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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탁월한 영업력, '성실한 실천' 좌우명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7-09-26 08: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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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최현만은 미래에셋금융그룹 수석부회장이자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다.

1961년 12월17일(음력)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동원증권에 들어갔다가 미래에셋금융그룹 창립에 참여했다.

미래에셋금융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꼽힌다. 20년 동안 주요 계열사의 CEO를 두루 역임하면서 그룹에서 주요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했다.

미래에셋대우를 아시아 최고의 투자금융(IB)회사로 키우는 목표를 세웠다. 인수금융과 자기자본투자 등 투자금융사업을 확대하고 해외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평사원에서 CEO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동원증권 직원 시절부터 탁월한 영업력을 발휘했고 미래에셋금융그룹에서도 영업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미래에셋대우 해외진출
최현만은 미래에셋대우를 글로벌 투자금융회사로 키우기 위해 해외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현지에서 인수합병을 추진하거나 부동산 등의 투자금융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최현만은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합병법인인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로 2016년 4월 취임한 뒤 해외법인 합병과 청산 등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자기자본 확대에도 힘을 기울였다.

미래에셋대우가 2016년 미국 뉴욕법인과 영국 런던법인, 2017년 베트남법인과 인도네시아법인에 각각 실시한 증자규모를 합치면 4억 달러 이상이다.

2017년 안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법인에도 홍콩법인을 통해 3억 달러 규모의 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 2018년에 인도법인을 설립할 계획도 세웠다.

최현만은 2017년 1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전 세계 국가 14곳에 퍼져있는 해외채널을 적극 활용하겠다”며 “성장가능성과 비교해 저평가된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라질 등 신흥국가에 주목해 현지 주식과 채권, 부동산과 사무실, 공기업 민영화 등 다양한 대체투자 대상에 눈을 돌리겠다”고 밝혔다.
[Who Is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 미래에셋대우(대우증권) 실적.
△초대형 투자금융회사 발돋움 준비
최현만은 일정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초대형 투자금융회사에 허용된 업무를 통해 자기자본 활용처를 늘리고 새로운 수익원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을 보유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기본적으로 자기자본 100%만큼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신용공여사업을 할 수 있다.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을 소유했을 경우 2017년 10월로 예정된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으면 만기 1년 안인 단기어음을 발행하거나 할인, 매매, 중개, 보증하는 단기금융업을 할 수 있다.

자기자본 8조 원 이상인 경우 고객자산을 기업금융에 투자하는 종합투자계좌(IMA)와 부동산담보신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2017년 상반기 연결기준으로 자기자본 7조2328억 원을 보유해 8조 원에 가장 먼저 도달할 가능성이 높은 증권사로 꼽힌다.

최현만은 2016년 10월 대표이사 직속으로 초대형투자은행추진단을 신설해 초대형 투자금융회사에 걸맞은 기획과 상품개발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2017년 3월24일 미래에셋대우 주주총회에서 “초대형 투자금융회사로서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 등 다각도의 사업을 검토하고 전개하겠다”며 “국내 최대를 넘어 글로벌 투자금융회사들과 어깨를 견주도록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미래에셋대우가 보유한 연금자산 8조 원도 2017년 안에 10조 원으로 불릴 계획을 세웠다. 퇴직연금시장의 높은 성장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금융규제를 강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최현만이 추진하던 미래에셋대우의 몸집 불리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가 금융위의 발행어음 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늘어난 자기자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자기자본이익률(ROE) 하락 등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로 복귀
최현만은 2016년 4월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로 복귀하면서 ‘해결사’ 역할을 다시 맡은 것으로 평가된다. 취임하자마자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와 미래에셋증권의 합병과정을 총괄했다.

통합 미래에셋대우가 2016년 12월30일에 출범한 뒤에는 이질적인 두 회사의 조직을 최대한 빠르게 융합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최현만은 1999년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맡은 뒤 2011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그동안 미래에셋증권에서 객장을 없애고 주식위탁매매수수료를 대거 낮추는 등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이를 통해 미래에셋증권을 신생증권사에서 업계 10위권으로 끌어올렸고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WM) 시장의 강자로 만들었다.

최현만은 2012년 6월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2016년 4월 초부터 미래에셋증권에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미래에셋대우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뒤에도 복귀설이 계속 나왔다.

결국 최현만은 2016년 4월20일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6년 11월 통합을 앞둔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2016년 12월30일 통합 미래에셋대우가 출범하면서 조웅기 마득락 사장과 함께 미래에셋대우 CEO 3인체제의 수장을 맡게 됐다.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2012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를 맡은 뒤 퇴직연금사업을 대폭 키웠고 기업공개(IPO)도 성공했다.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로 2012년 6월 취임한 뒤 자산운용분야 인력을 대폭 늘리고 변액보험자산의 해외투자 비중도 50%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미래에셋보험의 변액보험 총자산수익률을 2012~2015년 동안 업계 1위로 유지했다.

은행과 증권사 위주였던 퇴직연금시장에도 신경을 쏟았다. 그 결과 미래에셋생명은 2015년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3조499억 원을 넘어섰다. 자금을 운용관리하는 적립금이 2조1174억 원을 차지했는데 2013년 말 9685억 원에서 2년 만에 12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미래에셋생명은 변액보험과 퇴직연금사업의 호조에 힘입어 2015년 말 기준으로 생명보험업계 수익률과 민원평가에서 모두 생명보험업계 선두에 올랐다.

2021년 도입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도 대비해 2014년 도입준비팀을 꾸리는 등 관련 준비를 보험업계에서도 이른 시기에 진행했다.

미래에셋생명의 수익성이 강화되자 2009년부터 추진해 왔던 기업공개(IPO)를 하는 데도 속도를 냈다. 그 결과 2015년 7월8일 미래에셋생명이 코스피에 상장했다.

미래에셋생명 주가가 상장 이후 공모가 7500원을 넘어서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 그러나 최현만은 2016년 2월 한경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미래에셋생명이 변액보험 수익률 1위의 저력을 바탕으로 내실경영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주가도 충분히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2인자
1989년 한신증권에 입사했을 때 동기들보다 서너 살 더 나이가 많았다. 실적경쟁에 지쳐 사표를 두차례 던진 적도 있었지만 결국 영업력을 인정받아 입사 8년 만에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1996년 11월 동원증권 서초지점장이었던 시절 그의 영업력에 주목한 박현주 강남본부장 등과 의기투합했고 1997년 7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창업에 동참했다. 박현주 본부장은 최현만이 평사원이었을 때 부장이었는데 그때부터 친분을 쌓으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당시 국내 첫 자산운용사였던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를 맡아 2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고 1999년에는 미래에셋벤처캐피탈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현주 회장의 당시 숙원이었던 미래에셋증권이 그해 12월에 출범하자 첫 CEO를 맡아 12년 동안 일했다. 2005년 미래에셋증권의 기업공개(IPO)를 이끌었고 2007년 홍콩에 법인을 내면서 해외사업도 시작했다.

2012년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에 올랐다. 미래에셋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연금사업을 크게 확대했고 2009년부터 끌어오던 기업공개에도 성공했다.

2016년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로 복귀해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통합작업을 총괄했다. 박현주 회장이 두 회사의 빠른 화학적결합을 이끌어낼 적임자로 최현만을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Who Is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왼쪽)이 2017년 7월24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함께 ‘디지털 금융 비즈니스의 공동 추진에 관한 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최현만은 미래에셋대우를 아시아 최고 투자금융(IB)회사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미래에셋대우의 초대형 투자금융회사 입지를 단단하게 굳히려고 한다.

미래에셋대우는 2017년 상반기 연결기준 자기자본 7조2328억 원을 보유했는데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이다. 2위인 NH투자증권과 자기자본 차이만 2조5천억 원에 가깝다.

미래에셋대우는 2017년 10월로 예상되는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 허용된 단기어음 발행을 통해 자금조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최현만은 향후 미래에셋대우의 자기자본을 8조 원 이상으로 늘려 고객의 예탁자금을 운용하는 종합투자계좌(IMA)와 부동산담보신탁 업무까지 허가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미래에셋대우가 2017년 증권사들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재를 받았고 개중에 기관경고 수위까지 포함돼 단기어음 발행을 인가받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가 증권사들의 자기자본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지만 글로벌 투자금융회사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몸집이 작은 점도 최현만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최현만은 미래에셋대우를 ‘한국의 골드만삭스’로 만들 목표를 세웠지만 골드만삭스의 자기자본은 100조 원대다. 같은 아시아 증권사인 노무라증권도 자기자본 28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Who Is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오른쪽)이 2017년 4월5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임헌문 KT Mass총괄 사장과 함께 업무제휴 협약식에 참석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평가

차분한 성품으로 알려졌다. 좌우명은 ‘성실한 실천’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겸 미래에셋대우 회장의 ‘복심’을 가장 잘 아는 측근인사로 꼽힌다. 박현주 회장이 해외사업을 집중하면서 최현만이 국내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만은 박현주 회장과 고객이윤을 중시하는 기업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미래에셋증권 출범, 미래에셋생명의 기업공개,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통합 등 계열사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마다 대표이사를 맡아 ‘해결사’로 불린다.

미래에셋금융그룹에서 계열사를 만들 때마다 본인 혹은 가족명의로 지분투자를 했다. 초반에는 대출금을 갚아야 했지만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커지면서 재산도 크게 불어났다.

고등학생 시절 미션스쿨에 다녔던 누나의 영향으로 천주교에 입문했고 지금도 독실한 신도다. 세례명은 율리아노이며 즐겨 부르는 성가는 시편 23편이다.

대학생 시절 고시준비와 학생운동 등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졸업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행정고시에 세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동원증권에 다니던 시절 새벽 5시에 출근해 증권사 레포트를 비롯한 업계 동향과 주식흐름을 분석해 자료를 만들고 서울 일대의 회사들에 뿌리는 방식으로 법인고객을 대거 유치했다.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사장 시절 대량의 신문을 빨리 볼 수 있게 만든 독서대를 사장실에 뒀다. 러닝머신과 샤워실도 사장실 안에 마련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2006년 인터뷰에서 하루에 유관기관 3곳을 방문하고 지점 3곳을 둘러보며 업무시간의 7할을 바깥 영업현장에서 보내는 ‘3 3 7 원칙’을 지키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하루에 고객 10명에게 직접 전화해 안부를 챙긴다고 했다.

2008년 중앙일보 기사에서 사무실 전화기 옆에 ‘좋을 때 헬렐레하지 말자’는 문구를 붙여놨다고 밝혔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2002년 최현만에게 “회사 사정이 좋을 때 헬렐레하지 말자는 말을 우리부터 실천하면 미래에셋금융그룹이 ‘백년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데서 따왔다.

바쁜 일정 속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 몸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밤 12시에 귀가해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면 피트니스센터를 방문하고 오후에도 50분가량 맨손운동 등을 한다고 밝혔다.

조직을 무척 중시한다. 2016년 한 좌담회에서 “‘내가 속한 우리’와 ‘우리 속에 들어있는 나’는 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무현장의 경험이나 지인과 대화 등을 늘 메모로 남기는 습관이 있다. 이 메모를 정리해 강의교본으로 쓰기도 한다.

독서를 좋아한다.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독서할 수 있도록 책을 두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북미팅’ 제도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2017년 8월 기준으로 ‘기하급수 시대가 온다’를 북미팅 도서로 선정해 미래에셋대우 직원들과 4차산업혁명과 관련해 토론하기도 했다.

서울 내자동의 남도음식 전문점 ‘신안촌’에 20년 가까이 단골로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를 좋아한다. 주량은 소주 반병 정도라고 한다.
[Who Is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 최현만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 2015년 6월1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서울 여의도에서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에서 미래에셋생명의 상장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9년 9월 한신증권(옛 동원증권, 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했다.

1996년 6월 동원증권 서초지점장을 맡았다.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1999년 미래에셋벤처캐피탈 대표이사에 올랐다.

1999년 12월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2011년까지 일했다.

2000년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간전자상거래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 3월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겸임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2007년 12월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8년 7월부터 2010년 2월까지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으로 일했다.

2011년 2월부터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위원회 위원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1년 5월 미래에셋증권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2012년 미래에셋금융그룹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12년 6월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 4월 미래에셋증권 수석부회장으로 임명됐다.

2016년 12월30일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합병한 통합 미래에셋대우가 출범하면서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 학력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서강대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농사짓는 부모 밑에 4남4녀 가운데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장인이 의사였고 아내는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 상훈

2006년 한국CEO연구포럼 제2회 한국CEO 그랑프리에서 증권보험분야 수상자에 올랐다.

2012년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에 선정됐다.

◆ 기타

2017년 상반기에 보수 9억1400만 원을 받았다.

2017년 6월 말 기준으로 미래에셋대우 주식 32만7628주(0.05%)를 보유했다. 이 주식의 가치는 2017년 9월26일 기준으로 32억 원가량이다.

어록


“지난 20년의 소회를 밝히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기업에 정해진 수명은 없지만 약관 20살의 미래에셋금융그룹은 분명 청년의 나이다. 창업자의 경영철학이 생생하게 전파되고 있고 후배들의 경험이 쌓여 지금 미래에셋금융그룹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2017/09/20, 무등일보와 인터뷰에서)

“미래에셋대우가 닮고자 하는 모델은 일본의 노무라증권은 아니다. 전통적인 투자금융(IB)회사인 골드만삭스나 블랙스톤 등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블랙록과 같이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해온 회사들의 장점도 배우고자 한다.” (2017/01/11,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보험은 자산운용업이다. 기준금리 연 1%대 시대에 국내 상품에만 투자하는 보수적인 경영으로는 힘들 수밖에 없다. 역마진 때문에 어렵다고 푸념할 게 아니라 자산운용을 잘해서 수익률을 높일 궁리를 해야 한다.” (2016/02/05, 한경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남들보다 늦게 증권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디뎠으니 적응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성실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서울 고덕동에서 여의도까지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출근해야 했는데 늘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일 만큼 이르게 출근했다.” (2015/07/05, 가톨릭평화신문 인터뷰에서 증권업계에 갓 들어왔을 때를 회상하며)

“해외 유명 증권·운용사는 보험자산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래에셋생명도 증권·운용사를 키우는 보험사가 되겠다.” (2015/06/18, 미래에셋생명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에서)

“100세 시대에는 중년의 개념을 4050보다는 4060으로 확장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나는 금융권에서 일하다 보니 재무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40대는 아직 미래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50대는 좀 더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자산관리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하며, 60대는 재테크도 욕심을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2015/05/18, 한경비즈니스에서 주최한 ‘4060 행복의 조건’ 좌담회에서)

“도전도 열정도 일종의 습관이다. ‘일단 해보자’며 자꾸 부딪쳐야 한다. 그래야 깨지고 실패하는 데 내성이 생기고 다시 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도전이 습관으로 된다. 열정이 있으면 도전이 버겁지 않다.” (2014/03/21, 한경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기업이 공개시장에 나가는 것은 결혼과 같다. 결혼할 준비는 마쳤다.” (2013/01/24,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래에셋생명의 상장 계획을 밝히면서)

“옛날 한나라를 세웠던 유방은 자기 옆에 한신, 소하, 장자방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던 덕분에 항우를 물리칠 수 있다고 공덕을 돌렸다. 나도 모든 직원들의 이름을 외우고 마음과 권한을 주었던 것이 미래에셋증권 CEO로서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요즘 학생들이 공부에 매진하고 열심히 사는 것은 좋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일찍부터 사람과의 관계를 많이 맺어놓아야 한다.” (2011/11/15, 한국경제와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주최로 경희대에서 열린 CEO특강에서)

“재미있고 우스운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 증권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적정한) 취직연령이란 것이 있었는데 나는 그 연령까지 1년 반 밖에 남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때 내 아내라는 좋은 자산을 찾았다. 그 자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증권업을 선택했고 굉장히 열심히 일했다. 6년 아래 후배들과 동기가 됐지만 가장 이른 시각에 출근하고 모든 부분에서 선도적인 평가를 받았다.” (2011/05/03, 한국경제TV 인터뷰에서)

“소위 ‘미국식 투자금융(IB)’의 실패가 ‘투자금융회사 모델’의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리스크 관리에서 실패했을 뿐 기업이 존재하고 자본시장이 있는 한 투자금융회사 모델은 변함없이 유효하다.” (2010/10/17,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일반적인 재테크 과정에서 자산의 선택은 주식으로 하고 주식에 투자할 때는 100% 적립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주식으로만 재테크를 하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도 내에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0/08/06,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투자교육방송 미래에셋미디어의 '릴레이 런치' 코너에 나와서)

“위기는 경제 지도를 바꾼다. 애플처럼 시대 변화에 발맞춰 변하는 것이 강해지는 길이다.” (2010/05/19,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매일경제 CEO특강에서)

“퇴직연금사업은 눈덩이를 굴리는 것과 같아 처음에는 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성과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특징이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달성한 성과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앞으로 더 노력 한다면 퇴직연금사업자 전체에서도 1위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2009/01/02, 미래에셋증권 신년사에서)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에게 미안하다. 미래에셋은 12년간 쌓아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지금이 어려운 시기로, 미래에셋증권 역시 힘들지만 설립 초기 이보다 더 어려운 시기도 있었던 만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2008/07/03, 기자간담회에서 미래에셋증권 등이 투자한 중국 펀드에서 대규모 손실이 생긴 점을 사과하면서)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수뇌부가 방심하면 순식간에 내리막길로 치닫는다. 잘 나갈 때 더욱 긴장하자는 의미에서 ‘좋을 때 헬렐레하지 말자’는 문구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뒀었다.” (2008/02/09, 중앙선데이 기사에서)

“투자금융(IB)사업에 대해 그렇게 급하지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좋은 상품을 개발하고 이 상품을 고객에게 잘 팔고, 또 잘 관리해서 투자자와 증권사 모두에 이익을 남기는 게 투자금융사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2007/10/29,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등과 겨뤄도 자신 있다. 아시아 시장에 나가서 피델리티 같은 회사와 경쟁해 보니 미래에셋금융그룹도 수익률 면에서 뒤지지 않았다.” (2007/06/24,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인력을 다른 곳에서 빼오는 식이 아닌 내부에서 길러내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한 인재육성을 중시하고 있다. 다양하고 질 높은 전문 직무교육과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등 인재육성에 적극 나서겠다.” (2007/05/02,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회사의 장기 성장에 필수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을 질문받자)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다행히 미래에셋증권은 좋은 상품을 갖고 있어 영업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지속시키고 개선하는 역할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인사와 예산 등 대부분의 권한을 본부장 선으로 넘겼지만 직원 스카우트를 포함한 인재관리 문제만은 내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006/08/20,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미래에셋증권은 종합자산관리회사로서 경쟁력이 있다. 앞서 밝혔듯 위탁매매 비중이 낮은 선진화된 영업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일을 많이 했다. 뮤추얼펀드, ELF, 부동산펀드, 사모펀드, 해외투자펀드 등이 미래에셋증권에서 첫발을 디딘 것들이다. 이처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으려는 의지가 우리 회사의 경쟁력이 아닌가 싶다.” (2005/02/07, 매경이코노미 인터뷰에서)

“미래에셋증권은 다른 증권사가 위탁영업에 주력하는 지난 6년간 펀드 운용 경쟁력을 기반으로 자산관리에 집중해왔다. 이제는 증권사에서 투자금융(IB)회사로 도약할 때라고 본다.” (2005/03/17, 머니투데이 인터뷰에서)

“증권저축 운용 원칙은 평소 투자설명회에서 늘 강조했던 대로 자산 배분상의 여유자금과 우량주 장기 투자다. 소득공제 등 세제 혜택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03/12/29, 매일경제 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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