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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상철 LG유플러스 전 부회장
김수정 기자  yeoeuny@businesspost.co.kr  |  2014-06-09 19: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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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철 LG유플러스 전 대표이사 부회장.

◆ 생애


이상철은 1948년 2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듀크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컴퓨터사이언스에서 연구원으로 있다가 1981년 귀국해 10년 동안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1991년 KT 통신망연구소 소장이 되면서 국내 통신 시장에 뛰어 들었다. KT 사업개발단 단장과 한국전기통신공사 무선사업본부 본부장을 1996년 KTF의 대표를 맡았다.

2000년 12월 한국통신 최연소 사장이 되었다가 정부통신부 장관에 발탁됐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려대에서 석좌교수, 광운대 총장을 역임했다.

2010년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입돼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산업융합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15년 연말인사에서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 가족관계


아버지 이창우와 어머니 방덕순 사이에서 7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고 이창우는 문교부 장학관과 경성고 교장 등을 지낸 교육자이다.

형제 여섯 명이 서울대를 나온 수재 집안이다. 형 이상훈은 육사를 나와 전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보수단체인 애국단체총협의회 대표회장이다. 또 다른 형 이상문은 네브라스카대 경영학과 교수로 있다.

사단법인 한국우리누리재단 이사장인 부인 한명희와 사이에서 1남1녀를 두었다.

◆ 학력


서울 경기고를 나와 1971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3년 미국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학교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미국 듀크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경력


28살의 나이에 듀크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통신위성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79년부터 미국 컴퓨터사이언스에서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1981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형 이상훈의 권유로 귀국해 1991년까지 10여 년간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차세대 군용 무전기 사업 개발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을 최초로 상용화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후 FM 무전기, 차기 전술 통신 체계, 차기 지휘 통신 자동화 체계(C4I) 등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통신 관련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1991년 KT 통신망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국내 통신 시장에 뛰어 들었다.

KT 사업개발단 단장과 한국전기통신공사 무선사업본부 본부장을 거쳐 1996년 KTF의 대표에 취임해 2000년까지 재직했다. 취임한 지 반년 만에 12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최단 기간 내 최대 가입자 확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00년 12월 한국통신 창사 이래 최연소의 나이로 사장에 취임해 민영화를 주도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정부통신부 장관에 발탁돼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과 와이브로(WiBro) 등을 개발했고 번호이동제도를 도입했다.

2003년 장관직에서 물러나 고려대에서 석좌교수가 되었다가 2005년 광운대 총장에 임명돼 4년 동안 재직했다.

2010년 LG유플러스 부회장으로 영입되면서 통신 업계 일선에 나섰다. 4G LTE 전국망 국내 최초 구축과 문자‧음성‧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최초로 출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만년 3위였던 LG유플러스의 성장을 이끌었다.

2015년 연말인사에서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 사건/사고


2013년 LG유플러스가 광대역LTE 망 구축에 통신장비 업체로 중국 화웨이를 참여시키자 도감청 및 해킹 등 보안문제가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이상철 부회장은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화웨이 제품은 이미 영국의 국제상호인정협정(CCRA)의 인증을 받은 안전한 제품”이라면서 “국제 공인인증기관을 통해 중국 화웨이 통신장비의 보안을 검증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추대돼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구에 출마해 선전했으나 임태희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 상훈


1999년 한국통신학회로부터 통신경영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국내 펀드매니저들로부터 ‘펀드매니저들이 뽑은 최고경영자부문’ 1위로 선정됐다.

2011년 제6회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개인 공로상을 받았다.

2013년 제22회 다산경영상 시상식에서 전문경영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2013년 제58회 정보통신의 날 시상식에서 정보통신 부문 대상을 받았다.

◆ 어록


“사랑과 행복의 6년을 마지막 직장에서 보내고 또 그 정점에서 떠날 수 있어 여러분에게 진정 고맙습니다.” (2015/11/27 대표이사 사임한 뒤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의 궁극적인 임무는 정보와 기회의 나눔을 통해 공공선(公共善)의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2014/05/22,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디지털포럼(SDF)에서)

“테크놀로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러한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어떠한 가치를 창출하는가가 중요하다. 과거 MWC와 같은 IT 전시회에 오면 기술 중심의 트렌드가 많이 보였지만 이제는 인간 중심의 가치가 창출된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2014/02/26,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 MWC) 2014’ 참관 후 임직원들과의 면담에서)

“우리가 갈 길은 ‘패스트 팔로워(추종자)’가 아닌 시장선도를 위한 ‘퍼스트 무버(선도자)’이다. 심안(心眼)을 갖게 되면 선(先)을 얻을 수 있고 선(先)을 얻게 되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심안통선 선즉제인(心眼通先 先則制人)’을 발휘한다면 꿈꾸고 도전하는 목표를 반드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14/01/03, 충남 예산에서 열린 ‘2014 리더 혁신 캠프’에서)

◆ 평가


정부·학계·산업계를 넘나들며 화려한 이력을 쌓아온 통신업계의 마당발, 특히 LTE 전도사로 일컬어진다.

2010년 1월 LG유플러스 대표에 취임한 뒤 통신업계의 지각변동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LTE(4세대 이동통신) 전국망 구축에 1조7천억 원을 투입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으로 승부사로서 면모를 드러냈다. 시장을 선도하는 통찰력으로 통신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다.

‘고객중심 경영‘ 철학을 강조한다. 지방 출장 시에는 직영점과 네트워크, 고객센터를 어김없이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과 친근하게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표이사 취임 후 사외 개인 블로그 ‘스와이-낭트이상철(www.leesangchul.com)’을 개설해 운영하기도 했다. 임직원 가정 깜짝 방문과 자녀 졸업입학 축하선물, 현장방문 등 업무와 일상을 포스팅 하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매년 사업목표와 성과 등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이부회장이 내건 LG유플러스의 화두는 순위가 없다는 무등(無等)과 최고의 자리를 말하는 지존(至尊)의 합성어인 ‘무등지존’이었다. 2014년은 ‘심안통선 선즉제인(心眼通先 先則制人)’이다. 마음의 눈을 얻어 시장을 선도하자는 의미라고 한다.

◆ 기타

2013년 기준 총 16억74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 1위인 하성민 SK텔레콤 사장보다 4억 원 많은 액수다. 44억 원을 받은 구본무 회장을 제외하면 LG그룹 내 등기임원 가운데도 최고의 수준이다.

2015년 사업보고서에서 2014년 보수 21억 7800만 원 받은 것으로 드러나 이동통신 3사 CEO 가운데 '연봉킹'에 올랐다.

한국기원 이사를 지냈을 만큼 바둑을 좋아한다. 아마 6단의 고수로 한때 조훈현 9단 등 프로기사들과 접바둑을 두기도 했다고 한다. 대학 재학시절에는 서울대 공대 바둑 대표로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고전(古典)은 물론 관상학과 역학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전한다.

2004년부터 10년째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사회복지사인 부인과 함께 ‘IT(정보기술)를 접목한 장애인 돕기 활동을 벌여왔다.


◆ 평가

정부·학계·산업계를 넘나들며 화려한 이력을 쌓아온 통신업계의 마당발, 특히 LTE 전도사로 일컬어진다.

2010년 1월 LG유플러스 대표에 취임한 뒤 통신업계의 지각변동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LTE(4세대 이동통신) 전국망 구축에 1조7천억 원을 투입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으로 승부사로서 면모를 드러냈다. 시장을 선도하는 통찰력으로 통신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다.

‘고객중심 경영‘ 철학을 강조한다. 지방 출장 시에는 직영점과 네트워크, 고객센터를 어김없이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과 친근하게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표이사 취임 후 사외 개인 블로그 ‘스와이-낭트이상철(www.leesangchul.com)’을 개설해 운영하기도 했다. 임직원 가정 깜짝 방문과 자녀 졸업입학 축하선물, 현장방문 등 업무와 일상을 포스팅 하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매년 사업목표와 성과 등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이부회장이 내건 LG유플러스의 화두는 순위가 없다는 무등(無等)과 최고의 자리를 말하는 지존(至尊)의 합성어인 ‘무등지존’이었다. 2014년은 ‘심안통선 선즉제인(心眼通先 先則制人)’이다. 마음의 눈을 얻어 시장을 선도하자는 의미라고 한다.

◆ 사건/사고

2013년 LG유플러스가 광대역LTE 망 구축에 통신장비 업체로 중국 화웨이를 참여시키자 도감청 및 해킹 등 보안문제가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이상철 부회장은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화웨이 제품은 이미 영국의 국제상호인정협정(CCRA)의 인증을 받은 안전한 제품”이라면서 “국제 공인인증기관을 통해 중국 화웨이 통신장비의 보안을 검증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추대돼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구에 출마해 선전했으나 임태희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 경력


28살의 나이에 듀크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통신위성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79년부터 미국 컴퓨터사이언스에서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1981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형 이상훈의 권유로 귀국해 1991년까지 10여 년간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차세대 군용 무전기 사업 개발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을 최초로 상용화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후 FM 무전기, 차기 전술 통신 체계, 차기 지휘 통신 자동화 체계(C4I) 등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통신 관련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1991년 KT 통신망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국내 통신 시장에 뛰어 들었다.

KT 사업개발단 단장과 한국전기통신공사 무선사업본부 본부장을 거쳐 1996년 KTF의 대표에 취임해 2000년까지 재직했다. 취임한 지 반년 만에 12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최단 기간 내 최대 가입자 확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00년 12월 한국통신 창사 이래 최연소의 나이로 사장에 취임해 민영화를 주도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정부통신부 장관에 발탁돼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과 와이브로(WiBro) 등을 개발했고 번호이동제도를 도입했다.

2003년 장관직에서 물러나 고려대에서 석좌교수가 되었다가 2005년 광운대 총장에 임명돼 4년 동안 재직했다.

2010년 LG유플러스 부회장으로 영입되면서 통신 업계 일선에 나섰다. 4G LTE 전국망 국내 최초 구축과 문자‧음성‧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최초로 출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만년 3위였던 LG유플러스의 성장을 이끌었다.

2015년 연말인사에서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 학력


서울 경기고를 나와 1971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3년 미국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학교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미국 듀크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 이창우와 어머니 방덕순 사이에서 7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고 이창우는 문교부 장학관과 경성고 교장 등을 지낸 교육자이다.

형제 여섯 명이 서울대를 나온 수재 집안이다. 형 이상훈은 육사를 나와 전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보수단체인 애국단체총협의회 대표회장이다. 또 다른 형 이상문은 네브라스카대 경영학과 교수로 있다.

사단법인 한국우리누리재단 이사장인 부인 한명희와 사이에서 1남1녀를 두었다.

◆ 상훈


1999년 한국통신학회로부터 통신경영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국내 펀드매니저들로부터 ‘펀드매니저들이 뽑은 최고경영자부문’ 1위로 선정됐다.

2011년 제6회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개인 공로상을 받았다.

2013년 제22회 다산경영상 시상식에서 전문경영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2013년 제58회 정보통신의 날 시상식에서 정보통신 부문 대상을 받았다.


◆ 어록


“사랑과 행복의 6년을 마지막 직장에서 보내고 또 그 정점에서 떠날 수 있어 여러분에게 진정 고맙습니다.” (2015/11/27 대표이사 사임한 뒤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의 궁극적인 임무는 정보와 기회의 나눔을 통해 공공선(公共善)의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2014/05/22,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디지털포럼(SDF)에서)

“테크놀로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러한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어떠한 가치를 창출하는가가 중요하다. 과거 MWC와 같은 IT 전시회에 오면 기술 중심의 트렌드가 많이 보였지만 이제는 인간 중심의 가치가 창출된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2014/02/26,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 MWC) 2014’ 참관 후 임직원들과의 면담에서)

“우리가 갈 길은 ‘패스트 팔로워(추종자)’가 아닌 시장선도를 위한 ‘퍼스트 무버(선도자)’이다. 심안(心眼)을 갖게 되면 선(先)을 얻을 수 있고 선(先)을 얻게 되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심안통선 선즉제인(心眼通先 先則制人)’을 발휘한다면 꿈꾸고 도전하는 목표를 반드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14/01/03, 충남 예산에서 열린 ‘2014 리더 혁신 캠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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