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삼성 보이겠다는 이재용 각오, 해고노동자도 돌아볼 수 없을까

▲ 삼성물산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22일 서울 삼성전사 서초사옥 앞 강남역 교통 CCTV 철탑 위에서 196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흥겨운 캐롤과 구세군 모금함의 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날씨는 다소 춥지만 마음이 따뜻해 지는 때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도 세상의 온기와 단절된 사람이 있다.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관제탑 위에는 한 사람이 찬바람을 맞고 있다. 벌써 198일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다.

김씨는 6월10일 25미터 높이, 반 평 크기의 철탑 위에 올라갔다. 이제 크리스마스를 지나 26일이면 고공농성 200일을 맞는다.

고공농성이 200일을 넘기는 사례는 흔치 않다. 올해만 해도 김씨보다 늦게 고공농성을 시작한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들,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들 등이 이미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땅을 밟았다.

그러나 25년째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김씨는 쉽사리 내려오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다. 1991년 삼성항공(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하다 해고됐다. 해고무효 확인소송 상고 포기의 대가로 1994년 삼성물산에 복직했으나 러시아 발령 끝에 1년 만에 다시 회사에서 내몰렸다.

시민단체는 물론 많은 이들이 김씨가 내려오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고공농성 일수는 앞자리가 2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2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와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개신교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은 장기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전향적 자세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삼성물산은 김씨 문제를 놓고 공식적으로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노조와해 사건과 관련해 사과하면서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가겠다”고 약속한 것과 비교된다.

얼마 전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에버랜드 등의 계열사에서 삼성그룹 차원의 불법 노조와해 행위가 저질러진 것을 두고 1심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이 일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삼성그룹 간부들이 구속되기까지 했다.

이 의장이 구속되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재판이 매듭지어지지 않았음에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 사과했다. 노사문제를 바라보는 회사의 눈높이가 사회의 눈높이가 달랐음을 인정하고 개선을 다짐했다.

그러나 정작 노조와해 공작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향한 사과는 없었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은 있었지만 지난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말은 없었다.

삼성그룹은 중대한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총수로서 경영전면에 나서면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메르스 사태 때 고개를 숙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순환출자고리도 끊어냈다. 삼성반도체사업의 오랜 과제였던 직업병 문제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정경유착 사례로 꼽히는 국정농단 연루 사건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은 다시는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내부통제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올해 들어서는 정부의 요청에 화답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사회공헌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남은 과제가 있다. 바로 노사관계다.

최근 삼성전자에 처음으로 상급단체 가입 노조가 생기는 등 변화의 조짐은 있기는 하나 아직 삼성그룹이 노사관계에서 달라졌다고 평가할 만한 행동은 나오지 않았다. 과거 노조와해 사건에 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와 별도로 스스로 도의적 책임을 지는 모습도 필요한 때다.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첫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이재용의 선언은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이 부회장은 11월 삼성전자 50주년 기념식 메시지에서 “기술혁신으로 사회와 인류에 공헌하고 세계 최고를 향해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정말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면 행동이 따라야 한다. 앞으로 잘하는 것뿐 아니라 지난 과오도 빠짐없이 돌이켜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정말로 ‘달라졌다’는 평가를 듣기 합당한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삼성그룹의 대표계열사인 삼성전자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직원들에게 최대 100%의 성과급을 안겼다. 한 해 동안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 이들에게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을 위해 애쓴 이들이 비단 이들뿐 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삼성이라는 이름을 쓰지도 못하는 해고노동자들이 있다. 삼성이 함께 같이 갔어야 하는 이들이지만 그러지 않았던 이들. 지금이라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