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겸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부회장이 현대캐피탈 대표이사를 사임하기로 하면서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카드의 계열분리 등 다양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를 데이터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목표를 두고 대대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아직 현대차그룹의 우산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늘Who] 현대카드 데이터기업 변신 아직, 정태영 현대차 우산 필요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


7일 현대카드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30일자로 예정된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사임을 계기로 현대카드 경영에 더 집중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현대카드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기술력을 키워 데이터 전문기관으로 변신하겠다는 목표에 맞춰 정 부회장이 새 성장동력 확보 등 전략을 주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수년 동안 주력해 온 현대카드 데이터사업분야에서 이른 시일에 실제 결과물을 내놓고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

경쟁 카드사들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평가와 자산관리, 맞춤형 마케팅 등 신규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는 동안 현대카드는 아직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경쟁 카드사보다 훨씬 이른 2013년부터 현대카드 정체성을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기업으로 바꿔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기술력 강화와 빅데이터 제휴사 확보에 힘써 왔다.

현대카드 데이터 활용계획은 단순한 새 서비스 출시를 넘어 고객 관리와 경영 의사결정에 활용, 데이터 제휴사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구축 등을 목적으로 두고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카드가 데이터분야에서 실제 성과를 보이고 경쟁력을 증명하는 시기가 더 늦어지면 데이터시장 주도권을 다른 카드사에 빼앗길 수도 있어 속도를 내야만 한다.

정 부회장이 현대카드 경영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최근 잇따라 이뤄진 것은 이런 측면에서 데이터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등 정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는 4월에 일제히 신임 대표이사를 추가로 선임해 정 부회장과 각자대표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정 부회장은 각 계열사 대표이사들에 업무를 분산해 부담을 덜게 된 데 이어 현대캐피탈 대표까지 사임하며 현대카드 데이터 신사업 등에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현대카드 재무적투자자(FI) 지분 약 20%를 최근 백기사 역할의 대만 푸본생명이 인수해 더 이상 재무적투자자와 계약조건에 따라 현대카드 상장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 점도 긍정적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규모 자금조달 필요성이 없다면 기업공개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는데 당분간 상장 준비보다 중장기 전략 수립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현대카드는 그동안 네이버와 대한항공, 이마트, 이베이코리아, 배달의민족, 무신사, 쏘카, 스타벅스코리아 등 업종별 1위 기업과 잇따라 상업자표시 신용카드(PLCC) 출시 및 데이터 제휴를 맺었다.

오너경영자인 정 부회장이 직접 상대기업 CEO와 만나 중장기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설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선 효과가 현대카드의 협력사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양한 제휴카드 출시 효과로 현대카드 상반기 말 기준 회원수는 949만 명으로 1년 전보다 8% 늘고 카드 취급액도 같은 기간 12.4% 증가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도 이어지고 있다.

정 부회장은 앞으로 제휴사들과 긴밀한 데이터 협업체계를 구축해 협력사들이 서로 데이터를 활발하게 공유하며 마케팅과 상품 개발, 사업전략 등에 시너지를 내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대카드가 정 부회장의 계획대로 독보적 데이터 경쟁력을 확보해 카드업계에서 확실한 입지를 차지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현대차그룹에서 계열분리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뒤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 핵심으로 꼽히던 현대차그룹 계열사 부회장단이 순차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세대교체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정 부회장은 정의선 회장의 매형이기 때문에 재벌가 특성상 현대차그룹에 남아있는 데 부담을 느껴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 등 계열사를 들고 계열분리하는 방안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정 회장의 누나인 정명이 현대카드 브랜드부문 사장과 정 부회장 부부는 6월 말 기준으로 현대커머셜 지분 37.5%를 들고 있고 현대커머셜은 현대카드 지분 28.54%를 보유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추가로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등 방식을 통해 현대커머셜과 현대카드 계열분리를 시도할 수 있다.

다만 현대캐피탈 및 현대카드 관계자는 “각자대표체제 전환과 정 부회장의 현대캐피탈 대표직 사임 등은 현대차그룹 계열분리 가능성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차와 기아 등 자동차계열사 판매채널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에서 계열분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 부회장이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의 독립을 꾀한다고 해도 이른 시일에 계열분리작업을 추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망이 유력하다.

단기간에 대규모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쉽지 않고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6월 말 기준으로 현대카드 지분 48.44%를 들고 있어 이를 이른 시일에 정리하는 일도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의 상장과 계열분리 등 중장기 계획에 고민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안정적 실적 기반 확보와 데이터 경쟁력 확보 등 단기적 과제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카드가 충분한 준비를 거치지 않고 현대차그룹에서 계열분리되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쳐 조달금리 상승 등으로 금리 경쟁력과 실적에 타격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대차그룹 경영진이 현대카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과 자동차계열사가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점이 현대카드 신용등급에 긍정적 요소”라고 평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