 재산분할에 합의하고 소송도 모두 취소했다.

두 사람은 1995년 어머니의 칠순잔치에서 화해했다. 김 전 회장은 “그 일로 서먹해졌지만 형과의 갈등은 모두 해소됐다”며 “집안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 간 모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1993년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7억300여만 원을 선고받았으나 1995년 사면됐다.

2007년 보복폭행 사건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김승연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는 대학생이던 2007년 술집 종업원과 몸싸움을 벌여 눈에 부상을 입었다. 당시 소식을 접한 김승연은 경호원 17명과 함께 종업원을 청계산으로 끌고 가 폭행했다.

2012년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았다. 계열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4개월 만에 건강상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13년 4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상고심에서 2심을 파기환송했고 2014년 2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났다.

2015년 8월 실시된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2016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도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승연은 2016년 12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김승연은 이 자리에서 최순실을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들 김동선 선수가 정유라와 인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경기에서 메달을 따지 않았나. 메달을 땄을 때 최순실을 함께 보지 않았느냐”는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얼굴도 모르기 때문에 누군지 몰랐다”고 대답했다.

삼남 김동선 팀장이 2017년 1월5일 새벽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동선 팀장은 이날 새벽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모 주점에서 술에 취한 채 폭행을 휘둘렀다. 김승연은 김동선 팀장의 폭행사건을 들은 뒤 크게 화를 내며 마땅한 처분을 받고 자숙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김승연은 소식을 전해듣고 “잘못을 저지른 만큼 벌을 받고 깊은 반성과 자숙하라”고 말했다.

◆ 상훈

1982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았다.

1983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84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1986년 그리스 피닉스 대훈장,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1995년 품질경영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6년 그리스 대훈장을 받았다.

1998년 대한적십자사 유공장을 받았다.

2009년 아버지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와 함께 한국경영사학회가 수여하는 ‘2009 창업대상’을 받았다. 창업대상은 이전에 김성곤 쌍용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등이 수상한 상이다.

◆ 어록

“한화는 최근 몇년 사이 국내외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그룹 비전 추진단계 가운데 퀀텀점프를 달성해 나가자는 마지막 3단계를 시작하는 첫해다.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 일류 한화의 꿈을 가슴 깊이 새겨주길 바란다.”

“패러다임의 대전환기를 맞아 새 생각, 새 정신으로 무장하고 새 시대에 걸맞은 리더십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전 세계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우리에겐 큰 위기이자 기회다." 

“새는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한다. 그 어떤 바람에도 부서지지 않을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다. 지금 세상 밖에서 불어오는 위기의 바람 또한 우리가 더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2017/01/02, 신년사에서)

“신경 쓰지 않는다.”(2016/12/06,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삼성그룹과 빅딜로 재계 순위가 상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얘기에)

“조직의 노화를 부추기는 관료주의, 적당주의, 무사안일주의를 배척하고 세월을 거슬러 영원한 청춘기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한화가 꿈꾸고 만들어갈 모습이다.”(2016/10/10, 창립기념사를 통해)

“한화그룹은 지난 5년 동안 남다른 사명감으로 태양광사업에 매진해 왔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인 시각으로 고민하고 육성해야 할 사업이라 여겼고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할 또 하나의 미래산업으로 키워보자는 큰 비전을 실천해 왔다.”(2016/07/05, 충북 진천 산수산업단지 안에 있는 한화큐셀 태양광 셀공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하며)

“더 이상 매출 1위, 생산량 1위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품질력 1위, 수익성 1위, 고객가치 1위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2016/01/04, 신년사에서)

“지금은 숲보다 나무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며 작은 구멍 하나에 거대한 배도 침몰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방산•유화부문은 규모의 경쟁력을 넘어 실질적 시너지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 태양광부문은 글로벌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초일류 기업을 목표로 도전하고 해외시장에서 미래 사업기회를 모색하는 금융부문도 글로벌 경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2016/01/04, 신년사에서)

“한화차이나의 현지 토착화 경영을 통해 오는 2020년 중국 현지에서 매출 10조 원을 달성하는 등 중국에서 제2의 창업을 이룰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글로벌시장 개척에 나서겠다.”(2011/05/11, 한화그룹이 중국사업을 총괄할 한화차이나를 세우고 운영에 돌입하면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명이 동터 오듯이 이제 우리 한화는 새로운 희망을 여는 대한민국과 함께 ‘비극태래’(否極泰來 막힌 비색이 극에 이르면 트인 운수가 온다)의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2008년 신년사)

“세계 속의 한화를 이끌기 위해 국적, 학력, 나이와 같은 불필요한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겠다.”(2007년 신년사)

“시대에 역행하는 익숙했던 과거와 단절이야말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첩경이다.”(2007년 창립기념사)

“글로벌시대에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워야 한다.”(2006년 창립기념사)

“동란의 초토 위에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기적의 역사를 창조했던 화약인들의 ‘프런티어’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한화인 모두 견지해야 할 일류정신의 표상이다.”(2006년 신년사)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다.”(2005년 창립기념사)

◆ 평가

‘인정과 의리’로 유명하다.

미국 해군정보국 정보분석가로 일하다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미국정부에 의해 수감된 로버트 김을 개인적으로 계속 지원했다. 이 사실은 2005년 10월 MBC의 라디오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로버트 김이 출연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김승연의 주변 지인과 회사 내 측근도 알지 못했다.

한화그룹은 천안함 사태가 벌어진 이듬해인 2011년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김승연이 유가족들의 슬픔과 희생을 안타깝게 여기며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라는 지시로 이뤄졌다. 실제 유가족 가운데 일부가 한화그룹에 입사했다.

2015년 한화케미칼 울산 2공장이 폭발해 6명의 노동자가 숨지자 사고 희생자에게 한화 임직원들의 사고에 준하는 최대한의 보상을 지시했다.

평소 그룹 경영의 최고가치로 ‘신의’를 꼽아왔다.

효심이나 부정애도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모친이 팔순을 맞자 영상편지를 직접 제작했다. 아버지 김종희 창업주와 형제처럼 지낸 리처드 워커 전 주한미국 대사의 환갑잔치를 1982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성대히 치러주고 당시 약속한 대로 20년 뒤 팔순잔치까지 챙겨준 일화는 유명하다.

경영자로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재계에서 평가받는다.

1990년대 중반 IMF 외환위기로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한화 바스프우레탄, 한화에너지, 한화자동차부품 등의 회사를 매각했으며 유화사업 맞교환 등의 창조적 구조조정으로 국내는 물론 산케이신문, 로이터통신 등에서 ‘구조조정의 마술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는 승부사 기질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 한양화학(한화케미칼), 대한생명보험(한화생명) 등을 인수했다.

2015년에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테크윈(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 삼성종합화학(한화종합화학), 삼성토탈(한화토탈) 등을 1조9천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인수는 국내에서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으로 꼽혔다.

한화그룹은 2016년에도 방산기업 두산DST(한화디펜스)를 인수하면서 국내 방산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굳혔다.

한화그룹은 앞으로 국내 1위 방산기업을 넘어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화를 비롯해 한화테크윈, 한화시스템에 한화디펜스까지 가세하면서 한화그룹의 2016년 방산사업 매출은 4조2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25년에는 11조 원대로 끌어올려 글로벌 10위권 안에 들겠다는 목표도 세워뒀다.

한화그룹은 2016년부터 한화,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한화테크윈 등 방산 계열사 간 사업영역을 조정하고 있다.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경영효율성을 극대화해 방산사업에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 작업은 2017년에 완료된다.

시장 전망이 불확실했던 태양광사업에 진출한 점 역시 김승연의 결단력 때문이라고 인정받는다. 김승연은 태양광사업에 꾸준한 투자를 이어갔다. 태양광이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던 2011년 한화그룹 창립기념일 기념사를 통해 불확실한 사업환경에 신경쓰지 말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승연의 지원에 힘입어 한화큐셀은 현재 셀-모듈분야 생산 세계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화그룹은 2015년 7월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 입찰경쟁에서 대반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입찰 초반만 해도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승자가 될 것으로 예측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김승연은 뚝심으로 면세점 입찰참여를 결정하고 면세점 후보지로 서울 강북권이 아닌 여의도 63빌딩을 과감하게 선택해 성공을 거뒀다. 

◆ 기타

후원에 어려움을 겪은 예술의 전당 ‘교향악 축제’를 위해 10년 동안 단독으로 후원했다. 예술의 전당은 한화그룹의 후원 10주년을 맞아 2009년 4월 김승연에게 감사의 뜻으로 종신회원증을 전달했다.

독실한 성공회 신자라고 한다. 어렸을 때 성공회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1997년에는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이었다. 성공회대에 일부 대금을 면제해주는 형태로 대학본부 건물을 지어줬고 건물이름이 ‘승연관’이 됐다.

도널드 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의 초청을 받아 2017년 1월에 열리는 취임식에 참석한다. 김승연은 오랜 지인인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립자의 추천으로 취임식에 초청받았다. 퓰너는 트럼프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선임 고문으로 대선캠프에서 외교 및 안보분야 자문을 맡았다.

김승연은 퓰너와 민간외교 차원에서 수십 년 동안 인연을 맺어왔다. 헤리티지 재단은 2011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헤리티지 의회빌딩 2층 컨퍼런스센터를 ‘김승연 컨퍼런스센터’로 명명하기도 했다.

2016년 7월 한화그룹은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꼽은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277위에 올랐다. 이는 2015년 329위에서 52계단이나 올라선 것으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기업 가운데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한화그룹은 2016년에 ‘젊은 한화’를 만들기 위해 조직문화 혁신에 나섰다. 여기에 창립 64주년을 맞아 한화그룹을 더욱 젊게 만들어 일류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김승연의 뜻이 반영됐다.

한화그룹은 과장, 차장, 부장 직급 승진시마다 1개월의 안식월을 주는 등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퇴근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유연근무제’, 직원 개인의 계획적인 경력관리 지원을 위한 ‘Job Market’, 자율복장근무인 ‘비즈니스캐주얼’, ‘팀장 정시퇴근제도’ 등도 도입했다.

김승연은 2016년 보통 연말에 하던 한화그룹 사장단인사를 이례적으로 앞당겨 10월에 실시했다. 특히 경영부재 때 그룹의 안정에 기여한 금춘수 경영기획실장(사장)과 조현일 법무팀장이 각각 부회장, 사장으로 승진돼 전진배치됐다.

김승연은 한국 스포츠계에서 유명한 ‘사격 마니아’다. 한화그룹은 2002년부터 대한사격연맹의 회장사를 맡아 15년 동안 125억 원에 이르는 사격 발전기금을 내놓았다. 김승연은 기업 최초로 2008년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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