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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개혁셩항에 소신 강해, 해양수산 현안 밝아 [2018년]
장은파 기자 jep@businesspost.co.kr 2018-12-06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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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은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해운산업을 재건을 목표로 해양진흥공사의 설립에 기여하고 한국 해운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1962년 2월5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영삼정부에서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상도동계 막내’로 불렸다.

총선에서 서울 광진갑에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한나라당의 혁신운동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다음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열린우리당 의원으로 당선됐다. 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부산으로 출마지역을 옮겼다. 재수 끝에 부산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에서 해양수산부를 감독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대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부산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농림해양정책위원장도 맡아 문 후보의 해양정책 설계에 참여했다.

원칙과 합리성을 중시한다. 해양수산업 현안에 밝고 3선 의원으로서 정무감각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뒤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무색무취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해양모태펀드 추진
김영춘이 의지를 지니고 추진한 해양모태펀드가 국회 예산심사 문턱을 넘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조정소위원회는 2018년 11월30일 해양수산부의 신규사업인 해양모태펀드 예산을 200억 원 정부 원안대로 의결했다.

앞으로 예결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를 거쳐 해양모태펀드 예산이 확정된다. 자유한국당은 이 사업을 2019년 예산안 100대 문제사업에 포함하면서 전액 삭감 의견을 냈는데 극적으로 회생했다.

김영춘은 해양모태펀드를 통해 조선기자재, 항만 자동화, 해양바이오, 해양환경산업 등 부산·경남·울산 지역의 중소기업들이 많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했다.

김영춘은 2018년 6월 취임 1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모태펀드에 해양 분야를 추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존에 해양수산부는 농수산펀드를 통해 수산 분야 스타트업만을 지원했다. 여기에 해양바이오나 첨단 해양장비 등 해양 분야 스타트업까지 지원하려는 것이다.

해양모태펀드는 정부 200억 원, 민간 60억 원을 출자해 260억 원 규모로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춘은 2022년까지 성공하는 스타트업 200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Who Is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 왼쪽부터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이윤재 한국선주협회 회장이 2018년 2월1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상공-무역-해운 상생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상의>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국내 해운업계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18년 7월5일 해양수산부 산하에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출범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의 법정 자본금은 5조 원으로 출범 초기 자본금은 3조1천억 원 규모다.

해양진흥공사는 2018년 4월5일 김영춘이 발표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바탕을 뒀다. 한국해양보증보험과 한국선박해양을 통합해 설립됐으며 선사의 선박 확충 지원을 우선적으로 실행한다.

2016년 한진해운이 최종 파산하고 전체 해운업 매출이 10조 원 이상 줄어드는 등 해운업의 위기가 심화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선 후보 시절 해운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공사 설립 공약을 내놓았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 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해 공약을 이행했다.

김영춘은 해양진흥공사 설립을 위해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해양수산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를 통해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방안을 보고했다.

당시 김영춘은 “해양수산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이며 국민의 삶과 지역경제 발전을 책임지는 미래산업”이라며 “해양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꾼다는 재조해양의 자세로 세계 해양 강국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은 2017년 6월16일 문재인 정부 1기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주영, 유기준 전 장관에 이어 역대 3번째로 현직의원 출신 해양수산부 장관에 올랐다.

김영춘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할 당시 ‘거꾸로 세계지도’를 내걸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며 “해양수산 분야를 국가 전략사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거꾸로 세계지도는 북반구를 아래쪽에 위치한 지도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태평양이 지도 중심에 펼쳐져 있다.

김영춘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된 초기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세월호 진상 규명과 후속대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2017년 세월호에서 발견된 유골을 해양수산부 조사원이 숨겨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영춘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출범하고 ‘재조해양’이라는 명제 아래 해양강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영춘은 2018년 4월 세계 5위 해운 경쟁력 회복을 위한 해운재건 5 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안정적 화물 확보 △저비용 고효율 선박 확충 △선사 경영 안정을 목표로 제시했다.

해양공간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해양공간 계획제도를 도입했고 연안 선박 안전관리 강화방안 등 해양 안전관리제도를 개편했다. 수산물 수출 확대와 고부가가치 양식산업 육성 등을 추진해 2017년에 고부가가치 수산가공 수출 9억 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두는 성과를 냈다.

△해양수산 관련 원내 활동과 장관 지명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30일 김영춘을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김영춘 후보자는 해운산업 부활과 수산업 보호, 세월호 진상 규명 등 주요 과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영춘은 “위기에 처한 해운, 항만 수산업을 재건하고 지속 가능한 해양자원의 이용과 보전, 그리고 해양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해양 강국을 실현해나가겠다”며 “세월호 수습의 마무리와 진상 규명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춘은 20대 국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는데 이때 해양산업에 상당한 관심과 전문성을 보인 점이 장관 기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2017년 2월16일 상임위원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해운거래소 설립 등을 해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월호 인양과 바닷모래 논란 등 해수부와 관련된 논의에도 적극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농림해양정책위원장도 맡았다.

해양산업의 중심지인 부산 출신이고 19·20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지지기반을 튼튼하게 쌓은 점도 고려됐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쳐갔던 자리다. 김영춘은 2006년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의 지방선거 출마설이 돌 때 후임 장관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실제로 지명되지 않았다.

△부산 지역구에서 도전
김영춘은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패배한 뒤 칩거했다.

2010년 당시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표가 김영춘의 복귀를 설득하면서 민주통합당의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당시 김영춘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영남 지역에 출마하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김영춘은 2012년 19대 총선에 고향인 부산 진구갑에 출마했지만 접전 끝에 패했다. 김영춘은 부산으로 이사하고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을 맡아 광역단위 정당단체의 첫 싱크탱크인 ‘오륙도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재도전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통합당의 부산시장 후보가 됐지만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오거돈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김영춘은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부산 진구갑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한때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던 부산에서 승리하면서 지역주의를 어느 정도 깬 것으로 평가받았다.

2017년 5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부산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유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를 통해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 부산 지역 지지율 1위에 오르는 데도 기여했다.

김영춘은 2020년 21대 총선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

△‘독수리 5형제’에서 열린우리당 탈당까지
김영춘은 16대 의원이었던 2003년 1월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한나라당 안에서 개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가 노무현 당선자의 당선 무효 소송을 내자 즉각 취하를 요구하면서 ‘당이 수구반동화의 길을 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영춘은 보수화되던 한나라당 지도부와 계속 충돌한 끝에 2003년 7월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안영근 의원과 함께 탈당했다. 이때 탈당한 사람들은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3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친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노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치솟았다. 그 여세를 몰아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열린우리당 안에서 비노무현계 인사로 분류됐다.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참여정부와 관계 단절을 주장했다. 김영춘은 2007년 4월 들어 범여권 통합신당을 추진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4월에 당내 통합론자들을 직접 비판하는 등 서로 다른 의견을 자주 보였다.

김영춘은 그 뒤 열린우리당을 흡수통합한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2007년 10월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책임지기 위해 18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 후보에게 합류해 그를 도왔다. 그러나 문국현 후보가 대선 이후 창조한국당 대표로서 자유선진당과 연대를 모색하자 탈당하고 한동안 정치인 생활을 접었다.

△상도동계 막내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운동을 하다가 직선제 개헌운동에도 참여했다.

이때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의 소개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던 김영삼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을 찾아가 정계에 입문했다. 지금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계파인 ‘상도동계’의 막내로 불리고 있다.

1987년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밑에서 비서로 일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자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김영삼의 셋째 아들’로 불릴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1996년 15대 총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 서울 광진구갑 지역구로 출마해 한나라당 의원으로 당선됐다. 한나라당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이었다.

김영춘이 2003년 한나라당 탈당을 결정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영춘을 불러 “한나라당에 가만히 있으면 대선 후보도 될 수 있는데 왜 하루살이가 되려고 하느냐”며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영춘은 “한나라당이 ‘도로 민정당’이 됐는데 어떻게 있겠느냐”고 대답한 뒤 탈당했다.

김영춘은 2017년 5월 19대 대선 투표를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의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대학생 시절 민주화운동
김영춘은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뒤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당시 여당인 민정당사 점거시위를 주도해 구속됐다. 1985년 2월12일 총선 이후 출소해 노동운동을 했다.

이때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훗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선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토대가 됐다. 김영춘은 운동권 출신이 많은 더불어민주당 ‘86그룹’의 맏형 격이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 한국해양진흥공사에서 2018년 7월5일 열린 현판제막식에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 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춘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국내 해운산업 재건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6년 한진해운의 파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해운업을 재건하고 있다. 해운업과 연계된 항만산업 등의 부진도 함께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다.

김영춘은 이를 위해 2018년 7월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해 국내 해운기업들에 선박 발주와 유동성 확보를 지원하고 있다. 그는 10월 국정감사에서 해양진흥공사를 통해 3년 동안 200척 이상의 선박 신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해양레저·관광산업 육성 마스터플랜, 해양모태펀드 신설 등으로 해양 분야 일자리 확충에도 힘을 쏟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해지는 추세에 발맞춰 국내 해운기업들에 친환경 선박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김영춘은 친환경 설비 기술 개발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항만 지역 대기오염 물질의 통합관리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을 추진하기로 했다.

수산업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점에 대처해야 한다. 해양수산업 콘트롤타워인 국가해양위원회가 신설돼야 한다는 해안지역 시민들의 의견도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춘은 2018년 안에 수산혁신 비전 2030을 내놓는다. 수산 자원관리부터 생산, 유통, 소비까지 전 단계를 혁신하기 위한 방안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 평가

개혁성향으로 소신이 강하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의원생활을 시작했지만 개혁운동이 통하지 않자 당을 탈퇴해 열린우리당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20대 국회에서 농림축산수산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할 때 여야 의원들의 의견을 잘 중재했다. 쟁점 사안들도 합리적으로 처리해 해양수산부 공무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안의 ‘86세대(1980년대 출생, 1960년대 학번)’ 의원들 가운데 맏형 격인 3선 의원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서 3~4회 정도 낙선한 경험이 있는 김부겸 김두관 김영호 의원 등과 함께 2016년에 ‘카라스키야’ 모임을 만들었다.

카라스키야는 1977년 11월 홍수환 선수와 세계복싱협회 주니어페더급 타이틀을 놓고 맞붙은 파나마 선수다. 당시 홍수환 선수가 4번 다운됐는데도 3라운드에서 극적인 KO승을 거두면서 4전5기의 신화를 쓴 점과 카라스키야 선수가 현재 파나마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점에 착안해 모임의 이름을 지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친하다. 김영춘은 고려대학교에 1981년에 입학했는데 같은 연도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세대학교에 들어갔다. 김영춘과 송영길 의원은 1984년 각자 학교의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돼 민주화운동에서 연대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정계에 입문하도록 한 장본인이다. 김영춘이 1989년 안희정 전 지사를 김덕룡 의원실에 소개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각을 세운 적이 있다. 유 이사장이 의원 시절인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 경선을 앞두고 '반 정동영 대 친 김근태' 발언을 한 것을 놓고 김영춘은 “전당대회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만들어버리고자 하는 형의 분별없음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김영춘은 “형은 나름대로 진실한 사람"이라면서도 "다만 저도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춘은 이후 2010년에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유시민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춘의 말은 오랫동안 유 이사장을 향한 인물평으로 따라붙었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17대 국회가 끝난 뒤 자전거로 1개월 동안 국토순례를 하고 블로그를 통해 여행기를 연재했다.

애창곡은 ‘부산갈매기’인데 한때 통화연결음으로 쓰기도 했다.

종교는 천주교다.

사건사고
[Who Is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23일 세종특별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월호 유골발견 은폐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미수습자 유골발견 은폐 논란
해양수산부가 세월호에서 유골을 수습하고도 은폐했다는 사실이 경향신문 보도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2017년 11월17일 선체에서 그동안 수거된 반출물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손목뼈 1점을 발견했다.

그러나 현장수습본부는 같은 달 21일에 선체조사위원회와 일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만 알리고 2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식을 요청했다.

김현태 세월호 후속대책추진단 부단장은 현장에서 관계자들에게 “내가 책임질 테니 유골을 수습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춘은 해당 책임자를 보직에서 해임한 뒤 본부에서 대기 조치하고 감사실을 통해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23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김영춘은 “책임져야 할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며 “미수습자 가족분들과 유가족분들 그리고 모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흥진호 나포 사건
김영춘은 2017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흥진호 나포’ 사실을 1주일 동안 모를 수 있냐는 비판을 받았다.

김영춘은 흥진호가 조업 중이라고 판단해 나포 사실을 몰랐다고 말하며 사과했다.

흥진호는 2017년 10월22일 해경이 흥진호의 위치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를 접수한 뒤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국가위기관리센터, 총리실 해군작전사령부 등에 최초보고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이 흥진호 나포를 인지한 것은 27일로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로부터 통보를 받고난 뒤였다.

흥진호 나포 1년 후인 2018년 11월3일에도 우리 어선 한 척이 조업 자제 해역에서 조업을 하다 북한군에 다시 나포됐다. 해당 어선은 2시간 만에 풀려났는데 해경은 지난 9일 선장의 신고를 받고 난 뒤에야 나포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김영춘은 11월30일 국정감사에서 해양수산부의 책임이 일부 있음을 인정하며 동해 해역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적절한 후원금 의혹
김영춘은 재선 의원이었던 2007년 한 독립유공자단체의 김모 회장과 김모 임원으로부터 후원금을 각각 500만 원씩 받았다. 김영춘이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이 후원금이 부적절한 의도로 주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영춘은 2004년 독립유공자의 유족 범위를 손자녀에서 증손자녀로 확대하는 내용의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때문에 김영춘이 입법로비에 따라 법안을 발의하고 대가로 후원금 1천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김영춘은 “문제가 된 법안은 2004년 4월에 발의돼 후원금을 받은 시기인 2007년 12월과 큰 차이가 있다”며 “후원금을 받은 시기는 17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나면서 문제가 된 법안도 폐기를 앞둔 시점이라 입법 대가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해명했다.

△삼화저축은행 비리와 후원금 연관 의혹
김영춘은 2004년 당시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후원금 500만 원을 받았다. 신삼길 회장이 훗날 삼화저축은행 비리의 주범이 되면서 김영춘이 당시 받았던 후원금도 부적절한 의도가 아니었냐는 지적이 나왔다.

김영춘은 “신 회장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시점은 2004년 4월로 삼화저축은행 비리가 밝혀진 때인 2011년과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며 “2004년 4월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으로 일해 대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신 회장과 개인적 친분도 없다”고 해명했다.

△민주화운동으로 구속
1984년 11월14일 민정당사 점거시위를 주도했다가 12월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를 받았다. 1987년 특별사면됐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2018년 12월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해양수산부 공공기관장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1987년 김영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 의장의 비서로 일했다.

1993~1994년에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맡았다.

1998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광진갑 지역구에 출마해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 의장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4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서울 광진갑 지역구에 출마해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다.

2005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위원으로 일했다.

2006년 열린우리당 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2016년 인본사회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다.

2010년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복귀했다.

2016년 4월 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6월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상임위원장에 올랐다.

2017년 6월 제20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 학력

부산 성지초등학교를 거쳐 1977년 개성중학교, 1980년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문과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으며 1988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1989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 1990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심연옥씨와 결혼해 아들을 뒀다.

◆ 상훈

◆ 기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돼 병역이 면제됐다.

‘내 손으로 바꾸는 정치’(2003), ‘新 40대 기수론’(2006), ‘나라 뒤집기’(2011), ‘대한민국 자전거 & 도보여행’(2011), ‘김영춘의 부산희망 찾기’(2014) 등의 저서를 냈다.

2018년 3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공직자 재산변동 신고사항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 아파트 등 주택 8억7600만 원, 예금 5억4800만 원 등 모두 9억6500만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어록
[Who Is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2018년 11월27일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에서 열린 '해양경찰청 송도청사 입주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는 공동어로구역 내 비무장 지도선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정도만 합의돼있다. 유엔이 해도 되는 사업이라고 명백히 인정하기 전까지는 공동어로구역 운영과 시행에 바로 돌입하는 것은 어렵다.” (2018/10/19,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24 조치 해제는 관계부처지만 금시초문이다. 지금 진행되는 남북과 북미 사이의 협상 결과에 따라서 좌우된다. 한강하구 공동 이용은 12월까지 기초 조사를 완료할 것이라고 돼 있지만 12월까지 조사한다는 것은 수로 조사 외에는 힘들다.” (2018/10/11,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진해운이 파산한 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해운업이 한국해양진흥공사 출범과 함께 다시 도약할 때다. 해양진흥공사 출범으로 든든한 해운산업의 안전판이 생기고 해양진흥공사가 마중물이 돼 빠른 시간 안에 우리나라가 글로벌 5대 해운강국으로 발돋움하길 기대한다. 아울러 부산은 해운 관련 정보와 전문가들이 모이는 아시아 해운 허브로 만들어나가겠다.” (2018/07/04,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을 앞두고)

“남북경협과 관련돼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없다. 돈이 얼마 들지 않는 수산협력, 항로개설 등은 여건만 갖춰지면 당장 진행할 수 있다. 항만 개발이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개발과 관련한 조사연구는 바로 시작할 수도 있다.” (2018/06/21, 해양수산부 장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신규 제도도입, 예산 확대 등 다양한 정책지원을 통하여 해양수산업이 미래전략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원년을 만들어 가겠다. 뉴 스타트(New Start) 한국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세계 5위 수준의 해운강국을 재건하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 (2017/12/29, 2018년 신년사)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전체 수습과정을 돌아보고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철저히 재점검할 것을 지시하겠다. 추가 유해 발견 등 어떤 상황이 현장에서 발생하더라도 결코 자의적이거나 비밀스럽게 처리하지 않을 것이며 재발방지 대책을 위해 노력하겠다.” (2017/11/23, 세월호 유골 발견 은폐 긴급 브리핑에서)

“세월호의 고의적 인양 지연 의도는 없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세월호 인양이 지연됐으나 지난 정부도 인양을 제대로 하려고 했다고 본다. 다만 인양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는 있었다.” (2017/10/13,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 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과 관련해)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와 청와대의 조치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고 당시 구조가 신속하지 못하게 이뤄지는 등 국가 책임이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양수산부나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를 은폐하는 등 불법적인 일이 있었다면 관련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가 필요하다.” (2017/06/12,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정당에 가깝다. 새누리당, 보수언론, 재계 등 기득권에서 우리를 진보라고 하는데, 그건 우리나라에 진보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가 그쪽을 대변하면서 생긴 편견이 아닐까 싶다. 본질적으로는 보수에 가깝다. 어떤 사안에서는 진보를, 또 다른 사안에서 보수적 입장을 낸다. 이게 당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나 싶다. 이념적 잣대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게 힘들어진 세상이다.” (2016/12/19,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

“나의 당선은 시민 여러분의 승리이자 새누리당 일당독점 20년을 끝내고 견제와 균형의 부산 정치를 새로 시작하라는 시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그 힘으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대장정에 나서겠다.” (2016/04/13, 20대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해 승리한 뒤 당선소감)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내년 총선 때 꼭 부산에서 출마해줄 것을 요청한다. 부산 지역에서 전·현직 대표나 중량감을 지닌 분들이 적지나 다름없는 전선에서 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다. 그것이 전국 정당을 실현하는 길이다.” (2015/09/24, 데일리한국과 인터뷰에서)

“몸과 발이 최고의 무기이고 전략이다. 내가 국회의원 배지를 두 번 달았는데, 이기는 법을 안다.” (2014/10/31, 국제신문 인터뷰에서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할 뜻을 밝히며)

“부산시민들의 경우 항상 원전사고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도 이와 관련한 지역주민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부산시민 반값전기료가 적용돼야 한다.” (2013/11/11, 부산 YWCA 강당에서 열린 제2회 부산비전 정책토론에서)

“부산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운동에 매진한 지난 1년 동안이 정치를 시작한 이후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평범한 부산시민으로서 여러분 곁에서 애환을 나누고 더 공부하겠다.” (2012/04/11, 19대 총선 당시 부산 지역에 출마했다가 석패한 뒤)

“부산은 내가 유아기와 초·중·고 학창시절을 모두 보낸 지역이다. 서울에서 쌓아 올린 정치인 김영춘의 기득권을 내던지고 부산에서 한나라당 일당 지배의 파열구를 내는 도전에서부터 부산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보고 싶다.” (2012/05, 자신의 블로그에서 부산지역 출마를 선언하며)

“부산 사람들의 화끈한 기질상 바람이 불면 세게 분다.” (2011/02/24, 2012년 총선에 부산 지역에서 출마하겠다고 밝힌 뒤 민주당이 부산 지역에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람이라는 가치에 주목하면 거의 모든 문제가 정리될 수 있다. 경제발전 모델, 복지, 노동 교육, 이런 문제들을 해석하고 정치를 세우는 뼈대와 관점을 사람 문제에서 접근하면 진보와 보수를 모두 통합하는 관점이 나올 수 있다.” (2009/05/17,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인정했기에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지만 현재의 신당 모습은 오히려 열린우리당보다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2007/10/11,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탈당, 18대 총선 불출마, 문국현 지지 등을 선언하면서)

“이 시점에서 탈당을 시사하는 발언이 과연 우리의 통합노력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모르겠다. 당이 어려울 때 자기 정치에 골몰하는 작은 정치인의 모습이다. 고마해라, 많이 무웃다(그만해라, 많이 먹었다).” (2007/05/04, 열린우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시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의 탈당 움직임을 비판하며 영화 ‘친구’의 대사를 인용해)

“농성의 목적은 당시 폭압정치의 현실과 전두환 정권이 내놓은 학원자율화 조치의 허구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민정당사 점거농성으로 송영길 의원과 나는 구속됐지만 억눌려 있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분출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농성은 애초 목표를 200%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2006/01/06,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1984년 11월 민정당사 점거시위를 주도했던 것을 회상하며)

“나는 오늘부터 이 더러운 국회의원직 배지를 떼겠다. 당장 의원직 총사퇴를 하고 이 자리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자.” (2004/03/12,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선거 때만이 아니다. 평상시에도 호남과 영남 출신 설렁탕집까지 단골이 확연히 구별된다. 따뜻한 이웃이어야 할 주민들이 지역주의 때문에 원수처럼 패가 갈려 있는 것이다. 민주당 커뮤니티와 한나라당 커뮤니티가 아랍과 이스라엘 민족처럼 원색적이고 배타적으로 대립하는 ‘악성 지역주의’는 시급히 극복돼야 한다.” (2003/09/16,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지금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수술대에 올라가는 환자다. 수술대에 올라가는 환자가 수술이 잘못될 경우를 생각하고 수술대에 올라가기보다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술에 임하는 것이 병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2002/12/31,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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