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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예술가 기질의 '은둔 경영자', 추진력 강해 [2016년]
김수정 장윤경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 입력 : 2016-08-10 06:47:24

 

   
▲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 생애

이호진은 1962년 12월8일 부산에서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흥국생명 이사로 경영일선에 등장해 태광산업 대표이사 사장, 대한화섬 대표이사 사장을 거쳤다.

맏형인 이식진 전 부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한 뒤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퇴임했다.
 

섬유제품을 실제보다 적게 생산된 것처럼 조작하는 방식으로 회삿돈 400억여 원을 횡령하고 골프연습장을 헐값에 매도해 태광그룹에 975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2011년 1월 구속기소돼 2017년 4월 21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6개월에 벌금 6억 원을 선고받았다. 

◆ 가족관계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와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 사이에 태어난 3남3녀 가운데 셋째 아들이다. 

이임용 창업주는 1921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에서 실업학교를 졸업했다. 1942년 귀국 후 같은 동네 유지 이송산씨의 맏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와 중매로 결혼했다.

이 전 상무는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와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의 누나이다.

면사무소에서 평범한 공무원으로 일하던 이 창업주는 부인이 부산에서 차린 작은 직물공장이 번창하자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54년 부산 문현동에 설립한 태광산업은 나일론, 스판덱스 등 다양한 섬유 소재의 호황기를 거치며 대규모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특히 양모 대체품 아크릴 특수에 힘입어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였다.

이임용 창업주는 섬유사업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군사정권 시절 야당의 거물급 정치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를 처남으로 둔 이임용 창업주는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는 등 정치적 외풍을 맞기도 했다.

안정과 내실 경영을 중시하며 철저히 은둔형 경영을 해왔던 이 창업주는 1996년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창업주가 작고한 뒤에는 외삼촌 이기화 전 회장과 큰 형인 이식진 전 부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부산고와 서울대 화공과를 나온 이기화는 창업 동지로 일컬어질 만큼 창립 초기부터 경영에 깊숙이 참여했던 인물이다.

어머니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한국전쟁 직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해 마련한 종잣돈으로 직물공장을 세웠다. 태광 창업의 실질적 주역인 셈이다. 경영 전면에 나선 적은 없지만 자금 관리와 후계 구도 결정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한다.

2011년 검찰의 태광 비자금 수사에서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아들 이호진과 함께 구속기소돼 모자 동시 구속이라는 전례없는 사태를 맞은 것도 경영 전반에 걸쳐 깊숙이 관여해 온 까닭이다. 횡령 등의 혐의로 2012년 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 전 상무는 구치소 생활을 하다가 형기 3년6개월 가량을 앞두고 서울구치소의 건의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병원 생활을 해왔다. 그는 뇌경색 등으로 인한 고도의 치매와 관상동맥 협착증 등을 앓다가 2015년 5월 별세했다.

이호진의 두 형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큰 형인 이식진 전 부회장은 2004년 55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둘째 형 이영진씨는 1994년 사고로 사망했다.

이식진 전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후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씨와 중매 결혼했다. 정아, 성아, 원준 등 1남2녀를 두었다. 유교적 관습을 따라 연애 결혼을 반대했던 이임용 창업주의 뜻에 따라 이호진 본인은 물론 형제들 모두 중매로 결혼했다.

큰 형 이식진을 제외한 형제들 모두가 정•관•재계 유력 인사 집안과 혼사를 맺음으로써 여느 재벌가 혼맥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둘째 형 이영진씨는 1976년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의 막내딸 장옥빈씨와 결혼했다.

이호진의 부인 신유나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조카이자 신 총괄회장의 동생 신선호 일본산사스식품 회장의 맏딸이다. 슬하에 현준씨 현나씨 등 1남1녀를 두었다.

큰 누이 이경훈씨는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의 막내아들 허승조 전 GS리테일의 대표와 결혼했다.

둘째 누이 이재훈씨의 남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양원용 경희대 의대 교수이다.

양택식 전 시장 가문과의 혼인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노신영 전 국무총리, 김한수 한일합섬 창업주 등과 한 다리 건너 사돈 관계로 이어진다.

셋째 누이 이봉훈씨는 한태원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전 회장과 결혼했다.

◆ 학력

1981년 서울 대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1985년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87년 코넬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진형준 전 흥국투신운용 대표이사와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동창이다. 진헌진 전 티브로드 사장과 대원고, 서울대 동창이다.

◆ 경력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1993년부터 흥국생명보험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흥국생명보험 자산운용부문담당 상무이사를 맡았다.

1996년 아버지 이임용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1997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태광산업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같은해 대한화점 대표이사 사장에도 올랐다.

2004년 이식진 전 부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경영권을 물려받고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태광그룹 경영일선에 나선 뒤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 이임용 회장이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46년 동안 무차입 경영 원칙을 지켰을 만큼 태광의 현금동원력은 막강했다. 이를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에 나섰다. 특히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업종 등에 진출해 섬유산업 위주의 주력 업종에서 탈피했다.

1997년 설립한 종합유선방송(MSO) 사업체인 ‘티브로드’를 지역케이블TV 20개를 거느린  업체로 키웠다.

재정경제부 장관자문기구 금융발전심의회 보험분과위원회 위원과 e채널 대표, 태광투자신탁운용 감사, 한국케이블TV수원, 안양, 천안방송 대표이사 사장을 거쳤다. 한빛기남방송 이사와 한빛전주방송 이사, 서한물산 이사, 유덕물산 이사, 인천케이블TV 남동방송 이사 등도역임했다.

금융 쪽으로 흥국생명,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등의 자회사를 보유하는 등 보험에서 증권, 투신, 자산운용, 대출, 예금에 이르기까지 종합 금융서비스 회사로 성장시켰다.

석유화학•서비스•레저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사업 다각화를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9년부터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며 위기설이 불거져 나왔다. 해고 직원들의 불만에서 비롯된 내부 고발 사태, 적극적인 사업 확장 과정에서 의혹을 받았던 비자금 문제, 편법 재산상속 문제 등이 잇달아 터졌다.

2010년 검찰과 국세청의 강도높은 조사를 받던 중 2011년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2012년 법원의 판결을 6개월 정도 앞둔 시점인 2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회장에서 물러났다.

◆ 사건/사고

2009년 3월 ‘성접대 로비 의혹’ 사건으로 정관계 로비설에 휩싸였다.

태광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티브로드의 직원이 청와대 및 방송통신위원회 직원 3명에게 신촌의 한 술집에서 ‘성접대 로비’를 펼친 혐의다. 당시 티브로드는 전국에 15개 종합 SO를 소유하고 있는 국내 1위 케이블TV 사업자(SO) 였다.

티브로드가 서울지역 케이블TV인 큐릭스의 지분 70%를 2500억원대에 인수해 방통위의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사건이어서 이목이 집중됐다.

경찰은 청와대 행정관 2명에겐 뇌물수수 혐의로, 방통위 및 티브로드 직원에게는 뇌물 혐의를 적용하면서도 청와대나 방통위에 대한 조직적인 로비는 아닌 것으로 결론지었다.

2006년 일명 ‘장하성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가 대한화섬에 대한 투자한 것을 계기로 태광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장하성펀드는 태광산업 등이 지배구조 개선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호진의 회장 퇴임을 요구하며 2009년 10월 대표이사 해임 소송을 냈다.

2010년 9월 검찰의 비자금 수사 대상에 올랐다. 태광은 고 이임용 창업주 시절부터 이호진에 이르기까지 밀실 경영을 해왔던 것으로 유명하다. 

수사 결과 비자금과 편법 재산 증식 방법이 속속 드러났다. 특히 정보가 쉽게 공개되지 않는 비상장 계열사 재산을 증식한 과정이 포착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는 내부고발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공격적 경영 스타일에 문제를 제기한 해고 직원들이 베일에 싸여 있던 태광그룹의 실체를 폭로했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상속과 차명주식 등을 통해 수천억∼1조 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 포착됐다. 창업주에게서 물려받은 태광산업 주식을 몰래 계열사에 매각하고, 이를 그룹 산하 고려상호저축은행의 한 계좌에서 관리했다는 것이다.

또 태광산업 주식 14만8,000여주(시가 1,600여 억원)를 전ㆍ현 임직원 이름을 빌려 보유하고, 계열사 골프장 인근의 부동산도 차명 관리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더욱이 아들 현준씨에게 비상장사인 티시스와 티알엠을 통해 재산을 편법상속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1년 1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4년 6월과 벌금 20억원을, 2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2012년 11월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모두 제 부덕의 소치다. 저에게 죄를 주시고 어머니의 죄를 사해 달라. 죄송하다"고 최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69일 동안 수감 생활을 한 뒤 2012년 6월 지병으로 보증금 10억 원을 내고 보석허가를 받았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 12월 둘째 누나 이재훈씨로부터 상속소송을 당했다. 소장에서 이재훈 측은 이호진에게 78억6천여 만 원과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생명 보통주 각각 10주, 태광관광개발, 고려저축은행, 서한물산 각각 1주 등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차명주식과 무기명 채권 등 추가 상속재산이 드러난 만큼 상속권이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뒤이어 고 이임용 창업주의 친자로 확인된 이복형 이유진씨로부터도 선대회장의 차명재산 중 상속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당했다. 이 전 회장의 취임을 전후한 당시부터 상속 재산을 누락시켜 독식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이에 따른 가족 분쟁설도 그치지 않았다.

친인척을 망라한 재산싸움으로 번질 가능이 높은 데다 후계자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소송 결과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2016년 4월 횡령 등 혐의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보석 허가조건을 어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호진 측은 불가피한 사유로 비지정 병원에 다니긴 했으나 외식이나 번화가 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2016년 2월 한빛북부기술센터는 원청회사인 티브로드가 새로운 하청업체를 선정하지 않으면서 모든 노동자를 해고했다. 전주기술센터도 새롭게 경영을 맡은 업체가 노조가입 인원들을 대상으로 고용승계를 배제하면서 해고가 발생했다.

2016년 7월 티브로드에서 근무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태광그룹 앞에 모여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짜 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은 “티브로드가 노동자들과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티브로드의 회사이름이 적힌 작업복을 입고 고객을 만난다”며 “해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우리가 요청한 면담조차 태광그룹은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또 “태광그룹이 이렇게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태광그룹과 티브로드를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하고 해고하는 악덕기업으로 규정하고 그에 맞는 강력한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016년 8월30일 약 1400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 배임한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4년6개월과 벌금 10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범죄 사실 가운데 무자료 거래를 통한 횡령 대상은 태광산업이 생산한 섬유제품 자체가 아니라 섬유제품의 ‘판매대금’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 상훈

1999년 제33회 조세의 날 성실 납세자로 선정돼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어록

"TechTV의 프로그램 가운데 국내에 적합한 10개 프로그램을 선별해 시험방송을 시작하는 오는 9월4일부터 주당 5시간씩 내보내고 내년부터는 주 20시간씩 최신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TechTV가 외국인 출자 지분한도인 33% 범위내에서 e채널에 직접 투자키로 약정했다." (2000/08/22, 정보통신 전문 케이블 채널인 e채널이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방송국인 TechTV(전 ZDTV)와 프로그램 독점 공급 및 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히면서)

◆ 평가

재계 총수들 가운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외부 노출을 꺼렸다.

'은둔의 경영자', '얼굴 없는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런 면은 아버지 고 이임용 창업주와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장 재직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에도 속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재벌 모임에도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다.

언론 인터뷰를 사절한 것은 물론 외부 공식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회사 직원들 조차 이 회장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다.

캐주얼 한 차림으로 회사에 불쑥 등장하기 일쑤였으며 수행 비서를 대동하지 않고 다닐 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한 지인 외에는 외부인도 잘 만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일에 싸여 있었던 만큼 외부에 비쳐진 이미지가 나쁘지는 않았다. 180cm의 훤칠한 키에 훈남형 외모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다. 

회사에서는 예의 바르고, 아버지를 닮아 검소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모든 직원에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해 대학 동기 동창인 진형준 전 흥국투신운용 대표이사에게도 공•사석에서 모두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검찰에 구속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휠체어를 타고 수염을 기른 채 수척한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내기도 했다.

그룹 경영면에서는 공격형 스타일로 평가 받았다.

회장 취임 후 유선방송 사업에 뛰어들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업계 1위에 올려 놓을 만큼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종합편성사업자 선정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하며 미디어 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최종 탈락했다.

섬유가 주력이었던 태광그룹의 업종을 미디어와 금융 부문으로 확대하고 석유화학•서비스•레저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계열사 50여 개를 보유한 재계 서열 40위권에 올려 놓았다.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방송 진출 결정 당시에도 측근들의 반대가 있었으나 이호진의 결정을 제지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태광그룹은 2세인 이호진을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갖춰져있어 3세 승계 계획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호진의 지분 15.14%에 뒤이은 2대 주주는 11.22%를 보유한 티시스라는 회사다. 티시스는 이호진의 아들인 이현준씨가 대주주로 있는 개인회사다.

이호진과 아들 이현준씨는 티시스를 통해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티캐스트, 동림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호진이 장손인 조카 이원준씨의 후계 승계를 저지하고 아들을 후계자로 앉히기 위해 아들에게 편법증여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자승계 원칙을 지켜왔던 태광그룹의 후계 구도를 놓고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태광의 장손은 고 이식진 부회장의 장남인 이원준씨인데 태광산업의 지분 7.49%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 기타

이호진은 영화, 미술, 음악 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흥국생명 사옥 앞 초대형 조각 '망치질 하는 사람' 설치를 주도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경영을 하지 않았으면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오너의 건강악화와 실형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태광그룹은 2012년 3월 심재혁 태광산업 부회장을 영입했다. 이 전회장과는 처외삼촌 관계인 만큼 친인척 경영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심 부회장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LG그룹 회장실과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부사장, 인터컨티넨탈 호텔, 레드캡투어 대표이사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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