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규모 매각하면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올해 본격화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현대글로비스뿐 아니라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 상장도 앞두고 있는 만큼 정 회장이 올해 대규모 자금을 손에 쥘 수 있어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선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신호탄인가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6일 현대차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을 포함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과정에서 구주 매출을 통해 약 6천억 원 안팎의 자금을 손에 쥘 것으로 전망된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함께 5일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사모펀드 칼라일에 블록딜 형태로 매각하면서 2008억 원을 이미 확보했다.
 
앞으로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 과정에서 정 회장은 534만1962주를 처분하는데 매각대금은 공모가에 따라 3093억~4044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정 회장이 최대 6천억 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하면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임박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정 회장이 지분 7%를 쥔 이미 현대오토에버도 현대차그룹 소프트웨어 계열사를 흡수합병하면서 기업가치를 제고할 기반을 마련했다.

이들 계열사들은 공통적으로 정 회장이 상당 규모의 지분을 갖고 있고 지분을 매각해도 그룹 지배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상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재편에서 자금줄 역할을 맡고 있다는 시선이 많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의 코스피 상장도 2월15일로 예정돼 있어 정 회장의 남은 지분도 재평가를 받을 수 있어 더욱 많은 자금을 확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방향은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해지고 있어 ‘정공법’을 선택할 가능성도 기존보다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방안으로 2018년 실제로 추진했던 현대모비스를 분할한 이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을 포함해 현대차를 지배구조 최정점에 놓는 방안, 지주사체제 전환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정공법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한다면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순환출자고리를 끊는 것이 가장 현실성 높은 방안으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기아-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 등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4개 순환출자고리를 지니고 있다.

정 회장이 계열사에서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매입하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것과 함께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놓이는 현대모비스 최대주주에 올라 안정적으로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정 회장이 계열사들이 들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수조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현대모비스 주식은 2021년 9월30일 기준으로 기아가 1642만7074주(17.33%)를 들고 있어 가장 많고 현대제철이 550만4846주(5.81%), 현대글로비스 65만6293주(0.32%)를 쥐고 있다.

5일 종가인 25만7천 원을 기준으로 계열사들이 쥐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 가치는 약 5조8천억 원에 이른다.

물론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을 통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데 부담은 크지만 정 회장이 쥔 계열사 지분을 고려하면 지배구조 개편전략으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시선이 많다.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 이노션, 현대오토에버 등 7개 상장계열사 지분가치는 같은 기간 4조1천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가치를 더하면 모두 10조 원이 넘는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블록딜 매각을 놓고 지배구조 변화를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글로비스가 국내매출 비중을 줄이고 자동차운반선 분야 등에서 비계열 매출 비중을 확대하는 등 불공정행위의 소지를 줄여왔다는 점에서 일감몰아주기 기준을 강화한 새 공정거래법이 이번 지분 매각의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오히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변화 및 경영승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번 지분 매각이 그 준비과정일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현대차그룹의 앞으로 지배구조 변화 과정은 시장친화적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외부주주들이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핵심계열사의 지분을 골고루 갖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기업의 주가를 누르거나 띄우는 지배구조 변화과정은 시장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