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동이 신년 신한은행 임원회의에서 10년 전 책을 꺼내든 이유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4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열린 임원워크숍에서 2022년 경영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신한은행>

“‘무엇(What)’에만 집중하면 특징은 잘 전달할 수 있지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Why)’를 먼저 꺼내야 한다. 왜를 먼저 설명하면 감정을 자극해 ‘어떻게(How)’와 ‘무엇(What)’, 즉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1월 초 열린 임원 워크숍에서 미국 작가 ‘사이먼 시넥’의 책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원제: Start with Why)’를 임원들과 공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는 2009년 미국에서 출판돼 2013년 국내에 처음 번역돼 소개된 책이다.

2009년은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이자 국내에 1세대 아이폰이 막 퍼지기 시작할 때다. 시간이 꽤 지난 만큼 책에 소개된 성공사례는 다소 오래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일례로 책에는 아이팟으로 음원시장에 진출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 컴퓨터 생산이 아닌 운영체계로 승부를 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성공사례가 잔뜩 들어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나 마크 저커버그 메타(옛 페이스북) CEO 등의 엄청난 성공사례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였다. 대신 평면TV와 블루레이DVD 등 이미 옛말이 돼 버린 제품들이 책 속에서 최신 기술로 소개됐다.

진옥동 행장은 책을 많이 읽는 CEO로 알려져 있다.

기업인을 위한 자기계발서 ‘정의로운 시장의 조건’이라는 책을 필명으로 번역해 출판할 정도다.

한 해에 국내 출판시장에 새로 나오는 경영경제와 자기계발 서적은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17일 네이버 책 페이지 ‘경제경영’와 ‘자기계발’ 카테고리에 올해 신간으로 소개된 책만도 300권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 행장은 2022년을 시작하며 '13년 전'에 나온 자기계발서를 꺼내 들었다.

이 책에 담긴 명확한 메시지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원제는 ‘Start with Why’, 직역하면 ‘왜부터 시작하라’다.

책은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의 답을 지속해서 품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영감이 기업의 행동변화를 이끄는 ‘어떻게’와 ‘무엇’으로 이어지고 이 선순환을 유지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골든써클(Golden Circle)’이라고 부른다. 자연의 가장 이상적 비율을 의미하는 ‘황금비(Golden Ratio)’에서 이름을 따왔다. 

책은 원제 그대로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린다.

진 행장 역시 임원회의에서 신한은행의 새로운 음식배달 플랫폼 ‘땡겨요’를 예로 들며 책 속의 골든써클을 이야기한다.

‘왜’에서 시작해 가맹점과 소비자, 배달노동자에게 이익을 주는 경제생태계인 '땡겨요'를 구축한 것처럼 앞으로 일하는 방식을 모두 ‘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달앱 '땡겨요'는 ‘너도살고 나도사는 우리동네 배달앱’을 슬로건으로 한다.

낮은 중개 수수료와 빠른 정산 서비스 등을 내세워 지난해 12월 시범사업에 들어가 최근 공식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마이데이터 시대 전통적 은행업의 틀을 깨고 사업영역을 넓힌 신한은행의 과감한 도전으로 평가된다.

진 행장은 ‘나는 왜 땡겨요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상생’을 내세운다.
 
진옥동이 신년 신한은행 임원회의에서 10년 전 책을 꺼내든 이유

▲ 14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땡겨요 공식 론칭 행사’에서 (왼쪽부터) 박경학 배달노동자 대표, 김천호 가맹점 대표, 김선갑 광진구청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전필환 신한은행 부행장, 고객 대표 신우주씨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한은행>


진 행장은 14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땡겨요' 공식론칭 행사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상생이 답이다”며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연결고리로 고객과 소상공인, 라이더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에 신한은행이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진 행장이 '땡겨요'의 ‘왜’에서 도출한 답인 '상생'이 임직원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갔는지는 앞으로 땡겨요의 성과를 통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 사이먼 시넥에 따르면 골든서클이 균형을 이루는 조직은 성공하지만 왜를 간과하고 어떻게와 무엇에만 집착하는 조직은 실패한다.

책은 애플과 델, 사우스웨스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등 미국 여러 기업을 비교하며 왜를 고민하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이 만들어낸 결과를 비교해 보여준다.

신한은행의 골든써클이 지속해서 균형을 이뤄간다면 땡겨요는 애플과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도전처럼 성공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책에 나온 다른 수많은 예처럼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사이먼 시넥은 책에서 소형가전시장에 진입했다가 실패한 PC제조업체 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델은 컴퓨터시장 이외의 것을 넘봐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델은 이미 지식과 역량이 충분한 회사다. 하지만 그들에겐 ‘왜’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니 비용은 더 많이 들고 원하던 성과도 얻지 못했으며 짧은 기간 시도한 끝에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