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이 변화를 위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워낙 신중한 행보를 보였와 최근 다양한 인수합병과 지분투자에 참여한 것을 놓고 다소 의외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GS그룹만의 신중하고 보수적 경영문화는 여전해 보인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GS 특유의 기업문화 위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낼 수 있을까?

◆ 인수합병은 선택 아닌 필수, 신중한 접근이 지닌 장점과 단점은?

작가 루이스 캐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으로 내놓은 ‘거울나라의 앨리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앨리스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제자리에 머물자 거울나라의 여왕인 붉은 여왕은 “이곳에서 제자리에 머물려면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한다. 어디든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 장면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주변 환경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물려고만 노력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두 배는 빨리 뛰어야 겨우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마주한 기업들도 거울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처지다.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뛰는 것은 겨우 현상유지일 뿐이다. 인수합병이 더 이상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게 된 이유다.

물론 기업 내부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을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만들어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의 가장 큰 단점은 신사업이 자리잡끼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신사업 관련 전문 인력을 선발하거나 새로 육성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인수합병이 대안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대규모 인수합병은 새 성장동력을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뜻이다.

기업들이 인수합병에 나서는 행태는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기업이든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 신중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 기업은 신중한 판단 뒤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후자의 사례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인수합병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전략에는 분명히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가장 큰 장점은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적 베팅을 통해 인수합병에 성공했다가도 불과 몇 년 만에 시장에 다시 매물을 내어놓거나 혹은 그룹 전체가 흔들린 사례는 많다.

하지만 약점도 분명하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지분 인수를 최소화했다가는 나중에 더 큰 돈을 주고 지분을 추가로 인수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당장 몇천억 원을 아끼려다 수 년 만에 수 조원을 들여야 하는 사례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 GS그룹이 딜에 적극적이라고? 하지만 ‘여전한 기업문화’라는 평가도

GS그룹은 국내 재벌그룹 가운데 인수합병에 가장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재벌그룹으로 꼽힌다.

다른 그룹과 비교해 GS그룹에는 인수합병 사례가 많지 않은데다 그나마 있는 사례들도 규모가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GS그룹이 달라지고 있다. 배달앱 요기요가 GS그룹의 품에 돌아간 것이 대표적이다.

애초 요기요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된 그룹은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 등에 불과했다. GS그룹의 참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 시각은 드물었다.

하지만 GS리테일은 재무적투자자들과 손을 잡고 요기요를 인수하기로 했다. GS그룹은 앞으로 GS리테일의 핵심인 편의점 GS25와 요기요의 시너지를 내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GS그룹은 국내 1위 보톡스기업인 휴젤 인수도 성공했다. 인수가격만 모두 1조7천억 원인데 휴젤 인수전에 GS그룹이 눈독을 들였다는 점만으로도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GS그룹은 상반기에 당근마켓이나 메쉬코리아, 카카오모빌리티 등에 지분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룹의 중추사업인 에너지사업과 이질적 분야에 투자하는 모습은 GS그룹이 변화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웬만한 거래에 나서지 않던 그룹이 움직이니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GS그룹의 움직임 놓고 여전히 GS그룹 같다는 말도 나온다. 거래에 참여하는 모습이 다른 재벌그룹들과 온도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GS그룹은 재무적투자자와 손을 잡고 지분의 일부만 투자하는 방식으로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전사적 역량을 모두 동원하는 다른 재벌들과 다르다.

GS리테일은 재무적투자자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퍼미라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요기요를 샀다. 총 인수금액 8천억 원 가운데 GS리테일이 투자하는 금액은 30%인 2400억 원이다.

GS리테일은 요기요가 추진하는 2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도 지분율 30%에 해당하는 600억 원만 부담한다.

휴젤 인수전 참여구도도 요기요와 비슷하다. GS그룹은 4자연합을 구성해 휴젤 본입찰을 추진했다.. GS그룹은 전체 인수가격의 절반만 투자했다.

재무적투자자들과 손을 잡는 것은 인수합병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하거나 위험을 분산하려고 할 때 쓰는 전략이다.

GS그룹에 당장 현금이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리스크를 낮추기 위한 목적에서 컨소시엄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 신중한 태도는 과거부터 이어진 GS그룹의 문화, 국내 재벌기업과 결 달라

GS그룹은 과거에도 소극적이었다. 조금이라도 리스크 있으면 인수전에서 발을 뺐고 인수전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경쟁기업에 밀려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GS그룹은 2005년에 인천정유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SK에너지에 밀렸고 2007년에는 하이마트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유진그룹에 밀렸다.

2008년 대한통운과 대우조선해양, 2015년 KT렌탈, 2019년 아시아나항공, 2020년 두산인프라코어 등에도 관심을 보였지만 모두 중도에 포기하거나 실패했다.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한 2004년 이후 1조 원이 넘는 인수합병을 단 한 건도 추진하지 않았다는 점을 놓고 ‘빅딜에 약하다’는 말도 든는다.

2009년 쌍용(현 GS글로벌)과 2014년 STX에너지(현 GSE&R)을 인수하긴 했지만 두 회사의 인수가격을 합쳐도 1조 원이 넘지 않는다.

GS그룹의 움직임은 최근 더욱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는 국내 재벌기업들과 비교할 때 더욱 느리게 보인다.

넷마블은 최근 해외 소셜카지노 게임사를 인수하는데 2조5천억 원을 썼으며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를 사들이는데 약 3조4천억 원을 베팅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업계의 ‘치트키’로 평가받는 보스턴다이나믹스에 1조 원을 투자했으며 앞서 CJ그룹은 2018년 북미 가공식품기업 슈완스를 약 2조 원에 사들였다. 모두 조 단위의 메가딜이다.

GS그룹의 행보는 그동안 쌓아온 문화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변화에 신중하며 상당히 보수적인 그룹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GS그룹은 빠르게 변화하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능력을 벗어나는 부담은 지지 않는다는 특유의 문화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투자역량 강조하는 금융맨 허태수, 돌다리도 두드리는 기조로 변화 만들어낼까

물론 GS그룹이 과거와 달라진 점도 분명 있다. 허태수 회장이 GS그룹 총수에 취임한 뒤 GS그룹의 투자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은 이미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스타트업 투자 분석업체인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GS그룹의 지주사인 GS는 올해 처음으로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진행했다.

GS는 올해 팬 플랫폼 관련 스타트업인 비마이프렌즈에 10억 원을 투자한데 이어 소상공인의 사업 재무와 회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신용데이터에 43억 원을 집어넣었다. 총 규모는 53억 원 정도다.

규모가 미미하다고 볼 수 있지만 벤처투자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GS는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금융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고 기업형 벤처캐피털 설립을 공식화하면 벤처투자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이미 내보인 바 있다.

GS리테일도 벤처투자에 매우 활발하다. 올해에만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펫프렌즈, 21그램그룹 등 모두 4개의 회사에 투자했는데 투자금액만 2820억 원이다. 2017년 80억 원, 2020년 15억 원 등을 크게 상회하는 자금을 풀었다.

허태수 회장이 강조하는 투자역량 제고가 그룹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허태수 회장은 1월 GS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 등 1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 GS의 투자역량을 길러 기존과 다른 비즈니스를 만드는 ‘뉴투빅(New to Big)’ 전략을 추진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좀처럼 빅딜을 진행하지 않는 기조만으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보이는 시각도 있다.

GS그룹이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인수합병이나 지분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칫 무리한 베팅이 독이 될 수 있는 리스크를 방지하겠다는 가풍을 지키는 전략이 훗날 재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보수적 경영기조와 다양한 벤처투자 시도 등을 통해 미래 먹거리사업을 만들어낼지 살펴볼 일이다. [채널Who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