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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이사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사업가 '팔방미인'
이승용 기자 romancer@businesspost.co.kr | 입력 : 2017-01-04 08:42:26
   
▲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최대주주.
◆ 생애

박진영은 JYP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이자 이사이며 지분 16.4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현역가수이며 한류를 이끌고 있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다. 

호적상 생일은 1972년 1월 13일이나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반 동안 체류하며 미국 대중문화를 접하고 가수로서 꿈을 키웠다. 

연세대학교 지질학과 90학번인데 대학생이던 1992년 ‘박진영과 신세대’로 데뷔했지만 그룹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4년 ‘날 떠나지마’라는 타이틀 곡을 앞세워 솔로로 데뷔했다. 

‘엘리베이터’, ‘그녀는 예뻤다’, ‘Honey’, ‘난 여자가 있는데’ 등이 히트하며 199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면서 제작자로서 변신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god와 박지윤, 비, 별, 원더걸스, 2AM, 2PM, 미쓰에이, GOT7, 트와이스 등을 키워냈고 이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국내 3대 기획사로 평가받는다.

현재도 가수 활동을 쉬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빼어난 기량의 댄서이고 한류열풍을 이끌어가고 있는 제작자로 꼽힌다.

◆ 가족관계

아버지 박명노씨, 어머니 윤임자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박명노씨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국산업은행과 동부그룹 전무, 동부주택할부금융 사장 등을 역임했다.

윤임자씨는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교사를 하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생활하고 있다.

박명노씨는 교회 장로이며 윤임자씨는 교회 권사이기도 하다.

박진영의 누나는 결혼해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학력

용마초등학교와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서울 배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에 입학했다.

경기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한 후 연세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에 편입했다가 중퇴했다.

◆ 경력

1992년 ‘박진영과 신세대’라는 이름의 그룹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1994년 9월 ‘날 떠나지 마’라는 타이틀곡을 내놓으며 솔로가수로 전향했고 솔로 1집 앨범은 1995년까지 47만장의 음반판매량을 달성했다.

1995년 타이틀곡 ‘엘리베이터’로 2집앨범을 발표했다.

1997년 타이틀곡 ‘그녀는 예뻤다’로 3집 앨범을 냈다.

1998년 타이틀곡 ‘Honey’로 4집 앨범을 냈다.

1998년 5집, 2001년 6집, 2007년 7집을 냈고 2009년부터 싱글앨범을 내며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99년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제작자 겸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 사건/사고

2001년 6월 17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연예계 불공정 계약관행을 고발하자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연예인 40여명을 대동하고 MBC출연을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이른바 ‘연제협 MBC 출연거부 사태’가 일어났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당시 아이돌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를 고발했는데 박진영은 “일부를 전체로 이야기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는 “그들(아이돌들)을 위해 기사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노예가 아니라고 외치니 다리에 힘이 빠지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제협과 기획사들은 MBC와 이상호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지만 모두 패소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계 불공정약관 개선명령을 내렸다.

2010년 2월25일 JYP엔터테인먼트는 아티스트 2PM의 멤버 박재범과 전속계약을 해지해 파문이 일었다. 박재범은 2009년 한국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휘말리고 얼마 안있어 2PM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는데 계약해지 발표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특히 구체적인 계약해지 사유를 함구해 많은 루머가 만들어졌다. JYP엔터테인먼트는 한해 전 여름 활동 당시 저지른 어떤 잘못이 뒤늦게 불거져 문제된 것이라며 “6명의 멤버가 연말 활동이 모두 끝난 올해 1월 3일 그 내용을 알게 됐고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9년 3월27일 JYP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부인 서윤정씨와 이혼사실을 처음 알렸다. 그러나 당시 이혼절차가 끝난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어났다. 2010년 이혼조정에 따라 박진영은 위자료로 30억 원과 매달 2천만 원을 생활비로 지급하게 됐다.

2011년 2월 KBS 월화드라마 ‘드림하이’의 OST수록곡인 ‘섬데이(Someday)’가 표절논란에 휘말렸다. 이 곡은 박진영 작사, 작곡으로 가수 아이유가 불렀다.

작곡가 김신일씨는 애쉬가 부른 ‘내 남자에게’와 유사하다며 1억1천여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박진영은 이 곡을 들어본 적도 없다며 반박했다.

2012년 2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심에서 박진영이 김신일씨에게 총 2167만 2752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박진영은 항소했는데 2심 재판부는 오히려 배상금의 규모를 5693만 710원으로 3배 가까이 늘렸다.

박진영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2015년 8월13일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양측은 2015년 10월22일 각자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2014년 4월 박진영이 재혼한 유모씨가 세월호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알려진 유병언 세모 전회장의 조카로 밝혀지며 논란이 일어났다. 유씨의 아버지인 유병호는 유병언 일가의 계열사인 ‘사이소’의 감사를 맡기도 했다. 그는 결국 구속돼 2014년 11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2015년 10월15일 박진영과 걸그룹 트와이스가 촬영한 교복 광고가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박진영씨의 교복 광고에 대한 사회적 견제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은 “교복 모델은 여중생 여고생의 모습이 아니라 교복 페티시 주점이나 룸살롱의 종업원들처럼 보인다”며  비판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본사 소속 아티스트들이 포함된 교복광고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에 공감하며 광고주와 논의한 끝에 이 지적들을 반영해 광고들의 전면 수정 및 기존 광고 전면 수거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2016년 1월 JYP엔터테인먼트는 이른바 ‘쯔위사태’에 휘말렸다.

쯔위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대만기와 태극기를 함께 흔들었는데 인터넷방송분에만 방영되고 본 방송에는 방송되지 않았다. 대만가수 황안은 인터넷방송분을 보고 ‘쯔위는 대만독립주의자’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박진영은 “우선 상처 받으신 중국 팬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다른 나라와 함께 일할 때 그 나라의 주권, 문화, 역사 및 국민들의 감정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사과했다. 박진영은 “쯔위의 모든 중국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덧붙였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쯔위의 직접 사과영상도 1월15일 유튜브에 올렸다. 쯔위는 중국어로 “중국은 하나 밖에 없으며 전 제가 중국인임을 언제나 자랑스럽고 여긴다”라고 밝혔다.

쯔위의 사과영상은 반대로 대만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대만총통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

대만 젊은 층들은 투표장에 몰려들어 중국을 상대로 독립성을 강조하는 민진당에 표를 줬고 대만 민진당은 1월16일 총선거에서 국민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차이잉원 대만 민진당 주석도 8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하며 제 14대 대만 총통에 올랐다.

◆ 상훈

2006 문화콘텐츠 수출유공자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어록

“왬(Wham)부터 시작해 그의 모든 솔로 앨범을 사랑했고,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 고(Wake me up before you go go)를 96년에 리메이크했었고 이번 콘서트에서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수들이 다 너무 빨리 떠난다. 당신들의 음악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2016/12/26,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날 세상을 떠난 영국 팝가수 조지 마이클을 기리며)

“가장 부르기 힘든 게 발라드다. 기교 없이 깨끗하게 부른다 했을 때 얼마나 다르게 부르겠나. 그런데 다르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 1, 2% 다른 점이. 그게 없이 어떻게 수많은 명품 발라더 사이에서 자리를 만드나? 빤하게 잘 부르는 것보단 새롭게 못 부르는 게 낫다.” (2016/11/27, SBS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6’에서)

“정말 좋은 투수는 직구를 잘 던지는 투수도 아니고요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도 아니에요. 심장이 큰 투수에요.” (2013/02/03, SBS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6’에서)

“삶은 절대로 우리를 결정대로 되지 않으니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사셨다면 편안히 주무셔도 됩니다.” (2012/04/30,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내가 하는 모든 잔소리를 종합하면 결국 휘트니 휴스턴을 본받자는 얘기다. 그녀는 노래하는 내내 들숨과 날숨을 내쉬어 ‘소리반 공기반’인 톤을 유지한다.” (2012/02/13,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내가 가수를 왜하지라는 고민 끝에 깨달은 것은 ‘나는 딴따라다’라는 것이다. 한명의 팬이라도 감동을 주고 싶다. 다들 멋있을 때 떠나라고 하는데 난 늙을 때까지 공연하고 싶다. 내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 (2007/11/15, 6년 만에 7집 앨범을 내며)

“결론적으로 나는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있다. 아니 아주 많다.” (2007/02/07,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한류포럼의 기조연설자로서 자격 논란이 일어나자)

“비는 여자를 소개시켜준다고 해도 싫다고 한다.” (2005/10/23, 중국 베이징공인체육장에서 비의 첫 중국 단독콘서트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진보세력은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리버럴한데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보수성을 띤다.” (2003/08/22,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차세대 성장동력 보고회에 참석해)

“섹스는 사랑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일상적인 ‘놀이’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신성하거나 혹은 추악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2001/06/11, 6집 ‘게임’을 발매하며)

◆ 평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제작자(프로듀서)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된다.

1994년 데뷔 이후 가수로서 1990년대에 두각을 보였고 2000년대 이후로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진영의 음악세계는 미국 대중음악, 특히 흑인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박진영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2년반 동안 살았는데 당시 흑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춤과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

박진영은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마이클 잭슨의 1집 'Off The Wall'을 음악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다른 가수출신 제작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가수활동을 그만두는 것과 반대로 박진영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가수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작곡가로서도 최고반열에 올랐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음원 저작권 수입 1위를 기록했다.

프로듀서로서도 god와 원더걸스, 비, 미쓰에이, 갓세븐, 트와이스 등을 스타로 만드는 등 대한민국 최고의 제작자 가운데 한명으로서 역량을 인정받는다. 

박진영은 아시아 연예인 사상 최초로 비가 뉴욕의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단독 공연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비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연예기획자로서 언론을 이용한 ‘몸값띄우기’에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표절문제와 과도한 성적코드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일부 존재한다.

박진영은 이른바 샘플링을 이용해 많은 곡들을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표절 의혹에 자주 휘말리고 있다. god의 명곡 ‘어머님께’의 경우 투팍의 곡 ‘Life Goes On’와 ‘Dear Mama’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어나자 뒤늦게 협상을 해 박진영은 편곡지분만 보유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알려졌다.

파격적인 의상과 섹시코드를 추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집 활동 당시 화보 촬영을 하며 입었던 비닐바지 패션은 박진영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엉덩이춤도 큰 화제를 모았다.

2집 활동 당시 ‘엘리베이터’라는 곡과 뮤직비디오도 당시 시대분위기상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섹스는 게임이다”라는 박진영의 발언은 누리꾼들의 조롱과 패러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나치게 미국시장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승승장구하던 원더걸스를 무리하게 미국으로 진출하도록 해 실패했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박진영이 추구하는 미국음악과 그의 인맥은 최근의 미국음악 트렌드가 아니라 과거의 미국음악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 기타

농구를 좋아한다고 한다. 스포티비가 중계한 NBA 2015-16 결승전 6차전에 객원해설로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박상천 전 민주당 의원과 5촌 관계다. 한때 민주당에서 선거를 앞두고 영입설도 제기됐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1998년 자서전 '미안해'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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